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의 인도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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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253회 작성일 24-08-17 22:16본문
하나님은 우리의 인도자이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4-15).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양은 목자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듯이, 우리도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나 스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유아는 부모의 사랑과 인도함을 받으며 자라갑니다. 유치원에서 초등 학교와중고등학교를 가쳐가는 기간에도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인도를 받아 성장합니다. 대학교에 가면 교수님의 지도가 있지만 선배들이 대학 생활에 대하여 인도하기도 합니다. 특히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인도자는 부모님이 되어 가장 좋은 길로 코칭하며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자녀들에게는 부모의 지혜로운 인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우리의 인도자가 되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기 위하여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 중에서 가장 큰 은혜는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셔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실 때에, 우리 안에 양장의 영인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가는 증거 중의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4). 하나님은 그 분의 영을 보내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라고 한다며 우리는 가장 안전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할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길을 차로 이동할 때에 네비게이션을 인도함을 받는 것처럼, 우리가 가야하는 미래의 삶에도 분명히 영적인 네비게이션인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은 우리와 의사소통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길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길을 순종하며 나아갈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가장 확실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실 때에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하심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요한1서는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라고 했습니다. 기름부으심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배우게 하시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알게 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성령이 진리로 인도하시는 인도를 받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영적인 원리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그 분의 선하신 뜻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내가 너희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 32:8).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시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치시고 주목하며 훈계하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향한 구체적인 계획을 품으신 후에 그를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셔서 그와 그의 후손을 통하여 열방이 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절정은 그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온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 그리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믿음의 연약함으로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다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후에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향한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셨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태어난 후 나일강에 버려졌을 때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십년간 애굽의 모든 학문을 궁중에서 배우게 한 후에, 광야로 보내셔서 사십년 간을 광야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이르자 모세는 애굽으로 돌아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이끌어냈고 광야에서 사십년 간을 인도하며 가나안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연한 것도 아니고, 모세의 영광을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하여 모세를 세우셨고 인도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하신 그 분의 뜻 가운데 세워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렘 1:5).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르 복중에 짓기 전에 구별하셔서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신 것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영원전부터 세워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향한 계획을 품으시고 그 뜻대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어 하나님의 복음을 이방 지역에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갈라디아, 에베소,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그리고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을 주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생의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믿음의 길을 끝까지 달려갔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향한 선한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단지 구원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구원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하여 행하게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선한 일을 행하도록 그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은 우리의 삶이 더욱 기뻐하며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준비시키기 위하여 연단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우리는 안전하고 편안한 길로 가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의 길로 인도하셔서 연단의 과정을 거치게 하십니다.
도자기가 귀한 그릇이 되기 위하여 풀무불에서 단련되어 나와야 하듯이, 금이 정금이 되기 위하여 불 가운데서 녹아내어야 하듯이, 운동 선수가 우승자가 되기 위하여 강한 훈련에서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연단의 길은 광야의 길을 홀로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도 광야의 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이 있고 그늘이 있는 오아시스를 선호하지, 결코 광야에서 고통을 견디고 싶지는 않습니다.
모세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광야로 떠밀려 갔기에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이 걸어가야 했던 광야의 길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향한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기근에서 애굽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양식이 있게 하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의 자손이 타지에서 사백년을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위해서 요셉이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시 105:17-19).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그를 광야로 이끌었고, 그는 광야와 애굽에서 모진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마침내 요셉이 연단의 과정을 마치고 나자 하나님께서 그를 감옥의 죄수에서 대제국인 애굽의 총리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날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하여 광야로 이끄셔서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 안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광야와 같이 고난과 시련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면, 그러한 시련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 23:2-4)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십니다. 양에게는 푸른 초장과 물가는 최고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양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간을 보낼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며, 더 나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혼자 춥고 더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광야입니다.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사망의 골짜기입니다. 이러한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며 인내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러한 시간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며 그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시간으로 사용합니다. 즉 고난의 시간은 연단의 시간인 것입니다.
욥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 욥은 고난의 시간에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며 정금과 같이 나오도록 연단의 시간으로 승화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할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1-2). 광야에서 다윗은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하기에 더욱 힘을 썼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핍박의 시간이 다가올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때를 준비하는 기회를 삼기를 권고했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 핍박으로 찾아오는 시련을 통하여 초대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이 연단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실 때에 존귀한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하시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연단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받는 자로 세워질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사명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요 21:15).
하나님은 우리를 준비하신 후에는 꼭 우리를 사명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위하여 쓰임받는 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후에 3년 반 동안 제자로 훈련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절망하여 모두 과거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부르시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시면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있어야 할 자리는 고기를 잡는 갈릴리 바다가 아니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야 했던 예루살렘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다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복음의 종으로 평생 쓰임받았습니다.
부르심을 받아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는 자는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위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준비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지 않는다면 갈 수 없는 길이 사명자의 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인생의 기쁨과 목적이 되지 못한다면 금방 넘어질 수 밖에 없는 길이 사명자의 길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명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섭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는 길은 가시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했던 십자가의 고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마음에 심한 고생을 하여 사형 선고를 받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섬길 때에 수고를 많이 했고, 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매도 수 없이 맞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맞았고, 돌로 맞고 강도의 위험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는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이러한 시련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견디며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가 있지만, 이와같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로마로 가는 항해길에 폭풍우를 만나 배가 파선하는 위험을 겪어야 했고, 멜리데 섬에서 심지어는 뱀에게 물리는 사고까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과 소명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을 의심하며 결국 자신의 세계로 빠져 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자신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 악한 세력과 싸워 이기며 사명을 감당하는 자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사명자의 길에 서서 주님을 뜻을 행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지요?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4-15).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양은 목자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듯이, 우리도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나 스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유아는 부모의 사랑과 인도함을 받으며 자라갑니다. 유치원에서 초등 학교와중고등학교를 가쳐가는 기간에도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인도를 받아 성장합니다. 대학교에 가면 교수님의 지도가 있지만 선배들이 대학 생활에 대하여 인도하기도 합니다. 특히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인도자는 부모님이 되어 가장 좋은 길로 코칭하며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자녀들에게는 부모의 지혜로운 인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우리의 인도자가 되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기 위하여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 중에서 가장 큰 은혜는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셔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실 때에, 우리 안에 양장의 영인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가는 증거 중의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4). 하나님은 그 분의 영을 보내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라고 한다며 우리는 가장 안전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할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길을 차로 이동할 때에 네비게이션을 인도함을 받는 것처럼, 우리가 가야하는 미래의 삶에도 분명히 영적인 네비게이션인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은 우리와 의사소통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길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길을 순종하며 나아갈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가장 확실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실 때에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하심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요한1서는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라고 했습니다. 기름부으심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배우게 하시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알게 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성령이 진리로 인도하시는 인도를 받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영적인 원리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그 분의 선하신 뜻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내가 너희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 32:8).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시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치시고 주목하며 훈계하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향한 구체적인 계획을 품으신 후에 그를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셔서 그와 그의 후손을 통하여 열방이 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절정은 그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온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 그리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믿음의 연약함으로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다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후에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향한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셨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태어난 후 나일강에 버려졌을 때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십년간 애굽의 모든 학문을 궁중에서 배우게 한 후에, 광야로 보내셔서 사십년 간을 광야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이르자 모세는 애굽으로 돌아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이끌어냈고 광야에서 사십년 간을 인도하며 가나안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연한 것도 아니고, 모세의 영광을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하여 모세를 세우셨고 인도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하신 그 분의 뜻 가운데 세워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렘 1:5).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르 복중에 짓기 전에 구별하셔서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신 것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영원전부터 세워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향한 계획을 품으시고 그 뜻대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어 하나님의 복음을 이방 지역에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갈라디아, 에베소,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그리고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을 주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생의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믿음의 길을 끝까지 달려갔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향한 선한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단지 구원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구원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하여 행하게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선한 일을 행하도록 그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은 우리의 삶이 더욱 기뻐하며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준비시키기 위하여 연단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우리는 안전하고 편안한 길로 가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의 길로 인도하셔서 연단의 과정을 거치게 하십니다.
도자기가 귀한 그릇이 되기 위하여 풀무불에서 단련되어 나와야 하듯이, 금이 정금이 되기 위하여 불 가운데서 녹아내어야 하듯이, 운동 선수가 우승자가 되기 위하여 강한 훈련에서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연단의 길은 광야의 길을 홀로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도 광야의 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이 있고 그늘이 있는 오아시스를 선호하지, 결코 광야에서 고통을 견디고 싶지는 않습니다.
모세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광야로 떠밀려 갔기에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이 걸어가야 했던 광야의 길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향한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기근에서 애굽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양식이 있게 하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의 자손이 타지에서 사백년을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위해서 요셉이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시 105:17-19).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그를 광야로 이끌었고, 그는 광야와 애굽에서 모진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마침내 요셉이 연단의 과정을 마치고 나자 하나님께서 그를 감옥의 죄수에서 대제국인 애굽의 총리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날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하여 광야로 이끄셔서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 안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광야와 같이 고난과 시련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면, 그러한 시련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 23:2-4)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십니다. 양에게는 푸른 초장과 물가는 최고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양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간을 보낼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며, 더 나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혼자 춥고 더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광야입니다.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사망의 골짜기입니다. 이러한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며 인내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러한 시간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며 그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시간으로 사용합니다. 즉 고난의 시간은 연단의 시간인 것입니다.
욥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 욥은 고난의 시간에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며 정금과 같이 나오도록 연단의 시간으로 승화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할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1-2). 광야에서 다윗은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하기에 더욱 힘을 썼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핍박의 시간이 다가올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때를 준비하는 기회를 삼기를 권고했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 핍박으로 찾아오는 시련을 통하여 초대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이 연단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실 때에 존귀한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하시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연단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받는 자로 세워질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사명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요 21:15).
하나님은 우리를 준비하신 후에는 꼭 우리를 사명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위하여 쓰임받는 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후에 3년 반 동안 제자로 훈련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절망하여 모두 과거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부르시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시면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있어야 할 자리는 고기를 잡는 갈릴리 바다가 아니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야 했던 예루살렘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다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복음의 종으로 평생 쓰임받았습니다.
부르심을 받아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는 자는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위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준비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지 않는다면 갈 수 없는 길이 사명자의 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인생의 기쁨과 목적이 되지 못한다면 금방 넘어질 수 밖에 없는 길이 사명자의 길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명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섭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는 길은 가시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했던 십자가의 고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마음에 심한 고생을 하여 사형 선고를 받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섬길 때에 수고를 많이 했고, 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매도 수 없이 맞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맞았고, 돌로 맞고 강도의 위험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는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이러한 시련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견디며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가 있지만, 이와같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로마로 가는 항해길에 폭풍우를 만나 배가 파선하는 위험을 겪어야 했고, 멜리데 섬에서 심지어는 뱀에게 물리는 사고까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과 소명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을 의심하며 결국 자신의 세계로 빠져 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자신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 악한 세력과 싸워 이기며 사명을 감당하는 자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사명자의 길에 서서 주님을 뜻을 행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