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사명과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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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339회 작성일 24-07-13 17:33본문
선교의 사명과 열정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오늘 우리는 단기 선교 파송 예배를 드리면서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가진 청년들과 청소년들, 그리고 적극적인 지지와 기도로 함게 하시는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교회는 코로나 전부터 해마다 단기선교를 개최하면셔 캄보디아, 몽골의 선교지를 방문하며 최대한 감당할 수 있는 모습으로 선교에 동참했습니다. 올해는 이상우 목사님이 선교하시는 필리핀 보홀을 방문하여 선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단기 선교는 우리의 마음에 선교를 향한 열정을 끄지 않고 타오르게 할 것입니다.
교회는 계속해서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해외의 선교지를 방문하며 선교하는 은혜를 지속해야 합니다.
부산에 가면 한국선교사기념센터가 있습니다. 지난 70년 동안 한국에 오셔서 선교하셨던 성서침례친교회의 선교사님들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국에 복음이 전파되고 영혼들이 구원받아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성서침례친교회의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오셔서 희생적으로 선교하셨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큰 부흥의 역사가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100년 전에 복음의 볼모지인 조선에 복음을 들고 찾아왔던 선교사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에 성경을 보급하기 위하여 배를 타고 들어오다가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에서 성경을 번역하고 배제학당을 세워 기독교 인재를 양성하게 됩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면서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는 성경을 번역하는 사역도 하면서 한국 기독교의 기초를 놓은 것입니다. 펜윅은 침례교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남침례교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성서침례선교사로는 처음으로 아이크 포스터 선교사가 오게 됩니다. 그의 영향으로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고 독립적이고 근본적인 성서침례교회가 한국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이와같이 선교는 한 나라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인 것입니다. 이에 저희 교회도 선교 사역에 열정을 품고 헌신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도 미국 성서침례친교회의 선교사들의 입국으로 복음이 전해졌고, 그 결과로 목포까지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선교의 사명과 열정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선교란 무엇인가요?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불신자들에게 전하는 선교사와 복음 전도자 그리고 교회 개척자의 활동을 표현합니다. 즉,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활동이라고 의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것을 사역이라고 한다면, 해외에서 복음을 전하며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는 활동들을 선교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국내 개척이 어려워지면서 국내개척과 농어촌 미자립 교회들까지 선교의 범주에서 후원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요 17:18)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복음을 온전히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1).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셨고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인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셔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도록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지상 사명의 본질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주고 진리를 가르침으로 인하여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9-20).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는 것이 선교의 본질입니다.
왜 선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일까요? 선교는 부름받은 자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았으니.” (롬 1:1). 선교는 부름받은 자가 선교를 위하여 헌신하고, 부름받은 곳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라고 증거합니다.
즉, 사도 바울은 선교지에서 복음 전파에 초점을 맞춘 사역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약 10년이 시간에 로마 제국의 네 속주인 갈라디아, 마게도냐, 아가야, 아시아에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그는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을 감당했고, 갈라디아 지역과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교회, 그리고 아가야의 고린도 교회를 세웠고, 소아시아의 에베소에서 큰 부흥을 일으키며 선교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을 통하여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지는 큰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역사에 기록하고 있는 근대 선교의 아버지는 윌리엄 캐리입니다. 그는 침례교회의 선교사로서 침례교의 역사에 남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윌리엄 캐리는 1761 년에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캐리는 침례교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어느 날 복음을 전해듣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는 구원의 뜨거운 열정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는 신약교회의 모습과 진리에 대하여 발견하고, 침례교회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는 스스로 공부하면서 세계의 지도를 보게 되었고, 그의 마음에는 이교도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윌리엄 캐리가 이교도에 대한 복음의 부담감을 이야기를 하자, 리랜드 목사님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앉게나 젊은이,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당신이나 나의 도움없이도 하실 것이네.” 그럼에도, 캐리의 마음에는 선교의 열정이 타올랐습니다.
윌리엄 캐리가 1792 년 3월의 한 모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이 설교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지상명령의 성취에 대한 강한 책임을 갖게 하였고, 그 해 10월에는 “영국 침례교 선교회” 가 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윌리엄 캐리는 마침내 인도의 힌두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인도에 가게 됩니다.
그는 인도에서 성경과 기독교 문학을 인도 언어와 방언으로 번역하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인도의 40 개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였고 212,000 부의 성경을 출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너무나 수준이 있는 것이어서, 유럽에서는 그를 당시의 가장 위대한 학자로 인정해 주었고,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1050년 짐 엘리엇은 기독교 대학인 휘튼 칼리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 깨닫고 선교하는 일에 자기의 생애를 바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나미의 에콰와도르, 정글의 와오다니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친구 네명과 함께 남미의 정글을 향하게 됩니다. 그들은 여러 날을 정글을 헤치며 나아갑니다.
이때 갑자기 한 무리의 인디던들이 나타났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원했던 와오다니 인디언들이었습니다. 인디언들은 창을 들고 무서운 기세로 달려왔습니다. 그들은 에콰도르의 강가에서 피를 흘리며 모두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그 때의 짐 엘리엇의 나이는 28세에 불과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어집니다.
이 다섯 명의 순교한 선교사들의 부인들이 남편의 자리를 메우려 순교자의 아들인 8살의 스티브 세인트와 함께 와오다니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정글로 들어갔습니다. 짐 엘리엇의 부인은 순교한 5명의 젊은이들을 애통해 하는 사람들에게 “내 남편이 죽은 것이 비극이 아닙니다. 내 남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이 더 큰 비극이었을 것입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짐 엘리엇의 미망인인 엘리자벳은 정글에서 30년 동안 그들과 함께 살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와오다니 인디언들은 종족 분쟁으로 60%가 살해되는, 지구에서 가장 잔인한 부족이었지만 지금은 부족의 20-40%가 복음화되어 잔인한 분쟁과 살상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선교사로 파송되었지만 순교자로 희생한 짐 엘리엇과 그의 동료들의 희생으로 와오다니 인디언들의 부족이 복음화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기 위하여 하나님은 부름받은 사람들이 생명의 복음을 들고 이방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 복음을 듣고 지금의 영적인 축복의 수혜자가 되어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선교는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특히 성서침례교회는 미국의 남침례교단에서 분리하는 시점에서 내걸은 기치가 바로 선교였습니다. 성서침례교회라고 한 이유는 성경은 선교를 강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에 성서침례친교회에서 파송받은 수많은 선교사들이 전세계에 흩어져서 주의 복음을 전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우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2. 우리는 어떻게 선교사역에 동참할 수 있을까요?
선교사역에 동역자로 헌신하는 것은 귀한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비록 우리는 보냄을 받도록 부르심을 받지 않았지만,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보냄을 받은 선교 사역에 믿음으로 동참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의 부르심과 헌신을 통하여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3-15).
우리는 부름받아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선교사님들을 후원함으로 보내는 선교사로 쓰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1)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선교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엡 6:19).
사도 바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사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는 당시의 로마에서 죄수로 투옥되어 있는 상황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기도 요청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 싸움을 싸우는 영적 군사로서 승리하기를 권면합니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기도로 사도 바울이 힘을 얻어서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엡 6:19).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기도가 영적인 큰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교회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지구의 반대편에서 영적 싸움을 싸우는 선교사님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필요를 공급하시는 은혜가 있게 될 것입니다. 선교사님들은 영적인 싸움의 최전방에서 영적 전쟁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다른 기후와 문화와 사람들로부터 오는 시련과 고난에서 승리하도록 우리는 기도로 후원하는 사역을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2) 우리는 격려를 통하여 선교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롬 16:1-2).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에 큰 힘이 되어 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사람이 겐그레아 교회의 뵈뵈입니다. 뵈뵈 자매는 교회의 큰 일군이었는데, 그는 사도 바울과 선교 팀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뵈뵈는 여러 모양으로 사도 바울을 격려하고 필요를 공급했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의 사역에 함께 동역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사도 바울을 위하여 자신의 목이라도 내어놓을만큼 희생적인 동역자였습니다.
저희 교회의 사역을 통하여 선교사님들을 격려하는 일을 지속해야 합니다. 격려하는 원리는 선교사님들을 초청하여 말씀과 간증을 나누고 물질로 격려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격려하는 사역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역입니다.
얼마전에 해외에서 선교하시던 선교사님 부부를 겨울에 구스타운 점퍼를 구입해 드렸습니다. 그 분들이 무척이나 기뻐하시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여러번 해 주셨습니다. 각 세대에서 선교사님 부부가 방문했을 때에 선물이나 필요를 구입해서 드리는 것도 귀한 격려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목회적인 차원에서 선교지를 방문하기도 합니다. 선교지를 방문하는 것은 선교사님들에게 큰 격려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선교지에 가면서 필요를 구입해서 선물해 드리고 현지에서 좋은 음식을 대접하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선교지를 이해하는 것도 격려하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재정적인 후원을 통하여 선교사역을 도울 수 있습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 4:18).
우리는 후원하는 선교사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후원하는 선교사는 선교사를 물질로 돕는 것입니다. 우리의 후원을 통하여 해외 선교사와 국내 개척교회 등을 도울 수 있으며, 신학교와 극동 방송 등의 사역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물질적인 후원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역을 할 때도 물질로 후원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헌신을 이렇게 감사합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 4:16).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에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물질과 필요를 공급하게 됩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이러한 섬김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교사를 돕고 후원하는 물질의 헌신을 하나님께는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러한 희생을 한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전해줍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 하나님께서는 빌립보 교회의 물질의 후원을 받으시고 그들의 모든 필요를 풍성하게 채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선교사역을 통하여 드리는 물질의 후원에 대하여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공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물질의 후원을 크게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선교헌금을 드리는 것을 faith promise 라고 합니다. 이는 믿음의 약속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약속하고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의 믿음에 상을 주시고 격려하시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안에서 더욱 믿음으로 선교사역에 기도와 격려, 그리고 선교 헌금으로 후원함으로 크게 쓰임받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오늘 우리는 단기 선교 파송 예배를 드리면서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가진 청년들과 청소년들, 그리고 적극적인 지지와 기도로 함게 하시는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교회는 코로나 전부터 해마다 단기선교를 개최하면셔 캄보디아, 몽골의 선교지를 방문하며 최대한 감당할 수 있는 모습으로 선교에 동참했습니다. 올해는 이상우 목사님이 선교하시는 필리핀 보홀을 방문하여 선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단기 선교는 우리의 마음에 선교를 향한 열정을 끄지 않고 타오르게 할 것입니다.
교회는 계속해서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해외의 선교지를 방문하며 선교하는 은혜를 지속해야 합니다.
부산에 가면 한국선교사기념센터가 있습니다. 지난 70년 동안 한국에 오셔서 선교하셨던 성서침례친교회의 선교사님들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국에 복음이 전파되고 영혼들이 구원받아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성서침례친교회의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오셔서 희생적으로 선교하셨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큰 부흥의 역사가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100년 전에 복음의 볼모지인 조선에 복음을 들고 찾아왔던 선교사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에 성경을 보급하기 위하여 배를 타고 들어오다가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에서 성경을 번역하고 배제학당을 세워 기독교 인재를 양성하게 됩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면서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는 성경을 번역하는 사역도 하면서 한국 기독교의 기초를 놓은 것입니다. 펜윅은 침례교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남침례교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성서침례선교사로는 처음으로 아이크 포스터 선교사가 오게 됩니다. 그의 영향으로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고 독립적이고 근본적인 성서침례교회가 한국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이와같이 선교는 한 나라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인 것입니다. 이에 저희 교회도 선교 사역에 열정을 품고 헌신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도 미국 성서침례친교회의 선교사들의 입국으로 복음이 전해졌고, 그 결과로 목포까지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선교의 사명과 열정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선교란 무엇인가요?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불신자들에게 전하는 선교사와 복음 전도자 그리고 교회 개척자의 활동을 표현합니다. 즉,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활동이라고 의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것을 사역이라고 한다면, 해외에서 복음을 전하며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는 활동들을 선교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국내 개척이 어려워지면서 국내개척과 농어촌 미자립 교회들까지 선교의 범주에서 후원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요 17:18)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복음을 온전히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1).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셨고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인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셔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도록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지상 사명의 본질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주고 진리를 가르침으로 인하여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9-20).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는 것이 선교의 본질입니다.
왜 선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일까요? 선교는 부름받은 자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았으니.” (롬 1:1). 선교는 부름받은 자가 선교를 위하여 헌신하고, 부름받은 곳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라고 증거합니다.
즉, 사도 바울은 선교지에서 복음 전파에 초점을 맞춘 사역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약 10년이 시간에 로마 제국의 네 속주인 갈라디아, 마게도냐, 아가야, 아시아에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그는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을 감당했고, 갈라디아 지역과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교회, 그리고 아가야의 고린도 교회를 세웠고, 소아시아의 에베소에서 큰 부흥을 일으키며 선교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을 통하여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지는 큰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역사에 기록하고 있는 근대 선교의 아버지는 윌리엄 캐리입니다. 그는 침례교회의 선교사로서 침례교의 역사에 남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윌리엄 캐리는 1761 년에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캐리는 침례교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어느 날 복음을 전해듣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는 구원의 뜨거운 열정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는 신약교회의 모습과 진리에 대하여 발견하고, 침례교회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는 스스로 공부하면서 세계의 지도를 보게 되었고, 그의 마음에는 이교도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윌리엄 캐리가 이교도에 대한 복음의 부담감을 이야기를 하자, 리랜드 목사님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앉게나 젊은이,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당신이나 나의 도움없이도 하실 것이네.” 그럼에도, 캐리의 마음에는 선교의 열정이 타올랐습니다.
윌리엄 캐리가 1792 년 3월의 한 모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이 설교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지상명령의 성취에 대한 강한 책임을 갖게 하였고, 그 해 10월에는 “영국 침례교 선교회” 가 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윌리엄 캐리는 마침내 인도의 힌두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인도에 가게 됩니다.
그는 인도에서 성경과 기독교 문학을 인도 언어와 방언으로 번역하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인도의 40 개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였고 212,000 부의 성경을 출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너무나 수준이 있는 것이어서, 유럽에서는 그를 당시의 가장 위대한 학자로 인정해 주었고,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1050년 짐 엘리엇은 기독교 대학인 휘튼 칼리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 깨닫고 선교하는 일에 자기의 생애를 바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나미의 에콰와도르, 정글의 와오다니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친구 네명과 함께 남미의 정글을 향하게 됩니다. 그들은 여러 날을 정글을 헤치며 나아갑니다.
이때 갑자기 한 무리의 인디던들이 나타났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원했던 와오다니 인디언들이었습니다. 인디언들은 창을 들고 무서운 기세로 달려왔습니다. 그들은 에콰도르의 강가에서 피를 흘리며 모두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그 때의 짐 엘리엇의 나이는 28세에 불과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어집니다.
이 다섯 명의 순교한 선교사들의 부인들이 남편의 자리를 메우려 순교자의 아들인 8살의 스티브 세인트와 함께 와오다니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정글로 들어갔습니다. 짐 엘리엇의 부인은 순교한 5명의 젊은이들을 애통해 하는 사람들에게 “내 남편이 죽은 것이 비극이 아닙니다. 내 남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이 더 큰 비극이었을 것입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짐 엘리엇의 미망인인 엘리자벳은 정글에서 30년 동안 그들과 함께 살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와오다니 인디언들은 종족 분쟁으로 60%가 살해되는, 지구에서 가장 잔인한 부족이었지만 지금은 부족의 20-40%가 복음화되어 잔인한 분쟁과 살상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선교사로 파송되었지만 순교자로 희생한 짐 엘리엇과 그의 동료들의 희생으로 와오다니 인디언들의 부족이 복음화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기 위하여 하나님은 부름받은 사람들이 생명의 복음을 들고 이방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 복음을 듣고 지금의 영적인 축복의 수혜자가 되어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선교는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특히 성서침례교회는 미국의 남침례교단에서 분리하는 시점에서 내걸은 기치가 바로 선교였습니다. 성서침례교회라고 한 이유는 성경은 선교를 강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에 성서침례친교회에서 파송받은 수많은 선교사들이 전세계에 흩어져서 주의 복음을 전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우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2. 우리는 어떻게 선교사역에 동참할 수 있을까요?
선교사역에 동역자로 헌신하는 것은 귀한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비록 우리는 보냄을 받도록 부르심을 받지 않았지만,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보냄을 받은 선교 사역에 믿음으로 동참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의 부르심과 헌신을 통하여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3-15).
우리는 부름받아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선교사님들을 후원함으로 보내는 선교사로 쓰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1)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선교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엡 6:19).
사도 바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사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는 당시의 로마에서 죄수로 투옥되어 있는 상황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기도 요청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 싸움을 싸우는 영적 군사로서 승리하기를 권면합니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기도로 사도 바울이 힘을 얻어서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엡 6:19).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기도가 영적인 큰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교회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지구의 반대편에서 영적 싸움을 싸우는 선교사님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필요를 공급하시는 은혜가 있게 될 것입니다. 선교사님들은 영적인 싸움의 최전방에서 영적 전쟁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다른 기후와 문화와 사람들로부터 오는 시련과 고난에서 승리하도록 우리는 기도로 후원하는 사역을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2) 우리는 격려를 통하여 선교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롬 16:1-2).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에 큰 힘이 되어 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사람이 겐그레아 교회의 뵈뵈입니다. 뵈뵈 자매는 교회의 큰 일군이었는데, 그는 사도 바울과 선교 팀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뵈뵈는 여러 모양으로 사도 바울을 격려하고 필요를 공급했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의 사역에 함께 동역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사도 바울을 위하여 자신의 목이라도 내어놓을만큼 희생적인 동역자였습니다.
저희 교회의 사역을 통하여 선교사님들을 격려하는 일을 지속해야 합니다. 격려하는 원리는 선교사님들을 초청하여 말씀과 간증을 나누고 물질로 격려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격려하는 사역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역입니다.
얼마전에 해외에서 선교하시던 선교사님 부부를 겨울에 구스타운 점퍼를 구입해 드렸습니다. 그 분들이 무척이나 기뻐하시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여러번 해 주셨습니다. 각 세대에서 선교사님 부부가 방문했을 때에 선물이나 필요를 구입해서 드리는 것도 귀한 격려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목회적인 차원에서 선교지를 방문하기도 합니다. 선교지를 방문하는 것은 선교사님들에게 큰 격려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선교지에 가면서 필요를 구입해서 선물해 드리고 현지에서 좋은 음식을 대접하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선교지를 이해하는 것도 격려하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재정적인 후원을 통하여 선교사역을 도울 수 있습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 4:18).
우리는 후원하는 선교사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후원하는 선교사는 선교사를 물질로 돕는 것입니다. 우리의 후원을 통하여 해외 선교사와 국내 개척교회 등을 도울 수 있으며, 신학교와 극동 방송 등의 사역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물질적인 후원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역을 할 때도 물질로 후원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헌신을 이렇게 감사합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 4:16).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에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물질과 필요를 공급하게 됩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이러한 섬김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교사를 돕고 후원하는 물질의 헌신을 하나님께는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러한 희생을 한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전해줍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 하나님께서는 빌립보 교회의 물질의 후원을 받으시고 그들의 모든 필요를 풍성하게 채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선교사역을 통하여 드리는 물질의 후원에 대하여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공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물질의 후원을 크게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선교헌금을 드리는 것을 faith promise 라고 합니다. 이는 믿음의 약속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약속하고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의 믿음에 상을 주시고 격려하시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안에서 더욱 믿음으로 선교사역에 기도와 격려, 그리고 선교 헌금으로 후원함으로 크게 쓰임받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