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자라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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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421회 작성일 25-08-02 20:38본문
믿음이 자라는 길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느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믿음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나.”(히 11:1)라고 정의했습니다. 믿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믿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초등학생 아들에게 이번 주말에 ‘중흥 워터파크’에 데리고 갈게, 라고 하면 아들은 일주일간 그 날을 기다리며 기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를 신뢰하기에, 이번 주말은 친구와의 약속도 취소하고 아버지와 함께 중흥 워터 파크에 가서 물놀이를 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기대와 함께 기쁨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으로 이주했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가나안에 거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기에 아들을 얻는 다는 믿음이 있었고, 더 나아가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까지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길을 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따라서 그 말씀의 열매로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게 합니다. 믿음이 있다면 어떠한 시련이 찾아와도 이길 수가 있고, 주님 오실 때 까지 삶이 더욱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더욱 자라기 위해서는 믿음의 장애 요소가 발견하고, 그 장애물을 삶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더욱 성장하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I. 믿음으로 사는 삶에 장애가 되는 요소를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에 우리가 극복해야 할 장애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고난이 찾아올 때에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흔들리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에 의심이 생기면서 두 가지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믿음의 장애 요소들은 무엇일까요?
1. 우리의 이성이 믿음의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 10:5).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인도하시면서 순종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의 이성적인 관점에서는 납득하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임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들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순종하시도록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약속의 축복을 누리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으나, 문둥병으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엘리사 선지자는 종을 보내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합니다. 그때 나아만은 그 먼곳인 시리아에서 찾아와 작은 나라의 선지자에게 찾아온 답변이 너무나 용납이 안되었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그냥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어쩌면 나아만 장군의 불쾌감은 양국의 긴장 상태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만큼 나아만 장군은 큰 장군이었습니다. 그러나, 종의 설득으로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 들어가 일곱 번 물에 잠그게 됩니다. 그러자, 나아만 장군이 큰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열하 4:14). 나아만 장군의 이성으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순종은 그의 병을 고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18 세기에 유럽에서 믿음이 절대적으로 흔들리는 계기가 된 것이 계몽주의의 출현이었습니다. 계몽주의는 인간이 기존의 틀에서 깨어나 새로운 사고를 하는 시기였습니다. 계몽주의의 기초가 되는 것이 이성의 가치를 진리와 동등하게 놓은 것입니다. 사람은 이성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진리를 발견하였다면, 이제는 이성이 절대적인 진리의 근원으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사고를 하게 됩니다. 계몽주의에서는 이성이 진리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신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됨으로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자유주의 신학이 출현하게 되고, 그 결과로 교회가 복음과 진리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성인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이러한 분별력을 키우며 믿음을 자라게 하는 것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그리스도의 말씀의 권위에 굴복시키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2. 눈으로 보는 것이 믿음의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고후 5:7).
세상은 보는 것으로 판단하고 측정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분의 뜻을 행하실 때에 먼저 그 분의 행하심을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그 분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도마가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확신을 가졌지만, 도마는 그들을 향하여 불신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다시 제자들과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 20:27). 주님께서는 여러번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지만, 현장에 없던 도마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도마를 향하여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도다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신 모습을 설명합니다.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막 16:1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그 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온전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3. 자신의 감정을 따르는 것은 믿음의 장애 요소입니다.
“...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눅 5:5-6).
우리의 삶에는 감정의 기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불안함을 느끼게 되면 우리의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며 전진하다가 갑자기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안정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그 분을 신뢰하며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가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하고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의 기분은 다시 바다로 나갈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밤새도록 일을 했기에 피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지게 됩니다. “...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눅 5:5-6). 베드로가 자신의 감정을 따르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의 삶에서 믿음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상황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오게 되면 낙심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이 찾아와 영적으로 방황하게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의존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 참된 믿음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을 게을리하는 것은 믿음의 장애요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우리의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성경을 날마다 묵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연료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의 능력을 묵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게을리하게 되면, 주님을 향한 우리의 확신도 점차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오는 것입니다.
말씀은 영적 양분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는 삶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자라감으로 믿음이 자라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든든히 세우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위에 세워지지 않는 믿음은 모래위에 세워지는 집과 같아서 강한 비바람 앞에서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위에 세워지는 믿음은 우리를 더욱 견고히 하여 반석위에 세워진 집과 같이 어떠한 시련에도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세우게 될 것입니다.
5. 죄에 거하는 삶은 믿음의 장애 요소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우리가 죄의 습관과 행동에서 떠나지 않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믿음에서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히게 함으로 믿음에서 떠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거하며 빛의 자녀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며 더 나아가 기도 응답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빛의 자녀로서 어두움에 거하게 되며 죄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이는 영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죄의 유혹을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삼손이 죄에 빠지게 되면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게 되며 비참하게 삶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값진 보배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하며 세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은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죄는 양극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 세상에서 거룩하며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II. 우리는 믿음의 단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 11:6).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며 믿음의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음은 우리가 겪게되는 믿음의 단계들입니다.
1. 적은 믿음은 주님보다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마 8:26).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여정을 출발할 때에 우리는 주님이 지적하신 적은 믿음을 극복해야 합니다. 적은 믿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주님이 그 분의 말씀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분이 약속을 지키실지는 확신이 없어.” 믿음이 적은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에 주저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시다가 주무시게 됩니다. 이때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나게 되자, 제자들이 두려워하며 주님을 깨우게 됩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마 8:25). 제자들은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안전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두려움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풍랑을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마 8:26). 주님은 그들의 두려움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두려움은 곧 믿음이 없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에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우리의 삶에는 제자들이 풍랑을 만난 것처럼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어려움이 찾아와서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해 오기가 쉬운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으로 보고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승리하게 하는 요소인 것입니다. 어려운 삶에서 평안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할 길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2. 성숙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신뢰합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 21:22).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전능하심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은 나를 도우실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분은 분명히 약속을 이루실 분이다.” 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숙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있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위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 이러한 큰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다윗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나요? 그의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하여 분명히 선포합니다. “...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 17:45).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다윗이 신뢰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를 걸었고, 그의 믿음은 골리앗을 이기는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삼상 17:47).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다윗은 전쟁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선포했습니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십이년 동안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녀가 주님께 나아와 그 분의 겉옷을 만지게 됩니다. 이 여인에게는 주님의 겉옷만 만져도 고침을 받는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 여인의 믿음대로 고쳐주시고 그녀를 구원하십니다. “...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마 9:22). 혈루증 앓던 여인의 믿음으로 자신의 병이 즉시 치료받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8장에는 백부장의 믿음에 대하여 주님이 칭찬하십니다. 백부장이 주님께 나아와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괴로워하기에 고쳐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직접 가셔서 고쳐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때 백부장은 주님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이렇게 부탁합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마 8:8). 백부장은 자신의 권위로 하위의 군사에게 명령하면 순종하듯이, 주께서 말씀하시면 하인의 병이 나을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를 향하여,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 8:10)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그 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을 발견한다면, 그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있다면 우리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에 기적을 가져오는 능력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믿음이 하나님께 전달되는 것은 기도이며,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믿음으로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의 능력을 가르치십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 21:22). 우리의 믿음은 의심하는 믿음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그 분의 전능하심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과 시련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도전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전진하면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3. 온전한 믿음은 약속의 성취를 믿는 것입니다.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히 11:19)
온전한 믿음은 성숙한 믿음을 능가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응답되었음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면 이미 성취되었음을 믿고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비록 우리의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때에 그 분의 뜻대로 이루어주심을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어려움이 찾아올 수가 있습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믿음이 흔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승리하는 비결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비결은 바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찾아와도 이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참된 평안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은 우리의 마음에 평안과 안식이 찾아오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비결에 대하여,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이 삶에서 성취되어지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들어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 너무나 소중한 아들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가진 소유보다 자녀인 이삭의 소중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려운 명령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2). 이때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합니다.
모리아 산으로 가는 길에서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그러자, 아브라함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창 22:8).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번제할 어린 양을 친히 준비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는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순간까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는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히 11:19) 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삭은 약속을 받은 자녀이기에 그를 통하여 후손이 번성할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에 그는 주저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드림은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이 하나님은 이삭을 대신할 어린 양을 준비하셨고, 이삭의 생명은 보존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대하여,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 성취되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그 분의 능력과 약속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는 삶은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얼마나 강한 믿음인가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과 그 분의 도우심을 알지만, 진정으로 그 분이 삶에서 도우신다는 것을 믿는지요? 여러분은 그 분을 신뢰하기 위하여 그 분의 역사하심의 증거를 요구하는지요?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성취되었음을 믿고 그 분의 말씀을 전적으로 의지하는지요?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가 모두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루 아침에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마음과 생각이 정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향한 아름다운 계획이 있음을 믿고 그 분은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느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믿음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나.”(히 11:1)라고 정의했습니다. 믿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믿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초등학생 아들에게 이번 주말에 ‘중흥 워터파크’에 데리고 갈게, 라고 하면 아들은 일주일간 그 날을 기다리며 기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를 신뢰하기에, 이번 주말은 친구와의 약속도 취소하고 아버지와 함께 중흥 워터 파크에 가서 물놀이를 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기대와 함께 기쁨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으로 이주했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가나안에 거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기에 아들을 얻는 다는 믿음이 있었고, 더 나아가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까지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길을 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따라서 그 말씀의 열매로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게 합니다. 믿음이 있다면 어떠한 시련이 찾아와도 이길 수가 있고, 주님 오실 때 까지 삶이 더욱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더욱 자라기 위해서는 믿음의 장애 요소가 발견하고, 그 장애물을 삶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더욱 성장하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I. 믿음으로 사는 삶에 장애가 되는 요소를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에 우리가 극복해야 할 장애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고난이 찾아올 때에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흔들리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에 의심이 생기면서 두 가지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믿음의 장애 요소들은 무엇일까요?
1. 우리의 이성이 믿음의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 10:5).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인도하시면서 순종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의 이성적인 관점에서는 납득하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임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들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순종하시도록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약속의 축복을 누리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으나, 문둥병으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엘리사 선지자는 종을 보내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합니다. 그때 나아만은 그 먼곳인 시리아에서 찾아와 작은 나라의 선지자에게 찾아온 답변이 너무나 용납이 안되었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그냥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어쩌면 나아만 장군의 불쾌감은 양국의 긴장 상태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만큼 나아만 장군은 큰 장군이었습니다. 그러나, 종의 설득으로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 들어가 일곱 번 물에 잠그게 됩니다. 그러자, 나아만 장군이 큰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열하 4:14). 나아만 장군의 이성으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순종은 그의 병을 고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18 세기에 유럽에서 믿음이 절대적으로 흔들리는 계기가 된 것이 계몽주의의 출현이었습니다. 계몽주의는 인간이 기존의 틀에서 깨어나 새로운 사고를 하는 시기였습니다. 계몽주의의 기초가 되는 것이 이성의 가치를 진리와 동등하게 놓은 것입니다. 사람은 이성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진리를 발견하였다면, 이제는 이성이 절대적인 진리의 근원으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사고를 하게 됩니다. 계몽주의에서는 이성이 진리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신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됨으로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자유주의 신학이 출현하게 되고, 그 결과로 교회가 복음과 진리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성인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이러한 분별력을 키우며 믿음을 자라게 하는 것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그리스도의 말씀의 권위에 굴복시키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2. 눈으로 보는 것이 믿음의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고후 5:7).
세상은 보는 것으로 판단하고 측정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분의 뜻을 행하실 때에 먼저 그 분의 행하심을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그 분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도마가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확신을 가졌지만, 도마는 그들을 향하여 불신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다시 제자들과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 20:27). 주님께서는 여러번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지만, 현장에 없던 도마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도마를 향하여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도다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신 모습을 설명합니다.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막 16:1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그 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온전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3. 자신의 감정을 따르는 것은 믿음의 장애 요소입니다.
“...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눅 5:5-6).
우리의 삶에는 감정의 기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불안함을 느끼게 되면 우리의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며 전진하다가 갑자기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안정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그 분을 신뢰하며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가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하고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의 기분은 다시 바다로 나갈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밤새도록 일을 했기에 피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지게 됩니다. “...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눅 5:5-6). 베드로가 자신의 감정을 따르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의 삶에서 믿음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상황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오게 되면 낙심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이 찾아와 영적으로 방황하게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의존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 참된 믿음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을 게을리하는 것은 믿음의 장애요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우리의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성경을 날마다 묵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연료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의 능력을 묵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게을리하게 되면, 주님을 향한 우리의 확신도 점차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오는 것입니다.
말씀은 영적 양분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는 삶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자라감으로 믿음이 자라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든든히 세우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위에 세워지지 않는 믿음은 모래위에 세워지는 집과 같아서 강한 비바람 앞에서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위에 세워지는 믿음은 우리를 더욱 견고히 하여 반석위에 세워진 집과 같이 어떠한 시련에도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세우게 될 것입니다.
5. 죄에 거하는 삶은 믿음의 장애 요소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우리가 죄의 습관과 행동에서 떠나지 않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믿음에서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히게 함으로 믿음에서 떠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거하며 빛의 자녀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며 더 나아가 기도 응답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빛의 자녀로서 어두움에 거하게 되며 죄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이는 영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죄의 유혹을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삼손이 죄에 빠지게 되면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게 되며 비참하게 삶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값진 보배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하며 세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은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죄는 양극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 세상에서 거룩하며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II. 우리는 믿음의 단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 11:6).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며 믿음의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음은 우리가 겪게되는 믿음의 단계들입니다.
1. 적은 믿음은 주님보다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마 8:26).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여정을 출발할 때에 우리는 주님이 지적하신 적은 믿음을 극복해야 합니다. 적은 믿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주님이 그 분의 말씀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분이 약속을 지키실지는 확신이 없어.” 믿음이 적은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에 주저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시다가 주무시게 됩니다. 이때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나게 되자, 제자들이 두려워하며 주님을 깨우게 됩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마 8:25). 제자들은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안전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두려움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풍랑을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마 8:26). 주님은 그들의 두려움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두려움은 곧 믿음이 없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에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우리의 삶에는 제자들이 풍랑을 만난 것처럼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어려움이 찾아와서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해 오기가 쉬운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으로 보고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승리하게 하는 요소인 것입니다. 어려운 삶에서 평안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할 길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2. 성숙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신뢰합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 21:22).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전능하심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은 나를 도우실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분은 분명히 약속을 이루실 분이다.” 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숙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있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위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 이러한 큰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다윗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나요? 그의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하여 분명히 선포합니다. “...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 17:45).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다윗이 신뢰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를 걸었고, 그의 믿음은 골리앗을 이기는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삼상 17:47).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다윗은 전쟁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선포했습니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십이년 동안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녀가 주님께 나아와 그 분의 겉옷을 만지게 됩니다. 이 여인에게는 주님의 겉옷만 만져도 고침을 받는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 여인의 믿음대로 고쳐주시고 그녀를 구원하십니다. “...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마 9:22). 혈루증 앓던 여인의 믿음으로 자신의 병이 즉시 치료받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8장에는 백부장의 믿음에 대하여 주님이 칭찬하십니다. 백부장이 주님께 나아와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괴로워하기에 고쳐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직접 가셔서 고쳐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때 백부장은 주님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이렇게 부탁합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마 8:8). 백부장은 자신의 권위로 하위의 군사에게 명령하면 순종하듯이, 주께서 말씀하시면 하인의 병이 나을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를 향하여,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 8:10)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그 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을 발견한다면, 그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있다면 우리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에 기적을 가져오는 능력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믿음이 하나님께 전달되는 것은 기도이며,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믿음으로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의 능력을 가르치십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 21:22). 우리의 믿음은 의심하는 믿음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그 분의 전능하심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과 시련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도전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전진하면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3. 온전한 믿음은 약속의 성취를 믿는 것입니다.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히 11:19)
온전한 믿음은 성숙한 믿음을 능가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응답되었음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면 이미 성취되었음을 믿고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비록 우리의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때에 그 분의 뜻대로 이루어주심을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어려움이 찾아올 수가 있습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믿음이 흔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승리하는 비결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비결은 바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찾아와도 이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참된 평안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은 우리의 마음에 평안과 안식이 찾아오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비결에 대하여,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이 삶에서 성취되어지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들어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 너무나 소중한 아들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가진 소유보다 자녀인 이삭의 소중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려운 명령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2). 이때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합니다.
모리아 산으로 가는 길에서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그러자, 아브라함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창 22:8).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번제할 어린 양을 친히 준비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는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순간까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는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히 11:19) 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삭은 약속을 받은 자녀이기에 그를 통하여 후손이 번성할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에 그는 주저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드림은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이 하나님은 이삭을 대신할 어린 양을 준비하셨고, 이삭의 생명은 보존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대하여,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 성취되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그 분의 능력과 약속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는 삶은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얼마나 강한 믿음인가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과 그 분의 도우심을 알지만, 진정으로 그 분이 삶에서 도우신다는 것을 믿는지요? 여러분은 그 분을 신뢰하기 위하여 그 분의 역사하심의 증거를 요구하는지요?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성취되었음을 믿고 그 분의 말씀을 전적으로 의지하는지요?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가 모두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루 아침에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마음과 생각이 정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향한 아름다운 계획이 있음을 믿고 그 분은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