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성도의 즐거움 (시편 10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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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89회 작성일 24-11-18 10:05본문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시 100:4)
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감사주일을 통해서 우리는 감사를 배우고 감사를 마음으로 실천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미국의 개척 역사는 청교도들의 눈물의 감사로 시작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은 1620년 오직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릎쓰고 메이플라워 호에 몸을 싣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180 톤의 메이플라워 호는 146 명이 항해하기에는 작은 배였으며, 사람들은 항해 도중 파도의 위험과 극심한 기아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1620년 12월 26일, 그들은 117일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을 때는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들은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전염병까지 돌아 44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을 알지 못했기에 보리와 밀을 가지고 농사를 지었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시달렸고, 극심한 추위에 고통을 당했으며, 두려움과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먹을 양식이 없을 때에 인디언들이 가져온 씨앗으로 농사를 지어 첫 번째 추수를 하였고, 그 귀한 열매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은 극심한 고난과 시련의 아픔이 있었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아픔과 시련에 매이지 않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염려하지 않았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에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감사의 예배를 받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축복하셔서 풍성한 나라가 되게 하셨으며, 세계의 강대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감사’ 라는 말입니다. 밀레의 만종이라는 그림은 우리에게 하루의 일을 마치고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에서 따뜻한 감사의 감정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 역시 제일 많이 사용하는 말이 “Thank you"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 50개를 선별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땡큐“가 28%를 차지하여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 선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 주에서 다른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이 ”감사합니다.“ 라는 것입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습니다. 빌헤름 웰러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이다"라고 했습니다.
행복은 감사와 동행합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에서도 이스라엘 자손은 추수를 마치면 하나님께 감사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기후는 일년에 여러 차례 추수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봄에는 밀과 보리, 가을에는 포도와 올리브 등 다양한 농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추수를 마치면 절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먼저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이유를 찾아서 잊었던 감사의 지수를 높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감사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 100:3).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온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하는가요? 이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지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이 땅에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이렇게 찬양합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 8:3-5).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을 지으셨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은 천사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심으로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보다 가장 영화로운 존재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고민하는 세 가지의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이 어디에서 왔느냐? 하는 것이며, 둘째는 사람은 왜 살아가는 것인가? 이며, 셋째는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과학과 철학은 인본주의 관점에서 해답을 얻고자 합니다. 사람은 진화한 것이며, 원숭이에서 오거나 아메바와 같은 생물에서 기원한다라는 것이 진화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에서 온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은 흙으로 우리를 지으셨고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피조물인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는 왜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는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입니다. 인생의 본질에 대하여 사람들은 고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쾌락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재물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 의미를 발견하지 못함으로 허무주의에 빠지고 삶에 대하여 비관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배드리며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 43:7) 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인 것입니다.
세 번째 질문은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하여 궁금해 하지만,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하여는 아무런 해답을 줄 수 없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성경대로 사람은 흙으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더욱 영적으로는 사람은 하나님께로 돌아가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사람이 자는 자 중에 일어나 영생을 얻거나 영원한 심판을 받을 자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다 12:2).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아는 것은 복된 삶을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의 삶의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배울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의 세계를 인하여 찬양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 (시 100:3).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 가운데 살아가도록 지으셨지만, 사람은 타락함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사람이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는 그의 것이니.”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하나님께 속한 자녀와 백성으로 삼으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핏 값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구속이란 값주고 샀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탄의 권세 아래 매여 노예되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셔서 자유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신명기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행복한 자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 (신 33:29).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행복자이기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의 죄와 염려와 열등감으로부터 자유하는 자녀로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cts 주최의 최화진 교수의 토크 콘서트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 분은 찬양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아버님이 사업으로 부도가 나서 학창 시절에 무척이나 어렵게 살았기에 대학교에 가지도 못하였고, 키가 작아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친구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 갈등하다가, 교회에 초청되어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였고 성악을 인정받아 찬양대에서 섬기다가 군대를 갔다고 합니다.
군대에서 성악으로 인정받아 활동하다가 김장환 목사님으로 초청받아 세계적으로 다니며 그 분과 함께 팀이 되어 사역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극동방송에 입사하게 되고, 결국 꿈을 가지고 미국에 건너가 쥴리아드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40 달러를 가지고 미국에 건너가 미국 목사님 집에서 기거하며 일을 하는 어려움을 견뎠고, 교회에서 한 할머니께서 쥴리아드 대학에 진학해 보라는 권유를 듣고 독학으로 성악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독학으로 시험을 치룬 결과는 줄리아드 수석 입학의 영예였습니다. 그리고 쥴리어드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필요한 학비를 기부와 장학금으로 모두 충당되는 은혜를 누리는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분을 축복하심으로 5명의 대통령 앞에서 공연하는 축복을 누렸고, 미국과 유럽을 다니며 성악으로 쓰임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성공의 비결을 자신의 재능이나 노력으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분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찬양대에서 봉사하고, 김장환 목사님을 만나게 되고, 미국에 건너가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필요한 장학금을 받게 된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를 간증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최고의 축복은 무엇인가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분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것입니다.
예수전도단의 로렌 커닝햄이 지은 “열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책인 성경은 개인과 가정, 그리고 나라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캐리가 1793년에 인도에 갔을 때, 그는 인도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인도 사회는 지난 3천년 간 인도를 지배해 온 힌두교 때문에 큰 영적 어두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인권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여성들은 무시당했습니다. 힌두교는 여아살해, 아동 결혼, 일부다처, 과부 화장, 안락사를 허용했으며, 여자는 남편을 잘 섬겨서 다음 생애에 남자로 태어나기만을 바랬습니다.
사람들은 나병환자를 발견하면 다음 생애에 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라며 산 채로 묻거나 불태웠습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갠지스 강에 던져 물에 빠져 죽거나 악어 밥이 되면, 사람들은 갠지스 여신을 위해 아이를 바친 훌륭한 어머니라고 존경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어두움의 땅에 침례교 선교사인 윌리엄 캐리는 복음을 통하여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복음으로 영혼들이 구원받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윌리엄 캐리는 대학을 세워 일꾼들을 세우기 시작했으며, 성경을 40개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윌리엄 캐리의 노력으로 원치 않는 아기를 살해하는 풍습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과부를 산 채로 태우는 풍습을 금지하는 법안을 1829년에 통과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에 들어오면서 사회의 변혁과 더불어 교육과 가정이 회복되며, 잘못된 제도가 성경적인 가치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미국과 유럽은 기독교의 신앙을 포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유럽은 기독교 신앙이 떠난 자리에 뉴에이지, 이방 종교, 이슬람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를 변화시킨 헤우게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성도들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는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성경에 있음을 발견하고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진 모든 것보다 더 귀중하고 거룩한 보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삶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통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삶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는 비결인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 28: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가정과 민족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로 살아가는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목자시기 때문입니다.
“ ...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 100:3).
하나님은 우리를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시는 목자로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기르시는 양과 같이 돌보시며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혜를 시편 기자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손의 양이라...” (시 95:7). 우리는 하나님이 백성이며 그 분의 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다윗과 같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1-2)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양입니다. 양은 연약하여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양은 양무리를 만들어 생활하지 않으면 추위와 맹수의 위협 앞에서 쓰러집니다. 양은 앞을 볼수 없어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 갑니다. 그래서, 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양에게 필요한 목자는 삯꾼이 아니라, 선한 목자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루하루를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돌보시며 인도하셨는가요?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며 보호하시기에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며 더욱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시편 기자는 “감사함으로 그 분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시 100:4).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예배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드립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 커서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글로도 담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마음으로 느끼며 흘러 넘치는 감사를 찬양과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광을 받으시며 기뻐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감사주일을 통해서 우리는 감사를 배우고 감사를 마음으로 실천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미국의 개척 역사는 청교도들의 눈물의 감사로 시작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은 1620년 오직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릎쓰고 메이플라워 호에 몸을 싣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180 톤의 메이플라워 호는 146 명이 항해하기에는 작은 배였으며, 사람들은 항해 도중 파도의 위험과 극심한 기아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1620년 12월 26일, 그들은 117일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을 때는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들은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전염병까지 돌아 44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을 알지 못했기에 보리와 밀을 가지고 농사를 지었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시달렸고, 극심한 추위에 고통을 당했으며, 두려움과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먹을 양식이 없을 때에 인디언들이 가져온 씨앗으로 농사를 지어 첫 번째 추수를 하였고, 그 귀한 열매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은 극심한 고난과 시련의 아픔이 있었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아픔과 시련에 매이지 않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염려하지 않았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에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감사의 예배를 받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축복하셔서 풍성한 나라가 되게 하셨으며, 세계의 강대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감사’ 라는 말입니다. 밀레의 만종이라는 그림은 우리에게 하루의 일을 마치고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에서 따뜻한 감사의 감정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 역시 제일 많이 사용하는 말이 “Thank you"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 50개를 선별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땡큐“가 28%를 차지하여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 선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 주에서 다른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이 ”감사합니다.“ 라는 것입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습니다. 빌헤름 웰러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이다"라고 했습니다.
행복은 감사와 동행합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에서도 이스라엘 자손은 추수를 마치면 하나님께 감사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기후는 일년에 여러 차례 추수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봄에는 밀과 보리, 가을에는 포도와 올리브 등 다양한 농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추수를 마치면 절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먼저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이유를 찾아서 잊었던 감사의 지수를 높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감사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 100:3).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온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하는가요? 이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지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이 땅에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이렇게 찬양합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 8:3-5).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을 지으셨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은 천사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심으로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보다 가장 영화로운 존재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고민하는 세 가지의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이 어디에서 왔느냐? 하는 것이며, 둘째는 사람은 왜 살아가는 것인가? 이며, 셋째는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과학과 철학은 인본주의 관점에서 해답을 얻고자 합니다. 사람은 진화한 것이며, 원숭이에서 오거나 아메바와 같은 생물에서 기원한다라는 것이 진화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에서 온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은 흙으로 우리를 지으셨고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피조물인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는 왜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는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입니다. 인생의 본질에 대하여 사람들은 고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쾌락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재물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 의미를 발견하지 못함으로 허무주의에 빠지고 삶에 대하여 비관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배드리며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 43:7) 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인 것입니다.
세 번째 질문은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하여 궁금해 하지만,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하여는 아무런 해답을 줄 수 없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성경대로 사람은 흙으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더욱 영적으로는 사람은 하나님께로 돌아가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사람이 자는 자 중에 일어나 영생을 얻거나 영원한 심판을 받을 자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다 12:2).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아는 것은 복된 삶을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의 삶의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배울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의 세계를 인하여 찬양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 (시 100:3).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 가운데 살아가도록 지으셨지만, 사람은 타락함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사람이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는 그의 것이니.”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하나님께 속한 자녀와 백성으로 삼으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핏 값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구속이란 값주고 샀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탄의 권세 아래 매여 노예되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셔서 자유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신명기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행복한 자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 (신 33:29).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행복자이기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의 죄와 염려와 열등감으로부터 자유하는 자녀로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cts 주최의 최화진 교수의 토크 콘서트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 분은 찬양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아버님이 사업으로 부도가 나서 학창 시절에 무척이나 어렵게 살았기에 대학교에 가지도 못하였고, 키가 작아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친구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 갈등하다가, 교회에 초청되어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였고 성악을 인정받아 찬양대에서 섬기다가 군대를 갔다고 합니다.
군대에서 성악으로 인정받아 활동하다가 김장환 목사님으로 초청받아 세계적으로 다니며 그 분과 함께 팀이 되어 사역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극동방송에 입사하게 되고, 결국 꿈을 가지고 미국에 건너가 쥴리아드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40 달러를 가지고 미국에 건너가 미국 목사님 집에서 기거하며 일을 하는 어려움을 견뎠고, 교회에서 한 할머니께서 쥴리아드 대학에 진학해 보라는 권유를 듣고 독학으로 성악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독학으로 시험을 치룬 결과는 줄리아드 수석 입학의 영예였습니다. 그리고 쥴리어드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필요한 학비를 기부와 장학금으로 모두 충당되는 은혜를 누리는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분을 축복하심으로 5명의 대통령 앞에서 공연하는 축복을 누렸고, 미국과 유럽을 다니며 성악으로 쓰임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성공의 비결을 자신의 재능이나 노력으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분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찬양대에서 봉사하고, 김장환 목사님을 만나게 되고, 미국에 건너가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필요한 장학금을 받게 된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를 간증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최고의 축복은 무엇인가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분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것입니다.
예수전도단의 로렌 커닝햄이 지은 “열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책인 성경은 개인과 가정, 그리고 나라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캐리가 1793년에 인도에 갔을 때, 그는 인도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인도 사회는 지난 3천년 간 인도를 지배해 온 힌두교 때문에 큰 영적 어두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인권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여성들은 무시당했습니다. 힌두교는 여아살해, 아동 결혼, 일부다처, 과부 화장, 안락사를 허용했으며, 여자는 남편을 잘 섬겨서 다음 생애에 남자로 태어나기만을 바랬습니다.
사람들은 나병환자를 발견하면 다음 생애에 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라며 산 채로 묻거나 불태웠습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갠지스 강에 던져 물에 빠져 죽거나 악어 밥이 되면, 사람들은 갠지스 여신을 위해 아이를 바친 훌륭한 어머니라고 존경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어두움의 땅에 침례교 선교사인 윌리엄 캐리는 복음을 통하여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복음으로 영혼들이 구원받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윌리엄 캐리는 대학을 세워 일꾼들을 세우기 시작했으며, 성경을 40개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윌리엄 캐리의 노력으로 원치 않는 아기를 살해하는 풍습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과부를 산 채로 태우는 풍습을 금지하는 법안을 1829년에 통과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에 들어오면서 사회의 변혁과 더불어 교육과 가정이 회복되며, 잘못된 제도가 성경적인 가치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미국과 유럽은 기독교의 신앙을 포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유럽은 기독교 신앙이 떠난 자리에 뉴에이지, 이방 종교, 이슬람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를 변화시킨 헤우게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성도들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는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성경에 있음을 발견하고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진 모든 것보다 더 귀중하고 거룩한 보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삶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통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삶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는 비결인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 28: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가정과 민족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로 살아가는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목자시기 때문입니다.
“ ...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 100:3).
하나님은 우리를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시는 목자로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기르시는 양과 같이 돌보시며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혜를 시편 기자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손의 양이라...” (시 95:7). 우리는 하나님이 백성이며 그 분의 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다윗과 같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1-2)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양입니다. 양은 연약하여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양은 양무리를 만들어 생활하지 않으면 추위와 맹수의 위협 앞에서 쓰러집니다. 양은 앞을 볼수 없어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 갑니다. 그래서, 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양에게 필요한 목자는 삯꾼이 아니라, 선한 목자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루하루를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돌보시며 인도하셨는가요?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며 보호하시기에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며 더욱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시편 기자는 “감사함으로 그 분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시 100:4).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예배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드립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 커서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글로도 담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마음으로 느끼며 흘러 넘치는 감사를 찬양과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광을 받으시며 기뻐하시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