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잔에 참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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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623회 작성일 25-04-26 20:40본문
축복의 잔에 참여하라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고전 10:16-17)
4월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풍성함을 가져다 주는 은혜의 달입니다. 4월에는 봄 소식을 가져다 주면서 들과 산에 개나리꽃, 진달래, 목련, 벚꽃, 이제는 철쭉이 개화하는 아름다운 계절의 시작입니다.
4월은 우리에게 은혜의 달인 이유는 창립 예배가 있어서 교회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감사하게 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활절 예배가 있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깊이 생각해 보며 감사하는 달이기에 더욱 감사합니다.
올해는 부활절 뮤지컬과 워십이 우리의 마음에 더욱 큰 감동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참여한 뮤지컬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처음으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간증을 들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희생과 헌신이 우리의 뮤지컬을 더욱 아름답게 했습니다. 이러한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원망과 불평이 없이 헌신하시는 성도님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한 찬양대의 헌신과 워십 등이 우리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은혜와 행복에 감사했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함께 하는 지체들과 사역에 참여하는 은혜에 대해서 더욱 감사했습니다.
이제 4월의 마지막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더욱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교회에 참여하는 행복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주제는 ‘축복의 잔’입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가 주시는 축복의 잔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고전 10: 16).
축복의 잔이란 그것을 마시는 자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막에서 목마름 가운데 있는 자가 생수를 마시는 것은 축복의 잔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그의 가장 필요한 것을 얻어 생명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철학적인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독배인 죽음의 잔을 마시고 사형당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명을 받아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고 죽었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마신 잔은 죽음의 잔이었고, 그의 가르침은 후배에 철학자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고난의 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하실 때에, 그 잔은 죽음의 잔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올리브 기름을 짜는 틀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올리브 과일을 으깨어야 기름이 나오듯이, 예수님은 그곳에서 영혼의 고통을 참으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잔을 마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참여하셨던 잔은 고난과 죽음의 잔이었지만, 동일한 잔이 우리에게는 축복의 잔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마셨던 고난의 잔이 우리에게는 축복의 잔이 될 수 있는가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고전 10:16). 우리가 마시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은 외적으로는 주의 만찬에서 포도주스를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잔과 떡을 드시며 최후의 만찬을 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배에서 포도주스를 마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것을 고린도전서는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의식은 우리가 가진 믿음의 표현입니다. 의식 자체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축복을 주는 피의 잔,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왜 예수님에게는 죽음의 잔이, 우리에게는 축복의 잔이 되는 것인가요?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고 구원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은이나 금같은 세상의 가치로 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흠 없고 점 없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속이란 예수의 피 값으로 산 구원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에베소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피를 마시지 않고 살을 먹지 먹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5).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영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영생을 얻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자는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의 은혜가 흘러 넘칩니다. 찬양의 은혜를 누리기도 하고, 자녀로서 기도 응답의 축복을 누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생명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 되는 삶은 우리가 주 안에서 살아가며 영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 받은 자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즉 죄로 인하여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제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평화를 얻게 된 것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진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롬 1:18).. 이 세상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항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을 비웃고 강팎함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에 믿음으로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과 화평함으로 이러한 진노에서 피하게 되기에 축복의 잔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잔이 축복의 잔이 되는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은혜를 누리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 10:16-17).
우리는 주의 만찬을 거행하면서 잔을 마실 뿐 아니라, 떡을 떼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합니다. 떡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떡을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몸에 창자국을 남기시며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셨지만,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인 그 분의 몸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떡은 하나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임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고 했습니다. 이 한 몸인 떡에 참예하는 것이 성도의 영적인 삶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떡에 참예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 거하며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 6:56)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에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영적으로 그 분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것과 더불어 교회의 지체로서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은 교회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안에 거하는 삶은 우리가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의 수여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공급자이시고, 우리는 수여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곳이며, 그리스도의 진리와 풍성한 사랑이 가득한 곳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으로 얻는 영적인 풍성함은 세상이 주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찾으신 자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출 20:24)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는 곳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강림하시는 임재를 가져옵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 분 안에서 충만을 가져오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은 그 분안에서 성도들이 한 몸이 되어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그 분의 진리를 기뻐함으로 말씀에 아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것은 지체된 몸과 하나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함께 떡을 먹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화목제를 드린 후에 함께 희생 제물을 먹으며 기뻐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 말씀으로 교제하며 기뻐하는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힘은 영적으로 하나됨에 있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가 모여 마음을 합하여 기도했을 때에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마음을 같이하는 성도들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들은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 안에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삶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은혜를 얻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은혜는 진리의 길 위에 서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주님의 교회는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진리 위에 세워지기 위하여 교회는 성경의 진리와 바른 교훈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교회에는 주일 학생, 학생 청년, 장년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주님을 섬깁니다. 우리는 같은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며 자라갑니다. 진리를 배우며 자라가는 주일학생들부터 학생, 청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들은 진리 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 시대는 거짓이 진리인 것처럼 가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진리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우리는 진리 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복되고 소중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3서에서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3 4)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방황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즐거움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거하는 삶은 우리가 진리를 배우며 자라가게 합니다. 진리는 우리의 거룩이며 우리의 지혜이며 우리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진리대로 살아가는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과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은 그 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는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군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즉 하나님이 맡기신 교회의 청지기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보상은 천국의 영원한 상급이고, 교회를 세우는 능력은 성령이 주시는 은사와 달란트에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는 성령이 주시는 사역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4-7).
성령께서는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유익하게 하려 하시려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교회에 덕을 세우고 섬기도록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며 복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세우시기 위하여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성령의 지혜와 재능을 주셨듯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부활절 뮤지컬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을 통합하여 사용하게 되는 기회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함께 나누었고, 성도님들은 각자의 은사에 따라 헌신하며 뮤지컬이 살아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게 되어 기쁘고, 믿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을 알게 되어 감동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멀리하거나 사역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영적인 삶에서 퇴보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몸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서 주님이 맡기신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 분의 몸인 교회를 세워가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그리스도와 피와 몸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의 통로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보배로운 삶의 은혜를 놓치지 말고 참여하는 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고전 10:16-17)
4월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풍성함을 가져다 주는 은혜의 달입니다. 4월에는 봄 소식을 가져다 주면서 들과 산에 개나리꽃, 진달래, 목련, 벚꽃, 이제는 철쭉이 개화하는 아름다운 계절의 시작입니다.
4월은 우리에게 은혜의 달인 이유는 창립 예배가 있어서 교회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감사하게 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활절 예배가 있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깊이 생각해 보며 감사하는 달이기에 더욱 감사합니다.
올해는 부활절 뮤지컬과 워십이 우리의 마음에 더욱 큰 감동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참여한 뮤지컬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처음으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간증을 들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희생과 헌신이 우리의 뮤지컬을 더욱 아름답게 했습니다. 이러한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원망과 불평이 없이 헌신하시는 성도님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한 찬양대의 헌신과 워십 등이 우리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은혜와 행복에 감사했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함께 하는 지체들과 사역에 참여하는 은혜에 대해서 더욱 감사했습니다.
이제 4월의 마지막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더욱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교회에 참여하는 행복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주제는 ‘축복의 잔’입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가 주시는 축복의 잔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고전 10: 16).
축복의 잔이란 그것을 마시는 자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막에서 목마름 가운데 있는 자가 생수를 마시는 것은 축복의 잔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그의 가장 필요한 것을 얻어 생명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철학적인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독배인 죽음의 잔을 마시고 사형당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명을 받아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고 죽었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마신 잔은 죽음의 잔이었고, 그의 가르침은 후배에 철학자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고난의 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하실 때에, 그 잔은 죽음의 잔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올리브 기름을 짜는 틀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올리브 과일을 으깨어야 기름이 나오듯이, 예수님은 그곳에서 영혼의 고통을 참으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잔을 마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참여하셨던 잔은 고난과 죽음의 잔이었지만, 동일한 잔이 우리에게는 축복의 잔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마셨던 고난의 잔이 우리에게는 축복의 잔이 될 수 있는가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고전 10:16). 우리가 마시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은 외적으로는 주의 만찬에서 포도주스를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잔과 떡을 드시며 최후의 만찬을 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배에서 포도주스를 마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것을 고린도전서는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의식은 우리가 가진 믿음의 표현입니다. 의식 자체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축복을 주는 피의 잔,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왜 예수님에게는 죽음의 잔이, 우리에게는 축복의 잔이 되는 것인가요?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고 구원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은이나 금같은 세상의 가치로 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흠 없고 점 없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속이란 예수의 피 값으로 산 구원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에베소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피를 마시지 않고 살을 먹지 먹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5).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영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영생을 얻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자는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의 은혜가 흘러 넘칩니다. 찬양의 은혜를 누리기도 하고, 자녀로서 기도 응답의 축복을 누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생명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 되는 삶은 우리가 주 안에서 살아가며 영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 받은 자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즉 죄로 인하여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제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평화를 얻게 된 것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진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롬 1:18).. 이 세상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항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을 비웃고 강팎함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에 믿음으로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과 화평함으로 이러한 진노에서 피하게 되기에 축복의 잔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잔이 축복의 잔이 되는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은혜를 누리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 10:16-17).
우리는 주의 만찬을 거행하면서 잔을 마실 뿐 아니라, 떡을 떼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합니다. 떡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떡을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몸에 창자국을 남기시며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셨지만,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인 그 분의 몸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떡은 하나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임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고 했습니다. 이 한 몸인 떡에 참예하는 것이 성도의 영적인 삶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떡에 참예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 거하며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 6:56)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에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영적으로 그 분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것과 더불어 교회의 지체로서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은 교회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안에 거하는 삶은 우리가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의 수여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공급자이시고, 우리는 수여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곳이며, 그리스도의 진리와 풍성한 사랑이 가득한 곳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으로 얻는 영적인 풍성함은 세상이 주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찾으신 자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출 20:24)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는 곳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강림하시는 임재를 가져옵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 분 안에서 충만을 가져오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은 그 분안에서 성도들이 한 몸이 되어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그 분의 진리를 기뻐함으로 말씀에 아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것은 지체된 몸과 하나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함께 떡을 먹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화목제를 드린 후에 함께 희생 제물을 먹으며 기뻐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 말씀으로 교제하며 기뻐하는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힘은 영적으로 하나됨에 있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가 모여 마음을 합하여 기도했을 때에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마음을 같이하는 성도들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들은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 안에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삶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은혜를 얻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은혜는 진리의 길 위에 서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주님의 교회는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진리 위에 세워지기 위하여 교회는 성경의 진리와 바른 교훈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교회에는 주일 학생, 학생 청년, 장년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주님을 섬깁니다. 우리는 같은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며 자라갑니다. 진리를 배우며 자라가는 주일학생들부터 학생, 청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들은 진리 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 시대는 거짓이 진리인 것처럼 가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진리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우리는 진리 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복되고 소중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3서에서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3 4)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방황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즐거움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거하는 삶은 우리가 진리를 배우며 자라가게 합니다. 진리는 우리의 거룩이며 우리의 지혜이며 우리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진리대로 살아가는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과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은 그 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는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군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즉 하나님이 맡기신 교회의 청지기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보상은 천국의 영원한 상급이고, 교회를 세우는 능력은 성령이 주시는 은사와 달란트에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는 성령이 주시는 사역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4-7).
성령께서는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유익하게 하려 하시려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교회에 덕을 세우고 섬기도록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며 복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세우시기 위하여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성령의 지혜와 재능을 주셨듯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부활절 뮤지컬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을 통합하여 사용하게 되는 기회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함께 나누었고, 성도님들은 각자의 은사에 따라 헌신하며 뮤지컬이 살아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게 되어 기쁘고, 믿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을 알게 되어 감동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멀리하거나 사역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영적인 삶에서 퇴보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몸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서 주님이 맡기신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 분의 몸인 교회를 세워가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그리스도와 피와 몸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의 통로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보배로운 삶의 은혜를 놓치지 말고 참여하는 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