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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 넘치는 교회의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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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075회 작성일 19-08-3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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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 넘치는 교회의 비전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면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2).

하나님이 주신 은혜 가운데 하나는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창조하시면서 살아있는 모든 동식물에는 생명을 주셨습니다.  생명이 없는 피조물은 그 자체가 반영구적입니다.  예를 들어서 바위나 흙과 같은 피조물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수천년간 변함없이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가진 피조물은 자신의 존재를 번식하며 자신의 존재를 보전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봄이나 가을이 되면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있는데, 나무의 씨가 떨어져 땅에서 다른 나무들을 번식해 가고 있습니다.  수명은 종별로 다르지만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는 생존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삶의 영역에서 씨름하며 고난을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극의 곰이나 남극의 펭귄, 그리고 산에 거하는 동식물들은 생존하기 위하여 생명의 힘을 얻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생명체는 자신의 수명을 다하기 전에 씨를 통하여 다른 세대를 준비한 후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유일하게 남극의 겨울에 번식하는 황제펭귄의 경우 1~3월에는 바다에서 열심히 먹고, 4월이 되면 얼음 위를 가로질러 50~150km를 이동해 집단 번식지로 합니다.  5~6월에 짝짓기를 하고 단 하나의 알을 낳습니다. 엄마펭귄이 약 45일간 굶어가며 알을 낳으면 아빠펭귄이 7~8월쯤 새끼펭귄이 알을 깨고 나올 때까지 두 달 동안 눈 이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영하 40도 이하 강추위에 맞서 알을 품습니다. 혹한을 이기기 위해 횡제 펭귄은 수천 마리가 한데 모입니다.  그리고, 바깥쪽 펭귄과 안쪽 펭귄이 조금씩 자리를 옮기며 체온을 나누며 서로를 지킵니다.  알을 낳고 바다로 향한 엄마펭귄이 먹이를 먹고 돌아올 때까지 아빠펭귄은 반쯤 소화된 먹이를 토해내거나 식도에서 분비되는 단백질·지방이 합쳐진 펭귄밀크를 뱉어 새끼펭귄에게 먹여 키웁니다. 엄마가 돌아오면 역할을 교대하여 아빠 펭귄이 먹이를 찾으러 바다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서로를 교대하며 새끼 펭귄이 성장할 때 까지 지키며 생명력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펭귄이나 모든 생명을 가진 생명체의 특징은 아무리 어려운 여건에서도 본능적으로 알이나 씨를 통하여 다음 세대를 낳게 되고, 그 다음 세대의 생명력을 지켜서 자신들의 종족을 지켜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새끼 낳기를 거부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새끼를 낳은 후에는 극도의 환경에서도 부모는 새끼 펭귄을 지키며 가족을 지키는 것입니다.  펭귄이 극복해야 할 어려움은 포식자로서 범고래나 표범 물범의 공격을 피해야 하지만, 가장 어려운 점은 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빙하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들의 서식지가 사라지면서 펭귄이 감당해야 할 무게감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도 생명력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체의 건강에 대한 관리가 되어야 합니다.  몸이 힘들면 생명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화가 이뤄지면서 생리적인 변화로 생명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는 우리가 모두 마주해야 할 삶의 현실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생명력은 사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피조물이기에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으로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도 생명력으로 세워지는 유기적인 몸입니다.  교회가 생명력이 충만한 것은 교회의 지체인 성도가 하나님의 충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 ...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3:19).  교회의 생명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충만함을 누릴 때에 교회는 더욱 생명력있는 교회가 됩니다.  우리는 교회의 생명력을 지킬 뿐만 아니라, 그 생명력이 넘쳐서 세상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의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능력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오늘 우리는 사도 행전에서 보여주는 역동적인 교회의 모습을 통하여 교회의 비전을 새롭게 하기를 원합니다. 

1. 기도는 교회에 성령의 능력을 가져옵니다.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눅 24:49).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성령을 ‘위로부터 능력’ 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셔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제자들이 능력있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며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초대 교회의 부흥의 시작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사역의 열쇠였습니다.  그러자, 120명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 (행 1:14-15).  120 명의 제자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쓴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제자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오순절날에 성령이 임하여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다른 나라의 말이었습니다.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행 2:7-8).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방언을 말하는데 이는 외국 언어였습니다.  그들은 각 나라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의 부흥은 기도와 성령의 역사로 시작합니다.  즉, 교회의 생명력을 주는 첫번째는 성도의 기도 생활인 것입니다.  사도 행전은 지속적으로 제자들의 기도를 통한 역사를 증거합니다.  우리는 육적인 삶이 아니라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영적이란 성령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충만함이 우리에게 임하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삶은 기도하는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실천하는 것입니다.  교회적인 기도가 있고 개인적인 기도가 있습니다.  교회적으로는 매주 금요일 저녁에 모여 기도에 힘쓰는 시간을 갖지만, 더 중요한 시간은 개인적으로 골방에서 하나님께 무릎꿇고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2. 복음 전파는 교회가 부흥하게 하는 열쇠입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2:41).

생명은 번식하지 않으면 멸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영혼을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어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이 주신 생명은 영생으로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는 생명이기에 천국에 이르게 하는 생명입니다. 

지난 이천년 동안 교회가 수많은 핍박에도 굴복하지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낳으며 그리스도의 생명의 번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의 능력은 성령의 권능을 입은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믿는 제자들을 통하여 퍼져나간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가 바로 주이시며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묻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러자, 베드로가 자신들이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을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2:38).  그리고, 베드로는 선포합니다.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행 2:40).  베드로가 전한 강력한 구원의 메시지는 사람들의 마음에 회개와 믿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침례를 받음으로 제자의 수가 삼천이다 더해졌습니다.  즉, 적어도 오순절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받은 자가 삼천이나 된 것입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2:41).  영혼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며 기쁨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을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승리의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5).  전쟁에 나간 후에 왕과 백성들은 전쟁의 소식을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전령이 가져온 소식이 패배의 소식이면 모든 백성은 울며 통곡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령이 승리의 소식을 가져오는 것은 기쁜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전쟁에 나간 군대가 적군과 싸워 나라와 백성을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군대가 희생이 있었을지라도 나라를 지킨 군대의 승리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의 권세를 멸하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신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무너트리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소식입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빌 2:14-15).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피흘리시는 죽으심으로 갚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나라와 권세를 무너트리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그 분안에 거하는 우리의 승리입니다.  우리를 지배했던 죄와 사망이 더 이상 우리를 다스릴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피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 천국에서 거하게 됨을 믿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번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교회의 생명력을 더하는 것이며, 영혼이 구원받아 침례에 순종하여 교회에 더해지는 것은 교회가 더욱 힘있게 세워지는 비결입니다. 

3,  말씀은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서게 합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 ” (행 2:42).

오순절에 삼천명이 구원을 받고 교회에 더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교회에서 한 첫 번째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가르치는 사역을 통하여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히 했습니다. 

말씀은 믿음을 얻게 하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스데반이 순교하면서 전한 메시지는 창세기부터 출애굽기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부르심에서 출애굽의 과정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기록된 말씀이기에, 말씀을 배우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든든히 세웠다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되게 하시리라.” (행 20:32).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를 든든히 세우게 합니다.  그러므로, 아기가 어머님의 젖을 갈구하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악독과 위선과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영적인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구원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성화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내적인 칭의의 구원이 삶이 거룩해지는 과정을 통하여 일어나는 성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자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하는 영적인 양식입니다.  매일 식사를 거르지 말아야 육체의 힘이 생기듯이,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는 삶은 영적인 힘을 가져오게 됩니다.  디모데후서는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온전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5-17).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어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도록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르게 살아가도록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강단에서 선포된 말씀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은 순수함과 겸손함이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말씀의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 1:13).  말씀이 우리 안에 역사되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는 영적인 순수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말씀으로 굳게 세워질 수 있을까요?  우리는 먼저 목장의 모임에서 말씀을 다시 나누며 교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에 자신의 삶을 비추어 어떻게 적용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투명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제공하는 제자훈련을 통하여 말씀으로 양육받아야 합니다.  새생명을 위한 양육반과 성장을 위한 제자반으로 교리에 대한 기초를 배워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말씀으로 배울수 있습니다.  올해부터 우리는 성숙한 리더를 위한 성경으로의 여행을 통하여 체계적인 말씀으로 배워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으로의 여행은 영적으로 성숙한 리더들을 위하여 제공하는 성경공부입니다.  구약에서부터 구속사적인 관점과 성경 신학을 체계적으로 배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배울수 있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말씀위에 굳게 세워지면 잘못된 가르침에 요동하지 않으며, 사람들이나 환경에 의하여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굳건한 반석이 되어서 요동하지 않도록 인생을 굳게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15)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군이 되기 위하여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의 영적인 경건을 위하여 경건의 말씀의 묵상이 날마다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4. 교제는 교회가 사랑으로 서로 연합하게 합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2).

교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소중한 가치는 영적인 교제입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2) 라고 했습니다.  서로 교제하는 삶은 영적으로 하나되게 하는 관계를 세워줍니다.  초대 교회가 극심한 핍박을 이기며 부흥할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는 바로 서로를 하나되게 하는 교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에 대하여 사도 행전은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기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6).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성전에 모인다는 의미는 대그룹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비록 성전에서 우리와 같은 공적인 예배를 드릴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성전뜰에 모여서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을 배웠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성전을 성취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감격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가정에서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이는 여러 집에서 소수의 성도들이 모여서 떡을 떼고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성전에서는 대중적인 모임으로서 친밀한 교제를 나눌수가 없었지만, 가정에서는 서로의 삶도 나눌수가 있었고 말씀이 자신이 삶에서 어떻게 역사하는지 은혜를 나누며 교회가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교제 가운데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 ...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고전 14:25).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우리는 입술의 고백과 사랑의 교제를 통하여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교제의 범위는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6).  에베소서는 몸의 비유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강조합니다.  머리에서 몸이 서로 연결되어 스스로 자라가듯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 연합되어 있으면 자라가게 됩니다.  우리의 교제는 주님 안에서 연합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장의 연합을 통하여 주님의 견고한 몸을 세우고 있습니다.  비록 이 시대가 우리의 시간과 열정을 빼앗아 간다할지라도, 우리는 우선 순위에서 주님을 향한 열정과 시간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이는 우리의 사랑과 열정을 주님과 교회의 지체들에게 드리는 소중한 헌신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주님의 생명력으로 강력하게 일어나자 믿는 사람들은 서로를 너무 사랑하기에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자신의 소유를 팔아 나누어 주기도 하고 물건을 서로 툥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송했고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율법에 매여 생명력을 잃어버린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변화된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과 교회에서 주님이 생명이 되어 우리와 교회를 변화시키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