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본질은 선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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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784회 작성일 23-02-10 18:50본문
교회의 본질은 선교에 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저희 교회는 일년에 한 번씩 선교 주일을 맞이하여 선교에 대하여 헌신하며 결단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지금까지 저희 교회는 어려운 순간에도 선교를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해외와 국내 선교를 물질로 후원하며 선교의 부르심에 순종해 왔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간들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물질을 헌신하여 선교에 참여하기 까지는 헌신과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저희 교회는 성서침례신학교 및 극동 방송과 같은 기관을 후원하고, 해외 선교지 12곳, 그리고 국내 선교지 다수 등을 후원하며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교 사역은 성도님들의 믿음의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의 선교로 미자립 교회가 힘을 얻고 해외 선교사님들의 사역에 도움이 되는 것을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왜 우리는 선교를 외면하지 말며 함께 참여해야 하는 지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이 세상은 죄로 가득하여 영적인 어두움에 덮여 있습니다. 애굽이 나일강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보기에 위대한 문명을 건축하는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들은 우상 숭배와 영적 어두움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던 것과 같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사명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을 보내셔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대표적인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인물은 요나입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이지만 이방의 나라인 니느웨로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갔지만, 결국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회개하고 앗수르의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가 전한 메시지로 니느웨에 거주했던 왕으로부터 백성들이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요나의 선교로 어두운 니느웨가 생명의 빛을 보고 회개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의 빛을 이 세상에 비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향하여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아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빛을 비추어야 했듯이, 우리도 일어나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두움이 가득합니다. 지난 주에 미국의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샘 스미스라는 게이 가수의 포퍼먼스가 사탄 숭배의 형태로 나타나서 미국에서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는 ‘타락, unholy) 였습니다. 즉 거룩이 holy 인데, 그는 거룩의 반대되는 죄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공중파에서 나가는 방송에서 게이 가수가 사탄을 숭배하는 듯한 퍼포먼스를 하자, 음지에 있던 사탄의 권세가 이제는 양지로 나와서 활동한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공개적으로 사탄 워십의 활동이 일어나는 것에 대하여 한탄했습니다. 영적인 어두움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 게이나 트랜스 젠더가 더 이상 이슈가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이 당당하게 자신들을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한 그리스도인이 낙태 크리닉에서 기도를 하다가 체포되는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낙태 크리닉 앞에서 기도하면 체포하여 재판에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주에 튀르키예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수만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아직 건물 아래에 이십만명이 갖혀 있다고 했습니다. 땅이 진동하자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찔했습니다. 성경은 “이에 땅이 진동하고 떨며 하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렸으니 그의 진노를 인함이로다.”(삼하 22: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땅이 진동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에서 저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이슬람 지역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그 땅에 이러한 아픔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고 복음이 전해져서 수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는 기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물질이며 권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허탄한 것을 따르며 쾌락을 추구하며 영적인 어두움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은 무엇인가요?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두움을 밝히고 빛의 자녀가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을 들어야 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선교는 왜 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은 자만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선교에 참여해야 하는가요? 선교는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두운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 12:46).
이 세상이 어두움에 갇혀 있을 때에 빛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 12:46)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어두운 이 세상에 선교사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지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심으로 그 분께 와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신 후에, 그 분이 세우신 제자들에게 그 사역을 위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빛을 들고 세상에 나가 비추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전에는 어두움에 거하다가 이제는 세상에 빛을 비추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세상에 생명의 빛인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주님이 주신 사명은 선교적인 비전을 품는 제자의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나 유대에만 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기 꺼려하는 사마리아와 이스라엘의 지경을 넘어 온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이나 유대 까지는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는 순수 유대인의 혈통이 아니라 이방인과 피가 섟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민족적인 편견을 깨트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복음의 불꽃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영혼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 지역에 이르렀고 사마리아 까지 제자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구원받고 돌아간 유대인들이 이방에서 복음을 전하자 영혼들이 구원받아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교회가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 11:19-21). 안디옥 교회는 구원받은 자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영혼들이 구원받아 세워진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손이 안디옥 교회와 함께 하시므로 수많은 사람이 믿고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시작된 복음의 역사가 수리아의 안디옥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부흥하면서 바나바는 바울을 데리고와 함께 말씀을 전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다가 성령의 부르심을 받아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구별하여 파송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오늘날의 튀르키예 지역과 유럽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한 복음을 통해서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고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이 능력의 복음을 통해서 행하시는 선교의 사역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는 헌신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구원받고 교회를 세워가는 역사인 것입니다.
지난 이천년의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자의 피의 대가로 세워진 선교의 역사입니다. 영적으로 암울했던 시절에 복음의 사명자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그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복음의 역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유럽,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에 이르렀고, 그 복음은 중국을 거쳐 이슬람 지역과 아프리카로 흘러들어가 수많은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3. 교회의 정체성은 선교적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교회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는 능력으로서, 복음이 살아있는 교회는 생명력 있는 교회가 되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주님이 주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사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우리가 품어야 할 비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도록 열정을 품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복음을 전하여 허다한 무리가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선교에 열정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사역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첫걸음마는 전도지를 나누는 것입니다. 전도지를 나누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전도지르 나누는 훈련을 통해서 복음을 구체적으로 전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한다면, 우리는 입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을 쓰게 될 것입니다.
성서침례교회가 남침례교회와 분리할 때에 선교적인 사명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리하여 성서침례친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일군을 양성했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파송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서침례친교회를 축복하셔서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해외 선교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들이 사역하는 지역에 매주 복음 사역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다니며 복음을 전하며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해외 선교를 위한 단기 선교 사역을 지속해야 합니다.
해외 단기 선교는 교회가 해외 선교지를 방문해서 다양한 사역을 하며 선교지를 체험하는 사역입니다. 주로 학생부와 청년대학부 중심으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하여 해외 단기 선교의 길이 막혔지만 이제 해외의 길이 열려 어디든지 갈수 있습니다.
해외 선교지를 방문하여 선교사님들의 사역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은 선교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국내에 머물기 때문에 선교지의 기후와 음식, 그리고 문화 등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합니다. 선교사님들이 선교지에서 고난을 겪으시며 포기하지 않으시고 교회를 세우가시는 모습은 존경할 부분입니다.
지난 번에 미얀마의 한 대기 선교사님은 군정의 쿠데타로 인하여 유혈 사태가 일어나 잠시 한국에 머무셨지만 다시 미얀마에 돌아가셔서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선교사님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 곳에서 희생하며 헌신하시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도 앞으로 단기 선교팀이 활성화되어 자발적으로 해외 선교지에 방문하여 선교하며 지역 문화를 이해하고 돌아오면 더욱 선교적인 교회로 변화되리라 생각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에 여행이나 골프로 방문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은혜 아래서 팀으로 함께 기도로 준비하여 해외 선교지를 방문하여 사역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의 지경을 넓히는 큰 기회가 될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해외 선교를 위하여 물질로 후원해야 합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 4:18).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면서 그냥 보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선교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선교를 하기 위하여 물질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교회에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하여 그물 만드는 일을 하면서 복음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에 그의 필요를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공급했습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기쁨으로 받으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그들의 헌신은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운 제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물질을 헌신하여 선교지에 후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갈 수 없는 멕시코나 중국, 그리고 대만과 캄보디아, 필리핀과 미얀마, 아프리카의 가나에 선교하시는 분들은 우리를 대신하여 선교 활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교지에서 교회를 건축하시고 학교를 건축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부담할 수는 없지만 같은 믿음을 가진 친교회에서 함께 마음을 모아 희생함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선교의 헌신이 눈으로는 열매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헌신한 수고에 대하여 선교지에 우리의 이름이 새겨지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헌신은 하나님의 마음에 새겨질 뿐입니다. 우리가 선교하다가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선교비를 줄이면 좋겠다는 유혹도 찾아옵니다. 저희 교회도 이자 부담이 높아져 경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 보면 선교비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렵다고 선교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욱 열심히 선교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힘써 선교에 참여하며 선교후원에 믿음으로 마음을 합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희 친교회의 초창기 교회들은 대부분이 미국 성서침례친교회의 교회들이 후원한 선교비로 세워진 교회들입니다. 행당동 교회의 큰 부지가 미국 선교사님의 선교로 구입되어 지금까지 큰 사역을 이루고 있고 현재는 아마도 수십억이 넘는 가치가 되었습니다. 서울의 불광동, 그리고 부산의 여러 교회들이 대부분이 미국의 선교를 통해서 세워진 교회들입니다. 지금은 성서침례교회의 기둥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교를 사용하셔서 주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복음의 지경이 넓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저희 교회는 일년에 한 번씩 선교 주일을 맞이하여 선교에 대하여 헌신하며 결단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지금까지 저희 교회는 어려운 순간에도 선교를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해외와 국내 선교를 물질로 후원하며 선교의 부르심에 순종해 왔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간들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물질을 헌신하여 선교에 참여하기 까지는 헌신과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저희 교회는 성서침례신학교 및 극동 방송과 같은 기관을 후원하고, 해외 선교지 12곳, 그리고 국내 선교지 다수 등을 후원하며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교 사역은 성도님들의 믿음의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의 선교로 미자립 교회가 힘을 얻고 해외 선교사님들의 사역에 도움이 되는 것을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왜 우리는 선교를 외면하지 말며 함께 참여해야 하는 지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이 세상은 죄로 가득하여 영적인 어두움에 덮여 있습니다. 애굽이 나일강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보기에 위대한 문명을 건축하는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들은 우상 숭배와 영적 어두움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던 것과 같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사명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을 보내셔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대표적인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인물은 요나입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이지만 이방의 나라인 니느웨로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갔지만, 결국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회개하고 앗수르의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가 전한 메시지로 니느웨에 거주했던 왕으로부터 백성들이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요나의 선교로 어두운 니느웨가 생명의 빛을 보고 회개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의 빛을 이 세상에 비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향하여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아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빛을 비추어야 했듯이, 우리도 일어나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두움이 가득합니다. 지난 주에 미국의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샘 스미스라는 게이 가수의 포퍼먼스가 사탄 숭배의 형태로 나타나서 미국에서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는 ‘타락, unholy) 였습니다. 즉 거룩이 holy 인데, 그는 거룩의 반대되는 죄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공중파에서 나가는 방송에서 게이 가수가 사탄을 숭배하는 듯한 퍼포먼스를 하자, 음지에 있던 사탄의 권세가 이제는 양지로 나와서 활동한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공개적으로 사탄 워십의 활동이 일어나는 것에 대하여 한탄했습니다. 영적인 어두움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 게이나 트랜스 젠더가 더 이상 이슈가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이 당당하게 자신들을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한 그리스도인이 낙태 크리닉에서 기도를 하다가 체포되는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낙태 크리닉 앞에서 기도하면 체포하여 재판에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주에 튀르키예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수만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아직 건물 아래에 이십만명이 갖혀 있다고 했습니다. 땅이 진동하자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찔했습니다. 성경은 “이에 땅이 진동하고 떨며 하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렸으니 그의 진노를 인함이로다.”(삼하 22: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땅이 진동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에서 저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이슬람 지역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그 땅에 이러한 아픔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고 복음이 전해져서 수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는 기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물질이며 권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허탄한 것을 따르며 쾌락을 추구하며 영적인 어두움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은 무엇인가요?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두움을 밝히고 빛의 자녀가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을 들어야 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선교는 왜 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은 자만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선교에 참여해야 하는가요? 선교는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두운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 12:46).
이 세상이 어두움에 갇혀 있을 때에 빛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 12:46)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어두운 이 세상에 선교사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지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심으로 그 분께 와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신 후에, 그 분이 세우신 제자들에게 그 사역을 위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빛을 들고 세상에 나가 비추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전에는 어두움에 거하다가 이제는 세상에 빛을 비추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세상에 생명의 빛인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주님이 주신 사명은 선교적인 비전을 품는 제자의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나 유대에만 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기 꺼려하는 사마리아와 이스라엘의 지경을 넘어 온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이나 유대 까지는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는 순수 유대인의 혈통이 아니라 이방인과 피가 섟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민족적인 편견을 깨트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복음의 불꽃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영혼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 지역에 이르렀고 사마리아 까지 제자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구원받고 돌아간 유대인들이 이방에서 복음을 전하자 영혼들이 구원받아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교회가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 11:19-21). 안디옥 교회는 구원받은 자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영혼들이 구원받아 세워진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손이 안디옥 교회와 함께 하시므로 수많은 사람이 믿고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시작된 복음의 역사가 수리아의 안디옥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부흥하면서 바나바는 바울을 데리고와 함께 말씀을 전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다가 성령의 부르심을 받아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구별하여 파송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오늘날의 튀르키예 지역과 유럽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한 복음을 통해서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고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이 능력의 복음을 통해서 행하시는 선교의 사역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는 헌신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구원받고 교회를 세워가는 역사인 것입니다.
지난 이천년의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자의 피의 대가로 세워진 선교의 역사입니다. 영적으로 암울했던 시절에 복음의 사명자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그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복음의 역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유럽,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에 이르렀고, 그 복음은 중국을 거쳐 이슬람 지역과 아프리카로 흘러들어가 수많은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3. 교회의 정체성은 선교적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교회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는 능력으로서, 복음이 살아있는 교회는 생명력 있는 교회가 되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주님이 주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사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우리가 품어야 할 비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도록 열정을 품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복음을 전하여 허다한 무리가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선교에 열정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사역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첫걸음마는 전도지를 나누는 것입니다. 전도지를 나누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전도지르 나누는 훈련을 통해서 복음을 구체적으로 전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한다면, 우리는 입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을 쓰게 될 것입니다.
성서침례교회가 남침례교회와 분리할 때에 선교적인 사명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리하여 성서침례친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일군을 양성했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파송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서침례친교회를 축복하셔서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해외 선교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들이 사역하는 지역에 매주 복음 사역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다니며 복음을 전하며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해외 선교를 위한 단기 선교 사역을 지속해야 합니다.
해외 단기 선교는 교회가 해외 선교지를 방문해서 다양한 사역을 하며 선교지를 체험하는 사역입니다. 주로 학생부와 청년대학부 중심으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하여 해외 단기 선교의 길이 막혔지만 이제 해외의 길이 열려 어디든지 갈수 있습니다.
해외 선교지를 방문하여 선교사님들의 사역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은 선교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국내에 머물기 때문에 선교지의 기후와 음식, 그리고 문화 등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합니다. 선교사님들이 선교지에서 고난을 겪으시며 포기하지 않으시고 교회를 세우가시는 모습은 존경할 부분입니다.
지난 번에 미얀마의 한 대기 선교사님은 군정의 쿠데타로 인하여 유혈 사태가 일어나 잠시 한국에 머무셨지만 다시 미얀마에 돌아가셔서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선교사님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 곳에서 희생하며 헌신하시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도 앞으로 단기 선교팀이 활성화되어 자발적으로 해외 선교지에 방문하여 선교하며 지역 문화를 이해하고 돌아오면 더욱 선교적인 교회로 변화되리라 생각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에 여행이나 골프로 방문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은혜 아래서 팀으로 함께 기도로 준비하여 해외 선교지를 방문하여 사역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의 지경을 넓히는 큰 기회가 될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해외 선교를 위하여 물질로 후원해야 합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 4:18).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면서 그냥 보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선교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선교를 하기 위하여 물질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교회에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하여 그물 만드는 일을 하면서 복음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에 그의 필요를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공급했습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기쁨으로 받으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그들의 헌신은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운 제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물질을 헌신하여 선교지에 후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갈 수 없는 멕시코나 중국, 그리고 대만과 캄보디아, 필리핀과 미얀마, 아프리카의 가나에 선교하시는 분들은 우리를 대신하여 선교 활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교지에서 교회를 건축하시고 학교를 건축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부담할 수는 없지만 같은 믿음을 가진 친교회에서 함께 마음을 모아 희생함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선교의 헌신이 눈으로는 열매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헌신한 수고에 대하여 선교지에 우리의 이름이 새겨지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헌신은 하나님의 마음에 새겨질 뿐입니다. 우리가 선교하다가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선교비를 줄이면 좋겠다는 유혹도 찾아옵니다. 저희 교회도 이자 부담이 높아져 경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 보면 선교비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렵다고 선교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욱 열심히 선교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힘써 선교에 참여하며 선교후원에 믿음으로 마음을 합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희 친교회의 초창기 교회들은 대부분이 미국 성서침례친교회의 교회들이 후원한 선교비로 세워진 교회들입니다. 행당동 교회의 큰 부지가 미국 선교사님의 선교로 구입되어 지금까지 큰 사역을 이루고 있고 현재는 아마도 수십억이 넘는 가치가 되었습니다. 서울의 불광동, 그리고 부산의 여러 교회들이 대부분이 미국의 선교를 통해서 세워진 교회들입니다. 지금은 성서침례교회의 기둥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교를 사용하셔서 주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복음의 지경이 넓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