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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사람 (마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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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608회 작성일 23-09-3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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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사람 (마 5:1-12)

 미국 사람들은 자주 “God Bless You" 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하기를 원합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우리는 복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다른 사람의 축복을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복의 의미를 알고 있을 때에 비로서 우리가 기도한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지를 알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복’ 은 헬라어로 ‘마카리오스’로서 그 의미는 행복(happy)입니다.  즉, 복의 참된 의미는 행복인 것입니다.  우리가 복을 누린다는 것은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큰 복을 누리는 자는 인생에서 큰 행복을 누리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팔복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행복(happy)한 삶의 원리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복을 누리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다음의 말씀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복을 누리는 8가지 비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8가지 비결인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여덟 가지 복은 무엇인가요?

1.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3).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유대 땅은 큰 고통의 땅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면서 수입은 세리들에게 착취당하고 있었기에 소수를 제외하고는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누구인가요?  가난하고 억압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를 의미합니다.  부자나 권세자들은 자신들의 부와 힘을 의지하며 살아가기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도 자신들의 필요를 스스로 채울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부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 19:24).  주님께서는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나요?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며 믿음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시편 146편에서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46:3) 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는 삶이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비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의 태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인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겸손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모든 문제들을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정과 자녀와 직장과 사업, 더 나아가 미래의 삶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잠언 3장은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잠 3:5-7).  잠언은 우리가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여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분의 지혜를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은 악을 떠나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자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되나요?  우리는 기도와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말하고, 성경을 읽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습관에서 하나님의 영적인 지혜를 얻게 됩니다.

2. 애통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4).

왜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를 복 주실까요?  많은 사람들은 슬픔은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거나, 삶의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에는 소중한 사람을 영원히 보내는 장례이외에 수많은 슬픔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건강이나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물질이나 명성, 꿈과 같은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애통해하며 힘들어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우리의 소중한 사람이나 소유를 잃어버릴 때입니다. 

우리가 함께 하던 가족을 영원히 떠나보내거나, 가까운 친구와 헤어지거나 배우자와의 결별등은 엄청난 슬픔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삶에서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되면 애통하며 슬퍼하게 됩니다.  우리는 또한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하여 슬퍼하게 되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고통으로 인하여 슬퍼하게 됩니다.

스칵 펙 박사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베스트셀러에서 살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합니다.  “삶은 고해이다.  이것은 삶의 진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진리다.”  그분은 삶이란 문제의 연속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힘든 이유는 아담의 죄로 인하여 깨어지고 무너진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힘들어 하며 고통하는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를 가까이 하시며 자신에게 부르십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 34:18)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큰 고통을 느낄때면, 우리는 하나님이 멀리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의 순간에 가까이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십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 중에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에서는, “...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3:5)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일지라도 함께 하시며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고린도후서 6장에서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고후 6:10)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근심이 가득한 것 같으나,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이 기쁨의 근원이 되셔서 기쁨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주님이 거하시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삶의 고통을 스스로 이기도록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중에서 가까이 거하시는 것입니다.

3. 온유함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 5:5).

온유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는 자신의 삶에서 겸손의 지혜를 배운 사람입니다.  온유함의 의미는 약함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절제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연단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힘을 다스림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세우며 섬기는 곳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온유하지 못하면 자신의 감정과 힘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관계를 무너트리는 데에 사용되어질 수 있습니다. 

온유함은 갈등을 해소하게 합니다.  온유함은 분노를 가라앉게 하고 관계에서 충돌함으로 분노하게 하는 요소를 해소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유는 분노에 대한 해결책인 것입니다.  잠언 15장 1절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 15:1) 라고 했습니다.  잠언 25장에서는,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잠 25:15) 라고 했습니다.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는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기 보다는 참을성 있게 진지한 자세로 건의를 올릴 때 설득력을 갖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에서 부드러운 혀는 듣는자의 마음을 누그러트리며 위로하는 온유한 언어를 의미합니다.  뼈는 신체 중에서 단단한 부위이지만, 이러한 뼈를 꺾는다는 것은 가장 강경한 거부감을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즉, 참을성 있고 온유한 태도의 말은 강력한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온유한 언어는 완고한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을 방어하고 있다 할지라도 온유한 언어를 사용함으로 상대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온유함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게 합니다.  마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온유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8-29).  주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온유함을 배우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는 것이며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온유할수록 더욱 주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이 온유함 심정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안을 누리며 쉼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온유의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는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큰 복을 누리는 자인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마 5:6)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그들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의는 무엇인가요?  의는 바로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을 얻어 하나님의 의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하나님의 의를 향한 갈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갈급해야 할 목마름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순종의 삶을 살기 위하여 좋은 음식으로 영혼을 살찌워야 합니다.  그 양식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4:4).  성경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유와 같고, 빵이나 고기와도 같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꿀과 같은 양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자요.” (히 5:13).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기에, 말씀의 능력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5. 긍휼의 심정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7).

긍휼, 즉 자비는 무엇인가요? 자비는 다른 사람을 선대하거나 어려움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랑이 많거나 자비가 많다고 할 때에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대함을 가지고 긍휼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위에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바빠서 주위의 상처받은 사람들을 그냥 스쳐갑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돕는 긍휼의 사역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느날 한 사람이 주님께 와서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명령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두 가지로 압축하셔서 말씀하십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누가 자신의 이웃인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강도들에게 맞아서 거의 죽음 직전의 상태에서 길에 버려지게 됩니다. 세 사람이 그를 지나갔지만 그 중의 두 사람은 아무런 도우도 주지 않습니다. 세 번째 가던 사마리아 사람은 멈추어 서서 그를 돕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나귀에 태워서 모텔로 데려가 거기에서 돌봄을 받도록 합니다. 만일 비용이 더들게 되면 자신이 다시 오면서 지불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주님께서 자신에게 질문한 사람을 향하여, “누가 이웃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강도만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 준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는 긍휼의 마음을 보이지 않고서는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잠언에는 자비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잠 3:27). 우리의 자비는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와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가요? 우리 주위에는 감정적인 필요를 가진 분도 있고, 육체적인 필요, 재정적인 필요를 가진 이웃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이는 자비의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긍휼을 베풀 때에 태도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롬 12:8). 우리는 즐거움으로 긍휼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상처를 받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긍휼의 마음으로 가지고 함께 기도하며 돕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긍휼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4-5절에서는,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 2:4-5).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심으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긍휼을 입은 자처럼,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도 긍휼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자비와 긍휼을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팔복의 복은 행복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긍휼을 베푸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는 자비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잠언서는,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잠 14:21) 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자비가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셨고, 우리가 긍휼을 베풀도록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삶에서 긍휼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며, 긍휼은 행복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서로를 향하여 긍휼히 여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하여 긍휼히 여기는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6.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마음이 청결하다는 단어를  성경에서 한마디로 한다면 “integrity" 라고 합니다.  이는 전인적인 순결함을 의미하며 정직하여 흠이 없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온전함의 ‘integrity' 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청결한 마음의 첫 번째 의미는 ‘온전함(wholeness)' 입니다.  온전함이란 우리의 삶이 부분적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온전함을 의미합니다.  온전함의 반대는 나누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신앙이 교회 생활과 가정생활, 그리고 직장 생활이나 사회적인 관계에서 다른 가치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온전함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어 진리의 말씀이 적용이 됩니다.  그러나, 온전함이 없는 삶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가정이나 직장에서 보여주면서, 교회에서는 가면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은 겉과 속이 같은 온전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둘째로 청결한 마음은 진실함입니다.  진실함은 거짓이 없는 참된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참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결한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같은 모습으로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헬라시대에 철학자들은 희극을 기록했고, 강당에서 이러한 희극을 연극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면, 배우는 여러 사람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마스크를 쓰고 와서 한 사람의 역할을 연극한 후에, 뒤에 가서 가면을 바꾸고 나와서 다른 사람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는 여러 사람의 마스크를 쓰고 역할극을 감당했습니다.  이와같이 가면을 쓰는 배우를 히포크리츠라고 불렀는데, 이 말의 의미는 오늘날 hypocrite 라고 하며 그 뜻은 위선자라는 뜻입니다.  위선자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위선자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속은 회칠한 무덤과 같이 부패했는데 종교적인 옷을 입고 경건한 척을 했기 때문입니다.  청결한 마음에는 이와같이 진실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청결한 마음은 올바른 동기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 바르게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전함은 우리의 행실에서 항상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전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이려고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제와 섬김이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마음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자신의 착한 행실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동기인 것입니다. 

온전함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의 자신의 참된 모습입니다.  온전함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참된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외모에 더욱 관심을 가지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청결함과 순결함에 더욱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명성을 높이는데 관심을 갖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품에 관심을 갖습니다.  명성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순결함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명성은 대중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이지만, 순결함은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잠언서에는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잠 3:32) 라고 했습니다.  패역한 자는 마음이 부패한 자입니다.  그러나, 정직한 자는 마음이 순결하고 청결한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를 가까이 하시며 영적인 교통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7. 화평케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9).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증거 중의 하나가 바로 화평케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들은 다른 사람과 화평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메이어라는 랍비는 설교를 잘하기로 유명하였습니다. 그는 매주 금요일 밤이면 예배당에서 어김없이 설교를 했는데, 몇 백 명씩 한꺼번에 몰려 들어 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메이어의 설교듣기를 매우 좋아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다른 여자들은 금요일 밤이 되면 안식일에 먹을 음식을 만드느라 바쁜데, 그 여자만은 이 랍비의 설교를 들으러 나왔습니다.  메이어는 긴 시간 동안 설교를 했고 그 여인은 그 설교에 만족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일이 안식일인데 음식은 장만하지 않고 어디를 쏘다니고 있느냐며 화를 내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랍비의 설교를 듣고 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몹시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그 랍비의 얼굴에다 침을 뱉고 오기전에는 절대로 집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도 말어!"  집에서 쫓겨난 아내는 할 수 없이 친구 집에서 머물며 남편과 별거하였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메이어는 자기의 설교가 너무 길었기 때문에 한 가정의 평화를 깨뜨렸다고 몹시 후회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여인을 불러 눈이 몹시 아프다고 호소하면서 '남의 타액으로 씻으면 낫게 된다는데, 당신이 좀 씻어 주시오'하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여인은 랍비의 눈에다 침을 뱉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랍비에게 '선생님께선 덕망이 높으신데, 어째서 여자가 얼굴에 침을 뱉도록 허락하셨습니까?'하니 랍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그 보다도 더한 일이라도 할 수 있다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화평의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도 화평케 하는 자가 되도록 지혜로운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8.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 5:10-12)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에 많은 어려움과 핍박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핍박을 당하는 것은 주님의 자취를 따르며 그 분을 닮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느니라.” (벧전 2:21).  우리가 핍박을 당하는 것은 주님의 본을 따라서 그 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주님의 길을 따르며 그 분을 닮아가는 삶의 여정인 것입니다. 

몇 년 전에 무슬림의 핍박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독교 등 소수종교를 박해하던 이란인 무슬림 심문관이, 자신이 심문하던 기독교인 여성에게서 3일간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영접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픈도어선교회USA에 따르면, 한 가정교회 지도자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돼 독방에 감금됐습니다.

그는 “나는 철창으로 된 더러운 독방에 감금돼 고문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문 중에 내가 가정교회 성도들의 이름을 모두 발설하고 신앙을 부인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몹시 두려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혔던 사흘 동안 그는 용기를 내 심문관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심문관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가 갑자기 자신의 마음을 예수님께 열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기도했다”고 당시의 놀라운 상황을 전했습니다.  그는 당시 심문관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전하고 싶다. 당신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은 채 무관심할 수 없다. 당신도 구원의 기쁨과 복을 맛볼 수 있기를 원한다. 이것을 전하지 않고 침묵한 채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감옥의 어려운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승리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이 땅에서 시험을 당할 때에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핍박을 당할 때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림에 더욱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재림시에 우리가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하여 욕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팔복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삶의 소중한 가치와 지표로 삼아 천국 백성으로서의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