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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으로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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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527회 작성일 24-07-2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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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으로 사는 삶

“ ...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미래의 희망에 대한 질문은 인생에서 소중한 질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필요합니다.  죄로 인하여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면 인생을 향한 도전의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새 학기를 시작하며 희망으로 시작할 때, 내일에 대한 비전이 있는 것입니다.  가장이 집을 나설 때에 가정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오늘의 고통을 참으며 하루하루를 기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기에, 배고픔과 목마름을 참아가며 내일을 향하여 도전하며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것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다가, 결국은 죄절과 절망속에서 방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소망의 이유와 근원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의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과의 관계가 올바른 관계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셔서, 하나님의 은혜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소망을 돈에 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실망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소망을 정부에 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그들을 실망시키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또는 인생의 소망을 사람이나 자신에게 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곧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실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결코 사람이나 환경, 세상으로부터 참된 희망을 걸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참된 소망은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 40: 31)  소망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미래에 대한 기대이며 믿음입니다. 

베드로 전서는 소망에 대한 책입니다.  베드로는 로마 제국의 핍박을 경험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베드로전서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당시의 황제는 네로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경기장에서 사자들의 먹잇감이 되게 하였고, 거리에서 십자가에 매달고 불을 붙여 거리를 밝히도록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는 죽임을 의미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추방되고 사냥되었으며, 핍박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핍박의 고통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베드로는 희망의 메시지로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전서 1장 1절에서 7절 말씀을 통하여 소망의 다섯가지 뿌리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절망속에서 희망과 소망을 찾아 전진하여 도전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대하여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다섯 가지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게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벧전 1: 2)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함을 입었고,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자녀 삼으심은, 우리의 특별한 재능이나 우연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었고, 그 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셨고, 그 분의 놀라운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대통령이 외국에 나갈 때에 함께 갈 팀을 모집합니다.  그들 중에는 경호실장과 장관, 그리고, 경제인들을 대동하여 함께 국익을 위하여 비행기를 탑니다.  이때 대통령의 팀이 되어 비행기를 타고 함께 외국에 나가는 것은 매우 특별한 선택입니다.  이것은 가문의 영광이 되는 일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한 나라에서 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된 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특권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희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내일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누리게 될 영원한 축복을 생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자비로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 3)

하나님은 우리를 항상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합니다.  “하나님의 많으신 긍휼로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많은 돈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선한 일에 풍성하게 드림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교환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선물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디도서는 구원이 우리의 행위가 아님을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 3: 5).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늘 자비하심으로 대우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실망시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돌보시는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가 실수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인생을 무너지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늘 사랑의 손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닫기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크고 작은 실수와 연약함에도 책망하지 않으시고, 늘 우리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스텍 문명의 유적을 보게 되면, 그들이 믿는 신을 따라 숭배했던 것을 보게됩니다.  한 예로 자신들이 믿는 신의 여동생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녀의 두 팔과 다리를 잘라서 신전에서 아래로 던졌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텍 사람들은 축제에 여인의 두팔과 다리를 잘라 신전에서 던지는 의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결코 도덕적으로 흠이 있거나, 거짓됨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의 공평과 사랑, 진실을 신뢰하기에 그 분을 예배할 수 있으며 그 분의 사랑 안에서 안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분의 은혜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고, 그 분의 거듭난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녀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리가 그 분의 자녀의 특권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후에,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서로를 향하여 형제와 자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지체들을 형제와 자매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필요가 있으면 하나님께 나아가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셔서, 그분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돌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돌보시며 인도하시며 자라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생각을 분명히 깨닫고 날마다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렘 29: 11).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소망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소망을 주시려는 것임을 발견하고, 오늘도 소망의 이유 속에서 기뻐하기를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시기 때문입니다.
    “...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 3b-4)

우리가 소망없는 세상에서 소망의 부요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미래가 천국에서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 우리의 거할 집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합니다.  최근에 중국에서 일어난 홍수로 마을이 수몰되어 집이 물에 잠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토네이도로 인하여 집이 무너지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지진은 -집들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건물안에서 갇히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게 합니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집들이 지진이 일어나면 무기가 되어 우리의 생명을 빼앗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급히 건물밖으로 나아갑니다. 

오래 전에 어떤 사람은 아이티 지진으로 두려움을 느껴서 칠레로 이주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칠레에서 또 지진을 만나 큰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확실한 보장은 이 세상이 해줄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고 영원한 천국을 보장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은 진리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산소망’ 이라고 합니다.  즉, 살아있는 소망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소망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첫째, 기업은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유산을 하늘에 간직하고 계십니다.  하늘에 간직된 유산은 다른 사람이 훔쳐갈 수가 없으며, 취소될 수가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기업과 유산은 우리의 이름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인터넷의 발전으로 컴퓨터로 모든 재정이 운영됩니다.  그래서, 해커들은 우리의 컴퓨터에 침입하여 정보를 빼앗아가고, 특히 통장에 있는 돈까지도 훔쳐간다고 합니다.  지금은 도장으로 돈을 이체하는 시대가 아니라, 전화나 컴퓨터로 은행의 돈을 이체하거나 보내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있는 우리의 기업은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업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벧전 1: 4)  하늘에 예비된 기업은 썩지 않고 더럽히지 않고 쇠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순수한 것이며 진품인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시간이 흐르면 쇠하고 더럽혀집니다.  때로는 불타서 없어지기도 합니다.  지난 주에 미국의 텍사스에 있는 달라스 제일 침례 교회가 불에 타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이 교회는 백년 이상 된 침례교회로서 미국에서는 상징적인 교회입니다. 교회의 건물은 불에 타서 사라질 수 있지만, 천국에 있는 우리의 상급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기업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영원한 천국이며 기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소망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벧전 1: 5)

하나님은 능력으로 보호하시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상황은 소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무능력함을 느낄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느낌이나 환경에 의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간섭하시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그 분의 능력이 우리를 보호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보호하시고 건지신 것처럼, 위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간섭하시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보호 (protect) 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순간적인 보호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보호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버지의 허락없이는 믿는 자의 삶에 침투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일들만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닥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행하시는 위대한 일을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소망이 없이 보이는 상황에서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신뢰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이 영원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시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 6-7)

하나님은 영원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기를 기뻐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나게 될 시험에 대하여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시험은 일시적입니다.  시험은 다양하게 찾아옵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 시험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험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시험에 대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인생의 큰 시험으로 인하여 고난 중에 있다면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의 환난은 곧 지나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회복시키시고 은혜의 날을 주실 것입니다.

    둘째, 시험은 믿음을 연단합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고, 더욱 진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시련을 통하여 우리의 동기가 더욱 정결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주님 안에서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진실되게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셋째, 시험은 우리의 상급을 보장합니다.  시험을 통하여 연단된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영광과 존귀를 얻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견디는 시험을 이김으로 우리는 더욱 연단된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이며, 결국은 주님 오실때에 큰 상급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