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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소망을 붙들어라 (고전 15: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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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3,835회 작성일 19-04-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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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소망을 붙들어라 (고전 15:20-23)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전 15:20-21).

사람의 세계에서 부활이란 불가능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이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생명을 얻어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부활이란 죽은 자가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활은 생명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시는 초자연적인 능력인 것입니다.  부활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없는 것이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도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 15:17).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몸의 부활의 소망이기에, 우리의 믿음의 기초에는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경에는 부활에 대한 예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다윗은 시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시 16:9-10).  시편 기자는 주님이 음부에 거하지 않게 하시고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예언의 메시지입니다.  욥기는 부활의 믿음을 기록합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 (욥 19:25-27).  욥은 메시야가 살아 계시니 후에 땅에 서실 것이며, 욥은 자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썩은 후에 새로운 몸으로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구속자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다니엘은 자는 자들이 부활할 것에 대하여 예언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다 12:2).  다니엘서는 자는 자 중에서 깨어나 부활할 것에 대하여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한 자 중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는 자가 있지만, 수욕을 당하여 영원한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낙엽이 져서 땅에 떨어져 썩어지는 인생이라고 한다면 인생 자체가 얼마나 허무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욥의 고백과 같이 우리가 썩은 후에 다시 하나님을 보는 날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는 새로운 몸을 입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부활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첫 열매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주님을 믿는 자도 영원히 죽지 않으며 그 몸은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살아나실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분의 말씀처럼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이 무덤에 장사지낸 후 사흘째 되던 날에 주님은 안식후 첫날에 부활하셨습니다.  여인들이 주님의 무덤에 이르자 주님의 시체는 없었고 천사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사는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눅 24:5).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 24:38-39).  주님은 육체로 부활하셨기에 손과 발의 못자국을 보여주시면서 만져 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 및 열 두 제자에게 보이셨고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 자들은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있고 그 후에 야고보와 자신에게도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 15:8).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사도 바울은 은혜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자들은 주님과 같이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했습니다.  레위기에는 첫 이삭(firstfruits)을 드리는 초실절 절기를 기록합니다.  “...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레 23:10-11).  이와같이 첫 이삭은 유월절이 지난 안식일 다음날에 드려졌습니다.  안식일의 다음날이 주님이 부활하신 일요일입니다.  이날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인 주님의 날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첫 이삭을 그리스도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는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고전 15:23).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는 생명을 얻어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은 첫 열매이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은 모두가 부활의 생명을 얻었기에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이때 부활은 새로운 몸으로 살아나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영광에 참여함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영생은 주님의 재림 때에 몸의 부활을 얻게 하셔서 산 소망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미래에 소망을 줍니다.  그것은 바로 욥이 바라보았던 믿음의 고백입니다.  몸이 썩은 후에 다시 부활하여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 (욥 19:25-27).  우리가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소망은 부활의 소망인 것입니다. 

2. 성도는 주님과 같이 영광의 몸으로 부활합니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전 15:49).

성도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다음의 비유를 통하여 부활의 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씨앗을 심으면, 우리는 추수 때에 똑같은 씨앗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씨앗이 죽으면, 그 죽음으로부터 생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밀의 씨앗을 심으면, 추수 때에는 많은 알곡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씨앗을 심었지만, 얻는 것은 다른 형체의 식물과 열매인 것입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5-38).

특히 추수 때에는 처음 심은 씨앗보다 더욱 아름답게 열매를 맺습니다.  특히 튤립과 같은 꽃은 더욱 그러합니다.  꽃의 씨앗을 심었지만, 씨앗에서 생겨난 열매는 아름다운 튤립꽃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2-48절을 통하여 부활시에 있을 몸의 변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몸은 썩을 것으로 심게 됩니다.  왜냐하면, 몸은 땅에서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시에는 부패하지 않는 새로운 몸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42-43).  우리가 욕된 것으로 심지만,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며, 우리가 약한 것으로 심지만, 강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6절은,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는 아담은 흙에서 난 자라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아담의 혈통을 받아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서 새로운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는 영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은 후에 부활하게 되면, 이제는 영적인 새로운 몸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요한일서에서는 우리가 장래에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일 3:2).  주님이 재림하시면 우리도 주님과 같이 영광의 몸으로 변화되어 새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하늘에 속한 형체가 있고 땅에 속한 형체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해와 달의 영광이 다르듯이, 믿는 자가 부활하여 천국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3. 부활의 소망은 영적으로 깨어있게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7).

우리의 몸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이 우리의 몸도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부활의 소망이 우리에게 어떠한 삶을 살게 하는가요?

  1)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 동참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세상에 전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가는 길에는 늘 위험과 고난, 그리고 핍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가운데 찾아오는 시련앞에서 자신의 죽음을 날마다 경험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에 영적으로 무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볼수만 없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그들에게 다가갔고, 다가가는 과정에서 핍박과 시련과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에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감당하며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날마다 죽는 경험을 하면서도 기쁨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바울에게는 영혼을 살려서 천국 백성이 되게 하는 복음 전도의 사명을 위하여 최선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우리에게도 부활의 영광이 있기에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섬깁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이 있기에 날마다의 삶에서 찾아오는 고난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죄로부터 분리하게 합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고전 15:33-34).

만일 몸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몸으로 하는 것은 미래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타락한 삶은 고린도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어떤 믿는 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부활의 믿음을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믿는 자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우리는 세상의 죄로부터 분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죄와 타협하는 신앙인들은 주위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좋은 간증을 끼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여 죽어갈 때에,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서 깨어 기도하며 거룩한 삶으로 본이 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49-57).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7).

예수님이 오시면 죽은 자들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의 변화된 몸은 죽거나 부패하지 않는 새로운 몸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새로운 몸의 부활을 약속한 것입니다.  이제 주님 안에 있는 자들은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사망을 이기는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활의 생명은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4)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됩니다.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우리가 주 안에서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는 것이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는 모든 것은 부활의 아침에 모두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미래가 영광스러운 날이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서 저축을 하고 투자를 하며 준비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미래의 영원한 날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우리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도 부활하게 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의 부활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하는 몸으로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고통은 당하지만 불에 타지 않는 새로운 몸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복음을 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능력을 회복하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들 안에 있는 부활의 능력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안에 계셔서 그들을 인도하셨기에, 그들은 주님이 주시는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생각하며 그 분이 주시는 부활의 능력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