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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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487회 작성일 24-01-13 21:19본문
사랑의 회복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 30-31).
올해는 회복의 해로 정하여 새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다윗의 기도를 통하여 영성을 회복하고, 구원의 기쁨과 자원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소중한 가치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최고의 가치는 바로 아가페의 사랑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의 가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 30-31).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최고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말씀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삶의 가치를 가지고 주님을 섬길 수가 있을까요? 인생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언어를 새롭게 생각하며 우리의 삶이 사랑으로 충만하여 사랑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전 16: 14).
오늘 우리는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어떻게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하여 함께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 19)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본질이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하여 가정과 공동체, 직장에서 흘러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 7-8).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난 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 난 자의 의미는 하나님을 통하여 새롭게 거듭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영생인데, 이 영생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하나님의 사랑’ 의 씨앗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동물들은 본능은 가지고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에만 있는 고유한 특징인 것입니다.
요한1서는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제물이 되도록 이 땅에 보내신 것에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증거는 아들을 희생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더욱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우리 안에 느껴질 때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도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풍성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통로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통하여 찬양과 말씀,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합니다. 또한 우리가 지체들과의 교제의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체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모여서 예배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을 통하여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사랑하는 삶은 가장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위에서 세워갑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들의 삶의 가치를 물질에 두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에 두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의 중심을 취미 생활이나 스포츠에 두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통하여 자신의 삶의 만족이나 기쁨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삶의 포커스를 사랑하는 삶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것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더욱 가치있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소중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그 분의 영원한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은 아들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희생하신 그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분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삶이 가치있는 것은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 13). 세상의 모든 것은 일시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얻은 모든 것들은 우리가 남기고 가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명예나 물질은 모두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의 일들에 관하여는 잊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분의 사랑은 기억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찾는 것은 자신이 성취한 트로피나 은행 잔고나 집문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가족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소중했던 것은, 자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가족이나, 친구인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와 관계하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사랑으로 대하고 섬기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합니다.
하바드 의대 정신과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지난 72 년 간의 하버드생들의 일생을 추적했습니다. 무엇이 사람으로 성공하게 하며 행복하게 하는가? 최고의 엘리트 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연구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그는 각자 사람들을 연구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관찰하였습니다.
“그는 하버드대의 수재였다. 아버지는 부유한 의사, 어머니는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었고, 판단력이 뛰어났다. 이상도 높았고 건강했다. 그러나 31 세에 부모와 세상에 적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돌연 잠적하더니 마약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날 갑자기 사망했다. (141 번 사례)
“활발하던 한 학생은 결혼 후 세 아이를 낳고 이혼했다. 동성애 인권운동가가 됐다. 삶에 더 남은 것이 없다며 술에 빠져 살다가 계단에서 떨어져 죽었다.” (47 번 사례).
그는 행복하게 늙어가는 여러 요인들을 분석했습니다. 그 중에는 교육, 안정적 결혼, 금연, 금주, 운동, 적당한 체중, 그리고,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 그러나, 그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 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의 연구는 ‘잘 사는 삶에 일정한 공식이 있을까’ 라는 기본적인 의문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는 연구를 통하여 성공적인 노후로 이끄는 열쇠는 지성이나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적성, 즉 인간관계였다라는 결론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는 잘 살고 있는 사람의 93 % 가 형제, 자매와 원만하게 지낸 사람들이었다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가족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가장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사랑의 기술을 배워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 4: 7).
사랑은 배울 수 있는 기술입니다. 사랑은 기술이자 예술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식구가 없듯이, 교회의 지체들을 서로 사랑하지 않는 식구들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에는 다양한 기술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에도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특히 자녀들에게 영향력을 주는 기술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의 기술이 부족하다면,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어린이 아동심리학자인 캠플 박사는 “How to Really Love Your Child?"에서 자녀들을 이렇게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녀들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기술을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첫째, 눈을 바라보면서 사랑을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Eye Contact.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사랑을 전달할 때에 자녀의 감정의 필요가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둘재, 육체의 접촉을 통하여 사랑을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Physical Contact.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이 육체의 접촉을 통하여 일어날 때에 잘 전달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집중적인 관심을 통하여 사랑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Focused Attention. 집중적인 관심은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감정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넷째, 훈련을 통하여 사랑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Discipline. 훈련이란 자녀들이 자신을 절제하여 자신의 삶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녀들이 진정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부모의 사랑의 훈계는 자녀들이 더욱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사랑하는 만큼 자녀들이 사랑의 분위기에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하지만, 잘못된 표현으로 인하여 자녀들의 분노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어떤 배우자들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사랑의 표현이 잘못되어 극도의 아픔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사랑의 기술은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향한 사랑의 기술을 배워서 서로를 세워나가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고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 18). 사랑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즉, 사랑은 액션인 것입니다. 감정은 느끼는 것입니다. 즉, 감정이란 feeling 인 것입니다. 우리는 느낌에 지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고픈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사랑이 너무나 값싸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치가 없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값진 하나님의 보석으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로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산 제물로 드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의 소중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랑이었습니다. 행동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신 주님의 한없는 사랑은 너무나 값지고 소중한 사랑인 것입니다.
옛날 하와이 군도 중에 한 섬인 모로카이 섬은 문둥병자들만 모여 살던 죽음의 섬이었습니다. 어느 날 다미엔 이란 선교사가 그 곳에 와서 선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온 몸이 썩어져 가는 문둥병자들 앞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문둥병자들은 그를 비웃으면서, “자신은 건강한 몸이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살지만 만약 우리들처럼 죽게 되었으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고 조롱했습니다. 전도의 문은 처음부터 굳게 닫혀버린 것이었습니다. 고민에 쌓여 있던 다미엔은 어느 날 하나님께 나아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나에게도 문둥병을 주셔서 저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얼마 후 다미엔 에게는 감각이 점차로 무디어지고 눈썹이 빠지고 관절이 떨어져 나가는 죽음의 병이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손가락 마디가 떨어져 나간 문둥병자의 모습을 하고 그들 앞에 선 다미엔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동료 여러분! 그리스도는 문둥병에 걸린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그의 설교를 듣는 순간, 그 자리에 모여 들었던 더 많은 문둥병자들은 마치 전류가 통하는 것 같은 감동을 받고, 일대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한 선교사의 희생적인 선교의 삶을 통하여 그 지역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도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가족과 친척, 그리고 교회의 공동체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삶이 더욱 아름답고 가치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4.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야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 34).
어떻게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배워야 할 모델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구체적으로 배울수 있는 모델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심으로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씻음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처럼 용서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허물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8). 우리가 허물이 있는 자를 사랑하기로 선택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어떠할까요?
세상은 조금의 허물만 보여도 그 허물을 가지고 삶을 무너트리려고 합니다. 잘못된 마음으로 공격하기 시작할 때는 사자가 짐승을 잡아먹듯이, 상처받은 자에 대한 자비가 없는 듯합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향하여 돌을 던지려고 했던 유대인의 모습이 때로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여인을 향하여 돌을 던지지 않으시고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자비와 인자를 보여 주심으로, 그 여인에게 살아갈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베푸는 사랑의 메시지는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사랑의 미소와 몸짓은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최고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판단하기 보다는, 그들의 가능성과 미래를 보며 믿어주고 힘을 주어 함께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으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수많은 상처와 아픔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중에서 가장 우리를 힘들게 하는 상처는 거절당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깊은 상처 속에는 어릴 때부터 거절당했던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배우자로부터 거절당한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친구들로부터의 거절과 배신, 그리고 부모로부터 받은 거절등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회사에 입사 원서를 냈지만, 모든 회사들이 자신을 거절하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도대체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거절할 때에 우리는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거절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우리를 용납하고 받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완벽한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세상의 누군가는 우리에게 돌을 던지며 거절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배우자 일수도, 자녀일 수도, 친구일수도, 직장의 상사일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벽하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아무런 흠이 없이 살아가셨고, 흠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분의 삶은 인간을 위한 희생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인류의 구원만을 위해서 살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요 1: 11).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지 아니하고, 그 분에게 돌을 던지며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두려움도 있고 의심도 있습니다. 믿음의 연약함도 있습니다. 인격의 장애도 있기도 합니다. 행동과 말의 미성숙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연약함을 보고 돌을 던지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약함을 보면서 그를 받아들이고 연약함에 대해서는 기도해주는 성숙된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치를 존중하시며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존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눅 12: 6-7).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의 가치를 존중하시면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실 만큼 우리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분의 영을 우리 안에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령님의 능력과 도우심으로 살게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고, 하나님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소중한 가치의 존재로 보시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향하여 소중한 가치있는 존재로 보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은 선택하는 것이며 헌신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최고 계명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친구를 사랑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으로 사랑하는 삶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 30-31).
올해는 회복의 해로 정하여 새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다윗의 기도를 통하여 영성을 회복하고, 구원의 기쁨과 자원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소중한 가치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최고의 가치는 바로 아가페의 사랑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의 가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 30-31).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최고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말씀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삶의 가치를 가지고 주님을 섬길 수가 있을까요? 인생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언어를 새롭게 생각하며 우리의 삶이 사랑으로 충만하여 사랑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전 16: 14).
오늘 우리는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어떻게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하여 함께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 19)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본질이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하여 가정과 공동체, 직장에서 흘러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 7-8).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난 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 난 자의 의미는 하나님을 통하여 새롭게 거듭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영생인데, 이 영생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하나님의 사랑’ 의 씨앗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동물들은 본능은 가지고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에만 있는 고유한 특징인 것입니다.
요한1서는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제물이 되도록 이 땅에 보내신 것에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증거는 아들을 희생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더욱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우리 안에 느껴질 때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도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풍성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통로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통하여 찬양과 말씀,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합니다. 또한 우리가 지체들과의 교제의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체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모여서 예배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을 통하여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사랑하는 삶은 가장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위에서 세워갑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들의 삶의 가치를 물질에 두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에 두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의 중심을 취미 생활이나 스포츠에 두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통하여 자신의 삶의 만족이나 기쁨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삶의 포커스를 사랑하는 삶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것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더욱 가치있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소중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그 분의 영원한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은 아들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희생하신 그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분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삶이 가치있는 것은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 13). 세상의 모든 것은 일시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얻은 모든 것들은 우리가 남기고 가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명예나 물질은 모두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의 일들에 관하여는 잊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분의 사랑은 기억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찾는 것은 자신이 성취한 트로피나 은행 잔고나 집문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가족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소중했던 것은, 자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가족이나, 친구인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와 관계하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사랑으로 대하고 섬기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합니다.
하바드 의대 정신과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지난 72 년 간의 하버드생들의 일생을 추적했습니다. 무엇이 사람으로 성공하게 하며 행복하게 하는가? 최고의 엘리트 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연구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그는 각자 사람들을 연구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관찰하였습니다.
“그는 하버드대의 수재였다. 아버지는 부유한 의사, 어머니는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었고, 판단력이 뛰어났다. 이상도 높았고 건강했다. 그러나 31 세에 부모와 세상에 적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돌연 잠적하더니 마약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날 갑자기 사망했다. (141 번 사례)
“활발하던 한 학생은 결혼 후 세 아이를 낳고 이혼했다. 동성애 인권운동가가 됐다. 삶에 더 남은 것이 없다며 술에 빠져 살다가 계단에서 떨어져 죽었다.” (47 번 사례).
그는 행복하게 늙어가는 여러 요인들을 분석했습니다. 그 중에는 교육, 안정적 결혼, 금연, 금주, 운동, 적당한 체중, 그리고,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 그러나, 그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 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의 연구는 ‘잘 사는 삶에 일정한 공식이 있을까’ 라는 기본적인 의문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는 연구를 통하여 성공적인 노후로 이끄는 열쇠는 지성이나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적성, 즉 인간관계였다라는 결론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는 잘 살고 있는 사람의 93 % 가 형제, 자매와 원만하게 지낸 사람들이었다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가족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가장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사랑의 기술을 배워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 4: 7).
사랑은 배울 수 있는 기술입니다. 사랑은 기술이자 예술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식구가 없듯이, 교회의 지체들을 서로 사랑하지 않는 식구들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에는 다양한 기술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에도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특히 자녀들에게 영향력을 주는 기술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의 기술이 부족하다면,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어린이 아동심리학자인 캠플 박사는 “How to Really Love Your Child?"에서 자녀들을 이렇게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녀들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기술을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첫째, 눈을 바라보면서 사랑을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Eye Contact.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사랑을 전달할 때에 자녀의 감정의 필요가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둘재, 육체의 접촉을 통하여 사랑을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Physical Contact.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이 육체의 접촉을 통하여 일어날 때에 잘 전달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집중적인 관심을 통하여 사랑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Focused Attention. 집중적인 관심은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감정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넷째, 훈련을 통하여 사랑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Discipline. 훈련이란 자녀들이 자신을 절제하여 자신의 삶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녀들이 진정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부모의 사랑의 훈계는 자녀들이 더욱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사랑하는 만큼 자녀들이 사랑의 분위기에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하지만, 잘못된 표현으로 인하여 자녀들의 분노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어떤 배우자들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사랑의 표현이 잘못되어 극도의 아픔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사랑의 기술은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향한 사랑의 기술을 배워서 서로를 세워나가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고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 18). 사랑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즉, 사랑은 액션인 것입니다. 감정은 느끼는 것입니다. 즉, 감정이란 feeling 인 것입니다. 우리는 느낌에 지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고픈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사랑이 너무나 값싸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치가 없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값진 하나님의 보석으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로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산 제물로 드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의 소중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랑이었습니다. 행동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신 주님의 한없는 사랑은 너무나 값지고 소중한 사랑인 것입니다.
옛날 하와이 군도 중에 한 섬인 모로카이 섬은 문둥병자들만 모여 살던 죽음의 섬이었습니다. 어느 날 다미엔 이란 선교사가 그 곳에 와서 선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온 몸이 썩어져 가는 문둥병자들 앞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문둥병자들은 그를 비웃으면서, “자신은 건강한 몸이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살지만 만약 우리들처럼 죽게 되었으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고 조롱했습니다. 전도의 문은 처음부터 굳게 닫혀버린 것이었습니다. 고민에 쌓여 있던 다미엔은 어느 날 하나님께 나아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나에게도 문둥병을 주셔서 저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얼마 후 다미엔 에게는 감각이 점차로 무디어지고 눈썹이 빠지고 관절이 떨어져 나가는 죽음의 병이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손가락 마디가 떨어져 나간 문둥병자의 모습을 하고 그들 앞에 선 다미엔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동료 여러분! 그리스도는 문둥병에 걸린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그의 설교를 듣는 순간, 그 자리에 모여 들었던 더 많은 문둥병자들은 마치 전류가 통하는 것 같은 감동을 받고, 일대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한 선교사의 희생적인 선교의 삶을 통하여 그 지역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도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가족과 친척, 그리고 교회의 공동체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삶이 더욱 아름답고 가치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4.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야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 34).
어떻게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배워야 할 모델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구체적으로 배울수 있는 모델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심으로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씻음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처럼 용서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허물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8). 우리가 허물이 있는 자를 사랑하기로 선택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어떠할까요?
세상은 조금의 허물만 보여도 그 허물을 가지고 삶을 무너트리려고 합니다. 잘못된 마음으로 공격하기 시작할 때는 사자가 짐승을 잡아먹듯이, 상처받은 자에 대한 자비가 없는 듯합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향하여 돌을 던지려고 했던 유대인의 모습이 때로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여인을 향하여 돌을 던지지 않으시고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자비와 인자를 보여 주심으로, 그 여인에게 살아갈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베푸는 사랑의 메시지는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사랑의 미소와 몸짓은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최고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판단하기 보다는, 그들의 가능성과 미래를 보며 믿어주고 힘을 주어 함께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으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수많은 상처와 아픔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중에서 가장 우리를 힘들게 하는 상처는 거절당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깊은 상처 속에는 어릴 때부터 거절당했던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배우자로부터 거절당한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친구들로부터의 거절과 배신, 그리고 부모로부터 받은 거절등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회사에 입사 원서를 냈지만, 모든 회사들이 자신을 거절하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도대체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거절할 때에 우리는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거절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우리를 용납하고 받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완벽한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세상의 누군가는 우리에게 돌을 던지며 거절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배우자 일수도, 자녀일 수도, 친구일수도, 직장의 상사일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벽하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아무런 흠이 없이 살아가셨고, 흠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분의 삶은 인간을 위한 희생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인류의 구원만을 위해서 살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요 1: 11).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지 아니하고, 그 분에게 돌을 던지며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두려움도 있고 의심도 있습니다. 믿음의 연약함도 있습니다. 인격의 장애도 있기도 합니다. 행동과 말의 미성숙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연약함을 보고 돌을 던지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약함을 보면서 그를 받아들이고 연약함에 대해서는 기도해주는 성숙된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치를 존중하시며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존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눅 12: 6-7).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의 가치를 존중하시면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실 만큼 우리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분의 영을 우리 안에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령님의 능력과 도우심으로 살게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고, 하나님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소중한 가치의 존재로 보시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향하여 소중한 가치있는 존재로 보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은 선택하는 것이며 헌신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최고 계명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친구를 사랑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으로 사랑하는 삶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