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풍성한 감사를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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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473회 작성일 23-11-18 21:09본문
하나님께 풍성한 감사를 드립시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신 16:16-17).
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지난 한 해를 축복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주일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감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유대인의 명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에게 항상 배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많은 것을 가졌어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행복이 없다. 비록 가진 것이 적다 할 지라도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감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감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열 명의 문둥병자가 어느 날 길을 가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주님을 보고는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주님은 저들을 보시고 측은히 여겨 저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저들은 길을 가다 자기들의 병이 나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만이 와서 주님께 감사를 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열 명이 다 고침을 받지 않았느냐? 그런데 그 아홉은 어디 갔느냐며 책망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감사치 않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감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감사치 않는 것을 성경은 심각한 죄로 여깁니다.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고, 참소하고, 배반하는 것과 같은 죄의 대열에 놓고 있습니다(딤후 3:1-4).
둘째,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감사의 조건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사업이 번창한다든지, 시험에 합격했다든지, 승진했다든지,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다든지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감사를 잘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 예를 들면 사업이 잘 안된다든지, 시험에 떨어졌다든지, 승진에서 낙오되었다든지, 일이 잘 안되었을 때는 감사하는 대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경우를 든다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일이 잘 되어갈 때는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어 그들로 마른 땅을 밟고 바다를 건너게 하셨을 때 그들은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먹을 것이 떨어지고 마실 물이 없으니까 이내 곧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같습니다.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합니다.
셋째, 감사할 일이 없는 데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할 것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것이 없을 때에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바라던 대로 일이 이루어질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못할 때에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성경학자 메튜 헨리 (Matthew Henry)가 어느 날 강도를 만나 가진 돈을 다 빼앗겼습니다. 그 날 저녁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첫째, 전에 한 번도 강도 만난 적이 없으므로 감사하고, 둘째, 비록 가진 것을 다 빼앗겼지만 생명은 무사하니 감사하고. 셋째, 가진 것 다 가져 갔지만 가진 것이 얼마 안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라고 했다 합니다. 감사할 것이 없을 것 같은데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커녕 원망과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의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지 말고, 감사할 일이 없을 때에도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도록 절기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년 중에 일곱 번씩 하나님께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 들을 기념하였습니다. 특히 유절절인 무교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신 16:16-17). 이스라엘에는 일곱 가지 절기가 있었는데, 그 중에 세 절기는 하나님이 택하신 성전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 절기의 의미를 생각하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1.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십 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레 23:5-6).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의 절기를 첫달 십사일에 지켰고, 다음날 십오일부터 일주일간은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그리하여 유월절 절기는 십사일부터 이십일일까지 함께 지켜졌습니다. 유월절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노릇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출애굽으로 인도하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특히 유월절에 어린양이 희생이 되어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다음날에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찌니라.”(출 12:13-14).
유월절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애굽의 종으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재앙을 피하고 출애굽한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해질 때에 양이나 염소를 취하여 잡고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같이 먹었습니다. 그들이 유월절에 어린양을 잡은 것은 어린양의 피가 표적이 되어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피가 표적이 되어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표적이 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을 상징합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유월절의 참된 의미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종노릇하던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우리는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은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죄악 중에 태어나 사망의 그늘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5)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악 중에 출생하여 죄인으로 살아가는 자였습니다. 우리가 죄인으로 살아가다가 주님이 흘리신 보혈로 죄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복음을 듣게 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지난 주에 저는 대만에서 개척하시는 박정선 선교사님의 필라델피아 교회 개척 예배를 드리고 선교사님을 격려하기 위하여 호남 친교회 목사님들과 대만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대만은 덥고 비가 많이 오는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건물들도 화려함 보다는 칙칙한 분위기가 더 많이 났고, 사람들도 비가 많이 오니까 별로 치장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라가 밝기 보다는 조금 어둡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우상 숭배의 나라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도시 한 가운데에 우상의 집인 사원이 있어서 사람들이 출퇴근 하다가 들러서 부처에게 절을 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곳에는 마을 한 가운데에 삼국지의 관우 사당을 만들어 숭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곳은 수억대의 돈을 들여 사원을 만든 후에 사람들이 바친 돈으로 사업을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마치 에베소의 아데미 여신을 위하여 도시 전체가 우상 사업을 하며 돈을 벌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집에는 불상을 둔 방이 있어서 집을 우상의 집으로 만들어 숭배한다고 합니다. 무당집에 불상이 있듯이, 개인의 집에 불상을 만들어 음식을 만들어 매일 바치고 그곳에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것입니다. 대만이라는 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영적으로는 사탄의 매여 살아가는 나라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곳에 하나님이 보내신 선교사님들이 가셔서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워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의 커럴 선교사님은 지난 38년간 대만에서 선교하신 베테랑 선교사님이셨습니다. 저와 같은 테네시 템플 신학대학을 나오셔서 대만에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일스 앤더슨 나오신 선교사님들을 만나 교제를 나누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이제 박정선 선교사님도 부르심을 받고 가셔서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시며 교회를 개척하신 것입니다. 우상의 나라이기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느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님들을 통하여 한 영혼 한 영혼이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존 뉴턴은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시로 감사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은 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존 뉴턴은 자신의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존 뉴턴은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평생을 복음 전하는 사명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어두움의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다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된 것입니다.
2. 우리는 공급하시는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민 28:26).
칠칠절은 밀이 수확하는 시기입니다. 첫 이삭을 드린 초실절 절기 이후 50일째의 절기이기에 신약에서는 오순절이라고 했습니다. 유월절 절기에 드리는 첫 이삭은 보리 추수를 한 후에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칠칠절에는 밀의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민 28:26).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땅에서 수고로이 일한 것에 대하여 열매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골짜기와 산지에 흐르는 샘에서 물을 마시고 농사를 지어 양식에 아무 결핍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신 8:10)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옥토를 주셔서 농사를 하게 하시며, 하늘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셔서 그들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신 11:14-1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름진 땅을 주시고 비를 내리셔서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시는 추수의 열매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했습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약 1:17)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선물로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잠언 기자는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 3:9-10).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물과 소산물의 첫 열매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넘치는 복을 받는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신명기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신 16;10)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복을 주신대로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추수를 하면서 먼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송아지와 수양으로 번제를 드렸고, 고운 곡물로 소제를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소제는 곡물을 고운 가루로 만들어 드리는 것인데, 하나님이 주신 추수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특히 소제는 번제와 화목제와 같이 드렸는데, 이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하고, 찬양을 할 때에 마음에 감사함으로 찬양하고,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칠칠절은 신약에서 오순절이라고 불렸습니다. 오순절은 첫 이삭을 드린 초실절의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50일이 되는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믿는 자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40일 만에 승천하셨고, 10일 후에 성령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자 오순절에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첫 열매가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그 영혼이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4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한 열매가 나타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그들이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영혼의 열매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교회에 새로운 영혼이 열매를 맺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힘써 영혼의 추수를 통하여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인도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너희는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찌니.”(레 23:4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칠월 십오일부터 일주일간 초막에 거하며 초막절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초막절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시는 광야에서 초막에 거하게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23:43).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40년간 광야에서 인도하시고 공급하신 은혜를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초막절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인도하신 은혜를 기억할 뿐 아니라, 앞으로 복주실 것에 대하여 즐거워해야 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찌니라.”(신 16:16). 지금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앞으로 인도하시며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13:21-22). 하나님은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임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 장소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장소이며,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소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임재하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만나로 먹이셨습니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 8:16). 만나는 광야에서 생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사십년간 만나로 먹이셨습니다. 약 삼백만 명의 사람들이 하루 세끼 분량의 양식을 공급받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만나 뿐만 아니라 반석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을 내심으로 그들의 목마름을 채워주신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사십년 강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고, 발이 부릍지 않게 하심으로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이나 아모리 사람 시혼이 전쟁을 하러 와자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싸우심으로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모세는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신 3:2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서 싸우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사십년간 광야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실패한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2-23).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는 감사가 없고 도리어 불평이 있습니다. 감사가 없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감사의 삶은 고난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하는 통로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원망하고 불평함으로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만나를 공급받았지만, 고기가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반석에서 물을 내셨지만 조금의 시련이 찾아오자 불평하고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엎드려 하나님을 예배했지만,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의 죄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나안에 들어가고 있었지만, 가나안에 거하는 아낙 자손과 큰 성을 보고 두려워 애굽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절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하여 초막절에 칠일 동안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그들은 시편 기자의 고백대로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물보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을 더욱 존귀하게 보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찬양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 13:15-16). 하나님은 우리가 찬양을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찬양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선을 행하고 서로 나눠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드린 제물은 성의 가난한 자들이나 타국인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함께 기뻐했습니다. 나눔에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사도 바울에게 귀한 물질과 필요를 공급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준 필요로 인하여 자신이 풍요롭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전해 줍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마음을 다하여 드린 빌립보 교회의 헌물을 기쁘시게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필요를 풍성한대로 채우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의 삶에 감사할 더 큰 부요함을 가져다 주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신 16:16-17).
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지난 한 해를 축복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주일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감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유대인의 명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에게 항상 배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많은 것을 가졌어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행복이 없다. 비록 가진 것이 적다 할 지라도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감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감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열 명의 문둥병자가 어느 날 길을 가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주님을 보고는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주님은 저들을 보시고 측은히 여겨 저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저들은 길을 가다 자기들의 병이 나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만이 와서 주님께 감사를 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열 명이 다 고침을 받지 않았느냐? 그런데 그 아홉은 어디 갔느냐며 책망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감사치 않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감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감사치 않는 것을 성경은 심각한 죄로 여깁니다.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고, 참소하고, 배반하는 것과 같은 죄의 대열에 놓고 있습니다(딤후 3:1-4).
둘째,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감사의 조건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사업이 번창한다든지, 시험에 합격했다든지, 승진했다든지,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다든지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감사를 잘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 예를 들면 사업이 잘 안된다든지, 시험에 떨어졌다든지, 승진에서 낙오되었다든지, 일이 잘 안되었을 때는 감사하는 대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경우를 든다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일이 잘 되어갈 때는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어 그들로 마른 땅을 밟고 바다를 건너게 하셨을 때 그들은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먹을 것이 떨어지고 마실 물이 없으니까 이내 곧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같습니다.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합니다.
셋째, 감사할 일이 없는 데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할 것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것이 없을 때에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바라던 대로 일이 이루어질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못할 때에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성경학자 메튜 헨리 (Matthew Henry)가 어느 날 강도를 만나 가진 돈을 다 빼앗겼습니다. 그 날 저녁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첫째, 전에 한 번도 강도 만난 적이 없으므로 감사하고, 둘째, 비록 가진 것을 다 빼앗겼지만 생명은 무사하니 감사하고. 셋째, 가진 것 다 가져 갔지만 가진 것이 얼마 안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라고 했다 합니다. 감사할 것이 없을 것 같은데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커녕 원망과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의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지 말고, 감사할 일이 없을 때에도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도록 절기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년 중에 일곱 번씩 하나님께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 들을 기념하였습니다. 특히 유절절인 무교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신 16:16-17). 이스라엘에는 일곱 가지 절기가 있었는데, 그 중에 세 절기는 하나님이 택하신 성전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 절기의 의미를 생각하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1.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십 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레 23:5-6).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의 절기를 첫달 십사일에 지켰고, 다음날 십오일부터 일주일간은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그리하여 유월절 절기는 십사일부터 이십일일까지 함께 지켜졌습니다. 유월절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노릇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출애굽으로 인도하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특히 유월절에 어린양이 희생이 되어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다음날에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찌니라.”(출 12:13-14).
유월절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애굽의 종으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재앙을 피하고 출애굽한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해질 때에 양이나 염소를 취하여 잡고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같이 먹었습니다. 그들이 유월절에 어린양을 잡은 것은 어린양의 피가 표적이 되어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피가 표적이 되어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표적이 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을 상징합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유월절의 참된 의미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종노릇하던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우리는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은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죄악 중에 태어나 사망의 그늘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5)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악 중에 출생하여 죄인으로 살아가는 자였습니다. 우리가 죄인으로 살아가다가 주님이 흘리신 보혈로 죄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복음을 듣게 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지난 주에 저는 대만에서 개척하시는 박정선 선교사님의 필라델피아 교회 개척 예배를 드리고 선교사님을 격려하기 위하여 호남 친교회 목사님들과 대만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대만은 덥고 비가 많이 오는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건물들도 화려함 보다는 칙칙한 분위기가 더 많이 났고, 사람들도 비가 많이 오니까 별로 치장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라가 밝기 보다는 조금 어둡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우상 숭배의 나라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도시 한 가운데에 우상의 집인 사원이 있어서 사람들이 출퇴근 하다가 들러서 부처에게 절을 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곳에는 마을 한 가운데에 삼국지의 관우 사당을 만들어 숭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곳은 수억대의 돈을 들여 사원을 만든 후에 사람들이 바친 돈으로 사업을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마치 에베소의 아데미 여신을 위하여 도시 전체가 우상 사업을 하며 돈을 벌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집에는 불상을 둔 방이 있어서 집을 우상의 집으로 만들어 숭배한다고 합니다. 무당집에 불상이 있듯이, 개인의 집에 불상을 만들어 음식을 만들어 매일 바치고 그곳에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것입니다. 대만이라는 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영적으로는 사탄의 매여 살아가는 나라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곳에 하나님이 보내신 선교사님들이 가셔서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워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의 커럴 선교사님은 지난 38년간 대만에서 선교하신 베테랑 선교사님이셨습니다. 저와 같은 테네시 템플 신학대학을 나오셔서 대만에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일스 앤더슨 나오신 선교사님들을 만나 교제를 나누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이제 박정선 선교사님도 부르심을 받고 가셔서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시며 교회를 개척하신 것입니다. 우상의 나라이기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느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님들을 통하여 한 영혼 한 영혼이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존 뉴턴은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시로 감사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은 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존 뉴턴은 자신의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존 뉴턴은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평생을 복음 전하는 사명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어두움의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다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된 것입니다.
2. 우리는 공급하시는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민 28:26).
칠칠절은 밀이 수확하는 시기입니다. 첫 이삭을 드린 초실절 절기 이후 50일째의 절기이기에 신약에서는 오순절이라고 했습니다. 유월절 절기에 드리는 첫 이삭은 보리 추수를 한 후에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칠칠절에는 밀의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민 28:26).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땅에서 수고로이 일한 것에 대하여 열매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골짜기와 산지에 흐르는 샘에서 물을 마시고 농사를 지어 양식에 아무 결핍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신 8:10)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옥토를 주셔서 농사를 하게 하시며, 하늘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셔서 그들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신 11:14-1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름진 땅을 주시고 비를 내리셔서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시는 추수의 열매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했습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약 1:17)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선물로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잠언 기자는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 3:9-10).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물과 소산물의 첫 열매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넘치는 복을 받는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신명기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신 16;10)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복을 주신대로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추수를 하면서 먼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송아지와 수양으로 번제를 드렸고, 고운 곡물로 소제를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소제는 곡물을 고운 가루로 만들어 드리는 것인데, 하나님이 주신 추수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특히 소제는 번제와 화목제와 같이 드렸는데, 이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하고, 찬양을 할 때에 마음에 감사함으로 찬양하고,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칠칠절은 신약에서 오순절이라고 불렸습니다. 오순절은 첫 이삭을 드린 초실절의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50일이 되는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믿는 자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40일 만에 승천하셨고, 10일 후에 성령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자 오순절에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첫 열매가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그 영혼이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4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한 열매가 나타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그들이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영혼의 열매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교회에 새로운 영혼이 열매를 맺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힘써 영혼의 추수를 통하여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인도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너희는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찌니.”(레 23:4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칠월 십오일부터 일주일간 초막에 거하며 초막절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초막절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시는 광야에서 초막에 거하게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23:43).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40년간 광야에서 인도하시고 공급하신 은혜를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초막절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인도하신 은혜를 기억할 뿐 아니라, 앞으로 복주실 것에 대하여 즐거워해야 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찌니라.”(신 16:16). 지금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앞으로 인도하시며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13:21-22). 하나님은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임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 장소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장소이며,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소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임재하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만나로 먹이셨습니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 8:16). 만나는 광야에서 생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사십년간 만나로 먹이셨습니다. 약 삼백만 명의 사람들이 하루 세끼 분량의 양식을 공급받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만나 뿐만 아니라 반석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을 내심으로 그들의 목마름을 채워주신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사십년 강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고, 발이 부릍지 않게 하심으로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이나 아모리 사람 시혼이 전쟁을 하러 와자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싸우심으로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모세는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신 3:2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서 싸우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사십년간 광야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실패한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2-23).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는 감사가 없고 도리어 불평이 있습니다. 감사가 없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감사의 삶은 고난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하는 통로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원망하고 불평함으로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만나를 공급받았지만, 고기가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반석에서 물을 내셨지만 조금의 시련이 찾아오자 불평하고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엎드려 하나님을 예배했지만,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의 죄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나안에 들어가고 있었지만, 가나안에 거하는 아낙 자손과 큰 성을 보고 두려워 애굽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절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하여 초막절에 칠일 동안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그들은 시편 기자의 고백대로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물보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을 더욱 존귀하게 보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찬양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 13:15-16). 하나님은 우리가 찬양을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찬양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선을 행하고 서로 나눠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드린 제물은 성의 가난한 자들이나 타국인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함께 기뻐했습니다. 나눔에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사도 바울에게 귀한 물질과 필요를 공급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준 필요로 인하여 자신이 풍요롭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전해 줍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마음을 다하여 드린 빌립보 교회의 헌물을 기쁘시게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필요를 풍성한대로 채우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의 삶에 감사할 더 큰 부요함을 가져다 주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