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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 시리즈 (3) - 교회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 (골 1: 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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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083회 작성일 19-01-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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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 시리즈 (3) - 교회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 (골 1: 24-29).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 1:27).

우리는 교회 중심으로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이나 성전 중심으로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죄를 범하여 용서를 받고자 하면 속죄제를 드렸고, 감사할 것이 있거나 헌신할 마음이 있으면 화목제나 번제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이제 구약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더 이상 구약의 제사가 우리를 구원하거나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이 새로운 몸인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며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와 교회와의 관계를 통하여 교회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발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1. 교회는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몸입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 1:24).

교회는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몸입니다.  즉, 죽어있는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 안에 생명의 능력을 불어넣으셔서 교회가 생동감이 넘치게 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의 세 가지의 비유를 통하여 분명하게 배울수가 있습니다.

첫째, 부부의 관계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한 몸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 5:31-32).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됩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자신의 반쪽 몸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엡 5:28).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몸을 양육하여 보호하기에 힘을 씁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엡 5:29-30).  우리가 자신의 몸을 돌보듯이, 주님은 자신의 몸인 교회를 양육하며 돌보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둘째,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입니다.   

주님은 자신과 교회의 비유를 포도나무에 비유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하나의 포도나무에 가지는 많이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생명의 근원이며, 가지는 포도나무를 통하여 생명력을 얻어 열매를 맺습니다.  이와같이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력을 얻어 자라며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어떤 결과를 얻을까요?  그 가지는 생명력을 잃어버려서 말라지게 됩니다.  마른 가지는 볼품이 없어서 땔감 외에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마른 가지를 모아서 불에 태우게 됩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 15:6).  가지의 생명은 포도 나무에 있습니다.  포도나무가 공급하는 양분과 수분을 통하여 생명력을 이어가며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셋째, 머리와 몸의 관계입니다.

 몸도 머리를 통하여 생명력을 얻습니다.  “ ...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5-16).  머리를 통하여 몸은 도움을 입어 생명의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그리고, 몸은 서로 뼈와 신경과 근육으로 서로 연결되어 서로를 지탱하며 자라갑니다.    몸은 죽은 몸과 살아있는 몸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은 몸을 시신이라고 합니다.  시신은 모든 세포와 신경과 장기가 죽었고 호흡이 멈추어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시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부패해지기 시작하여 썩은 냄새가 나며 심하면 벌레가 끼기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신을 땅에 묻어 장사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지만 그리스도와 분리되면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그러면, 그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사라지고 사랑과 진리가 떠나면서 세상의 가치와 철학으로 인하여 영적으로 부패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머리되신 주님을 향한 사랑을 회복하고 주님을 붙들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생명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생명력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교회의 지체로서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생명력을 얻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득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 1:27).

하나님의 비밀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비밀의 영광인 그리스도의 영광을 교회 안에 풍성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너희 안에’ 의 너희는 헬라어로 단수가 아닌 복수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한 개인이 아닌 교회로 모인 성도들 가운데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말씀하시는 것이며, 교회 안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에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라고 하셨습니다.  즉, 주님은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그들 가운데 찾아오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즉 경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모세가 호렙산의 떨기나무에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그는 신발을 벗어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한 경의를 표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반응하여 애굽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서 부르심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는 성전에서 주의 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 6:3) 라는 음성을 들으며 두려워 합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는 음성을 들으며 순종함으로 반응합니다.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8).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경외심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경외심을 갖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더구나 자신의 피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께 드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안에 거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본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8).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주의 영광을 보며 감격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각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교회로 함께 임하는 곳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더욱 하나님의 영광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교회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임재 가운데 기뻐할 수 있을까요? 

첫째,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주님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 1:7).

교회는 우리가 가는 장소나 건물이 아닙니다.  진정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입니다.  즉, 우리가 교회입니다.  우리가 교회라는 의미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영적인 생명으로 연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 연결의 의미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영적인 연합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연합의 필수사항은 교회의 등록이나 성경 공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체는 누구인가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 1:5-7).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피흘리심으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 분의 희생의 대가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이 거저 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 영광의 찬송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2-14).  우리는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에 우리는 구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되며 그 분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의 공로로 은혜를 입은 자들이 속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살아있는 증거는 영혼이 지속적으로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권능으로 죽은 영혼이 복음으로 구원받아 영혼이 살아있게 되는 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영혼이 구원받을 때에 교회가 함께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기쁨과 영광이 교회 안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 15:7)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죄인 한 명이 회개하여 구원받으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더 기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한 영혼이 복음을 듣고 기뻐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지게 됩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5:26-27).

주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그분의 몸인 교회를 세우십니다.  주님은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져서 세상의 풍조나 사탄의 공격에 흔들리지 않고 복음으로 무장하여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와같이 견고한 교회로 세워지는 비결은 말씀 위에 굳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이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5:26-27) 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십니다.  주님은 성도 각자가 말씀을 듣고 읽고 배우며 묵상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거룩하게 되어 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진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은 진리이기에 거짓을 분별하게 합니다.  사탄은 속이는 자이기에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속아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었던 것들이 결국은 불행으로 몰아가기도 하고 부패하게 하는 덫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리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가나안 땅에 이방인들이 숭배하던 바알이나 아세라 신상을 숭배하며 음란히 행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던 시대에는 우상의 죄에 빠져 하나님 보다 우상과 세상을 숭배하던 이스라엘 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진리의 말씀을 붙들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사탄과 세상의 풍조와 가치에 의하며 물들게 됩니다.  결국 마음이 부패하지고 교만해져서 육신의 생각에 의하여 지배당하게 됩니다.  사도 시대에도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사상이나 유대교 사상이 침투해 들어와 복음을 변질시키고 있었습니다.  헬라 철학에서는 영은 거룩하지만 육은 부패한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육으로 온 것을 거부하였고, 몸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거부했습니다.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영은 거룩하지만 몸은 부패했기에 육으로 죄를 짓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좋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골 2:8-9).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거하셨음을 가르치며 육체를 부인하는 자들의 가르침을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으로 거룩과 더러운 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얻게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이시기에 그 안에 거하는 자는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내적으로는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외적인 생각과 행실은 성화의 과정으로 거룩함을 배워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교회를 사랑하시기에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생각에서 거짓되고 부패한 생각을 씻어냅니다.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행실에서 교만하고 죄악된 생각을 깨닫게 하여 회개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씻어서 정화하며 거룩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영과 혼과 육을 찔러 쪼개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다고 했습니다.  “...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골 2:2-3).  그리스도안에 있는 풍성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는 곳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감취어진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있는 말씀이며 그 말씀이 곧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배워갑니다.  우리는 구약의 성막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처소로서 그리스도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성막에서 드리는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중보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배웁니다.  그 분이 단번에 피를 흘리셔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백성을 대신해서 기도하는 대제사장을 통하여 우리를 위해서 중보 기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 땅에 다시 오셔서 메시야 나라를 세우시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통치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배우고,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교회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자라가야 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비결은 그 분의 말씀을 배우며 말씀의 교제를 나누면서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역사되어지는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철저하게 신뢰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 철저한 믿음의 삶으로 살아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셋째, 주님의 공동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5-16).

주님은 그 분의 몸 가운데서 영적인 생명력으로 역사하십니다.  몸이 머리를 통하여 온 몸이 연결되듯이, 포도나무의 가지가 포도나무를 통하여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듯이, 교회는 그 분의 몸으로서 주님을 통하여 공급을 받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능력과 사랑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몸의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몸된 공동체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며 범사에 주님에까지 자라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로서 그에게서 온 몸이 서로 연결이 된 것입니다.  교회의 공동체가 사랑안에서 연합을 이룰 때에 주님은 자라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몸을 자라게 하시는데, 몸의 지체는 몸의 공동체에 연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즉, 우리의 교회가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주님은 우리의 지체들이 자라가게 하십니다.  사랑으로 연합하는 목장의 공동체가 왜 소중한가요?  주님의 지체들이 모인 곳에 머리되신 주님이 임재하셔서 그 모임 가운데 말씀과 사랑의 교제 가운데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이면 말씀과 찬양과 교제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우리 안에서 나타나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 3:16).  우리가 모일 때에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서로 가르치며 권면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말씀을 경험하는 시간으로서 몸된 지체들을 세우는 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사랑의 교제를 통하여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서로 사랑합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교회는 예배만 드리기 위하여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몸이기에 서로 연합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며, 그 안에서 서로 교제와 말씀과 찬양을 통하여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담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사랑의 교제가 없다면 각자가 경험하는 그리스도는 제한적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로 모이고 공동체로 모이는 목장에서는 풍성한 하나님의 충만함이 넘치게 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 성막을 지으시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의 성막과 예배 가운데 충만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가 생명이 되시며 머리가 되십니다.  그 분의 풍성하신 임재가 충만하게 나타나는 곳이 그 분의 몸된 교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된 지체로서 그 분의 영광을 사모하며 그리스도를 경험하며 풍성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