주일설교 글답변
본문 바로가기
홈
로그인
회원가입
교회소개
담임목사 인사
목회철학
섬기는 사람들
침례교회의 신앙
교회의 역사
모임시간
찾아오시는 길
말 씀
영상설교
주일설교
설교노트
성경으로의 여행
목장성경공부
수요설교
매일의 양식
성경연구
교회영상
공동체
목장안내
장 년
주 부
청년대학
청소년
어린이부
사 역
제자사역
은사별 사역
전도
선교
BBC오케스트라
노아카페
성도의 교제
자료실
광고
사역일정
앨범
주일학교
선교소식
사역자 게시판
말 씀
영상설교
주일설교
설교노트
성경으로의 여행
목장성경공부
수요설교
매일의 양식
성경연구
교회영상
HOME > 말 씀 > 주일설교
주일설교
주일설교 글답변
이름
필수
비밀번호
필수
이메일
홈페이지
옵션
HTML
제목
필수
내용
필수
웹에디터 시작
> > > 십자가에서 새롭게 되는 삶 >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5-6). >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희생하신 그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 >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의 대속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이렇게 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대속의 죽음인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하여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 (벧전 2:24)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 >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분의 죽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가 누리는 놀라운 구원의 특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선포하심으로 인하여 유죄 판결을 받고, 십자가의 형벌로 죽임을 당하는 재판선고를 받게 됩니다. 인류역사상 십자가의 형벌만큼 잔인한 모양의 사형제도는 없었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그 자체로 너무나 잔인한 사형제도였던 것입니다. > >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기전에도, 채찍질의 형벌을 받으면서 아픈 육체와 정신적인 아픔을 당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로마 군대에 넘김으로 인하여, 주님은 조롱당하셨고 채찍에 받으셨습니다. > >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회롱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회롱하고 때리며 그의 눈을 가리우고 물어 가로되 선지자 노릇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눅 22: 63-65).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가리우고 얼굴에 침을 밷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예수여, 누가 당신을 때렸는가?”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습니다. “누가 침을 뱉었는가?” “만일 네가 하나님이어든, 우리에게 말하라. 누가 이 일을 했는지 말하라.”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주님은 그들의 이름과 조상들의 이름까지도 모두 맞출 수가 있으시지만, 그 분은 침묵하셨습니다. > > 그들은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의 왕이다. 당신은 왕관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은 가시면류관을 만들어 주님의 머리에 씌우셨고, 큰 가시가 머리에 박힘으로 인하여 피가 흘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있는 수염을 뽑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 > 그들은 예수님을 채찍질하였습니다. 당시에 로마 군인들이 사용했던 채찍은 9개의 가죽으로 이루어진 채찍이었습니다. 각 가죽에는 뼈조각이 붙어있어서 사람의 살을 뜻어내거나, 육체에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군사가 한 대를 때리면 몸에는 9개의 상처자국이 남겨졌습니다. 한번의 채찍으로 인하여 피부가 벗겨지고 살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 > 시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예언을 하면서 “내 뼈를 셀수 있나이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채찍은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로마의 법으로는 40대 이상의 매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40대를 맞으면 상처와 피가 흘러서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로마법에서는 만일 40 대 이상의 채찍질을 가하면, 채찍질을 한 사람이 동일하게 채찍을 맞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39 대의 매질을 가했습니다. > > 여러분! 39 대를 맞으면 한 대에 9개의 자국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거의 400 개의 흔적을 몸에 남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기 전에도 , 이미 그의 몸 전체는 피와 상처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400 개의 흔적은 온 몸이 그야 말로 상처와 멍과 피투성이의 고통을 당했던 것입니다. > > 이러한 큰 고통을 당하여 모든 기력이 다하신 주님을 향하여 군사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예수여, 너는 이 십자가를 지고 산으로 올라가라.” 예수님은 무거운 십자가를 들고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몸의 피가 부족한 상황이며 잠을 못자 피곤하고 음식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프셨으며, 온갖 고문으로 큰 상처를 가지신 상황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가시다가 넘어지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군중에서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을 지목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도록 하였습니다. > > 골고다 언덕의 정상에 이르렀을 때에,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눕히고 양손에 못을 박았습니다. 십자가에 양 손목에 못으로 박히신 주님은 제대로 숨을 쉴수도 없는 고통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숨을 마시지만 쉴수가 없을 정도의 큰 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에 멈추지 않고, 예수님의 무릎을 펴서 발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 > 왜 그들은 발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까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숨을 마시면, 폐의 고통이 극에 달하여 더 이상 참을수가 없게 됩니다. 그때 숨을 쉬기 위해서 발을 의지하여 숨을 쉬게 됩니다. 그때 발에는 못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발에는 큰 고통이 있지만 숨을 쉴수가 있게 됩니다. 더 이상 참을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손을 의지하여 발의 힘을 빼게 됩니다. 그때 숨을 마시우게 되지만, 숨을 내뱉을 수가 없게 됩니다. 이와같이 몸을 위 아래로 움직이면서 숨을 쉬고 고통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손과 발에 못을 박히신 주님은 십자가에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 > 일반적으로 십자가에서 죽는 죄인은 이와같은 모습으로 몇일을 십자가에서 고통당하다가 죽어갔습니다. > > 만일 로마 군인들이 죽음을 재촉하고자 한다면, 사람의 다리를 부러트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리를 부러트리면 더 이상 설 수 없기에, 숨을 쉴수가 없어서 4-5 분 만에 죽게 됩니다. > > 그들이 예수님의 다리를 부러트리려고 왔을때에, 로마 군인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로마군인이 창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살아있는지 확인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셨습니다. > > 성경은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을 찔렀을 때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의학계에서는 피와 물이 함께 섞어서 나오는 경우는 심장이 터졌을 때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즉, 예수님의 심장이 십자가에서의 고통으로 인하여 터져버린 것입니다. > > 왜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일어나도록 하셨을까요? 성경은 로마서 5장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큰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대신 죽으심으로 그 분의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팔을 고통 중에 뻗치실 때에,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이만큼 사랑한단다.’ ‘나는 너를 이만큼 사랑해’ 이것은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독생자를 희생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 > 예수님은 우리가 그 분의 사랑을 잊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 주의 만찬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시기 전날 밤에, 그 분은 제자들과 앉아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빵과 포도주가 있다. 이것이 바로 내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것을 지켜 나를 기념하라.”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만찬을 통하여 기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 > 왜 주님은 죽어야 했을까요? 첫째,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수하고 죄를 범하는 죄인입니다. 우리 중에는 완벽한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가 행한 잘못과 죄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 >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든지 다른 사람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옥에 가든지 다른 사람이 우리의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의가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 >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희들의 죄와 실수를 잘 알고 있다. 너희들의 죄로 인한 결과는 영원한 지옥불인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너희들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너희들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천국에 갈 수 있는 티켓을 주겠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 > 하나님의 사랑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셨고, 완벽한 삶을 사셨으며,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하여 대가가 지불되었습니다. 우리가 범한 모든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 > 이사야 기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의 범한 죄와 앞으로 범할 모든 죄까지도 용서하시는 능력입니다. > > 우리가 아직 하지 범하지 않은 죄, 즉 다음 주와 내년, 그리고 10년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도 모두 용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예수님은 “나의 생명이 끝났다.”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3일 후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이 다 이루신 것은 우리의 죄에 대한 모든 대가를 지불하신 것이며, 구원의 계획이 완성되시는 것입니다. >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한 단어입니다. 그것은 바로, “모두 지불했다. paid in full" 이라는 뜻입니다. 한 사람이 자신에게 있는 청구서를 다 지불하며, 그들은 도장을 찍습니다. ”모두 지불되었음.“ 이는 기쁜 소식입니다. 다른 사람이 찾아와서 우리에게 있는 빚을 모두 갚아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죄를 범하여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부과된 형기를 마쳐야 합니다. 그가 자신의 형기를 모두 마치면,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값을 지불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마침내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갈수 있는 것입니다. >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하신 것을 선포한 것이며,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의지하여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 1:7). 만일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그 길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 >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그 길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지 않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 길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외는 죄사함 받고 천국갈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죄사함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그 분이 주시는 용서를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죄사함 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 > 십자가 사건은 성경의 중심에 있을 뿐만 아니라, 구원얻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중심에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로 살아가며, 십자가의 능력으로 승리하며, 십자가의 메시지를 증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으신 십자가의 의미를 발견하고, 우리도 십자가를 경험함으로 참된 영성의 삶을 추구하기를 갈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는 영적인 교훈이 무엇인가요? 우리는 어떻게 십자가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 > I. 십자가는 옛 사람의 죽음을 통한 새 생명을 경험하게 합니다. >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 (갈 2:20) > > 십자가에서 일어난 위대한 사건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을 경험한 사건인 것입니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 10:15b)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그분의 죽으심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인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 > >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오늘 우리에게도 죽음을 경험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 > 이것이 사도 바울이 가르치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증거합니다. 사도 바울이 가르치는 죽음은 “옛사람” 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 예수님은 부활의 생명을 얻기 위하여, 생명을 포기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새로운 생명인 영생을 얻기 위하여, 생명이 죽음을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경험할 때 우리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 > 1.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 (롬 6:4) > 2.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었다. (롬 6:4) > 3.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새 생명을 얻었다. (롬 6:4) > 4. 우리는 예수님안에서 하늘에 앉아있다. (엡 2:6) > 5.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골 3:2) > >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살아가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10 개월을 지냈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새롭게 적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먹고 자는 법을 배워야 하고, 걷는 법을 배우며 말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아기는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 >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새롭게 탄생한 아기와 같이,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생명은 하나님께로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은 우리를 하나님과 같이 살아가도록 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경험해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 > II. 십자가는 자아의 죽음으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게 합니다. >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갈 5:24) > >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생명은 자라 열매를 맺게 됩니다. 식물의 생명은 씨앗에 있습니다.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땅에서 죽어야 합니다. > > 주님은 열매를 맺는 비결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으나, 비로서 죽을 때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 씨앗 안에는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은 씨앗이 땅속에서 죽을 때 줄기가 자라며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은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은 나를 통하여 열매를 맺기를 원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 내 영혼의 깊은 곳에는 생명이 있어서 열매를 맺기를 원하는데, 이 생명은 육신의 정욕과 욕심에 부딪히게 됩니다. 육체 안에 거하는 죄와 정욕이, 새 생명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가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생명이 자라 나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할 것입니까? > > 성경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우리의 타락한 성품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성품은 죄를 품어냅니다. 타락한 성품은 육체의 욕심을 이루게 됩니다. > > 육체의 행위와 성품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5장 19-21 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누게 됩니다. 첫째는 성적인 부도덕입니다. 구체적으로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종교적인 배교입니다. 즉, 우상숭배와 술수를 의미합니다. 셋째는 사회적인 죄악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술 취함과 방탕과 같은 육체적 정욕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육체의 행위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 > 그리고, 우리는 성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일깨워줍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롬 6:11)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 > > 죄를 사랑하는 옛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었기에, 더 이상 우리는 죄의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죄의 권세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대하여 산자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안에 거하는 죄의 권세를 십자가에 못박고, 이제는 성령의 인도와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 > 이와같이, 우리가 삶의 영역을 주님께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러한 성품이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입니다. > > III. 십자가는 우리가 날마다 지고 따라야 할 제자의 삶을 보여줍니다. > >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 > 십자가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십자가였습니다. 비록 사람들은 십자가를 증오하였지만,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사랑하였습니다. 그의 사랑은 너무나 귀중하여 세상을 향한 모든 자랑과 소망을 포기하고, 오직 주님만을 따르는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 > 여러분의 삶 속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기로 결단한 적이 있습니까? 주님은 제자의 길에 대하여 “...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 >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길로 가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니.” (요 19:17)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제자가 가야 할 길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가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 > 우리가 세 번째로 경험해야 할 십자가는 세상에 대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나도 세상에 대하여 못박혔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단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세상을 지배하는 세속과 허영과 가치관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과 물질관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 >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세상에 빛으로 나타내시기를 소망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그릇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갑니다. 이 길은 주님이 가신 길이요 고난의 길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며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을 자랑하며 증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 > 사도 바울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며, 그의 몸에는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몸에는 상처가 있었으며, 발은 갈라져 피가 났으며, 눈은 광야의 바람과 모래로 인하여 안질을 앓고 있었습니다. > > 예수님의 몸에 상처가 있었듯이, 사도 바울의 마음과 몸에는 상처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는 수모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죽은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길을 가는 순교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오직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순교자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의미합니다. > > 18 세기에 가장 유명한 경건주의 운동은 진젠도르프 백작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겨자씨 수도회’ 라는 이름으로 선교운동을 하였으며 전 세계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강력한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의 삶의 중심은 ‘십자가’ 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의 구호는 “우리의 어린 양은 승리하셨다. 그 분을 따르자.” 였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은 커서 다른 교파들이 파송한 선교사들보다, 당시에 모리비안 교도로부터 파송된 선교사가 더 많았습니다. > > 우리가 십자가를 경험함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는 옛 사람을 위한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옛 사람에게 속한 육체와 정욕을 위한 십자가입니다. 셋째는 세상과 자기 부인을 위한 십자가입니다. 이것은 제자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죽음을 경험할 때, 그리스도의 생명이 더욱 강력한 능력으로 역사하리라 확신합니다. > >
웹 에디터 끝
링크 #1
링크 #2
파일 #1
파일 #2
자동등록방지
숫자음성듣기
새로고침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