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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영성 (삼상 2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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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570회 작성일 24-02-0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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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영성 (삼상 21: 1-9)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시 26:8)

위기에 처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도피처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가장 안전한 도피처는 어디인가요?  2차 세계대전 때에 독일군이 영국을 공습할 때, 사람들은 안전한 지하의 대피처로 피신하곤 하였습니다.  지상의 불빛이 비추게 되면 적군이 공격하는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밤에는 모두가 불을 끄거나 가리웠고, 공습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안전한 지하의 도피처에서 폭탄을 피하였습니다. 

인생은 어찌보면 전쟁과도 같습니다.  수많은 위험에 도출되어있고, 위기를 극복해야 하며, 위험한 모험을 감행해야 합니다.

다윗은 무척이나 어려운 인생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자신의 생명을 찾아서 죽이려고 할 때에, 다윗은 필사적으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다윗에게는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이하였고, 자신의 명예나 신분 따위는 고사하고 목숨을 지키기 위하여 고분투구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인생의 위기에서 사울을 피해 도망치는 어려움에 절대적인 피난처가 필요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고 힘과 격려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이 찾아간곳은 바로 하나님의 성소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시 91:1-2). 다윗은 시편에서의 고백과 같이 위기의 때에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서 쉼과 안식을 얻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다윗의 피난처이시며 요새시며 의뢰하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놋에 있는 성소로 찾아가서 아히멜렉 제사장에게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다윗은 인생의 새로운 도약을 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왜 다윗은 성소로 찾아가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였을까요?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성소에는 하나님의 제사장이 있고, 성물이 있으며, 언약궤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거하시는 거룩한 곳이 성소였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전에도 다윗은 위기에 사무엘이 거하는 라마 나욧으로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사울은 군대를 동원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그 곳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은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소로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저의 삶에서 위기가 찾아오면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 응답을 받습니다. 저의 삶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에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였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기도하며 하나님과 대면하였고, 절망 가운데 새 힘을 얻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통하여 응답을 받곤 했습니다. 우리들의 삶에서도 위기가 찾아오면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하여 그 분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을 만나면서,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성소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소가 주는 유익을 묵상하며, 다윗과 같이 거룩한 성소를 사모하는 인생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다윗이 경험한 은혜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사건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영적인 의미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성소는 자신의 연약함을 가지고 나아가는 곳입니다.

다윗은 강한 용사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무너트린 이스라엘의 최고의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지금 도망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왕의 시기와 질투의 근원이 다윗이었기에, 어느 누구도 도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을 도와주는 자는 사울의 원수가 되는 것이기에, 어느 누가 나서서 다윗을 돕고자 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가장 칭송을 받고 용맹한 자였던 다윗이, 이제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강정과 밝은 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약함과 부족함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완벽한 존재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피조물됨을 일깨우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연약한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골리앗을 용감하게 물리진 다윗이 이제는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다윗은 고양이 앞에 생쥐와 같이, 필사적으로 도망하는 연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다윗을 도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다윗이 갈 곳은 오직 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소에서 그 분을 만나고 새 힘을 얻는 것이 다윗에게는 유일한 피난처였습니다.

    “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시편 27: 4-5)     

다윗은 시편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에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이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시 27:5).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성소에 숨기시고 보호하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발걸음은 유일한 피난처인 성소로 향하였던 곳입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여러분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이 천만금과 같이 무겁고 낙심이 될 때, 여러분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과 시선은 하나님의 성소로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다윗은 놉에 있는 성소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입고 도움을 얻기 위하여 힘을 내어 달려갔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소를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성소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함으로 새 힘을 얻게 되는 곳입니다.  우리의 낙심된 마음이 예배를 통하여 용기를 얻게 됩니다.  우리의 상처난 마음이 예배를 통하여 치유를 얻게 되며, 우리의 죄악된 마음이 예배를 통하여 회개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소는 우리가 무릎을 꿇는 골방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그 곳이 우리가 추구하는 성소인 것입니다.  우리의 성소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터일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임재앞에 겸손히 무릎꿇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성소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임하는 곳을 사모하는 심령을 가진 자는 복이 있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다윗의 고백과 같이 구원이시며 능력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 27:1)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명의 능력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과 환경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겸손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가지고 성소를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의 연약함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눈물, 상처, 위기, 낙심, 경제적인 파탄, 사업의 어려움, 자녀 교육의 어려움, 그리고, 질병의 고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겸손한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시 34: 18-19)  하나님의 도우심이 고난당하는 의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건지시고 구원하시는 역사가 일어나리라 확신합니다.

2.  성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입니다.

성소는 하나님의 거룩한 장소입니다.  성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에는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진실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함이 있어서, 사람을 향하여 차별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진실하셔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4:8)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배고픔과 빈손으로 성소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요청합니다.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삼상 21:3).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다윗은 어떤 존재일까요?  아마도 제사장은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수도 있습니다.  다윗이 왕의 신임과 칭송을 받는 자라면, 아히멜렉은 기쁨으로 다윗을 영접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눈의 가시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다윗과의 친구는 사울과 원수가 되는 형편에 있었습니다. 

다윗이 찾아왔을 때, 제사장은 떨며 다윗을 영접하였습니다.  다윗으로 인하여 자신이 위험에 처해질 수 있음을 감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사장은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고 질문을 던집니다.  제사장은 지난 번 다윗이 라마 나욧에 이르렀을때에, 사무엘 선지자와 생도들이 군대들의 큰 위협을 받은 적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히멜렉은 그와 같은 악몽이 되살아날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은 다윗에게 은혜를 베풉니다.  제사장은 다윗에게 지금 거룩한 떡이 있는데, 소년들이 거룩함의 영성이 있으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성전에서 쓰이는 떡은 진설병이었습니다.  떡 12 덩이가 매주 하나님의 성소에 올려져 있었고, 매주 그 떡은 교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소에 드려진 떡은 제사장만이 성소에서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외부사람들이 그 떡을 먹는 것은 율법에 저촉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히멜렉은 떡이 없어서 죽어가는 다윗을 빈손으로 보낼수가 없었습니다.  아히멜렉은 율법의 정신은 사랑과 은혜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다윗을 위하여 제사장을 위하여 예비된 진설병을 주었습니다. 

또한 다윗은 칼과 병기를 요구합니다.  “...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병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삼상 21:8).  그때 제사장 아히멜렉은 골리앗의 칼을 다윗에게 줍니다.  여기는 이 칼밖에 없음을 언급하며, 다윗을 위하여 큰 칼을 주었습니다.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은 다윗을 버렸으나, 제사장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윗을 품어줍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니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 27:10)  부모는 다윗을 버렸으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인자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성소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우리는 긍휼하심을 얻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그 분은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입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은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아히멜렉은 쫓기는 사람을 영접합니다.  그를 도우면 자신에게 큰 해가 될 줄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을 도와줍니다.  그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을 위하여 자신을 철저하게 희생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을 위하여 성소의 빵과 골리앗의 칼을 줍니다.  자신에게 어떠한 불이익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소에서 도움을 구하는 다윗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성소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필요를 가지고 나아올 때, 긍휼과 자비를 베푸심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그 분은 이미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하시고, 피를 흘리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도움도 외면치 아니하시고 도우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마음으로 쫓기고 불안해하며 두려움으로 방황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은 자신이 갈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그러나, 주의 백성은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새 힘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는 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은혜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힘과 능력을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입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 40:29-31).

우리의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독수리처럼 날아가게 하시고, 뛰어가게 하시며 걸어가게 하심으로 늘 함께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새 힘을 공급받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성소는 우리가 변화되는 곳입니다.

다윗은 거룩한 성소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합니다.  그는 제사장을 통하여 거룩한 빵을 얻고, 골리앗의 칼을 지니게 됩니다.  성소에 찾아올 때 다윗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배는 고팠으며, 자신을 지켜줄 칼이나 무기가 없는 빈손으로 찾아왔던 다윗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가장 연약한 자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수 없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빵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요 6:48).  예수님은 곧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떡은 말씀을 의미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칼도 말씀을 상징합니다.  성경은 말씀을 검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 6:17).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윗은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양식을 얻었고 검을 얻었기에 담대함을 가지고 성소를 떠나게 됩니다.  다윗은 성소에서 새로운 힘을 얻고, 광야의 삶에 대한 영적인 에너지를 충전받고 떠나게 됩니다. 

우리의 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이며 기도하는 골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곳은 거룩한 곳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이며, 새로운 능력을 얻는 곳입니다. 

모세는 불붙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불붙은 떨기나무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소가 된 것입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의 삶이 변화된 것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지치고 피곤한 야곱에게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 28: 13-15) 라는 약속을 주십니다.  벧엘은 야곱의 성소였습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용기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다윗은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고백합니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시 52:8).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이, 자신의 삶이 번성하고 성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신과 함께 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도엑은 다윗이 성소에 왔을때 함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도엑이라는 사람은 사울의 친위 대장이었습니다.  도엑은 놉의 성소에 와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그도 거룩한 성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도엑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다윗을 만난 것을 자신의 성공을 위한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서, 다윗의 방문에 대하여 사울에게 고발합니다.  만일 도엑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였더라면, 변화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엑은 조금도 변화되지 못했습니다.  도엑에게는 성소가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고 야망을 성취하는 장소였던 것입니다.  그는 악한 자였습니다.  후에 하나님의 제사장을 처형할 때에 군사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도엑은 나서서 직접 제사장과 그의 가족들을 멸하게 됩니다.  비록 도엑이 성소에 이르렀지만, 변화되지 못하고 공급받지 못함으로 육신의 정욕의 노예가 되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소는 거룩한 곳입니다.  우리는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성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서 말씀을 듣고 예배하며, 변화를 경험합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변화되고, 우리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변화를 입습니다.  다윗과 같이 성소를 떠날때는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고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우리의 가는 길은 광야의 길입니다.  영적인 싸움의 길입니다.  영적인 여정에서 우리는 양식을 얻어야 하고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영혼의 오아시스에서 새로운 양식과 생수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경험해야 할 영혼의 오아시스는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성소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소는 어디입니까?  여러분이 인생의 위기에 달려가는 영혼의 오아시스인 성소는 어디인가요?  우리는 매주 교회에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골방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