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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회복해야 할 영적인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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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16회 작성일 25-10-25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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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회복해야 할 영적인 우물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창 26: 18)

이삭은 약속의 자녀였습니다.  이삭은 이스마엘이 누리지 못했던 축복을 누리는 자손이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자였고, 이삭은 성령을 따라 난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삭을 축복하심으로, 그 해에 농사에서 백배의 축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창 26: 12-13).  이삭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거부가 되었기에,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아브라함 때에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삭에게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고 강권합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였기에, 블레셋 사람들과 구별된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핍박 속에서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삭에게 새로운 곳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물이었습니다.  이삭이 거하던 가나안 땅은 건조한 곳으로서 물이 귀한 곳이었습니다.  물이 있어야 짐승을 먹이고 생활을 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성공했을 때에,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이 사용하던 물을 흙으로 메웠던 곳도 축복의 근원을 없애려고 하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이삭이 새로운 지역에서 우물을 팔 때에 새로운 우물을 파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물들을 메웠기 때문에 이삭은 그 우물을 새롭게 파서 사용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마셨던 동일한 물을 이삭은 마시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하여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 28)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아들로서 누렸던 축복을,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번영을 얻어 풍성한 삶을 살고자 할 때, 블레셋 사람들이 우리에게도 찾아옵니다.  그리고, 축복의 근원인 영적인 우물을 막아버려서 우리로 하여금 생수를 마시지 못하게 할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파야할 우물은 무엇일까요? 

그 우물은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팠던 우물들이어야 하며,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향하여,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 14)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물을 마셔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 7: 37-38).  우리는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우물에서 넘쳐나는 생수를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시 파야 할 우물은 무엇입니까?  어떤 우물을 파야 생수의 강이 흘러넘쳐서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첫째, 우리는 복음의 우물을 새롭게 파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 16-17)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되는 통로는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는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축복의 통로가 복음인 것입니다.  복음의 은혜는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4: 28)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즉각적인 선물이 구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 1: 7).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주시는 하나님의 영생의 선물이 구원인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막아, 그 축복의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였듯이, 오늘날도 블레셋 사람들은 끊임없이 복음의 우물을 막아 영생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시는 때도 복음의 교리에 대한 정확한 발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중세기에 암흑시대가 있었습니다.  암흑시대에는 은혜의 복음이 율법의 행위로 변질되었습니다.  사람의 노력과 종교적인 활동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잘못된 교리가 카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가르쳐졌습니다.  이때에는 영적인 암흑시대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막아 생수를 마시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때 마틴 루터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는 말씀으로 진리의 빛을 보았습니다.  어둠속에서 진리의 빛이 그의 영을 깨운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증거하기 시작하면서, 종교 개혁과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존 웨슬리의 부흥도 존 웨슬리가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난 후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시작된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가 선포됨이 없는 부흥은 감정에 지나치지 않습니다.  복음의 진리와 죄인의 회개가 없이 개인의 축복만을 구하는 곳에는 감정이 지배하게 됩니다.  진정한 부흥의 영성은 복음의 선포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깨워진 위대한 진리인 복음으로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복음의 위대한 능력을 제쳐두고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은 교회의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일 때, 강력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 18).  우리의 능력은 복음에 있습니다.  우리의 부흥은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능력이 우리의 삶속에서 나타날 때 온전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가장 강력한 교회는 복음을 강력하게 전하는 교회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영혼들을 향하여 강력하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의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교회가 가장 강력한 교회입니다. 

미국의 성서침례교회는 강력한 복음의 열정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들은 지역과 세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온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셨던 우물은 복음의 우물이었습니다.  저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삶과 물질을 헌신하였고, 그 열정의 열매로 우리가 복음의 열매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새로운 영성으로 나아가기를 원하기에, 하나님의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복음의 능력과 열정을 회복하는 우리 교회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우리는 성경의 우물을 새롭게 파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 16-17)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그 편지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호흡하고 있으며, 성령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할 경전입니다. 

성경을 제쳐두고 우리가 영적 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으며,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난 영적인 자녀들은 바르게 자라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의 양식을 통하여 건강한 영성을 갖도록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할 때 부흥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었고, 하나님이 주신 계시로 여겼으며, 절대적인 권위로 인정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성경의 우물을 세상의 쓰레기와 흙으로 막아버렸습니다.  암흑시대에는 성경을 읽지 못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성직자에 의해서 해석되어져야 하기에,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는 것은 위험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이 그들의 손에서 읽혀지지 않았기에, 그들은 진리를 발견할 수 없었고 영적인 어두움이 그들의 눈을 가리우고 있었습니다. 

서구 유럽에서 기독교가 급속도로 퇴보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을 비평하고 판단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소위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성으로 성경을 이해하려고 하고, 이해가 되지 않거나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권위의 말씀인데, 이 말씀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믿음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절대적인 믿음에서 떠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기독교는 유럽에서 영향력을 잃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성경과 복음을 전해주었던 유럽의 나라들이 이제는 교회가 술집이나 이슬람의 사당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교회를 사원으로 개조하더라도 십자가를 보전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교회를 정복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소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인 권위인 성경을 비판하며 의심하고 공격한 결과로 서구 교회는 급속도로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부흥의 시작은 말씀의 회복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씀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 분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에는 성경이 모든 사람의 손에 들려져 있지만, 그 성경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음성을 듣는 묵상의 결핍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가 부흥을 외치지만, 부흥의 중심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우물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발견하며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성경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 39)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였지만, 그 말씀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저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구약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저들의 영혼에 무서운 멸망을 가져다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성경의 말씀 속에서 살아계시고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대면하며 그 분이 공급하시는 능력과 은혜를 날마다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우물을 파야 합니다.  성경의 우물에서 지혜의 생수를 마심으로 블레셋 사람보다 지혜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의 우물에서 생명수를 마심으로 생명의 능력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회복할 때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성령의 우물을 새롭게 파야 합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 26)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은 성령을 통하여 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할 때, 우리의 영혼에 성령이 오셔서 거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또한 우리 안에 계셔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데, 우리는 이것을 성령의 열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거듭난 삶에서 가장 소중한 변화는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과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삶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와 능력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영혼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늘 함께 하시며 축복하시는 분임을 날마다 발견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성령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며 평안과 능력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령님을 향한 갈망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눅 24: 49).  그리스도인의 기다림은 늘 축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기다리는 삶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하는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기다리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그 영혼을 윤택하게 하십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애 3: 25-26).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시 37: 7)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말씀이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제 자신들은 주님을 위하여 죽어도 후회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믿음이 진리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증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기다리라’ 고 하셨습니다.  기다림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에게 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열흘 동안 전심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였고,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복음의 능력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제자들과 같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위하여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시기 위해서 이곳에 성령을 부으실 줄 믿습니다.  그 날을 위하여 우리는 오늘도 기도하며 잠잠히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위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부어주시는 성령이 임하게 될 때, 우리는 놀라운 주님의 사람이 되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주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영이 개인과 교회에 부어지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부어질 때 그곳에는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도행전의 기적은 성령이 임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 날 임하신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는 성령이 기도하는 교회에 임하여 모인 곳이 진동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초대 교회와 같이 교회에 성령을 부어 달라고 간절히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고, 순종하는 자에게 부어주십니다.  예수님의 사역도 성령의 사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 (행 10: 36).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의 부으심입니다.  우리의 부흥도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시작될 것이고, 우리의 변화도 성령의 기름부으시는 역사위에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입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곳에 충만히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히 우리 영혼에 거하시는 것은, 우리 모두가 사모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육신의 지배를 당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 18).  오직 성령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심으로 영혼이 충만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할 수가 있을까요?  첫째, 우리는 날마다 성령 충만을 간구해야 합니다.  날마다 매순간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주님께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요일 5: 14-15). 

둘째, 우리는 날마다 기도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대하는 시간은 마치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수액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매일처럼 말씀을 묵상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 정기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 분을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시간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귐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하여 잠잠히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다섯째, 날마다 자기를 돌아보아 늘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할 죄가 있다면 회개하고 하나님께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질문을 통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1) 나는 오늘 하나님께 나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삶을 살았는가?
2) 나는 오늘 혹 불순종한 것은 없는가?
3) 나는 재정에서 청지지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4) 나는 겸손한 삶을 살았는가?  혹 교만하지는 않았는가?
5) 나는 오늘 마땅히 해야 할 중보기도를 했는가?
6) 나는 오늘 말씀 묵상을 충분히 했는가?  내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한가?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로 새힘을 얻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부흥의 영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시대에는 부흥의 비전을 갖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는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세속과 종교에 빠져서 멸망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불을 더욱 지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며,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