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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고린도전서 강해(9) - 새로운 정체성대로 행하라 (고전 6장) > >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 >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사랑으로 희생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더 나아가 그 분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생명이시며 주이십니다. > > 우리는 예수님을 인하여 기뻐하며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신다는 진리는 늘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야 합니다. > >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는 자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하여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인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바로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성령으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 > 새로운 피조물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죄 씻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고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 거룩하고 의로운 자로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 >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6:15).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다는 의미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분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되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 >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 ...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었기에 특권과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특권을 누리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행해야 했던 것입니다. > >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 >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 살아가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담 안에 있는 죄인으로서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인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 > 이러한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6장에서 가르쳐주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 1. 우리는 피차 분쟁하지 말아야 합니다. > >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고전 6:1). > >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간의 분쟁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도간에 잇권으로 인하여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분쟁의 골이 깊자 그들은 세상의 법원에 소송을 걸어 재판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 > 성도간에 서로 우애하고 사랑해도 부족할 판에, 그들은 성도간에 얼굴을 붉히다가 결국은 재판에 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고전 6:1)라고 했습니다. > >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세상의 법정에서 고소하는 것을 불의하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년 왕국에서 다스리실 동안 우리가 주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릴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일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고전 6:2). > > 우리는 세상을 다스리게 될 뿐 아니라 천사를 판단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일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고전 6:3). 천사를 판단하는 것은 타락한 천사를 주님과 함께 심판할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 > “...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고전 6:5-6). 사도 바울은 그들의 문제를 세상의 법정에 고소해서 재판하는 것은 불의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지혜로운 사람을 세워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 > 성도가 서로 고소하는 것은 이미 패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허물이고 성도의 부끄러운 일이기에 차라리 속고 손해를 보는 편이 낫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고전 6:7-8). > > 성도가 서로 세상 법정에서 고소해서 손해 배상을 받으려는 것보다, 차라리 속임을 당하고 손해를 보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 안에서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성도 중에는 형제를 향하여 불의를 행하며 속여 이익을 얻으려는 자가 있었습니다. >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과 천사를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미래에 우리는 영적인 지위를 누릴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시대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의 영적인 위험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 >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할 우리가 같은 성도끼리 서로 속이고 욕심을 내는 것은 불의하며 하나님의 자녀에 합당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피해를 입었다 할지라도 성도 간의 분쟁은 세상의 법정이 아니라, 교회의 지혜로운 자와 영적인 리더십 아래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 > 교회내 에서 종종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종종 뉴스에 나오는 경우가 믿음이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성도간에 금전적인 거래를 하다가 도망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성도간에 사업을 하다가 서로 분쟁이 일어나 다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다단계와 같은 사업적인 관계를 맺어가다 문재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에 종종 교회 내의 문제를 사회법에 가져가는 경우도 종종 일어납니다. > >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들은 먼저 자신의 유익이 아닌 성도의 유익을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지체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함에도, 다른 성도를 통하여 금전적인 이익을 취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 > 우리 안에 어떠한 분쟁이 있다면 하나님의 사람은 복음의 위대한 사랑안에서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해야 합니다. 다른 지체를 향하여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있다면, 그러한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용납하며 용서함으로 하나되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 > 2. 우리는 불의를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 >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 > 사도 바울은 형제를 세상 법원에 고소하는 것은 불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불의한 자의 모습에 대하여 설명하며 경고를 합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고전 6:9). > >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미혹을 받지 말라고 하며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다닌다고 할지라도 모두가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는 행위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즉,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불의에서 떠나서 거룩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 > 불의한 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음란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음란은 결혼 밖의 성행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자는 고린도에서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신전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물질에 탐심을 품는 것을 사도 바울은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크게 사랑하며 집착하는 것이 우상 숭배인 것입니다. “...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6). 간음하는 자는 결혼 밖에서 행하는 성관계입니다. 그리고 탐색하는 자는 성적으로 방종하는 것이며, 남색하는 자는 남성 간 성행위로서 동성의 성적인 행위를 의미합니다. > > 구원받은 자가 동성애의 죄에 머물거나 성적으로 방탕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입어야 할 옷과 맞지 않는 것입니다. 전에는 이러한 죄를 행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이후에는 이러한 모든 죄를 벗어 버리고 의와 거룩과 경건의 옷을 입고 주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 > 10절에서는 사회적인 관계에서의 불의한 죄를 지적합니다. 도적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며, 탐람은 탐욕의 마음으로 자신의 소유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술취하는 것은 술을 즐기며 취한 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후욕은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것으로서 인신공격이나 비방, 언어 폭력으로 다른 사람의 인격에 손상을 가하는 것입니다. 토색하는 자들은 속여 빼앗은 자들입니다. 자신의 힘이나 지위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사기를 치거나 갑질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토색하는 것입니다. > >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는 불의한 일에 참여하지 않는 다고 했습니다. 형제를 고소하거나 성적인 죄에 빠져 살아가거나, 술과 비방, 토색하고 탐욕하는 사회적인 불의에 대하여 더 이상 그리스도인과는 상관없는 것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안에 성도간의 송사는 이러한 토색이나 탐욕, 그리고 비방과도 연관이 되었을 것입니다. > >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과거에 그들은 이러한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이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얻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 >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여 연합하여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의 삶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피조물의 삶은 의와 거룩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불의한 일을 행하는 자는 복음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경고하는 것입니다. > > 로마서는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롬 6:11)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은 이제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었기에 불의한 죄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살아가며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은혜로 그 분을 닮아가는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 > 고린도 교회의 성도중에는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기에,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며 육체의 정욕과 성적인 죄를 범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자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미혹을 받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 > 구원이란 거룩한 행실로 얻는 대가가 아닙니다. 구원이란 오직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구원받은 자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닮아가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이러한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은혜는 그냥 무늬만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삶에서 그리스도의 의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 > 3. 우리는 몸으로 주님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 >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전 6:15). > > 고린도전서 6장 1-12절은 공동체 안의 불의를 다루었다면, 12-20절은 성도의 몸 안의 불의 즉 음행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몸인 육체를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 > 과거에 노예들은 자신의 주인을 위하여 평생 육체의 수고를 하며 헌신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소유가 자신에게 있지 않고, 주인에게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지만, 악한 주인을 만나면 고통과 억압 아래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서 탈출하기 위하여 묵숨을 다하여 도망하기도 했습니다. > > 우리의 옛 주인은 어두움의 권세인 죄와 사탄이었습니다. 우리의 옛 주인은 악한 주인이어서 평생 죄악 가운데 살도록 미혹 한 후에 사망아래 갇히게 한 후에 영원한 멸망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참한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애굽 아래 압제받던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를 보내신 것 과 같이,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 >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도록 자신이 죄가 되셔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십자가의 은혜를 인하여 우리는 옛 주인인 죄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은혜와 의의 왕이신 예수님께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 >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를 향하여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5)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의미는,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 > 사도 바울은 ”...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이 소유주가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우리는 이제 주님의 기쁘신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우리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것이 바로 음행인 것입니다. > >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고전 6:12)고 했습니다. 고린도 사람 중에는 복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서 자유를 주었기에, 이제는 음행을 포함하여 자신의 육체가 원하는대로 살아가도 된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모든 것에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즉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도 나는 아무에게든지 중독되거나 굴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어떤 것의 권세에 굴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 > 이러한 말씀을 한 배경은 고린도 사람들은 성적인 방종을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이 단지 생리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고전 6:13).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먹는 식물과 소화 기간은 배는 마지막 날에 다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음란인 육체의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주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몸을 위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소중하게 여기셔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전 6:14). 우리의 몸은 음란과 같은 육체의 쾌락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있는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 >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를 위한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결단코 자신의 몸을 창기의 지체로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고전 15-16). 창기와 음행하는 것은 둘이 한 육체가 되어 창기의 지체로 만드는 것이기에 결코 그리스도인이 행하지 말아야 하는 죄악된 행동입니다. > >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주님과 연합하여 살아가는 자입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 영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자입니다.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에, 음행을 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기에 음행의 죄를 짓는 것은 성전을 모독하는 것과 같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 > 당시에 고린도 교회의 성도 중에 이방 신전에서 음녀와 음행하는 자들로 인하여 큰 문제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임을 강하게 주장하며, 자신의 몸을 음행이나 불의의 죄에 쓰임받지 않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 > 로마서 6장은 우리에게 자신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우리의 몸의 지체의 소유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예수님께 자신의 몸의 사용권을 드리고 그 분의 뜻을 위하여 의의 병기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 > 오늘 본문은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 정체성 대로 불의에서 떠나 거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순종하여 결단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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