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청기도의 능력 (눅 1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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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781회 작성일 23-07-29 17:02본문
강청기도의 능력 (눅 11:5-13)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롯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눅 11: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강조하신 가르침은 기도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주기도문을 가르치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내용으로 기도해야 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어떻게 기도함으로 응답받는지에 대하여 보여주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수 있는 특권입니다. 우리는 기도로서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의 임재 가운에 기도하며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는 강청 기도의 능력에 대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며 우리의 영적인 삶에서 기도를 회복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1.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눅 11:1).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자 제자들이 자신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치기를 요청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기도의 소중함과 기도하는 원리를 이렇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첫째,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눅 11:2).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이며 영적인 교제입니다. 기도가 영적인 교제인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의 기도도 영으로 하는 교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로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측면이 강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우선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거룩하게 되기를 소망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실 때에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이 세상에 증거하는 백성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할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자녀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고자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교제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는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도의 마음입니다.
“..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눅 11:2).
기도는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성도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는 기도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성도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는 하늘에 속한 영적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 속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인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열정이 기도를 통해서 표현되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거하시며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기도하면서 아버지와의 교제를 나누시며 하늘에 속한 영적인 가치를 다시 확신하는 시간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잠시 멈추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면 영적인 것에 사로잡히게 되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눅 11:4).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숨김없는 자신의 고백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짓이 없는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만이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투명하게 보여주심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사람은 말을 바꾸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그 분의 말씀을 어기신적이 없으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모습을 받으시고 용서하시고 치유하시며 회복하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자신의 죄와 허물, 그리고 연약함을 내려놓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추어진 죄와 허물을 하나님께 고백함으로 주님의 품에서 평안을 누릴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이와같이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 사실을 믿음으로 확신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하는 것 이상으로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주님은 강청하는 기도의 능력을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롯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눅 11:8).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을 통하여 기도의 모델을 제시하신 후에, 기도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교훈은 바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시간을 정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경건함을 과시하기 위하여 일부러 기도 시간에 맞추어 사람이 붐비는 회당과 큰 거리에 나가 기도하는 연극을 행하였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간구의 기도가 아니라 중얼거리는 기도를 하였고, 예수님은 그들의 기도가 이방인의 중언부언하는 기도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마 6:7). 주님은 누가복음에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리를 가르치시는 겅십니다.
한 사람이 한밤중에 예상도 못한 친구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 그를 방문한 친구는 한밤중까지 여행을 계속하다가 친구 집에 늦게 도착한 것입니다. 그는 여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음식과 숙박을 해결하기 위해 친구를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방문을 받은 친구는 무척 당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행자가 쉴수 있는 처소는 준비되지만 그가 먹을 음식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찾아온 손님에게 떡을 너무 적게 대접하거나 이미 떼어 놓은 떡 조각을 내놓은 것은 손님을 모욕하는 일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주인은 자신에게 음식이 남아있지 않아서 다른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벗을 위해 친구의 집에 떡 세 덩이를 빌리러 온 때는 이미 깊은 밤이라 문은 닫혀 있었고, 모든 식구가 잠자리에 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집주인은 간청을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아침에 문을 열어 놓으면 하루 종일 열린 채로 두며, 만일 문이 닫혀 있다면 그것은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기를 원치 않는다는 표시였습니다. 따라서 닫힌 문은 함부로 두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유대인의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 심지어는 종들까지 전가족이 한 방에서 잤습니다. 따라서 한밤중에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 누군가가 문빗장을 열기 위해서는 자고 있는 가족 전체가 잠에서 깨어나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한밤중에 집주인이 손님을 맞는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손님이 찾아오면 등불을 켜고 집 안으로 맞아들여 친절히 대해야 했지만, 이 친구는 자는 식구들을 깨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눅 1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그 친구로부터 떡 세 덩이를 얻어내는 데 성공햇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성공 원인은 바로 그 사람의 ‘강청’ 에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롯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눅 11:8). 주인은 친구의 우정 때문에 일어나 떡을 준 것이 아니라, 친구이 강청 때문에 일어나 떡 세덩이를 주게 된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배워야 할 강청 기도의 원리는 무엇인가요?
첫째, 기도는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눅 11:9)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기도의 개념은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인내로써 아버지께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구를 위해 떡을 얻기 위해서 잠자는 친구를 깨우는 모습으로 비유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구하는 자가 얻는 것이며 찾는 자가 찾을 것이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연약함을 가지고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임을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그리고,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로서 계속해서 긍휼의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5)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이유는 그 분의 선하심 때문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하늘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각양 좋은 은사와 선물을 하늘로부터 부어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각양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좋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눅 11:10-11). 육신의 아버지라도 아들이 생선을 원할 때에 뱀을 주거나, 알을 원할 때에 전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자녀들의 필요를 보고 최선을 다하여 채워주고자 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자녀가 얻기 위해서는 아버지께 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에게 찾아가 생선과 알을 구하는 믿음이 있을 때에, 아비는 자녀의 필요를 알고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뻐하시는 이유는, 기도는 우리의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으며 날마다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응답받는 기도는 강청의 기도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롯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눅 11:8).
주님께서는 친구가 떡 세 덩이를 얻었던 이유는 친구됨이 아니라, 그의 끈질긴 간청 때문에 그가 일어나 그가 필요로 하는 만큼 그에게 줄 것이다고 하신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는 그의 강청함 때문에 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강청함은 ‘고집, 뻔뻔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무리한 간청의 차원을 넘어서 무모하고 뻔뻔스러울 정도로 무모하게 간청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 분에게 나아가 뻔뻔스러울 정도로 담대하게 나아가서 요청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뻔뻔스러운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만큼 믿음도 좋지 않고 선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 이유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강청하는 기도의 모습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표현으로 보여주십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말씀처럼 하나님께 나아가 구하고, 찾으며, 문을 두드림으로 응답받고자 하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이러한 모습에 대하여 주님은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 기도하고 포기하는 자세가 아니라, 매일 하나님께 나아가 구하고 찾으며 두드리는 강청의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강청하는 기도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18장에서 과부가 재판장에게 자주 찾아가 자신의 원한을 풀어 달라는 비유로 가르치고 계십니다.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자신을 번거롭게 하는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고자 할진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냐고 하셨습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눅 18:5,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에서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즉각으로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자 하시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부족하고 자격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강청하는 기도의 믿음을 보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응답받는 은혜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최고의 응답은 성령입니다.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 11:13).
주님은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하늘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기도의 응답은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내주하시는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되게 하셨고, 그 분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은혜로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살아가는 영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의 중요성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 10: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을 기름붓듯 하심으로 주님이 크고 위대하신 사역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놀라운 은혜를 누리셨습니다.
성령은 보혜사이신데, 그 의미는 ‘곁에서 돕는 자’ 라는 뜻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내주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데, 성령의 충만과 능력과 열매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충만한 능력을 경험하는 길은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주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구할 때에 넘치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적인 필요와 육적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육적인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육적인 필요 이전에 영적인 필요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간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에 기도의 조력자로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중보기도의 사역인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면 그 분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기록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됨으로 인격의 변화와 내면의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성령을 주실 때에 우리는 사도행전의 사도들과 같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사역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가장 고귀한 선물이 성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기도로 나아가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부어주셨던 성령의 신선한 기름을 우리에게도 부으시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영적인 삶의 토대위에서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의 토대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 담대함과 거룩함을 얻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응답받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이 기도하는 성도에게 온전히 임하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확신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인내하며 끊임없이 부르짖는 강청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담대한 믿음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롯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눅 11: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강조하신 가르침은 기도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주기도문을 가르치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내용으로 기도해야 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어떻게 기도함으로 응답받는지에 대하여 보여주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수 있는 특권입니다. 우리는 기도로서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의 임재 가운에 기도하며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는 강청 기도의 능력에 대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며 우리의 영적인 삶에서 기도를 회복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1.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눅 11:1).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자 제자들이 자신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치기를 요청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기도의 소중함과 기도하는 원리를 이렇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첫째,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눅 11:2).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이며 영적인 교제입니다. 기도가 영적인 교제인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의 기도도 영으로 하는 교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로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측면이 강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우선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거룩하게 되기를 소망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실 때에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이 세상에 증거하는 백성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할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자녀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고자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교제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는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도의 마음입니다.
“..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눅 11:2).
기도는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성도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는 기도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성도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는 하늘에 속한 영적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 속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인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열정이 기도를 통해서 표현되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거하시며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기도하면서 아버지와의 교제를 나누시며 하늘에 속한 영적인 가치를 다시 확신하는 시간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잠시 멈추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면 영적인 것에 사로잡히게 되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눅 11:4).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숨김없는 자신의 고백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짓이 없는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만이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투명하게 보여주심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사람은 말을 바꾸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그 분의 말씀을 어기신적이 없으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모습을 받으시고 용서하시고 치유하시며 회복하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자신의 죄와 허물, 그리고 연약함을 내려놓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추어진 죄와 허물을 하나님께 고백함으로 주님의 품에서 평안을 누릴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이와같이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 사실을 믿음으로 확신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하는 것 이상으로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주님은 강청하는 기도의 능력을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롯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눅 11:8).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을 통하여 기도의 모델을 제시하신 후에, 기도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교훈은 바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시간을 정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경건함을 과시하기 위하여 일부러 기도 시간에 맞추어 사람이 붐비는 회당과 큰 거리에 나가 기도하는 연극을 행하였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간구의 기도가 아니라 중얼거리는 기도를 하였고, 예수님은 그들의 기도가 이방인의 중언부언하는 기도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마 6:7). 주님은 누가복음에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리를 가르치시는 겅십니다.
한 사람이 한밤중에 예상도 못한 친구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 그를 방문한 친구는 한밤중까지 여행을 계속하다가 친구 집에 늦게 도착한 것입니다. 그는 여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음식과 숙박을 해결하기 위해 친구를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방문을 받은 친구는 무척 당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행자가 쉴수 있는 처소는 준비되지만 그가 먹을 음식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찾아온 손님에게 떡을 너무 적게 대접하거나 이미 떼어 놓은 떡 조각을 내놓은 것은 손님을 모욕하는 일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주인은 자신에게 음식이 남아있지 않아서 다른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벗을 위해 친구의 집에 떡 세 덩이를 빌리러 온 때는 이미 깊은 밤이라 문은 닫혀 있었고, 모든 식구가 잠자리에 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집주인은 간청을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아침에 문을 열어 놓으면 하루 종일 열린 채로 두며, 만일 문이 닫혀 있다면 그것은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기를 원치 않는다는 표시였습니다. 따라서 닫힌 문은 함부로 두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유대인의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 심지어는 종들까지 전가족이 한 방에서 잤습니다. 따라서 한밤중에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 누군가가 문빗장을 열기 위해서는 자고 있는 가족 전체가 잠에서 깨어나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한밤중에 집주인이 손님을 맞는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손님이 찾아오면 등불을 켜고 집 안으로 맞아들여 친절히 대해야 했지만, 이 친구는 자는 식구들을 깨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눅 1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그 친구로부터 떡 세 덩이를 얻어내는 데 성공햇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성공 원인은 바로 그 사람의 ‘강청’ 에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롯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눅 11:8). 주인은 친구의 우정 때문에 일어나 떡을 준 것이 아니라, 친구이 강청 때문에 일어나 떡 세덩이를 주게 된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배워야 할 강청 기도의 원리는 무엇인가요?
첫째, 기도는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눅 11:9)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기도의 개념은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인내로써 아버지께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구를 위해 떡을 얻기 위해서 잠자는 친구를 깨우는 모습으로 비유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구하는 자가 얻는 것이며 찾는 자가 찾을 것이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연약함을 가지고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임을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그리고,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로서 계속해서 긍휼의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5)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이유는 그 분의 선하심 때문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하늘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각양 좋은 은사와 선물을 하늘로부터 부어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각양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좋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눅 11:10-11). 육신의 아버지라도 아들이 생선을 원할 때에 뱀을 주거나, 알을 원할 때에 전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자녀들의 필요를 보고 최선을 다하여 채워주고자 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자녀가 얻기 위해서는 아버지께 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에게 찾아가 생선과 알을 구하는 믿음이 있을 때에, 아비는 자녀의 필요를 알고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뻐하시는 이유는, 기도는 우리의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으며 날마다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응답받는 기도는 강청의 기도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롯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눅 11:8).
주님께서는 친구가 떡 세 덩이를 얻었던 이유는 친구됨이 아니라, 그의 끈질긴 간청 때문에 그가 일어나 그가 필요로 하는 만큼 그에게 줄 것이다고 하신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는 그의 강청함 때문에 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강청함은 ‘고집, 뻔뻔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무리한 간청의 차원을 넘어서 무모하고 뻔뻔스러울 정도로 무모하게 간청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 분에게 나아가 뻔뻔스러울 정도로 담대하게 나아가서 요청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뻔뻔스러운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만큼 믿음도 좋지 않고 선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 이유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강청하는 기도의 모습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표현으로 보여주십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말씀처럼 하나님께 나아가 구하고, 찾으며, 문을 두드림으로 응답받고자 하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이러한 모습에 대하여 주님은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 기도하고 포기하는 자세가 아니라, 매일 하나님께 나아가 구하고 찾으며 두드리는 강청의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강청하는 기도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18장에서 과부가 재판장에게 자주 찾아가 자신의 원한을 풀어 달라는 비유로 가르치고 계십니다.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자신을 번거롭게 하는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고자 할진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냐고 하셨습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눅 18:5,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에서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즉각으로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자 하시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부족하고 자격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강청하는 기도의 믿음을 보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응답받는 은혜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최고의 응답은 성령입니다.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 11:13).
주님은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하늘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기도의 응답은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내주하시는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되게 하셨고, 그 분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은혜로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살아가는 영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의 중요성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 10: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을 기름붓듯 하심으로 주님이 크고 위대하신 사역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놀라운 은혜를 누리셨습니다.
성령은 보혜사이신데, 그 의미는 ‘곁에서 돕는 자’ 라는 뜻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내주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데, 성령의 충만과 능력과 열매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충만한 능력을 경험하는 길은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주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구할 때에 넘치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적인 필요와 육적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육적인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육적인 필요 이전에 영적인 필요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간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에 기도의 조력자로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중보기도의 사역인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면 그 분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기록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됨으로 인격의 변화와 내면의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성령을 주실 때에 우리는 사도행전의 사도들과 같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사역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가장 고귀한 선물이 성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기도로 나아가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부어주셨던 성령의 신선한 기름을 우리에게도 부으시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영적인 삶의 토대위에서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의 토대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 담대함과 거룩함을 얻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응답받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이 기도하는 성도에게 온전히 임하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확신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인내하며 끊임없이 부르짖는 강청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담대한 믿음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