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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2) - 낙심을 극복하게 하는 세가지 진리 (고전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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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481회 작성일 25-06-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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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2) - 낙심을 극복하게 하는 세가지 진리 (고전 1:1-9).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엇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전 1:8).

오늘은 고린도전서 2 번째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낙심을 극복하는 용기’입니다. 낙심이란 무엇인가요? 낙심은 떨어질 낙, 마음심입니다. 즉 마음이 떨어지다, 무너지다 라는 뜻입니다.

낙심이 찾아오면 의욕과 희망이 사라지고 심리적으로 침체 상태가 됩니다. 낙심이 찾아오면 마음이 약해지거나 실망합니다. 그리고 포기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길을 가며 선을 행하는 삶에도 종종 낙심이 찾아오곤 합니다. 이때 포기하고픈 유혹을 받아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낙심해 보셨습니까? 요즘 마음속에 ‘포기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스친적이 있으신가요“ 지금 내 마음에 ‘무너짐’이 있다면, 그 이름은 바로 ‘낙심’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 찾아오는 낙심은 무엇인가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지역 경기의 침체로 인한 경제의 어려움이 낙심의 이유일 수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정말 나의 필요를 아시고 채우실까? 라는 생각이 앞설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오랜 신앙생활을 해도 변화가 없는 자신을 바라보며 영적 무기력감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때로는 교회나 리더십에 대한 실망감과 불신으로 마음이 무거울 때도 있고, 지체들과의 관계에서 찾아오는 실망감이 우리의 마음에 낙심을 가져다 줄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낙심은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계파로 나누어 분열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더 큰 문제는 음행과 우상 숭배, 성도들까지 소송을 하며 경건한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고린도의 자기 과시 문화를 교회에 까지 가지고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뽐내며 자신을 내세우고 있었는데, 이러한 문제들의 뿌리는 영적인 교만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낙심하고 있었고, 사도 바울도 자신이 개척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의 낙심이 영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우리의 낙심과도 같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을 향하여 살아가고 있는가? 경제적으로, 관계에서, 영적으로 지쳐 낙심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담대하게 회복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며 예수 안에서 자신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하며, 낙심을 이기고 하나님 안에서 회복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던지는 메시지는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으로 받아들어야 할 메시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 있는 낙심을 세 가지의 진리로 그들을 회복시키고자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 진리를 통해서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진리는 무엇인가요?

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고전 1:1-2)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의 선봉에 섰지만, 교황청의 저주, 동료들의 배신, 정치적 위협으로 깊은 낙심을 경험했습니다. 하루는 며칠 동안 침울한 상태에서 기도도, 설교도 하지 않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그의 아내 카타리나는 검은 옷(상복)을 입고 루터 앞에 나타났습니다. 루터가 “누가 죽었느냐?”고 묻자, 카타리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요. 당신의 표정은 마치 하나님이 죽기라도 한 것 같아서요.” 그 말을 들은 루터는 정신을 차렸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나는 그분의 종이다! 내가 왜 낙심하는가!” 정체성을 기억하는 순간, 루터는 다시 개혁의 불꽃을 붙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어떤 어둠도 이기게 합니다.

우리가 낙심하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의 손님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 대한 회의감도 들기도 하고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좌절감이 마음에 깊이 찾아올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사역의 현장에서 사역의 고난과 자신에 대한 실망감 등으로 크게 좌절하고 낙심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죄와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절망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었던 사도 바울도 죄와 싸우는 자신을 모습에서 자신을 향하여 곤고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선교의 현장에서 당한 시련으로 낙심했던 마음을 ‘살 소망이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고후 1:8-9). 사도 바울 조차도 사역에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심한 고생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살아갈 소망조차 잃어버렸던 사도 바울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 4:1-13). 사도 바울은 자신이 모습에서 헐벗고 매맞으며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감당해야 했던 시련을 이렇게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고후 11:23-25). 사도 바울이 감당해야 했던 시련은 보통 사람들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환난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사도 바울이 포기하지 않고 선교와 사역의 길을 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나요?

사도 바울이 이러한 절망과 낙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천국으로 부르실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예수님이 부르신 사도였습니다. 사도라는 뜻은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친히 목격하고 그 분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자여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며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자신은 예수님이 불러서 세운 사도라는 사실을 확신하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가는 길이 가시와 같은 고통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부르심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임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고전 1:2). 고린도 교회는 분열과 음행 등으로 하나님의 성도라고 부를 자격이 없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은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너희는 하나님의 교회’ 다 라고 정체성을 선포했습니다. 비록 너희들이 실패하고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뜻은 구별된 모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의 성도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어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게 된 성도였습니다. 성도가 되기 위하여 수련의 과정을 거치는 종교인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세상에서 구별하셔서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에 자신의 정체성에서 다시 가야할 길을 찾아야 합니다. 어떠한 시련이 찾아와도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 앞에 항상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도 어떠한 낙심하는 일이 찾아와도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이며 성도라는 사실을 고백하며 다시 주님께 나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믿음의 시련을 통과하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확신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거룩한 백성이며 나라였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낙심을 극복하는 첫 번째 진리는 ‘정체성을 기억하라’입니다. ‘나는 지금 누구인가?’ 내가 직장인이기 전에, 부모이기 전에, 실패자도 성공자도 아니며, 나는 하나님의 교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된 성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자신에게 나는 하나님이 성도이며 교회이다 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는지요?

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 1:5-6).

우리에게 낙심이 찾아올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늘 나라에 올라갈 정도로 하나님이 세우신 특별한 종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환상과 계시의 풍성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는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고통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겪는 육체의 가시는 사도 바울에게는 사단의 사자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육체를 아프게 함으로 낙심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세 번이나 기도하며 고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비록 사도 바울에게 육체의 고통으로 고통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이미 풍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도리어 자신의 약함과 궁핍과 핍박을 기뻐하는 관점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자신의 약함을 통하여 능력을 베풋는 하나님의 다른 은혜의 통로를 보았기에 더욱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낙심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고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4)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이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그 은혜를 설명했습니다.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 1:5-7).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구변, 즉 언변에 풍성함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고린도가 로마 제국에서 번영하고 교육 수준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헬라 철학과 수사학이 발달하여 설득력 있게 말하는 것을 지혜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언변력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러한 언변력을 구사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높이 평가하려는 속성이 있었습니다. 그럼로 사도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고후 11: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자신을 높이는 교만에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받은 은혜는 지식이었습니다. 그들의 지식은 헬라어로 ‘그노시스’로서 영적 지식이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지식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들었기에 복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는 교만하게 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라고 했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복음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인 있었지만 사랑이 없었기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이 제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식은 자기를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과 지체들을 더욱 잘 섬기라고 주신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이 많아질수록 더욱 주님과 같이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에 주신 다른 은혜는 ‘그리스도의 증거’가 그들 중에 견고하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증거란 바로 그들의 마음에 깊이 뿌리내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즉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믿음이 그들의 믿음의 뿌리였습니다. 그들은 철학적인 사고로 인하여 지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대속의 죽음을 이루시고 부활하심을 확실히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그들의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정체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교회로서 유대인이나 다른 이방인들과 구별되는 차이점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되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어떠한 시련이 찾아와도 복음에 뿌리를 내린 성도는 결코 흔들리지 않고 이길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다른 은혜는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 1:7).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풍성했습니다. 그런데 은사는 교회를 세우고 덕을 세워야 했지만, 그들은 은사를 가지고 자신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며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 다윗이 하나님이 목자되심과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이겨냈습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 23:6). 이와같이 우리도 낙심이 찾아올 때에 그동안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그 은혜를 세어보며 주님께 영광돌리면,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낙심이 찾아올 때,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혹시 지금 내 마음은 받은 은혜보다 부족함에 더 민감하지 않나요?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충분합니다”라는 감사를 마음과 입술로 고백하고 있는가요?

3.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7-9).

우리가 낙심을 극복할 수 있는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신실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분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말을 번복하거나 말을 하고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분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19세기 중국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가족을 잃고, 병으로 쓰러지고, 사역이 실패 직전까지 갔던 시기를 겪습니다. 재정 후원도 끊기고, 동료 선교사들이 그를 떠났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끝났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끝이라고 보지 않으신다.” 그는 로마서 8장을 붙들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나는 연약했지만,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놓지 않으셨다.” 그의 믿음은 결국 중국 내지 선교회(CIM)로 이어졌고, 800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더 큽니다. 끝까지 우리를 붙드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낙심 속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주님이 오시는 날가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흠이 없는 자로 세우시기 위하여 우리를 주님을 닮아가도록 역사하십니다. 처음에는 흠이 많았지만, 주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점점 주님을 닮아가는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에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며 인도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약속이며 우리의 소망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약속은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오실 때에 우리의 몸이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먼저 무덤에서 일어나 하늘로 올라가고, 우리도 새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신실하셔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이 세상에서의 낙심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과 교제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견고하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주님과의 교제하면 지체들과의 영적인 교제도 풍성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되어 살아가는 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으로부터 흐르는 은혜가 각자의 영혼에 풍성하게 됨으로, 지체들과의 풍성한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낙심이 찾아올 때에 “내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가 넘어져도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며 보호하신다라는 믿음이 우리를 낙심의 늪에서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낙심을 극복하는 진리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낙심을 이기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안에서 누리는 은혜를 바라본다면 새로운 기쁨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미래에 소망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날마다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낙심을 극복하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이제는 돌아가는 걸음 속에서, 다시 그 정체성을 붙드시고,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은혜는 지금도 내게 충분하다’, ‘하나님은 끝까지 나를 지키신다’ 고백하며 이 한 주를 믿음으로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낙심한 우리를 향해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