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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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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324회 작성일 25-09-2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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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알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주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에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단순히 기적이나 힘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 중의 한 분이십니다. 그 분은 인격이시며 하나님과 동일한 권능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라고 하셨습니다. 보혜사를 보내주시는 분은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심으로 보혜사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는데, 그 분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은 진리의 영으로 오시는 성령님을 받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즉 그들은 성령님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힘과 육신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의 힘은 재물이고, 그들의 자랑은 명예와 세상의 지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과 다른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성령님이 내주하셔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힘을 얻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하여 알아야 할 진리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성령님은 우리를 돕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성령님의 이름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영어로 comfort 로서 위로자 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로서 ‘곁에서 돕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할은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도우셔서 기도가 응답받게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때로는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며 우리를 위하여 친히 기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의 이름은 보혜사는 위로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가 상처받아 힘들고 지쳐서 일어날 힘이 없을 때에,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에 때로는 슬픔이 가득하고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가 있습니다. 이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며 새 힘을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불안해 하고 두려움에 빠지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실제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당하실 때에, 제자들은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주님을 떠났습니다. 주님을 떠났다는 것은 주님을 향한 믿음에서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이때 그들의 믿음을 다시 회복하게 된 것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후에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심 부터였습니다. 이제 주님은 하늘로 가셨지만, 다른 보혜사인 성령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고아와 같이 버리지 아니하시고, 성령님을 보내심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령님의 강림하심으로 담대함과 위로를 얻어 평안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이 초대 교회를 위로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와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 9:31). 성령께서 교회와 함께 하심으로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며, 성령의 위로로 부흥하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환경은 때때로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마음이 무거워 지쳐 쓰러져 눈물로 밤을 세울 때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말씀을 구하면,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시며 위로를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때때로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위로하시기도 하시고, 환경 가운데서 위로와 격려를 주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가 기도하며 구할 때에 기쁨과 평안으로 위로하셔서 소망이 넘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진리를 알도록 가르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하나님의 말씀은 비밀과 같아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영인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진리의 보화를 발견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은혜는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셔서 배우게 하시며 분별하게 하십니다.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모태 신앙이라고 자랑해도, 성령이 없는 사람은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기에 때때로 신천지와 같은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고 속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도우시는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은혜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위로하심, 그리고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땅에서 더욱 풍성하며 승리하는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2. 성령은 우리에게 믿음의 담대함을 주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이 내주하시는 은혜를 얻기 전에는 의기소침했습니다. 그들은 유대 사회의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예수님의 뒤에 따르기만 했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의 풍랑 안에서 두려워 했고,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담대하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베드로만이 가이사랴 빌립보에 이르자 비로서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이 때의 시간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제자로 훈련을 받기 시작한지 약 2년이 지난 후 쯤으로 추측합니다.

제자들은 유대 사회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한 자가 침례 요한이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침례요한의 외침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죄를 씻음 받기 위해서는 성전에 가서 제물을 드리는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예수라는 사람이 우리의 죄를 씻어 준다는 선포는 그 당시에 파격적인 선포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사장의 무리에 의해 끌려 가시자 즉시 도망했습니다. 베드로는 멀리 따라 가다가 대제사장 가야바의 재판정에 까지 갔다가 두려움에 빠져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죄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같은 부류로 인식되어 잡혀 죽을까봐 제자들은 예수님 근처에도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 나마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셨던 요한만이 십자가 곁에서 예수님을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까지도 세상이 주는 시련 앞에 무기력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때 그들을 변화시킨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성령이 강림하시는 오순절 사건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자, 오순절이 이르러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누가복음에서 제자들에게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 24:49)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기 시작하고 있을 때에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 제자들음 비로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전하는 담대함을 얻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성령의 권능이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얻었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 제자들이 성령이 충만함을 얻은 후에 담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세상의 권세와 핍박에 맞서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염려와 두려움이 찾아온 적이 있으신가요? 그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리 저리 찾아다니지만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염려와 두려움으로 사람을 만나기도 위축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우리의 삶에서 종종 찾아오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담대했던 사람 중의 하나는 다윗입니다. 다윗의 담대함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았기에 세상을 이기는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비결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다윗의 담대함은 골리앗을 무너트린 용맹함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ᅟᅡᆯ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 17:45-47). 다윗은 골리앗이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아올 때에,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다윗의 담대함의 비결은 바로 기름부음에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삼상 16:13). 사무엘이 다윗에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을 붓는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구별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에서 기름을 붓는 것은 성령이 임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다윗은 그 날 이후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감동되었고, 그 후에 다윗의 삶은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시편 92편은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시 92:10)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성령의 충만하시는 은혜를 얻은 후에 믿음의 담대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상을 이겨나갈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죄가 다스리는 이 세상은 우리의 삶을 위축되게 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담대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복음의 담대함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3. 성령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2-24).

인생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성품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성품이 된다. 그리고 성품이 인생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에 만나는 문제의 원인이 외부적인 요소도 있지만,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의 중심에는 성품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좋은 성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복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품은 저절로 형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성이 우리의 성품을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의 사랑을 미움으로 변질시키고, 격려를 변질시켜 시기와 질투하게 합니다. 그리고 겸손의 마음을 교만하게 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음행으로 변질시킵니다. 이러한 죄의 뿌리에는 사탄의 유혹과 공격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기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지는 것을 모르고 계속해서 시기와 질투하며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사울은 이러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사람들은 분노와 미움이 아름다운 관계를 무너트려서 상처를 가져다 주는 것을 모르고 계속해서 분노를 쏟으며 살아갑니다. 이는 가인의 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간음과 음행이 즐거움의 근원이라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결국은 공허함과 파멸의 인생을 깨닫는 데는 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이는 여자 이세벨의 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만이 자신의 삶을 멸망시킨다는 것을 모르고 계속해서 그 길을 걸어갑니다. 이는 하만의 길이며 골리앗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실 때에 죄의 몸을 멸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는 죄의 권세 아래 살아가지 않고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함께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되게 하십니다. ”..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성령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이 성숙한 인격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힘이나 지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혜와 겸손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안에 말씀의 씨앗이 들어올 때에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씀을 받을 때에, 그 말씀의 생명이 역사하여 우리 안에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우리가 성령님과 동행하며 우리는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서 싹이 나서 자라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한 삶이 될 것입니다. 이기적이었던 자신의 모습이 어느덧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의 모습으로 변화되었을 때, 자신의 삶이 더욱 행복하며 풍성한 삶이 되고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성령으로 변화되는 사람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갑니다. 즐거움은 성령이 우리 안에 주시는 내적인 감정입니다. 근심과 슬픔이 가득했던 마음이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결과는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자는 자신의 삶이 아무리 곤핍하고 고달프더라도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성령으로 변화되는 사람은 화평의 사람이 됩니다. 의견의 차이가 나면 다투던 사람이 이제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변화되자 평화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신의 동역자가 되고 친구가 되어 어떤 일을 하든지 즐거움으로 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변화되는 사람은 오래 참는 인내의 사람이 됩니다. 욥과 같이 고난이 찾아와도 인내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십자가를 묵상함으로 인내하게 합니다. 인내하는 삶의 열매는 농부의 풍성한 추수와 같이 풍성한 결과를 갖게 합니다.

이와같이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삶을 살아가면서 삶의 장애를 이기며 지혜로 승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도우시는지를 배웠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은 우리의 영적인 삶에서 큰 능력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은혜가 흐르는 통로가 되도록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오늘도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