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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을 위한 매일의 습관(빌 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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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3,325회 작성일 19-09-1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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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을 위한 매일의 습관(빌 3:1-16)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4).

오늘 우리는 빌립보서 3장을 통해서 행복한 삶을 위한 다섯 가지의 습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러한 습관들은 매일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행복한 습관들을 계발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행복해질 것이며, 불행한 생각과 행실들이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빌 3:3)

우리가 행복한 삶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며 그 분의 사랑안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얻으려 노력하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조건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종교는 우리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얻으려 노력하며, 더 나아가 천국을 가려는 인간의 노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이며, 오직 믿음으로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조건없이 사랑하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 8-9).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신뢰하며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면, 우리는 날마다 죄책감과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행복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티벳이나 네팔 등의 불교 신자들은 후세에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하여 수개월을 걸쳐서 삼보 일배를 하면서 산악 지형을 넘어가면서 자신을 혹사합니다.  어떤 승녀들은 동굴에 들어가 수개월씩 도를 수행하면서 미라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종교의 핵심은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스스로 고통을 당하여 죄를 씻으면 내세에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모두가 종교의 모습인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빌 3:3)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육체의 노력을 신뢰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행실이나 노력을 자랑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며 신뢰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선한 사람인가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은혜의 삶을 살지못하게 하는 것은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획득하려는 노력입니다.  율법주의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구원의 길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하나님께 가려는 노력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하여 자신의 선한 행실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즉, 천국에 가기 위하여 십계명을 지키려고 하거나,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서 천국에 가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노력은 모두가 더러운 누더기와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선한 행실과 노력으로는 하나님께 갈 수 없고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진리를 자신의 삶으로 간증합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빌 3:4-6).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얻기 전에는, 자신의 육체를 신뢰했습니다.  자신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민족이며 베냐민의 지파였고,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던 것입니다.  그는 철저히 율법을 지키는 삶을 살았기에 스스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를 가지고 교회를 정죄하고 핍박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율법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삶에서 정죄와 비판적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없고 율법의 규율이 강하게 적용되기에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일에 적극적인 모습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은혜를 베풀것이며 용납하고 관용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용서를 얻었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면서 진정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빌 3:9).  우리의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통해서 받은 의를 소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에 가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삶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며 그 분의 인도하심에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한다면 날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며 그 분의 은혜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기쁨은 헬라어로 카라입니다.  그리고, 은혜는 카리스입니다.  기쁨과 은혜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즉, 기쁨과 은혜는 같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삶에서 더욱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삶이 된다면, 우리는 삶에서 더욱 큰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행복한 삶의 첫 번째 습관은 율법주의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며 그 분의 사랑을 누리는 것입니다.

2. 소중한 가치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7-8).

우리는 하루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 무엇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사소한 일들로 인해서 시선이 분산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하지 않는다면 하루의 삶에서 사소한 일들로 인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7-8).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영접하기 전까지 그에게 소중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자신의 베냐민 지파로서의 혈통이 소중했고, 바리새인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중요했고, 팔일만에 할례를 받은 자신의 육체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사업이나 친구들 그리고 세상의 쾌락을 소중히 여기던 삶과 같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소중한 것은 결국은 자기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 살았고, 자신의 탁월한 업적과 능력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주와 구세주로 영접한 후에 그의 삶에는 가치의 변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사도 바울의 주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것을 해로 여기며 심지어는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그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주시며, 생명이 되셔서 그의 삶에서 살아가신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인생의 참된 가치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할 때 그 전의 모든 소중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배설물처럼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증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증거가 있다면 가치의 변화입니다.  그 전에는 자신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중요했고, 주말에는 친구나 가족과 야유회를 가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주님이 삶에서 가장 소중한 분이 되신 것입니다.  그 전에는 육체의 쾌락을 위해서 살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과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셔서 생각과 마음을 변화시켜주시기에, 우리의 가치가 변화됨으로 행실의 변화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삶에 가치의 변화가 찾아온 이유는 그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학창시절에 세상 친구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듣곤 했습니다.  “너는 술도 안 마시면서 무슨 재미로 사니?”  저는 한 번도 그러한 질문으로 인해서 위축되거나 갈등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술과 춤과 같은 쾌락으로 일시적인 만족을 얻을 순 있지만, 저의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기쁨을 누리 못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마음에는 복음이 주는 능력과 평안이 있었고, 복음 사역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기쁨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을 누리고 있으며,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행복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삶의 만족과 의미를 발견했기에 그 분이 가장 소중한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구원받고 난 후에는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고백을 하며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감격은 사라지고 마음에는 주님을 향한 기쁨과 감사 보다는 세상적인 마음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발을 새로 사면 처음에는 좋아 보이고 새 신발로 인하여 기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쁨이 사라지듯이, 우리도 주님을 향한 이러한 감격이 사라지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전처럼 주님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보내는 철학과 문화 때문입니다.  TV 광고는 날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제품을 소유하면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고 자신의 제품이 가장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또한 매일 보내고 있는 뉴스는 그 날의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핸드폰이나 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떨어지고 결국 폐차장이나 서랍의 상자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오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뉴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뉴스는 중요하지 않음을 알게 되고, 심지어는 거짓인 경우도 종종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중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다가 인생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고 그 분을 추구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8).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물질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자신의 쾌락이나 세상 친구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욱 소중한 분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역과 헌신으로 섬기는 그 섬김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며, 천국에서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짐 엘리엇과 같이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라는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소중하지 않는 것을 더 소중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포기하는 삶을 살게 되면, 우리가 천국에 이르게 되면 더욱 큰 영광과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잊지 말고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가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10).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더욱 알아가며 그 분을 더욱 사랑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게 된다면 우리의 기쁨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10).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아가기를 원했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 분의 고난에 참여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아 그분을 닮기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서 알수도 있고, 누군가를 알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 대해서 아는 것과 누군가를 아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누군가에 대해서 아는 것은 소문을 들은 것이지만, 누군가를 아는 것은 관계에서 서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살에서도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더욱 깊이 알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간을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서 영적 성장이 일어나는 것이며 그 분과 같이 변화되는 삶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은 기도와 경건의 시간을 통해서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우리에게 소중한 시간이며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가며 그 분과 교제하는 행복한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서 영적인 성장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제자훈련을 통해서 성경을 배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서 영적인 성장을 원한다면, 우리는 목장의 공동체와 함께하며 서로 교제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시간을 헌신해야 합니다. 

소중한 관계를 깨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분주함입니다.  분주함은 관계를 깨트리는 원인이 됩니다.  우리가 너무나 분주하게 살게 되면 남편이나 아내와의 관계가 금이 가게 되고, 자녀들과의 관계도 소원해 집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예배와 경건의 시간을 게을리하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금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거나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헌신해야 합니다.  하루에 15분이나 30분씩이라도 경건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4. 자신의 영적 성장을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 3:12).

우리는 매일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평가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경건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영적인 삶을 체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제자훈련을 할 때에는 자신의 영적 생활을 점검합니다.  우리가 개인적인 시간에서 기도와 말씀 생활, 전도와 목장 참석 등을 점검하면서 영적인 삶에 대한 리뷰를 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성장하고 강해져야 할 영적인 모습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 139:23-24). 

시편 기자는 자신의 마음과 뜻을 살피도록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의 모습을 내려놓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인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영적인 필요가 무엇인지 살피며, 성장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기쁨으로 이끄는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장할 때에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악기를 배우면서 실력이 나아지면 기뻐하게 되고, 운동을 하면서 탁구나 테니스의 실력이 나아지면 기뻐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의 지식이 향상되면 기뻐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영적인 모습이 성장하게 되면 우리는 더욱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을 때는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성장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은 자신을 살피며 성장을 위해서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 성장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에서 사랑이 더욱 필요한지, 미움과 분노를 절제해야 하는지, 우리의 삶에서 인내가 더욱 필요한지를 살피며 자신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서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소중히 여기기에 그 분 안에서 성장하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 3:12).  사도 바울은 아직 부족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신약의 상당 부분을 기록하고 영적인 지도자로서 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원하는 모습이 되기에는 아직도 부족하고 온전하지 않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직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모습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기에, 아직도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모습대로 변화되기 위해서 달려간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결코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장하기를 멈추게 된다면, 우리는 삶에서 기쁨을 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장하기를 멈추는 이유는 교만의 마음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성장하기를 멈추게 합니다.  우리가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된다면, 우리는 이미 성장했다고 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성장했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이 기준이 되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자신은 아직 온전히 얻거나 도달하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다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겸손은 우리가 행복으로 이끄는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겸손하면 배우려 노력하게 되며 배움은 성장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5.  과거를 잊고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 13-14).

우리는 날마다 변화할 수 없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미래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의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입니다.  이제 과거는 잊어버리고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많은 상처와 실패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감정적인 상처를 당하거나 재정적인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처가 있는 과거를 잊어야 합니다.  행복은 과거를 마음에서 보내야 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의 상처와 아픔을 흘러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오늘의 행복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 13-14).

사도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나아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을 잊어버리고 미래의 소망을 붙들고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향하여 달려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첫째, 우리는 후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후회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그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했으면 하는 바램인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 잘못된 결과를 얻을지라도, 우리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새롭게 나아가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가 있다면 우리는 아직 과거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용서하지 않는 분노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에 대하여 못된 행동을 하게 되면 우리는 상처를 받게 됩니다.  마음에 쓴뿌리가 생겨서 아픔과 상처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나 분노에 매여있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흘러 보내어야 합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고 분노에 매여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하는 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에 가득하기에 복수를 하거나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사 43:18-19).  하나님은 우리가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말며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와 삶에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기쁨의 비결은 과거의 일을 잊어버리고 주님의 부르심을 위하여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는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꾸었습니다.  비록 감옥에 갇혀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부르신 새로운 꿈을 꾸며 기도하며 달려갔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아무리 절망적이고 힘들더라도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달려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린 삶이 가장 행복하며 기쁨이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