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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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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047회 작성일 23-02-0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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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 34).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이 이해하기 까지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충분하게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실을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배워야 할 모델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구체적으로 배울수 있는 모델이 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모습을 이해한 후에,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원리들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고 배운데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요?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은 대로 다른 사람에게 동일하게 베풀 수 있는 은혜의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나를 받으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Accept Others Like Jesus Accepts Me.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 I will always accept them.) (요 6: 37).

우리는 삶 속에서 수많은 상처와 아픔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중에서 가장 우리를 힘들게 하는 상처는 거절당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깊은 상처 속에는 어릴 때부터 거절당했던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배우자로부터 거절당한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친구들로부터의 거절과 배신, 그리고 부모로부터 받은 거절등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회사에 입사 원서를 냈지만, 모든 회사들이 자신을 거절하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거절당할 때에 우리는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거절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람들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되어지고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연약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납하고 받아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우리를 용납하고 받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완벽한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세상의 누군가는 우리에게 돌을 던지며 거절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배우자 일수도, 자녀일 수도, 친구일수도, 직장의 상사일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벽하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아무런 흠이 없이 살아가셨고, 흠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분의 삶은 인간을 위한 희생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인류의 구원만을 위해서 살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요 1: 11).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지 아니하고, 그 분에게 돌을 던지며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거절감으로 인하여 깊은 절망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받으시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 27: 10).  우리에게 있는 부모님은 너무나 소중하고 고마우신 분들이십니다.  그 분들로 인하여 우리가 존재하기에, 그 분의 부모로서의 권위와 존엄성은 우리가 지켜드려야 할 부분인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의 거절감으로 인하여 깊은 상실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부모의 사랑이 때로는 조건적인 사랑이 되어서, 우리가 사랑을 얻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야 하고, 어린 시절 밭에 가서 일해야 하고, 부모님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살았던 인생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모두가 연약함과 부족함이 있기에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영접하십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를 반대하고 거절한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받아주십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데려와서 사람들은 그녀에게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사람은 두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인만을 데려다가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그때 주님은 그녀를 향하여 돌은 던지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군중들을 향하여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합니다.  그러자, 어느 누구도 나서서 돌을 던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한 가지 말씀을 하십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예수님은 그녀의 인격을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를 받으셨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변화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죄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과 비교했을 때에 더욱 의롭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주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했다고 하셨으며,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살인자이며 간음하는 자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를 받음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롬 15: 7).  예수님께서 우리를 받으신 것처럼, 너희도 서로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혹시 누군가에 대하여 나쁜 감정을 가지고 마음으로 거절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누군가를 만나면 얼굴을 피하고, 누군가가 나타나면 자리를 피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성숙된 사랑은 서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형제 중에서도 감정이 상하여 서로 피하는 관계가 있기도 합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받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이야기에 귀를 귀울임을 통하여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할 때에 마음으로 들으면서 눈과 귀를 기울임으로 당신은 소중한 사람임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눈과 귀가 열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늘 눈과 귀가 열려서 사랑을 표현하면, 우리는 더욱 행복한 사랑의 관계를 세워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두려움도 있고 의심도 있습니다.  믿음의 연약함도 있습니다.  인격의 장애도 있기도 합니다.  행동과 말의 미성숙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연약함을 보고 돌을 던지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약함을 보면서 그를 받아들이고 연약함에 대해서는 기도해주는 성숙된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받아들여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전혀 사랑받을 만한 모습이 하나도 없기에 늘 그를 무시하기만 했던 자신의 모습이 있습니까?  우리가 마음으로 그들의 연약함 모습까지도 받고 축복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더욱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서로 받는 것은 무척이나 삶을 아름답게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서로가 서로를 받고 축복하는 삶이 우리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나의 가치를 존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의 가치를 존중해야 합니다.
    Value others like Jesus values me.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눅 12: 6-7).

여러분은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입니까?  여러분은 스스로 얼마나 가치가 있다고 느끼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무한한 가치를 지닌 피조물입니다.  무한하다는 의미는 이 세상의 어떠한 것으로도 여러분을 대신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의 가치를 존중하시면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실 만큼 우리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분의 영을 우리 안에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령님의 능력과 도우심으로 살게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고, 하나님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하나님의 보물인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보배이며, 자녀입니다.

    1) 우리가 존귀한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가치는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나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가치가 소중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good)." (딤전 4:4).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기에, 우리는 자신을 존귀한 보물임을 믿어야 합니다.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그 예술품의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피카소나 고흐의의 작품들은 너무나 값비싼 작품들입니다.  피카소의 작품중에는 1200 억원의 값어치를 하는 그림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림을 그렸다면, 그것은 그냥 그림일 뿐입니다.  누가 한번 봐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러나, 피카소의 작품은 100 억원의 이상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만들었나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에 우리는 존귀한 자인 것입니다.

    2) 우리가 존귀한 이유는 예수님의 피값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가치는 얼마나 대가를 지불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 19).  우리의 가치는 하나님이 지불하신 가치를 생각할 때에 측량할 수 없이 소중한 존재입니다.  비록 세상은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아들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기에,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소중한 존재로 보시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향하여 소중한 존재로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떠한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행하는 모습이나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대통령 앞에 서게 되면, 우리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겸손한 모습으로 대할 것입니다.  우리가 왕자나 공주 앞에 서게되더라도, 왕실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서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들은 왕의 자녀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향하여 사랑과 존경으로 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소중한 가치의 존재로 보시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향하여 소중한 가치있는 존재로 보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Forgive others like Jesus forgives us.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 43: 25).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예배를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고, 우리의 죄를 기억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지옥의 권세에 매인 죄의 사슬을 끊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자유함가 승리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에게 죄를 범하고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하여 분노와 미움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용서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향한 용서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사랑은 용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를 통하여 나타났듯이, 우리의 사랑도 용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주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셔서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용서하며 서로 받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용서를 실천할 때에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은혜가 더욱 크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넷째, 예수님이 나를 신뢰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신뢰해야 합니다.
      Believe in others like Jesus believes in me.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사에 보내었고.” (요 17: 18).

사랑은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그들에게 세상을 향한 비전과 사명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11 명의 제자들이 세상을 향한 예수님의 꿈을 전수받아 나아가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러한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님은 그들을 믿어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신뢰하여 세상에 보내셨듯이,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을 신뢰하심으로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요 14: 12).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에, 우리는 주님을 하신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주님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같이 믿음은 우리의 삶에 큰 능력이 일어나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신뢰하셨습니다.  그 분의 신뢰는 제자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세상을 향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고, 제자들과 함께 하심으로 그들이 큰 역사의 주역이 되실 것임을 믿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믿는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의 신뢰가 그들의 삶에 큰 기적이 일어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함으로 신뢰하고 믿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향한 신뢰를 가지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며 교회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신뢰하는 은혜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들에게 신뢰의 마음을 보내주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섬기는 집사님들, 그리고 목자님들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마음을 보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의 신뢰속에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불신임의 분위기 속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기에 어떠한 일도 해낼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실패한다 할지라도, 서로를 향한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줄 때에, 가정이 변화되고 교회가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하여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자신의 이미지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 의하여 형성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대부분이 부모님과 형제들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이 우리에 대하여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 의하여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이 우리에 대하여 믿어주고 신뢰해줄 때에, 우리는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가장 소중한 분이 될 때에, 우리는 자신을 보는 자화상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항상 신뢰하고 믿어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항상 믿어주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받아 주시고, 가치있는 존재로 높이시고, 용서하시고,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 삼아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하서도 그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받아주고, 가치있게 대하며, 그들을 용서하고, 믿어주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의 사랑을 표현해줄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찾아가 관계를 회복해야 할 자가 있다면 한 주간의 삶에서 적용할 수 있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1) 내가 마음으로 받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2) 내가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3)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는가?
    4) 내가 믿고 신뢰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예수님은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소중히 여겨 주셨고, 신뢰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다른 사람을 향하여 이러한 사랑을 표현하도록 합시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