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복음의 심장입니다 (고전 1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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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648회 작성일 24-03-30 20:22본문
부활은 복음의 심장입니다 (고전 15 장).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 15:22-23).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역사적으로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교회마다 십자가를 설치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십자가에 예수님이 피흘려 죽으시는 모습이 있는 반면에 기독교는 십자가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만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습니다.
1. 부활은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의 핵심 진리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성경은 우리가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전 15:1-2).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헛되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진실로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는 복음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새 생명을 주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내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 복음입니다.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우리의 선한 행위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죄를 위하여 희생하신 죽음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 생명 얻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심장은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주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고전 15:5-6).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제자들은 절망했던 믿음을 완전히 새롭게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제자들은 이제 패배자의 부끄러운 제자가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하신 메시야의 제자로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제자들의 메시지는 자신들이 보고 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람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고 자신들이 이 일에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일에 증인이로다.”(행 2:33). 베드로도 주님이 대제사장에 잡히시던 밤에는 주님을 알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제자들의 믿음을 회복하였고 그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게 하는 증인이 되게 했습니다.
2. 부활은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4).
고린도 교회 중의 누군가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두 개인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증거가 있는데,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 책망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며 교회는 이 세상에 어떠한 소망을 주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자신이 전파하는 복음도 헛것이며 믿음도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 15:7-8).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의 근본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이 없다면 우리는 아직도 죄 가운데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고,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날마다 위험을 무릅쓰는 영적 싸움이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죽기까지 먹고 마시는 쾌락의 삶을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사셔서 자신에게 나타나심을 목격한 자였습니다. 아무리 사도 바울이 부인하려고 해도 다시 사신 예수님이 자신에게 보이시자 더 이상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셔서 누구든지 그 분을 영접하는 자에게 내주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십니다. 우리 안에는 부활의 생명이 있는데, 그 생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역사적으로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들은 삶이 변화되었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부활의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3. 부활은 믿는 자의 부활을 기대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예수님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첫 열매는 이스라엘 백성의 절기에 포함됩니다. 유월절 절기는 어린양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기념하는 이스라엘의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이 지나고 사흘 후인 안식일이 지난 첫 날에 초실절로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에 대하여 레위기는 첫 이삭을 드리는 초실절을 설명했습니다. “...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레 23:10-11). 보리농사를 하고 첫 이삭을 드리는 날은 유월절 절기 기간의 안식일 다음 날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주님 안에 있는 성도는 주님과 같이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 15:22-23). 부활은 첫 열매인 그리스도가 먼저이며,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 자는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에 마지막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는 나중(end)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4-26). 나중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텔로스’로서 종말(end, cessasation)이라는 뜻입니다. 즉 성도의 부활 이후에 종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 종말의 때에 주님께서는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십니다. 그리고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왕노릇 하실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년 간 이 땅에서 왕노릇 하시다가 천년이 차면 그 나라를 하나님께 바치시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끝나면 예수님은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년왕국 이후에 새 예루살렘인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세상의 종말입니다. 그리고 원수를 발아래 두는 것은 사탄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지옥불에 던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멸하십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계시록은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계 20:1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원수인 사탄을 멸하시고,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멸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사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온 세상을 미혹하던 사탄이 지옥에서 멸망받고, 사망도 멸하여 더 이상 사람들을 삼킬 수가 없습니다.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그 권세를 회복하실 때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는 세력이 없는 것입니다. 이는 타락 이전의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고 다스리시던 그 영광이 회복되는 때입니다. “ ...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구속으로 인하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 안에서 통일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만물이 회복되어 통일되는 것이 참된 회복입니다.
4. 부활은 믿는 자가 영광의 몸으로 변화할 것을 소망하게 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 15:51).
고린도 교회 성도 중에는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며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고전 15:35).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들이 어리석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창조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뿌리의 비유를 통하여 부활을 설명했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고전 15:36). 농부들이 씨를 땅에 뿌리면 그 씨가 죽어야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그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서 땅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에 밀이나 보리와 같은 씨앗을 땅에 뿌립니다. 그 씨가 죽고 난 후에 새로운 형체로 자라납니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고전 15:38). 밀의 씨는 알갱이인데, 그 밀이 죽고 생명을 얻으면 새로운 형체를 얻습니다. 부활은 이와같은 새로운 형체의 모습으로 되는 것입니다. 육체도 사람의 육체와 짐승의 육체와 새와 물고기의 육체가 다르게 존재합니다. 형체도 하늘에 속한 형체와 땅에 속한 형체가 다르듯이,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있고 땅에 속한 영광이 따로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2-44). 우리의 몸은 썩고 약한 육의 몸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몸은 육신의 몸으로서 흙에 속한 자입니다. 이 몸은 아담에게서 온 몸으로 육체에 속한 몸입니다. 아담에게서 온 흙으로 된 몸은 이 세상에 속한 사망의 몸입니다. 육의 몸이 있듯이 영적인 몸이 있습니다. 이는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에게서 온 몸인 것입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47-49). 아담에게서 받은 몸은 흙에 속하여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습니다. 왜냐하면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고전 15:50).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는 순식간에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 15:51).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무덤에서 일어나 새로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입니다. 그 몸은 주님과 같은 영광스러운 새 몸이 될 것입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1). 예수님께서는 능력으로 우리의 낮은 몸을 주님과 같은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영광스러운 몸은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몸인 것입니다. 우주인이 우주에 가려운 특수하게 제작된 옷을 입고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새 몸을 입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승리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무너트리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죄는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사망은 죄로 인하여 사람들을 삼키며 자신의 권세를 자랑했습니다. 사탄은 죄와 사망으로 하나님의 질서를 깨트리며 자신의 권세를 키워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믿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새 몸을 입게 하시고, 사망이 멸망할 것입니다. 이제 사망이 삼킨바 되어 그 권세가 무너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라고 했습니다. 사망은 죄로 인하여 세력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죄의 권세는 율법에 있었습니다. 이는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자신의 의를 자랑하며 교만함으로 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율법을 거역함으로 죄를 범했습니다. 결국 율법은 사람들에게 죄를 더하는 권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율법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활을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7-58). 부활의 소망이 주는 메시지는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모두 상급을 받게 될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 15:22-23).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역사적으로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교회마다 십자가를 설치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십자가에 예수님이 피흘려 죽으시는 모습이 있는 반면에 기독교는 십자가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만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습니다.
1. 부활은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의 핵심 진리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성경은 우리가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전 15:1-2).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헛되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진실로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는 복음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새 생명을 주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내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 복음입니다.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우리의 선한 행위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죄를 위하여 희생하신 죽음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 생명 얻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심장은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주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고전 15:5-6).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제자들은 절망했던 믿음을 완전히 새롭게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제자들은 이제 패배자의 부끄러운 제자가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하신 메시야의 제자로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제자들의 메시지는 자신들이 보고 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람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고 자신들이 이 일에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일에 증인이로다.”(행 2:33). 베드로도 주님이 대제사장에 잡히시던 밤에는 주님을 알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제자들의 믿음을 회복하였고 그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게 하는 증인이 되게 했습니다.
2. 부활은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4).
고린도 교회 중의 누군가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두 개인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증거가 있는데,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 책망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며 교회는 이 세상에 어떠한 소망을 주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자신이 전파하는 복음도 헛것이며 믿음도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 15:7-8).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의 근본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이 없다면 우리는 아직도 죄 가운데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고,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날마다 위험을 무릅쓰는 영적 싸움이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죽기까지 먹고 마시는 쾌락의 삶을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사셔서 자신에게 나타나심을 목격한 자였습니다. 아무리 사도 바울이 부인하려고 해도 다시 사신 예수님이 자신에게 보이시자 더 이상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셔서 누구든지 그 분을 영접하는 자에게 내주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십니다. 우리 안에는 부활의 생명이 있는데, 그 생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역사적으로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들은 삶이 변화되었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부활의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3. 부활은 믿는 자의 부활을 기대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예수님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첫 열매는 이스라엘 백성의 절기에 포함됩니다. 유월절 절기는 어린양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기념하는 이스라엘의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이 지나고 사흘 후인 안식일이 지난 첫 날에 초실절로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에 대하여 레위기는 첫 이삭을 드리는 초실절을 설명했습니다. “...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레 23:10-11). 보리농사를 하고 첫 이삭을 드리는 날은 유월절 절기 기간의 안식일 다음 날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주님 안에 있는 성도는 주님과 같이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 15:22-23). 부활은 첫 열매인 그리스도가 먼저이며,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 자는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에 마지막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는 나중(end)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4-26). 나중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텔로스’로서 종말(end, cessasation)이라는 뜻입니다. 즉 성도의 부활 이후에 종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 종말의 때에 주님께서는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십니다. 그리고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왕노릇 하실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년 간 이 땅에서 왕노릇 하시다가 천년이 차면 그 나라를 하나님께 바치시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끝나면 예수님은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년왕국 이후에 새 예루살렘인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세상의 종말입니다. 그리고 원수를 발아래 두는 것은 사탄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지옥불에 던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멸하십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계시록은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계 20:1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원수인 사탄을 멸하시고,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멸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사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온 세상을 미혹하던 사탄이 지옥에서 멸망받고, 사망도 멸하여 더 이상 사람들을 삼킬 수가 없습니다.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그 권세를 회복하실 때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는 세력이 없는 것입니다. 이는 타락 이전의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고 다스리시던 그 영광이 회복되는 때입니다. “ ...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구속으로 인하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 안에서 통일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만물이 회복되어 통일되는 것이 참된 회복입니다.
4. 부활은 믿는 자가 영광의 몸으로 변화할 것을 소망하게 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 15:51).
고린도 교회 성도 중에는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며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고전 15:35).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들이 어리석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창조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뿌리의 비유를 통하여 부활을 설명했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고전 15:36). 농부들이 씨를 땅에 뿌리면 그 씨가 죽어야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그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서 땅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에 밀이나 보리와 같은 씨앗을 땅에 뿌립니다. 그 씨가 죽고 난 후에 새로운 형체로 자라납니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고전 15:38). 밀의 씨는 알갱이인데, 그 밀이 죽고 생명을 얻으면 새로운 형체를 얻습니다. 부활은 이와같은 새로운 형체의 모습으로 되는 것입니다. 육체도 사람의 육체와 짐승의 육체와 새와 물고기의 육체가 다르게 존재합니다. 형체도 하늘에 속한 형체와 땅에 속한 형체가 다르듯이,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있고 땅에 속한 영광이 따로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2-44). 우리의 몸은 썩고 약한 육의 몸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몸은 육신의 몸으로서 흙에 속한 자입니다. 이 몸은 아담에게서 온 몸으로 육체에 속한 몸입니다. 아담에게서 온 흙으로 된 몸은 이 세상에 속한 사망의 몸입니다. 육의 몸이 있듯이 영적인 몸이 있습니다. 이는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에게서 온 몸인 것입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47-49). 아담에게서 받은 몸은 흙에 속하여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습니다. 왜냐하면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고전 15:50).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는 순식간에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 15:51).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무덤에서 일어나 새로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입니다. 그 몸은 주님과 같은 영광스러운 새 몸이 될 것입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1). 예수님께서는 능력으로 우리의 낮은 몸을 주님과 같은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영광스러운 몸은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몸인 것입니다. 우주인이 우주에 가려운 특수하게 제작된 옷을 입고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새 몸을 입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승리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무너트리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죄는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사망은 죄로 인하여 사람들을 삼키며 자신의 권세를 자랑했습니다. 사탄은 죄와 사망으로 하나님의 질서를 깨트리며 자신의 권세를 키워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믿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새 몸을 입게 하시고, 사망이 멸망할 것입니다. 이제 사망이 삼킨바 되어 그 권세가 무너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라고 했습니다. 사망은 죄로 인하여 세력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죄의 권세는 율법에 있었습니다. 이는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자신의 의를 자랑하며 교만함으로 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율법을 거역함으로 죄를 범했습니다. 결국 율법은 사람들에게 죄를 더하는 권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율법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활을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7-58). 부활의 소망이 주는 메시지는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모두 상급을 받게 될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