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으로부터 자유하라(삼상 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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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558회 작성일 23-12-02 17:56본문
절망으로부터 자유하라(삼상 30:1-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 30:6).
우리의 삶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간다면 현 시점에서 여러분은 어떠한 장면을 그릴 수가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영화나 드라마는 주인공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위기를 만나는 사건, 그리고 주인공과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 등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는 주인공의 삶에서 위기를 만나 절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 승리를 이루는 결말로 구성됩니다.
드라마의 시작은 한 주인공의 출연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면 어떠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싶으신가요?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한 김홍길 대장에 관한 주인공이 되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현재 거란과 고려의 전쟁을 다른 드라마의 감강찬 장군이 되고 싶은가요? 아니면 여러분이 좋아하는 어벤저스의 아이언 맨과 같이 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으며 인류를 구원하는 영웅으로서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요? 아니면 이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독일의 공격에서 막아낸 위스천 처칠과 같은 국가의 영웅이 되는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요?
드라마가 드라마가 되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선정되고 화려하게 삶에 대한 의욕을 가지고 출발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은 잠깐이고 금방 갈등이나 도전의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갈등이나 도전 앞에서 사람들은 패닉에 빠지게 되고, 주인공도 처음에는 위기에서 헤매이지만 극적인 반전을 위해서 모험을 하거나 도전을 하면서 어려움을 이기고 인생에서 승리자가 되거나 영웅이 되는 것으로 드라마는 마치게 됩니다. 극적인 순간을 만나게 되면 주인공은 눈물을 흘리게 되거나 좌절하거나 무너지지만, 극도의 어두운 순간에 주인공은 다시 힘을 내어 일어나게 되고 결국 좌절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그는 강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을 위기에서 구원해내는 주인공이 되어 해피 엔딩을 하면서 드라마는 마무리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드라마나 영화의 한 과정으로 본다면 어떠한 도전을 만나거나 갈등 앞에서 좌절하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어떠한 위기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많은 상처와 좌절을 극복하고 승리자로서의 즐거움을 누리는 단계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드라마의 초반부에서 아무런 걱정없이 살아가던 순간에서 아무런 걱정없이 살아가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였고 말씀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자였습니다. 특히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였습니다. 그가 사람들 앞에 등장하게 된 것은 무척이나 영웅적이었습니다. 그는 물맷돌 다섯 개로 거대한 블레셋 장수를 무찌른 이스라엘의 영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에게는 천천의 영광을 돌렸지만, 다윗에게는 만만의 영광을 돌리며 다윗을 칭송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뛰어남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는 다윗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권이 자신의 아들인 요나단이 아닌, 다윗에게 가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는 다윗만 없다면 자신의 왕권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어져 왕권을 튼튼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울의 이러한 생각은 다윗에게는 악몽이었고 실제 그의 삶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이 고난의 현장으로 이끌려져 갔습니다.
오늘 다윗은 시글락에서 자신의 아내와 함께 하는 자들의 모든 가족이 아말렉에게 끌려가는 사건을 통하여 절망하는 순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드라마로 한다면 주인공의 삶에 가장 위기의 순간을 만나게 된 것이고, 이 순간이 다윗의 꿈을 모두 빼앗아 갈 수도 있고 다윗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이끌수 있는 지도자가 된 것은 그가 인생의 위기에서 지혜롭게 대처하며 믿음으로 승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이러한 위기의 순간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요? 다윗은 인생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던 순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의 본문은 다윗이 가장 절망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절망의 이유와 절망에서 자유할 수 있었던 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다윗이 인생에서 절망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우리의 인생에서 절망이 찾아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윗에게는 이러한 상황이 다윗의 삶에 절망과 시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1. 다윗은 광야의 시련으로 인하여 절망했습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따르다가 돌아오매 혹이 그에게 고하되 가로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더이다.”(삼상 24:1).
다윗은 이새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의 영웅이었습니다. 그의 영웅이 된 이유는 다윗이 물맷돌 다섯 개로 골리앗을 무찌른 담대함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기에 이제 왕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위대함은 사울의 시기심을 불러왔고, 그의 위대함으로 사울의 경계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도록 전쟁터에 보내었지만, 다윗은 도리어 블레셋 군대를 무찌르고 마침내 사울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의 의구심과 시기는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커졌습니다. 사울의 적대감을 느낀 다윗은 마침내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로 도망가야 했습니다.
광야에서 다윗은 두려움과 절망의 순간을 믿음으로 극복하며 지냈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이러한 시로 자신의 두려움을 믿음으로 승화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찌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시 27:1-5).
다윗은 광야에서 두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고 원수의 군대로부터 도망해야 했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빛이시며 구원이시며 생명의 능력이 되심을 고백하며 두려움을 이기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환난에서 자신을 숨기시며 지키심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사울의 추적을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블레셋 지역으로 도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삼상 17:1). 다윗은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다윗은 전에도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서 미친척 하며 수염에 침을 흘리는 연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아기스로 인하여 죽임을 당할 까 두려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다윗은 블레셋 지역에서 더 어려움의 시간을 보내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광야는 갑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합니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건강에 위기가 찾아오거나 사업에서 위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어려운 순간이 찾아와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무런 이유없이 우울증이 찾아오거나 영적인 침체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스펖전 목사님과 같은 위대한 설교자도 우울증으로 고생하며 일년 중 몇 달은 유럽의 휴양지에서 건강을 회복해야 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광야로 인하여 절망에서 힘들어 하고 계시는지요? 우리가 광야에 있을 때에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회복의 은혜를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다윗은 시련의 순간에 찾아온 환난으로 절망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 삼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로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삼상 30:1-2).
다윗이 블레셋 지역으로 피한 후에 가드 왕 아기스가 시글락을 주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거하게 했습니다. 마침내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러 가게 될 때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도 동참하기 위하여 출정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로 다윗이 다시 시글락으로 돌아오자 시글락이 불에 탔고 그들의 가족이 모두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며칠간 시글락을 비운 사이에 아말렉 사람들이 쳐들어와 다윗이 거주하던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그의 여인들과 자녀들을 모두 사로잡아 갔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목격한 다윗과 그의 함께 한 백성은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습니다.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삼상 30:4). 그들의 울음은 절망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버티며 살아갔던 이유중의 하나는 그들의 가족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거할 때에 굴에 거하며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며 어려운 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울의 추격이 심해지자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서 적의 나라인 블레셋의 가드 왕에 가서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상황에도 그들은 수모와 멸시를 견디었습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 다윗과 함께 나라를 세우게 될 거야. 다윗이 왕이 되면 우리는 다윗과 함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란 희망을 갖고 지금까지의 모든 어려움을 견뎌왔습니다. 그들은 다윗과 함께 하기 위하여 집을 떠나 광야에서 시련을 견디며 지냈고, 지금은 시글락이라는 곳에서 블레셋 사람의 눈치를 보며 지내는 상황이었습니다.
광야와 블레셋의 어려움을 견디기에도 절망의 순간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다윗과 함께 전쟁에 갔다 돌아오니 자신들의 집은 모두 불에 탔고,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과 자녀들은 이제 아말렉에게 잡혀가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절망은 어려운 환경에도 더 크게 찾아온 환난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울 기력이 없도록 우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에서는 용사들이었던 그들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절망의 순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다윗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끼는 무엇인가가 다가오지 않는지요?
때때로 고난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개의 모양으로 찾아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욥에게 고난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모양으로 찾아와 고난에 환난을 더하여 마음을 너무나 무겁게 했습니다. 어느날 종이 찾아와 자신의 소를 스바 사람이 와서 빼앗아 갔고, 칼로 종들을 죽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종이 찾아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양과 종을 불사르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고 있을 때에 갈대아 사람이 찾아와 욥의 종들을 죽이고 낙타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더 나아가 욥의 자녀들이 맏형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큰 바람이 불어 집이 무너져 모두 죽임을 당하는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욥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에 몸에 악창이 나서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온 몸에 염증이 가득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시험하실 때에 한 번에 여러 모양으로 환난을 통과하게 하시며 욥을 연단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욥은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심각한 시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고난이 시작되면 어두운 시간이 점점 깊어지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오면서 건강도 어려워지고, 때로는 사업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소망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시련을 겪기도 할 때, 우리는 더욱 절망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려운 시간들을 지금까지 잘 견뎌왔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집이 불타고 가족이 아말렉의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 처하자 다윗과 그의 백성들은 목녹아 울며 더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삶에서 이러한 순간들을 경험한 적도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 절망의 시간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3. 다윗은 사람들의 비난으로 인하여 절망했습니다.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삼상 30:6).
다윗이 이방인의 땅인 블레셋에서 수모를 겪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블레셋의 가드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침을 흘리며 미친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블레셋 사람 앞에서는 그들을 위하여 싸우는 자로서 속여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생존하기 위하여 다윗은 애를 썼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집이 불타고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이 아말렉의 포로로 잡혀가 노예의 운명을 맞이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윗의 아내들도 잡혀갔기에 다윗의 리더십은 무너지고 있었고, 그의 마음은 너무나 절박하여 백성들과 함께 울 기력이 없도록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다윗은 위로를 받으며 힘을 얻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무도 다윗을 위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다윗을 향하여 반기를 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윗을 따라 집을 떠나 광야의 어려운 생활을 함께 지내고 있었고, 심지어 블레셋 땅에까지 목숨을 걸고 함께하는 동역자들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들도 시련과 환난을 만나게 되자 그들의 리더였던 다윗을 향하여 적개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자 다윗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 된 이후에 압살롬의 반역에 의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해야 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과 함께 했던 믿음의 동역자도 있었지만, 다윗을 떠나서 압살롬을 따르는 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슬퍼하며 예루살렘을 떠나고 있을 때에 시므이라고 하는 자가 와서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삼상 16:7-8). 시므이의 저주 앞에 다윗의 마음은 너무나 무겁기만 했습니다. 시므이는 사울이 흘린 피가 다윗 때문이라고 하면 저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사울의 죽음은 자신의 죄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지도자가 감당해야 할 대가 중의 하나는 비난입니다. 특히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백성들을 주의 길로 인도하는 자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비난의 대가를 지불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라도 사람들의 칭송만 들을수는 없는 것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면서 많은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감당해야 했고, 심지어 가데스 바네아 지역에서는 백성들이 모세를 돌로 쳐서 죽이고 자신들의 리더를 새로 뽑으려고 까지 했습니다. 모세의 위대함은 이러한 모든 시련을 견디며 가나안까지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을 맞을 만큼 잘못한 것은 없었습니다. 단지 그들의 상황이 너무나 어려웠기에 자신들을 인도한 리더를 향하여 원망과 비난을 넘어 적대감을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진실로 절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의 인생에서 이러한 깊은 수렁의 순간은 견디기가 너무나 어려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순간에 사람들의 비난은 다윗을 너무나 힘들게 했습니다. 그는 깊은 수렁과 웅덩이에 빠져서 헤매는 환난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음에 깊은 절망의 순간에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한 마디는 큰 힘을 얻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들게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갈 때에 누군가의 비난은 그 무거움을 가중시켜 더욱 힘들고 지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에 누군가의 작은 비난이 절망으로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성향이 누군가를 향하여 격려와 위로 보다는 비난과 정죄가 더욱 앞서가고 있다면 입술의 파수꾼을 세워야 합니다.
2. 다윗이 절망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다윗은 깊은 수렁과 웅덩이에 머물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너지면 그를 따르는 백성들도 무너지고 그의 나라도 무너지게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절망을 극복하기 위하여 용기를 내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 30:6).
다윗이 크게 절망하였으나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용기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이 절망에서 자유할 수 있었던 세 가지의 비결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시 56:3-4).
다윗은 사람들이 자신을 삼키려 하고 두렵게 할 때에 오직 하나님 만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다윗은 자신을 도우시고 구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가장 절망의 순간에 다윗은 육신적으로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가 하나님을 바라며 기도하고 찬송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길 수 있는 새 힘을 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30-31).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때로는 피곤하며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듯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새 힘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다윗은 자신을 격려했습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 30:6).
다윗은 절망의 순간에 패배 의식에 빠져서 자기 연민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 인생을 비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용사와 같이 일어나고자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격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스스로 용기를 내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을 격려하여 용기를 내었기에 그는 일어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들의 의견에 의하여 실족하거나 환경의 어려움에 의하여 절망의 늪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깊은 수렁과 웅덩이에 빠지더라도 다시 하나님이 주시는 줄을 잡고 나와야 합니다. 늪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의 줄이 던져지면 그는 필사적으로 그곳을 탈출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 쓰게 될 것입니다. 살아남는 자와 웅덩이에서 희망을 잃는 자의 차이는 용기를 내어 힘을 다하느냐 아니면 스스로 던져진 줄을 포기하느냐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온 절망이 깊이 진다면 우리는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용기를 내어 하나님이 던지시는 희망의 줄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줄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입니다.
3. 다윗은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삼상 30:7).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기를 낸 후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시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구한 후에 아말렉의 군대를 추적하여 그들에게 붙잡혔던 모든 가족들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위기와 환난 앞에서 다윗은 절망은 하였지만, 그는 절망에 머물기를 거부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힘을 내기 시작했고,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따라서 아말렉 군대를 물리치고 자신의 가족들을 품으로 데리고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도우십니다. 다윗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고백한 하나님이 우리의 빛과 구원이 되심은 우리를 위한 고백인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삼상 27:1).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빛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며 능력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크신 은혜를 날마다의 삶에서 경험되어 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일어나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삶의 환난이나 고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는 뒤돌아볼 시간이 없고 오직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러한 시련을 경험했기에 그는 연단되어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절망으로부터 자유하는 비결은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내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 30:6).
우리의 삶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간다면 현 시점에서 여러분은 어떠한 장면을 그릴 수가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영화나 드라마는 주인공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위기를 만나는 사건, 그리고 주인공과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 등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는 주인공의 삶에서 위기를 만나 절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 승리를 이루는 결말로 구성됩니다.
드라마의 시작은 한 주인공의 출연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면 어떠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싶으신가요?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한 김홍길 대장에 관한 주인공이 되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현재 거란과 고려의 전쟁을 다른 드라마의 감강찬 장군이 되고 싶은가요? 아니면 여러분이 좋아하는 어벤저스의 아이언 맨과 같이 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으며 인류를 구원하는 영웅으로서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요? 아니면 이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독일의 공격에서 막아낸 위스천 처칠과 같은 국가의 영웅이 되는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요?
드라마가 드라마가 되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선정되고 화려하게 삶에 대한 의욕을 가지고 출발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은 잠깐이고 금방 갈등이나 도전의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갈등이나 도전 앞에서 사람들은 패닉에 빠지게 되고, 주인공도 처음에는 위기에서 헤매이지만 극적인 반전을 위해서 모험을 하거나 도전을 하면서 어려움을 이기고 인생에서 승리자가 되거나 영웅이 되는 것으로 드라마는 마치게 됩니다. 극적인 순간을 만나게 되면 주인공은 눈물을 흘리게 되거나 좌절하거나 무너지지만, 극도의 어두운 순간에 주인공은 다시 힘을 내어 일어나게 되고 결국 좌절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그는 강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을 위기에서 구원해내는 주인공이 되어 해피 엔딩을 하면서 드라마는 마무리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드라마나 영화의 한 과정으로 본다면 어떠한 도전을 만나거나 갈등 앞에서 좌절하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어떠한 위기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많은 상처와 좌절을 극복하고 승리자로서의 즐거움을 누리는 단계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드라마의 초반부에서 아무런 걱정없이 살아가던 순간에서 아무런 걱정없이 살아가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였고 말씀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자였습니다. 특히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였습니다. 그가 사람들 앞에 등장하게 된 것은 무척이나 영웅적이었습니다. 그는 물맷돌 다섯 개로 거대한 블레셋 장수를 무찌른 이스라엘의 영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에게는 천천의 영광을 돌렸지만, 다윗에게는 만만의 영광을 돌리며 다윗을 칭송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뛰어남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는 다윗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권이 자신의 아들인 요나단이 아닌, 다윗에게 가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는 다윗만 없다면 자신의 왕권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어져 왕권을 튼튼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울의 이러한 생각은 다윗에게는 악몽이었고 실제 그의 삶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이 고난의 현장으로 이끌려져 갔습니다.
오늘 다윗은 시글락에서 자신의 아내와 함께 하는 자들의 모든 가족이 아말렉에게 끌려가는 사건을 통하여 절망하는 순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드라마로 한다면 주인공의 삶에 가장 위기의 순간을 만나게 된 것이고, 이 순간이 다윗의 꿈을 모두 빼앗아 갈 수도 있고 다윗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이끌수 있는 지도자가 된 것은 그가 인생의 위기에서 지혜롭게 대처하며 믿음으로 승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이러한 위기의 순간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요? 다윗은 인생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던 순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의 본문은 다윗이 가장 절망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절망의 이유와 절망에서 자유할 수 있었던 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다윗이 인생에서 절망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우리의 인생에서 절망이 찾아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윗에게는 이러한 상황이 다윗의 삶에 절망과 시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1. 다윗은 광야의 시련으로 인하여 절망했습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따르다가 돌아오매 혹이 그에게 고하되 가로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더이다.”(삼상 24:1).
다윗은 이새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의 영웅이었습니다. 그의 영웅이 된 이유는 다윗이 물맷돌 다섯 개로 골리앗을 무찌른 담대함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기에 이제 왕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위대함은 사울의 시기심을 불러왔고, 그의 위대함으로 사울의 경계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도록 전쟁터에 보내었지만, 다윗은 도리어 블레셋 군대를 무찌르고 마침내 사울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의 의구심과 시기는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커졌습니다. 사울의 적대감을 느낀 다윗은 마침내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로 도망가야 했습니다.
광야에서 다윗은 두려움과 절망의 순간을 믿음으로 극복하며 지냈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이러한 시로 자신의 두려움을 믿음으로 승화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찌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시 27:1-5).
다윗은 광야에서 두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고 원수의 군대로부터 도망해야 했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빛이시며 구원이시며 생명의 능력이 되심을 고백하며 두려움을 이기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환난에서 자신을 숨기시며 지키심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사울의 추적을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블레셋 지역으로 도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삼상 17:1). 다윗은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다윗은 전에도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서 미친척 하며 수염에 침을 흘리는 연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아기스로 인하여 죽임을 당할 까 두려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다윗은 블레셋 지역에서 더 어려움의 시간을 보내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광야는 갑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합니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건강에 위기가 찾아오거나 사업에서 위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어려운 순간이 찾아와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무런 이유없이 우울증이 찾아오거나 영적인 침체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스펖전 목사님과 같은 위대한 설교자도 우울증으로 고생하며 일년 중 몇 달은 유럽의 휴양지에서 건강을 회복해야 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광야로 인하여 절망에서 힘들어 하고 계시는지요? 우리가 광야에 있을 때에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회복의 은혜를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다윗은 시련의 순간에 찾아온 환난으로 절망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 삼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로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삼상 30:1-2).
다윗이 블레셋 지역으로 피한 후에 가드 왕 아기스가 시글락을 주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거하게 했습니다. 마침내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러 가게 될 때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도 동참하기 위하여 출정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로 다윗이 다시 시글락으로 돌아오자 시글락이 불에 탔고 그들의 가족이 모두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며칠간 시글락을 비운 사이에 아말렉 사람들이 쳐들어와 다윗이 거주하던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그의 여인들과 자녀들을 모두 사로잡아 갔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목격한 다윗과 그의 함께 한 백성은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습니다.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삼상 30:4). 그들의 울음은 절망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버티며 살아갔던 이유중의 하나는 그들의 가족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거할 때에 굴에 거하며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며 어려운 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울의 추격이 심해지자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서 적의 나라인 블레셋의 가드 왕에 가서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상황에도 그들은 수모와 멸시를 견디었습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 다윗과 함께 나라를 세우게 될 거야. 다윗이 왕이 되면 우리는 다윗과 함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란 희망을 갖고 지금까지의 모든 어려움을 견뎌왔습니다. 그들은 다윗과 함께 하기 위하여 집을 떠나 광야에서 시련을 견디며 지냈고, 지금은 시글락이라는 곳에서 블레셋 사람의 눈치를 보며 지내는 상황이었습니다.
광야와 블레셋의 어려움을 견디기에도 절망의 순간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다윗과 함께 전쟁에 갔다 돌아오니 자신들의 집은 모두 불에 탔고,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과 자녀들은 이제 아말렉에게 잡혀가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절망은 어려운 환경에도 더 크게 찾아온 환난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울 기력이 없도록 우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에서는 용사들이었던 그들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절망의 순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다윗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끼는 무엇인가가 다가오지 않는지요?
때때로 고난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개의 모양으로 찾아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욥에게 고난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모양으로 찾아와 고난에 환난을 더하여 마음을 너무나 무겁게 했습니다. 어느날 종이 찾아와 자신의 소를 스바 사람이 와서 빼앗아 갔고, 칼로 종들을 죽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종이 찾아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양과 종을 불사르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고 있을 때에 갈대아 사람이 찾아와 욥의 종들을 죽이고 낙타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더 나아가 욥의 자녀들이 맏형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큰 바람이 불어 집이 무너져 모두 죽임을 당하는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욥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에 몸에 악창이 나서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온 몸에 염증이 가득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시험하실 때에 한 번에 여러 모양으로 환난을 통과하게 하시며 욥을 연단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욥은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심각한 시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고난이 시작되면 어두운 시간이 점점 깊어지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오면서 건강도 어려워지고, 때로는 사업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소망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시련을 겪기도 할 때, 우리는 더욱 절망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려운 시간들을 지금까지 잘 견뎌왔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집이 불타고 가족이 아말렉의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 처하자 다윗과 그의 백성들은 목녹아 울며 더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삶에서 이러한 순간들을 경험한 적도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 절망의 시간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3. 다윗은 사람들의 비난으로 인하여 절망했습니다.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삼상 30:6).
다윗이 이방인의 땅인 블레셋에서 수모를 겪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블레셋의 가드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침을 흘리며 미친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블레셋 사람 앞에서는 그들을 위하여 싸우는 자로서 속여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생존하기 위하여 다윗은 애를 썼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집이 불타고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이 아말렉의 포로로 잡혀가 노예의 운명을 맞이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윗의 아내들도 잡혀갔기에 다윗의 리더십은 무너지고 있었고, 그의 마음은 너무나 절박하여 백성들과 함께 울 기력이 없도록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다윗은 위로를 받으며 힘을 얻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무도 다윗을 위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다윗을 향하여 반기를 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윗을 따라 집을 떠나 광야의 어려운 생활을 함께 지내고 있었고, 심지어 블레셋 땅에까지 목숨을 걸고 함께하는 동역자들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들도 시련과 환난을 만나게 되자 그들의 리더였던 다윗을 향하여 적개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자 다윗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 된 이후에 압살롬의 반역에 의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해야 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과 함께 했던 믿음의 동역자도 있었지만, 다윗을 떠나서 압살롬을 따르는 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슬퍼하며 예루살렘을 떠나고 있을 때에 시므이라고 하는 자가 와서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삼상 16:7-8). 시므이의 저주 앞에 다윗의 마음은 너무나 무겁기만 했습니다. 시므이는 사울이 흘린 피가 다윗 때문이라고 하면 저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사울의 죽음은 자신의 죄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지도자가 감당해야 할 대가 중의 하나는 비난입니다. 특히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백성들을 주의 길로 인도하는 자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비난의 대가를 지불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라도 사람들의 칭송만 들을수는 없는 것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면서 많은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감당해야 했고, 심지어 가데스 바네아 지역에서는 백성들이 모세를 돌로 쳐서 죽이고 자신들의 리더를 새로 뽑으려고 까지 했습니다. 모세의 위대함은 이러한 모든 시련을 견디며 가나안까지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을 맞을 만큼 잘못한 것은 없었습니다. 단지 그들의 상황이 너무나 어려웠기에 자신들을 인도한 리더를 향하여 원망과 비난을 넘어 적대감을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진실로 절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의 인생에서 이러한 깊은 수렁의 순간은 견디기가 너무나 어려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순간에 사람들의 비난은 다윗을 너무나 힘들게 했습니다. 그는 깊은 수렁과 웅덩이에 빠져서 헤매는 환난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음에 깊은 절망의 순간에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한 마디는 큰 힘을 얻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들게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갈 때에 누군가의 비난은 그 무거움을 가중시켜 더욱 힘들고 지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에 누군가의 작은 비난이 절망으로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성향이 누군가를 향하여 격려와 위로 보다는 비난과 정죄가 더욱 앞서가고 있다면 입술의 파수꾼을 세워야 합니다.
2. 다윗이 절망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다윗은 깊은 수렁과 웅덩이에 머물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너지면 그를 따르는 백성들도 무너지고 그의 나라도 무너지게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절망을 극복하기 위하여 용기를 내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 30:6).
다윗이 크게 절망하였으나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용기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이 절망에서 자유할 수 있었던 세 가지의 비결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시 56:3-4).
다윗은 사람들이 자신을 삼키려 하고 두렵게 할 때에 오직 하나님 만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다윗은 자신을 도우시고 구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가장 절망의 순간에 다윗은 육신적으로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가 하나님을 바라며 기도하고 찬송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길 수 있는 새 힘을 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30-31).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때로는 피곤하며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듯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새 힘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다윗은 자신을 격려했습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 30:6).
다윗은 절망의 순간에 패배 의식에 빠져서 자기 연민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 인생을 비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용사와 같이 일어나고자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격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스스로 용기를 내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을 격려하여 용기를 내었기에 그는 일어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들의 의견에 의하여 실족하거나 환경의 어려움에 의하여 절망의 늪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깊은 수렁과 웅덩이에 빠지더라도 다시 하나님이 주시는 줄을 잡고 나와야 합니다. 늪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의 줄이 던져지면 그는 필사적으로 그곳을 탈출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 쓰게 될 것입니다. 살아남는 자와 웅덩이에서 희망을 잃는 자의 차이는 용기를 내어 힘을 다하느냐 아니면 스스로 던져진 줄을 포기하느냐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온 절망이 깊이 진다면 우리는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용기를 내어 하나님이 던지시는 희망의 줄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줄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입니다.
3. 다윗은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삼상 30:7).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기를 낸 후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시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구한 후에 아말렉의 군대를 추적하여 그들에게 붙잡혔던 모든 가족들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위기와 환난 앞에서 다윗은 절망은 하였지만, 그는 절망에 머물기를 거부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힘을 내기 시작했고,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따라서 아말렉 군대를 물리치고 자신의 가족들을 품으로 데리고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도우십니다. 다윗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고백한 하나님이 우리의 빛과 구원이 되심은 우리를 위한 고백인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삼상 27:1).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빛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며 능력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크신 은혜를 날마다의 삶에서 경험되어 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일어나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삶의 환난이나 고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는 뒤돌아볼 시간이 없고 오직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러한 시련을 경험했기에 그는 연단되어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절망으로부터 자유하는 비결은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내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