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공동체 (눅 5: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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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200회 작성일 24-09-07 20:48본문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공동체 (눅 5:17-26)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눅 5:19).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그릇이 되기 위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요 17:18).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고, 이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셔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사명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자가 된 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들은 후에 주님께로 돌아왔듯이, 우리가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무척이나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알지 못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했고,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공짜로 천국에 가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물질의 풍요로움은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의 마음에 있는 공허함을 채우지 못한채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며,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그들을 변화시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큰 일을 우리 혼자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팀을 이루어 전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면 우리는 효과적으로 전도할 수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7절은 복음을 위하여 협력하는 신앙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빌 1:27)
이 구절에서 우리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며,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다른 사람과 복음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혼자 전할 수도 있지만, 이 구절에서 함께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공동체적인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We work together as partners who belong to God."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함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 5장의 말씀을 통하여 함께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원리를 발견하며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소그룹의 공동체가 한 팀이 되어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중풍병자를 주님께로 데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몇 가지 소중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영혼을 주님께로 데려오는 소중한 팀의 원리는 무엇인가요?
1. 긍휼 - 그들은 아픈 친구에 대하여 염려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전 10:24).
중풍병자는 스스로 주님께로 올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와서 자신의 병도 고치고 죄를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오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때 그의 친구들이 그를 침상에 메고 주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연약하고 병든 친구를 향한 사랑과 연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긍휼의 원리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사랑의 마음에서 흘러나와야 진정한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사역이 사랑에 기초하지 않으면, 우리의 사명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1).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역하거나 섬기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는 어떠한 일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삶에 대하여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가면, 그들의 마음의 마음이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을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기 전에, 우리는 그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전에, 우리는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시기에, 우리도 그들에게 사랑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롬 15:2). 우리 이웃에 대하여 염려하고 관심을 갖도록 성경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전 10:24). 우리는 다른 사람을 염려하며, 그들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과 믿음을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나쁜 삶을 살아가거나 성경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과 가족의 삶에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의 관심인 영혼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와 계획, 목표, 가족에만 관심을 집중합니다. 이러한 삶은 이기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교회안에서 분주한 삶을 살아가기에, 실제로 믿지 않는 자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들과 함께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그들과 믿음을 나눌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체들과는 매주 식사 모임을 하지만, 믿지 않는 친구나 이웃들과는 식사하면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무관심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름과 같습니다. 거름이 한곳에 쌓아두면 그것들이 썩어집니다. 그러나, 거름을 땅에 두루 펼치게 되면, 그것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쌓아둔 거름이 아니라, 세상에 두루 펼쳐진 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만 모여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에 펴져서 이웃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서 그들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사랑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중풍병자의 친구를 사용하신 이유는, 그들은 친구의 필요에 대하여 민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친구를 주님께로 데리고 올만큼 그에게 관심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만 살아간 것이 아니라, 필요를 가진 친구에게 큰 관심을 보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사랑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사랑이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들의 필요를 알고 있을 때에, 그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다면,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함께 일하는 사람의 필요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은, 내가 나의 이웃에 대하여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의 증거는 내가 그들의 필요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심이 있으며, 그들의 필요에 대하여 알고 있다면, 우리는 이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께로 영혼들을 인도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변화시키고 우리를 변화시켜, 그들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1. 기회를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영혼을 교회와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도록 기도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수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들의 상처는 마음을 더욱 강팍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상처는 고통을 주게 되며, 이러한 마음은 더욱 강팍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때로 부모에게 분노하며, 배우자에게 분노하고, 심지어는 자녀에게도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들이 상처로 살아가기에, 그들의 마음은 분노가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들의 상처로 인하여 닫힌 마음이 열리고 부드러워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처로 인하여 강팍해진 마음을 녹이기 위해서 망치로 다루시는 것이 아니라, 비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생의 폭풍우를 지나면서,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닫혔던 마음들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주위에서 인생의 폭풍우를 지나는 이웃이나 친구를 만난다면, 그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폭풍우를 지나게 하심으로 인하여, 그들의 강팍해진 마음을 녹이시는 것입니다.
3.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도록 기도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과 가족에만 관심을 가질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부담감을 가져야 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눈물로 기도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부담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 영혼들이 처할 영원한 심판을 생각하며, 그들의 영혼이 어두움에 방황하는 것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때로 어려운 이웃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불신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눈물이 없다면, 우리는 먼저 강팍한 마음을 녹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소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면, 우리의 마음이 강팍한 마음에서 부드러운 마음을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을 성취할 수 있는 첫 번째 걸음은, 우리가 불신자의 명단을 작성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대상은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이웃, 그리고,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대상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가족입니다. 우리의 가족 중에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도 한 사람씩 적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사촌이나 부모, 형제 들 중에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친구입니다. 친구의 이름을 적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친구일 수도 있고, 오랜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친구의 이름을 적고 기도하도록 합시다.
직장동료입니다. 우리의 직장 동료 중에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동료가 직장 상사 일수도 있고, 하급자 일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과거 직장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만났지만, 아직 주님을 모르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입니다. 우리의 이웃 중에서 주님을 알지 못한다면,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주님의 사랑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아파트의 관리자일수도 있고, 우체부 집배원일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미장원 주인일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서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먼저 기도로 다가갈 것입니다. 관계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열쇠인 것입니다. 안드레는 그의 형제 베드로를 주님께로 인도하였고, 빌립은 나다나엘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은 그녀의 친구들을 인도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에 그들을 두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2. 믿음 -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친구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눅 5:20).
이것은 믿음의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희 믿음’ 을 보셨습니다. 이는 누구의 믿음인가요? 이는 바로 친구들의 믿음인 것입니다. 주님은 중풍병자를 데려온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주님은 네명의 친구들이 중풍에 걸린 사람을 지붕에서 내리는 것을 보셨습니다. 중풍병자는 큰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를 주님께로 데려온 사람들은 바로 네 명의 친구였던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영적으로 중풍병자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으로 불구가 되어 살아갑니다. 오늘 직장을 잃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죄의식으로 불구가 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죄와 수치가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외로움으로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슬픔으로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로 다가갈 수 있는 믿음이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들을 예수님게로 이도하는 것입니다. 네 명의 친구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친구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중풍병자를 주님께로 데려온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영적으로 불구된 자를 주님께서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주님께로 더욱 열정적으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다면 믿음이 있다면, 그들이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삶이 구원받아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항상 영적 전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향한 뜻이 있으시고, 사탄도 우리를 향한 뜻이 있으며, 우리 자신도 자신의 의지가 있습니다. 인생의 매 순간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나, 사탄의 뜻, 또는 자신의 뜻중에서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될 때에 큰 영적 전투가 진행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고 믿음으로 확신하게 되면 누군가는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두 번째 걸음입니다. 첫 걸음은 긍휼의 마음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믿음인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불가능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7:25).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강팍한 자라도 구원하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함께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더욱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목장으로 모일 때에 함께 불신자의 명단을 보면서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불신자의 명단을 나누고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믿음과 기도를 보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3. 집념 - 그들은 기도할 뿐만 아니라, 영혼을 주님께로 데려왔습니다.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눅 5:18).
만일 여러분이 불구자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스스로 주님께로 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데리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많은 예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친구를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계획을 만들곤 했습니다. 우리가 계획하지 않으면, 우리는 너무나 바빠서 영혼에 대한 관심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일주가 한달이 되고, 한달이 일년이 되며, 일년이 십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난 10년 동안 한 영혼도 주님께로 인도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의 인생에서 전도 사명을 감당할 계획을 수립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골 4:5)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눅 14:23)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집이 가득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사람을 강권하여 하나님의 집에 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의 구원을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초청해야 합니다. 영혼들을 강권하여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혼들을 인도하려고 할 때에 장애물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그를 주님께로 데려가고자 할 때에, 그들은 장애를 만나게 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주님께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힘들게 친구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무척이나 낙심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께로 그를 인도하기를 결단합니다. 그들은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주님께로 달아 내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려고 할 때에 크게 낙심할 때가 옵니다. 사람들의 비판이 있고, 초청한 영혼의 무관심, 세상의 조롱이 찾아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무관심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선을 행하는 것은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랑하며 기도하고 초청하고 복음을 전하는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영혼을 추수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4. 협력 - 그들은 함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눅 5:19).
그들은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협력하였습니다. 그들은 지붕까지 중풍병자를 들오 올랐던 것입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네 명이 힘을 합쳐서 이루어냈습니다. 그들의 협력이 큰 기적을 이루어낸 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복음 전도에서도 때로는 함께 사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혼자 가면 영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팀으로 함께 전도하면 동역자가 있어서 든든해집니다. 예수님도 전도팀을 보내실 때에 두 명씩 팀으로 보내셨습니다. 바울도 사역을 할 때에 동역자들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게 될 때에 우리는 목장별로 또는 전도팀을 이루어 함께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팀으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1) 목장이 팀을 이루어 전도할 수 있습니다. 목장은 가장 견고한 공동체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말씀을 중심으로 삶을 나누게 됩니다. 이제는 말씀을 나눔에서 전도의 공동체로 발전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전도하는 공동체의 삶을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주일 오후의 전도를 활용합니다. 우리는 주일 오후에 전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두명씩 짝을 지어서 함께 전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팀을 이루게 되면 스스로가 위축되지 않고 담대하게 전할 수 있게 됩니다.
3) 주중에 전도팀을 이룰 수 있습니다. 주중에 우리가 시간을 정하거나, 대상을 정하여 함께 전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주중에 우리는 전도 대상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이때 전도팀을 이루어 함께 나아갈 때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전도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복음을 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로 초청하기는 쉬울 수가 있습니다. 교회에 초청하면 교회에서 영적인 리더들이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복음을 전하는 팀이 되는 것입니다.
5. 희생 - 그들은 지붕의 값을 지불하려 했습니다.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눅 5:19).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지붕의 값을 지불할 만큼 희생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지붕의 값을 지불하더라도, 중풍병자가 주님을 만나 구원받는 것이 소중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 희생은 시간이며 물질이며, 노력이며 삶의 에너지인 것입니다. 우리의 희생이 없이는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에 대한 관심과 그들의 필요를 채우려는 우리의 노력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일 오후에 집에 가는 대신 전도지를 들고 거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믿지 않는 자의 초인종을 눌러야 합니다. 전도지를 나누며 복음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희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다른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었는지요? 주님이 원하시는 희생의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셨는지요? 우리는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면 어떠한 대가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함께 믿음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공동체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원리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한 영혼을 인도하기 위하여 최선의 삶을 살아가며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눅 5:19).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그릇이 되기 위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요 17:18).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고, 이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셔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사명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자가 된 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들은 후에 주님께로 돌아왔듯이, 우리가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무척이나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알지 못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했고,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공짜로 천국에 가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물질의 풍요로움은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의 마음에 있는 공허함을 채우지 못한채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며,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그들을 변화시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큰 일을 우리 혼자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팀을 이루어 전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면 우리는 효과적으로 전도할 수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7절은 복음을 위하여 협력하는 신앙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빌 1:27)
이 구절에서 우리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며,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다른 사람과 복음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혼자 전할 수도 있지만, 이 구절에서 함께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공동체적인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We work together as partners who belong to God."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함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 5장의 말씀을 통하여 함께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원리를 발견하며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소그룹의 공동체가 한 팀이 되어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중풍병자를 주님께로 데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몇 가지 소중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영혼을 주님께로 데려오는 소중한 팀의 원리는 무엇인가요?
1. 긍휼 - 그들은 아픈 친구에 대하여 염려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전 10:24).
중풍병자는 스스로 주님께로 올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와서 자신의 병도 고치고 죄를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오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때 그의 친구들이 그를 침상에 메고 주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연약하고 병든 친구를 향한 사랑과 연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긍휼의 원리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사랑의 마음에서 흘러나와야 진정한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사역이 사랑에 기초하지 않으면, 우리의 사명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1).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역하거나 섬기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는 어떠한 일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삶에 대하여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가면, 그들의 마음의 마음이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을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기 전에, 우리는 그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전에, 우리는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시기에, 우리도 그들에게 사랑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롬 15:2). 우리 이웃에 대하여 염려하고 관심을 갖도록 성경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전 10:24). 우리는 다른 사람을 염려하며, 그들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과 믿음을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나쁜 삶을 살아가거나 성경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과 가족의 삶에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의 관심인 영혼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와 계획, 목표, 가족에만 관심을 집중합니다. 이러한 삶은 이기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교회안에서 분주한 삶을 살아가기에, 실제로 믿지 않는 자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들과 함께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그들과 믿음을 나눌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체들과는 매주 식사 모임을 하지만, 믿지 않는 친구나 이웃들과는 식사하면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무관심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름과 같습니다. 거름이 한곳에 쌓아두면 그것들이 썩어집니다. 그러나, 거름을 땅에 두루 펼치게 되면, 그것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쌓아둔 거름이 아니라, 세상에 두루 펼쳐진 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만 모여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에 펴져서 이웃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서 그들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사랑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중풍병자의 친구를 사용하신 이유는, 그들은 친구의 필요에 대하여 민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친구를 주님께로 데리고 올만큼 그에게 관심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만 살아간 것이 아니라, 필요를 가진 친구에게 큰 관심을 보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사랑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사랑이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들의 필요를 알고 있을 때에, 그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다면,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함께 일하는 사람의 필요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은, 내가 나의 이웃에 대하여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의 증거는 내가 그들의 필요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심이 있으며, 그들의 필요에 대하여 알고 있다면, 우리는 이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께로 영혼들을 인도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변화시키고 우리를 변화시켜, 그들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1. 기회를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영혼을 교회와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도록 기도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수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들의 상처는 마음을 더욱 강팍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상처는 고통을 주게 되며, 이러한 마음은 더욱 강팍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때로 부모에게 분노하며, 배우자에게 분노하고, 심지어는 자녀에게도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들이 상처로 살아가기에, 그들의 마음은 분노가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들의 상처로 인하여 닫힌 마음이 열리고 부드러워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처로 인하여 강팍해진 마음을 녹이기 위해서 망치로 다루시는 것이 아니라, 비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생의 폭풍우를 지나면서,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닫혔던 마음들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주위에서 인생의 폭풍우를 지나는 이웃이나 친구를 만난다면, 그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폭풍우를 지나게 하심으로 인하여, 그들의 강팍해진 마음을 녹이시는 것입니다.
3.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도록 기도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과 가족에만 관심을 가질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부담감을 가져야 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눈물로 기도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부담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 영혼들이 처할 영원한 심판을 생각하며, 그들의 영혼이 어두움에 방황하는 것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때로 어려운 이웃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불신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눈물이 없다면, 우리는 먼저 강팍한 마음을 녹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소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면, 우리의 마음이 강팍한 마음에서 부드러운 마음을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을 성취할 수 있는 첫 번째 걸음은, 우리가 불신자의 명단을 작성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대상은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이웃, 그리고,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대상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가족입니다. 우리의 가족 중에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도 한 사람씩 적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사촌이나 부모, 형제 들 중에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친구입니다. 친구의 이름을 적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친구일 수도 있고, 오랜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친구의 이름을 적고 기도하도록 합시다.
직장동료입니다. 우리의 직장 동료 중에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동료가 직장 상사 일수도 있고, 하급자 일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과거 직장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만났지만, 아직 주님을 모르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입니다. 우리의 이웃 중에서 주님을 알지 못한다면,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주님의 사랑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아파트의 관리자일수도 있고, 우체부 집배원일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미장원 주인일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서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먼저 기도로 다가갈 것입니다. 관계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열쇠인 것입니다. 안드레는 그의 형제 베드로를 주님께로 인도하였고, 빌립은 나다나엘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은 그녀의 친구들을 인도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에 그들을 두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2. 믿음 -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친구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눅 5:20).
이것은 믿음의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희 믿음’ 을 보셨습니다. 이는 누구의 믿음인가요? 이는 바로 친구들의 믿음인 것입니다. 주님은 중풍병자를 데려온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주님은 네명의 친구들이 중풍에 걸린 사람을 지붕에서 내리는 것을 보셨습니다. 중풍병자는 큰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를 주님께로 데려온 사람들은 바로 네 명의 친구였던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영적으로 중풍병자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으로 불구가 되어 살아갑니다. 오늘 직장을 잃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죄의식으로 불구가 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죄와 수치가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외로움으로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슬픔으로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로 다가갈 수 있는 믿음이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들을 예수님게로 이도하는 것입니다. 네 명의 친구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친구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중풍병자를 주님께로 데려온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영적으로 불구된 자를 주님께서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주님께로 더욱 열정적으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다면 믿음이 있다면, 그들이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삶이 구원받아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항상 영적 전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향한 뜻이 있으시고, 사탄도 우리를 향한 뜻이 있으며, 우리 자신도 자신의 의지가 있습니다. 인생의 매 순간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나, 사탄의 뜻, 또는 자신의 뜻중에서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될 때에 큰 영적 전투가 진행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고 믿음으로 확신하게 되면 누군가는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두 번째 걸음입니다. 첫 걸음은 긍휼의 마음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믿음인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불가능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7:25).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강팍한 자라도 구원하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함께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더욱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목장으로 모일 때에 함께 불신자의 명단을 보면서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불신자의 명단을 나누고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믿음과 기도를 보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3. 집념 - 그들은 기도할 뿐만 아니라, 영혼을 주님께로 데려왔습니다.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눅 5:18).
만일 여러분이 불구자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스스로 주님께로 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데리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많은 예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친구를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계획을 만들곤 했습니다. 우리가 계획하지 않으면, 우리는 너무나 바빠서 영혼에 대한 관심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일주가 한달이 되고, 한달이 일년이 되며, 일년이 십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난 10년 동안 한 영혼도 주님께로 인도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의 인생에서 전도 사명을 감당할 계획을 수립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골 4:5)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눅 14:23)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집이 가득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사람을 강권하여 하나님의 집에 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의 구원을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초청해야 합니다. 영혼들을 강권하여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혼들을 인도하려고 할 때에 장애물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그를 주님께로 데려가고자 할 때에, 그들은 장애를 만나게 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주님께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힘들게 친구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무척이나 낙심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께로 그를 인도하기를 결단합니다. 그들은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주님께로 달아 내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려고 할 때에 크게 낙심할 때가 옵니다. 사람들의 비판이 있고, 초청한 영혼의 무관심, 세상의 조롱이 찾아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무관심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선을 행하는 것은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랑하며 기도하고 초청하고 복음을 전하는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영혼을 추수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4. 협력 - 그들은 함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눅 5:19).
그들은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협력하였습니다. 그들은 지붕까지 중풍병자를 들오 올랐던 것입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네 명이 힘을 합쳐서 이루어냈습니다. 그들의 협력이 큰 기적을 이루어낸 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복음 전도에서도 때로는 함께 사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혼자 가면 영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팀으로 함께 전도하면 동역자가 있어서 든든해집니다. 예수님도 전도팀을 보내실 때에 두 명씩 팀으로 보내셨습니다. 바울도 사역을 할 때에 동역자들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게 될 때에 우리는 목장별로 또는 전도팀을 이루어 함께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팀으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1) 목장이 팀을 이루어 전도할 수 있습니다. 목장은 가장 견고한 공동체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말씀을 중심으로 삶을 나누게 됩니다. 이제는 말씀을 나눔에서 전도의 공동체로 발전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전도하는 공동체의 삶을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주일 오후의 전도를 활용합니다. 우리는 주일 오후에 전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두명씩 짝을 지어서 함께 전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팀을 이루게 되면 스스로가 위축되지 않고 담대하게 전할 수 있게 됩니다.
3) 주중에 전도팀을 이룰 수 있습니다. 주중에 우리가 시간을 정하거나, 대상을 정하여 함께 전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주중에 우리는 전도 대상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이때 전도팀을 이루어 함께 나아갈 때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전도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복음을 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로 초청하기는 쉬울 수가 있습니다. 교회에 초청하면 교회에서 영적인 리더들이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복음을 전하는 팀이 되는 것입니다.
5. 희생 - 그들은 지붕의 값을 지불하려 했습니다.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눅 5:19).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지붕의 값을 지불할 만큼 희생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지붕의 값을 지불하더라도, 중풍병자가 주님을 만나 구원받는 것이 소중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 희생은 시간이며 물질이며, 노력이며 삶의 에너지인 것입니다. 우리의 희생이 없이는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에 대한 관심과 그들의 필요를 채우려는 우리의 노력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일 오후에 집에 가는 대신 전도지를 들고 거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믿지 않는 자의 초인종을 눌러야 합니다. 전도지를 나누며 복음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희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다른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었는지요? 주님이 원하시는 희생의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셨는지요? 우리는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면 어떠한 대가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함께 믿음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공동체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원리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한 영혼을 인도하기 위하여 최선의 삶을 살아가며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