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에게 믿음을 전수하라(요삼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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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825회 작성일 23-05-06 21:14본문
다음 세대에게 믿음을 전수하라(요삼 1:1-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삼 1: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중의 가장 소중한 부분은 자녀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라고 했습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서 가정에는 기쁨이며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시 127:4-5). 자녀들은 군인에게 화살과 같아서 전투 중에 든든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자녀들은 부모에게 큰 힘이 되기에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자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쁜 일도 많지만, 부모님들의 헌신들은 너무나 희생적입니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 재정을 아까지 아니하고, 시간과 열정을 쏟아 자녀가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귀한 헌신을 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성장하여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으면 부모는 이제 은퇴할 나아기 되며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만족해 합니다. 그 만큼 자녀들은 부모들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기업인 자녀들을 향하여 우리 부모가 감당해야 할 영적인 책임에 대하여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찌보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부모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책임 중의 하나는 자녀들을 믿음의 자녀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성공적이냐 하는 것은 우리의 자녀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배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부모가 항상 믿음의 자녀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일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믿음의 부모로서 믿음의 자녀로 양육한 경우도 있지만, 믿음의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나 탈선한 많은 예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부모로서 자녀를 잘 양육한 경우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자녀인 이삭을 세워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려서 영적인 거장인 사무엘 선지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믿음의 거장이지만 자녀들이 믿음에서 탈선한 경우가 더 많은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삭은 에서와 야곱 두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에서는 하나님을 떠나 이방 민족인 에돔의 아비가 되었습니다. 야곱도 영적으로 방황하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믿음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모세도 영적인 거장이었지만, 그의 손자인 요나단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는 레위인이 되어 단 지파를 우상 숭배하는 지파가 되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영적인 지도자였지만, 그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함으로 가문이 몰락하는 수치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도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거장이었지만, 그의 자녀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하는 일도 일어났고, 압살롬이 아버지를 반역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었지만, 그의 아들인 므낫세는 이스라엘에서 악을 행하는 최악의 왕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인 믿음으로 영적 전쟁을 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믿음은 영원한 나라를 향한 여정으로서, 그 열매는 너무나 가치있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즉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믿음의 가치가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자녀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성경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는 것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하여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시험을 주셨습니다. 그의 믿음의 진실성을 보시기 위하여 자신의 소중한 독자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험하고 검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지식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지만,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면 구원이 없는 자로서 버리운 자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믿음에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합니다.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자녀들도 있지만, 청소년기나 청년의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부모님의 믿음의 그늘에서 순종함으로 교회를 다니고 교회 활동을 하지만, 진정으로 마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은 자녀들의 믿음에 대하여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자녀들에게 구원을 받아 새로운 생명인 영생을 얻게 할 수 있는가요?
그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우리의 자녀들은 태어나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생애에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주이심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로서 우리는 자녀들이 믿음으로 구원받았는지를 확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확증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주인하는 것은 마음으로 믿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사모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젓을 사모하라.”(벧전 2:2). 구원이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생명으로 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을 얻은 자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사모인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께 나아서 예배하고자 하는 새로운 욕구가 생기고, 기도와 말씀, 그리고 성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새롭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구원은 영적인 욕구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삶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구원의 생명은 열매로 증거됩니다. 요한일서는 구원받은 자가 삶에서 변화되는 증거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죄에 대한 인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그 분의 사랑이 우리를 통하여 흘러가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구원받은 자가 형제를 미워하고, 죄에 거하는 것은 사망에 거하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한느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4-15).
사망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영적인 것에 대한 사모함이 없는 것은 그의 속에 그리스도가 거하시지 않는 증거가 됩니다. 오늘 우리는 자녀들의 구원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여 그들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도와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는 자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의무적으로 믿음 생활하는지 아니면 사모함으로 믿음 생활하는지 분별하여 하나님이 주신 새 생명으로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자녀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부모는 자녀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생의 멘토입니다. 부모의 교훈과 충고는 자녀들의 미래를 살아가게 하는 씨앗과 같아서 무엇으로 심는지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신명기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집에 앉았을 때나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며 가르치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의 자녀들이 배워야 할 두 번째 소중한 가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거룩이란 하나님께 속하여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은 죄에서 분리하여 거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에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과 같이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거룩이란 하나님께 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구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거룩한 삶은 시간을 하나님께 구별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셨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3). 하나님께서는 육일 간의 창조를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토요일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쉼을 가졌습니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는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가 되셨기에 신약 시대에는 안식일이 아닌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한 삶은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시험이나 친구 간의 관계에서 많은 유혹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주님게 나오는 것입니다. 시간을 구별하여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첫 걸음입니다. 그러나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자신의 스케줄을 우선시하는 것은 거룩한 삶에서 실패하는 첫 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께 속했음을 고백하는 믿음의 증거는 주일에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는 삶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시간은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구별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재물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증거하는 두 번째의 가치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재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즉 십일조는 우리의 재물이 하나님께 주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거룩한 삶을 가르치기 위하여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철저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어릴 적부터 십일조를 가르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배우게 되며, 물질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가치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말라기는 십일조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배우는 것은 평생 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기초가 되게 합니다.
세 번째는 세상의 죄에서 떠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요삼 1:3). 사도 요한은 믿음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진리안에서 행하는 것은 말씀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철저하게 지켜야 할 것이 이방 사람의 우상을 본받지 말고 그들의 풍속을 따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방 사람과 어떠한 언약도 맺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서 행하며 이방 사람의 풍속을 배우지 않는 것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시대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가나안의 풍속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의 풍요한 삶을 부러워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쾌락적인 삶을 동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의 바알을 숭배하기 시작하며, 바알 신전에서 음란을 행하며 이방인의 풍속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을 잊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는 비결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의 죄에서 분리되어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의와 거룩을 따라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고한 말씀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딤전 6:11-12). 우리의 자녀들이 의와 경건과 믿음와 사랑을 따르며, 인내와 온유를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치며 권고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우리는 자녀들에게 관계에서 오는 축복을 가르쳐야 합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우리는 핵가족이나 개인주의로 인하여 고독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한 세대에서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같이 더불어 살아가며 사회를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핵가족화로 인하여 점점 최소한의 관계에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지금은 개인주의화로 인하여 사회와 단절되는 시대를 살아가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우리 사회에서 사회와 단절되어 집에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이 약 34만 명이 된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축복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체들이 연합하여 교회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학교 에서부터 지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배웁니다. 함께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사역하며, 함께 교제를 나눕니다. 이때 우리는 지체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교제의 중요성과 그 축복에 대하여 가르쳐야 합니다. 교제하기 위하여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수와 허물에 대하여 용서하기도 하는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며 위로와 격려를 나누기도 합니다. 관계에서는 때로는 아픔과 상처도 있지만, 기쁨과 평안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누리는 은혜는 우리의 여정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자녀들에게 관계의 축복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먼저 자녀들과 소통하는 삶을 통하여 대화의 기술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은 가정에서 부모님과 대화하며 소통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인생의 문제가 찾아올 때에 친구들에게서 해답을 찾기 보다는 부모님과 대화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인생의 멘토입니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고 격려해줌으로 인생의 어려움을 헤쳐가도록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인생의 진로에 대하여 고민할 때에 어떠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해서도 서로 대화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님은 자녀에게 멘토이며 스승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들과 정기적으로 외식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소중합니다.
가정에서 부모님과 함께 하는 대화는 사회에 나가서도 친구들이나 선생님, 그리고 사회의 사람들과 진실된 대화를 하게 하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대화하는 것은 소통하는 것입니다. 소통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인생에서 어려움이 찾아올 때에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됩니다. 대화를 배우지 못하면 어려움이 생기면 대화를 단절하게 되고, 대화를 단절하는 것은 관계를 끊게 되는 것입니다.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스스로 고립의 길로 들어서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계에서 모든 사람과 화평하고 거룩함을 이루어 주님이 관계를 통해서 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대화하며 소통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타인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타인에 대한 존중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격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존중을 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을 배운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거친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수준은 우리의 인격입니다. 우리의 인격이 성장할수록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며 헌신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희생은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대가를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르치시는 것은 희생과 헌신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라는 것입니다.
사역의 현장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배우고 실천하는 현장입니다. 우리의 사역은 주님께서 보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은 우리가 주님을 배우며 닮아가게 하는 삶이 되게 합니다. 성도님들이 지체간에 서로를 돌아보며 희생하는 삶을 우리의 자녀들이 보고 배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희생과 헌신을 귀하게 여기시며 축복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서 보배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보배가 보배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며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평생에 누리며 가정에 큰 기쁨이 되는 자녀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책임을 잘 감당하는 믿음의 부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삼 1: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중의 가장 소중한 부분은 자녀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라고 했습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서 가정에는 기쁨이며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시 127:4-5). 자녀들은 군인에게 화살과 같아서 전투 중에 든든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자녀들은 부모에게 큰 힘이 되기에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자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쁜 일도 많지만, 부모님들의 헌신들은 너무나 희생적입니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 재정을 아까지 아니하고, 시간과 열정을 쏟아 자녀가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귀한 헌신을 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성장하여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으면 부모는 이제 은퇴할 나아기 되며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만족해 합니다. 그 만큼 자녀들은 부모들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기업인 자녀들을 향하여 우리 부모가 감당해야 할 영적인 책임에 대하여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찌보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부모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책임 중의 하나는 자녀들을 믿음의 자녀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성공적이냐 하는 것은 우리의 자녀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배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부모가 항상 믿음의 자녀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일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믿음의 부모로서 믿음의 자녀로 양육한 경우도 있지만, 믿음의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나 탈선한 많은 예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부모로서 자녀를 잘 양육한 경우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자녀인 이삭을 세워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려서 영적인 거장인 사무엘 선지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믿음의 거장이지만 자녀들이 믿음에서 탈선한 경우가 더 많은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삭은 에서와 야곱 두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에서는 하나님을 떠나 이방 민족인 에돔의 아비가 되었습니다. 야곱도 영적으로 방황하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믿음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모세도 영적인 거장이었지만, 그의 손자인 요나단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는 레위인이 되어 단 지파를 우상 숭배하는 지파가 되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영적인 지도자였지만, 그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함으로 가문이 몰락하는 수치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도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거장이었지만, 그의 자녀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하는 일도 일어났고, 압살롬이 아버지를 반역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었지만, 그의 아들인 므낫세는 이스라엘에서 악을 행하는 최악의 왕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인 믿음으로 영적 전쟁을 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믿음은 영원한 나라를 향한 여정으로서, 그 열매는 너무나 가치있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즉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믿음의 가치가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자녀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성경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는 것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하여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시험을 주셨습니다. 그의 믿음의 진실성을 보시기 위하여 자신의 소중한 독자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험하고 검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지식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지만,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면 구원이 없는 자로서 버리운 자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믿음에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합니다.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자녀들도 있지만, 청소년기나 청년의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부모님의 믿음의 그늘에서 순종함으로 교회를 다니고 교회 활동을 하지만, 진정으로 마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은 자녀들의 믿음에 대하여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자녀들에게 구원을 받아 새로운 생명인 영생을 얻게 할 수 있는가요?
그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우리의 자녀들은 태어나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생애에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주이심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로서 우리는 자녀들이 믿음으로 구원받았는지를 확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확증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주인하는 것은 마음으로 믿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사모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젓을 사모하라.”(벧전 2:2). 구원이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생명으로 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을 얻은 자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사모인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께 나아서 예배하고자 하는 새로운 욕구가 생기고, 기도와 말씀, 그리고 성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새롭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구원은 영적인 욕구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삶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구원의 생명은 열매로 증거됩니다. 요한일서는 구원받은 자가 삶에서 변화되는 증거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죄에 대한 인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그 분의 사랑이 우리를 통하여 흘러가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구원받은 자가 형제를 미워하고, 죄에 거하는 것은 사망에 거하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한느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4-15).
사망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영적인 것에 대한 사모함이 없는 것은 그의 속에 그리스도가 거하시지 않는 증거가 됩니다. 오늘 우리는 자녀들의 구원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여 그들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도와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는 자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의무적으로 믿음 생활하는지 아니면 사모함으로 믿음 생활하는지 분별하여 하나님이 주신 새 생명으로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자녀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부모는 자녀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생의 멘토입니다. 부모의 교훈과 충고는 자녀들의 미래를 살아가게 하는 씨앗과 같아서 무엇으로 심는지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신명기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집에 앉았을 때나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며 가르치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의 자녀들이 배워야 할 두 번째 소중한 가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거룩이란 하나님께 속하여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은 죄에서 분리하여 거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에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과 같이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거룩이란 하나님께 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구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거룩한 삶은 시간을 하나님께 구별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셨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3). 하나님께서는 육일 간의 창조를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토요일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쉼을 가졌습니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는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가 되셨기에 신약 시대에는 안식일이 아닌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한 삶은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시험이나 친구 간의 관계에서 많은 유혹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주님게 나오는 것입니다. 시간을 구별하여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첫 걸음입니다. 그러나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자신의 스케줄을 우선시하는 것은 거룩한 삶에서 실패하는 첫 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께 속했음을 고백하는 믿음의 증거는 주일에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는 삶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시간은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구별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재물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증거하는 두 번째의 가치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재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즉 십일조는 우리의 재물이 하나님께 주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거룩한 삶을 가르치기 위하여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철저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어릴 적부터 십일조를 가르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배우게 되며, 물질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가치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말라기는 십일조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배우는 것은 평생 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기초가 되게 합니다.
세 번째는 세상의 죄에서 떠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요삼 1:3). 사도 요한은 믿음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진리안에서 행하는 것은 말씀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철저하게 지켜야 할 것이 이방 사람의 우상을 본받지 말고 그들의 풍속을 따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방 사람과 어떠한 언약도 맺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서 행하며 이방 사람의 풍속을 배우지 않는 것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시대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가나안의 풍속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의 풍요한 삶을 부러워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쾌락적인 삶을 동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의 바알을 숭배하기 시작하며, 바알 신전에서 음란을 행하며 이방인의 풍속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을 잊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는 비결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의 죄에서 분리되어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의와 거룩을 따라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고한 말씀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딤전 6:11-12). 우리의 자녀들이 의와 경건과 믿음와 사랑을 따르며, 인내와 온유를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치며 권고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우리는 자녀들에게 관계에서 오는 축복을 가르쳐야 합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우리는 핵가족이나 개인주의로 인하여 고독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한 세대에서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같이 더불어 살아가며 사회를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핵가족화로 인하여 점점 최소한의 관계에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지금은 개인주의화로 인하여 사회와 단절되는 시대를 살아가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우리 사회에서 사회와 단절되어 집에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이 약 34만 명이 된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축복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체들이 연합하여 교회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학교 에서부터 지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배웁니다. 함께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사역하며, 함께 교제를 나눕니다. 이때 우리는 지체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교제의 중요성과 그 축복에 대하여 가르쳐야 합니다. 교제하기 위하여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수와 허물에 대하여 용서하기도 하는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며 위로와 격려를 나누기도 합니다. 관계에서는 때로는 아픔과 상처도 있지만, 기쁨과 평안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누리는 은혜는 우리의 여정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자녀들에게 관계의 축복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먼저 자녀들과 소통하는 삶을 통하여 대화의 기술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은 가정에서 부모님과 대화하며 소통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인생의 문제가 찾아올 때에 친구들에게서 해답을 찾기 보다는 부모님과 대화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인생의 멘토입니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고 격려해줌으로 인생의 어려움을 헤쳐가도록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인생의 진로에 대하여 고민할 때에 어떠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해서도 서로 대화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님은 자녀에게 멘토이며 스승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들과 정기적으로 외식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소중합니다.
가정에서 부모님과 함께 하는 대화는 사회에 나가서도 친구들이나 선생님, 그리고 사회의 사람들과 진실된 대화를 하게 하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대화하는 것은 소통하는 것입니다. 소통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인생에서 어려움이 찾아올 때에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됩니다. 대화를 배우지 못하면 어려움이 생기면 대화를 단절하게 되고, 대화를 단절하는 것은 관계를 끊게 되는 것입니다.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스스로 고립의 길로 들어서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계에서 모든 사람과 화평하고 거룩함을 이루어 주님이 관계를 통해서 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대화하며 소통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타인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타인에 대한 존중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격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존중을 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을 배운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거친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수준은 우리의 인격입니다. 우리의 인격이 성장할수록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며 헌신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희생은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대가를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르치시는 것은 희생과 헌신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라는 것입니다.
사역의 현장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배우고 실천하는 현장입니다. 우리의 사역은 주님께서 보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은 우리가 주님을 배우며 닮아가게 하는 삶이 되게 합니다. 성도님들이 지체간에 서로를 돌아보며 희생하는 삶을 우리의 자녀들이 보고 배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희생과 헌신을 귀하게 여기시며 축복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서 보배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보배가 보배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며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평생에 누리며 가정에 큰 기쁨이 되는 자녀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책임을 잘 감당하는 믿음의 부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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