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시리즈 (2) - 복을 누리는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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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235회 작성일 19-01-12 17:49본문
특권 시리즈 (2) - 복을 누리는 특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창 12:2).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은 복입니다. 왜 사람들은 복을 갈망하는가요? 인간이 지은 날 부터 하나님 안에서 복을 누렸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7-28).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가지고 사람들은 땅에 충만하며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움직이는 생물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가장 큰 축복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영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 나무를 먹으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복을 얻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에덴 동산에서 즐거워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영적으로 방황하게 되고, 에덴 동산을 잃어버렸으며, 축복의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고, 양식을 얻기 위하여 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아담의 자손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였고 거룩보다는 죄를 사랑하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복이 떠나면서 결국 노아의 시대에는 홍수로 세상이 멸망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5-6). 하나님은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고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노아와 세 아들을 통하여 영광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아 도전하였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은 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의 복을 빼앗아 가시고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잃어버렸기에,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에게 복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메시야를 통하여 복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갈 3:14)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단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이 이방인에게도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누리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어떻게 누릴 수가 있을까요?
1.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영적인 복을 누릴수 있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 (창 12:4).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축복을 주십니다. 영적인 축복을 함축하자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순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갔고, 더 나아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훈련을 받으면서 믿음의 아버지로 성장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누린 복은 무엇인가요?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향하여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 12:3)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아브라함은 가장 큰 복을 차지한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누리는 것은 그에게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알았습니다.
애굽에서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를 취하려고 하자, 하나님이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또한 그랄의 아비멜렉 또한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를 취하려고 하자 하나님이 사라를 돌려 보내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으로서 아브라함의 순수성을 지켜주셨습니다. 라반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야곱으로 인하여 복을 누렸고, 보디발이 노예였던 요셉으로 인하여 복을 누렸습니다. 또한 바로와 애굽이 요셉으로 인하여 기근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400 년 후에 바로와 애굽이 이스라엘 민족을 착취하자 그 대가를 열 가지 재앙과 장자들이 죽는 재앙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누리고, 아브라함을 함부로 대하는 자는 심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삭의 쌍둥이로 태어난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야곱이 하나님의 복을 얻은 자로서 열두 아들을 낳아 열두 지파를 세우게 된 영적인 거장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의 이름을 따라서 이스라엘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하나님의 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진정한 복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소홀히 여겨 팔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넘겨 줍니다. 그리고,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얻었기에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얻게 됩니다. 야곱은 그 결과로 미움을 받아 밧단아람으로 떠나게 되고 20년간 큰 고난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 과정에서 야곱은 열두 아들을 얻어 많은 재산을 가지고 돌아오게 됩니다. 야곱은 떠나는 과정에서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6).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셨고 그의 험난한 길에서도 항상 동행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복이 야곱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다시 돌아올 때에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여 복을 얻었고, 벧엘에서 단을 쌓아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야곱의 길에는 항상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있었습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장자권은 아브라함의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복보다는, 세상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겨 장자권을 동생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을 떠나서 세일산 인 즉, 에돔 땅에 거하게 됩니다. 그곳은 약속의 땅이 아닙니다. 외형적으로 에서는 성공한 것 처럼 보였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만나러 올 때에 사백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오면서 자신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그는 거부가 되어 에돔의 산악 지역에 거하면서 살았지만 그의 인생에는 하나님 보다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에서 떠나게 됩니다. 오바댜 선지자는 에돔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그의 교만이 그들을 속였다고 했습니다.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오 1:3). 에돔은 자신의 지형을 의지하였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그들의 교만은 자신들을 스스로 속였습니다. 결국 에서의 후손인 에돔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에돔이 이스마엘의 후손인 나바티안에게 멸망하고 네게브 사막의 이두메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실 때에 에돔 사람인 헤롯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다스리게 됩니다. 세상적으로 헤롯은 에서의 후손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헤롯 대왕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하자 베들레헴의 두 살난 아기들을 모두 죽게 할 만큼 잔인한 군주였습니다. 그는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의 아들 중에서 헤롯 안디바는 침례요한의 목을 베는 불순종의 죄를 짓게 되고, 헤롯 아그립바는 사도 야고보를 처형하게 됩니다. 그들은 세상의 권력을 얻은 자였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서 멸망의 길을 걸었던 자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에서의 후손들의 비참한 최후를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행 12:23).
그러나, 하나님을 찾았던 야곱은 부족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그 복을 자손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제사장의 나라를 세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사백명을 거느린 에서가 성공한 사람이고, 열두 명의 자녀와 짐승을 거느리고 20년 만에 고향에 찾아온 야곱을 실패한 인생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한 야곱의 믿음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야곱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의 복은 자손과 후손들을 향한 아브라함의 복이었습니다. 요셉의 복은 자손들에게 임하여 그의 아들인 요셉이 애굽 나라의 총리가 되게 하였습니다. 요셉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복을 누림으로 노예의 삶이나 감옥의 삶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하나님의 큰 뜻을 성취하는 영적인 거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가 만연한 때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히스기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인생을 복되게 살아가는 비결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상과의 연합을 깨트리고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열하 18: 5-7). 히스기야 왕은 이스라엘의 우상을 깨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하나님과 연합하여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함께 하심으로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자 눈물의 기도를 보시고 살려 주셨고, 산헤드립의 185,000 명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지 하루 저녁에 모두 시체가 되게 하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다른 왕들은 바벨론 왕을 의지하고 애굽 왕을 의지하였고 우상을 의지하였지만,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형통케 하는 은혜를 누린 왕이었습니다. 당시에 호세야 선지자는 북왕국인 이스라엘을 향하여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호 4:17) 라고 했습니다. 우상과 연합한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얻어 멸망하게 되지만, 하나님과 연합한 자는 히스기야처럼 위기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연합하다는 의미는 남자와 아내가 연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처럼 온전히 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룻이 나오미를 따라서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올 때에 온전히 나오미에게 연합하게 됩니다. 살이 뼈와 연합하듯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연합하여 붙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포도나무와 가지가 연합하여 붙어 있듯이,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하여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연합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려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영적인 교제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예배 안에 임재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삶을 통하여 더욱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에서와 같이 세상적인 것을 추구한다면 결국 에돔 족속과 같이 하나님을 떠나는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연합하게 되면 결국 가인이나 에서와 같이 심판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 40년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돌보아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중심에 거하실 때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번영의 길을 갔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과 연합했을 때는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적인 삶을 더욱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는 순종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창 12:4).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창 1:27-28).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복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거하게 하신 에덴동산에 거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하나님이 주신 영생을 잃어버리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죄가 씨가 되어 가인과 아벨을 죽이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순종으로 찾아온 사망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세상은 죄가 관영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순종하는 의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로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 6:9). 노아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방주를 지어 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복을 주십니다. 아담에게 주셨던 복을 다시 노아에게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 9:1). 하나님의 복을 받았지만 그의 후손들은 시날에서 바벨탑을 쌓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하나됨의 축복을 잃어버리고 서로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흩어지게 됩니다. 순종은 축복을 가져오지만 불순종은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불순종의 죄가 들어오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하나씩 잃어버리게 합니다. 삶의 평안이 사라지고 고통이 찾아오게 됩니다. 우리의 가정에 죄가 들어오게 되면 하나됨의 은혜가 깨어지면서 분열과 다툼이 다스리게 되면서 하나됨의 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교회 안에 죄가 들어오면 하나님의 복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미움과 다툼이 다스리게 되고 분열의 아픔을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마음에 있는 불순종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순종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6-8).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순종의 조건으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기로 결단합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로 결단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 ...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 22:16-18).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였기에,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얻어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입니다. 이는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습니다.
이삭의 시대에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삭이 양식을 얻으러 애굽으로 가고자 하는 유혹을 받지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삭이 순종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의 순종을 보시고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 26:12). 이삭은 순종하기를 배웠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에 이끌려 번제로 드릴 때에 이삭은 이미 청년의 나이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목숨을 얻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물리치고 도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흉년이 들어 애굽을 가고자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거하라는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원리입니다.
순종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통로인줄 알지만, 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불순종의 길을 선택하는가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네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사람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돌아가려다가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는가요? 그들이 선택한 것은 불순종이었습니다. 왜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하여 왕의 자리를 빼앗겨야 했는가요? 그 이유는 마음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세상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영적인 교만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를 통하여 우리의 순종이 복의 통로임을 가르치십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신 30:15-16). 하나님은 우리 앞에 생명과 복과 사망과 사망과 화를 앞에 두셨습니다. 우리가 생명과 복의 길을 가는 비결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자로
살아가고 있는가요? 우리는 신명기의 말씀과 같이 구원을 받은 행복한 자의 삶을 살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 33:29).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이 우리를 돋는 방패가 되시며 대적을 물리치는 영광의 칼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잃어버리게 하며 행복과 영광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적인 축복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의 삶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창 12:2).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은 복입니다. 왜 사람들은 복을 갈망하는가요? 인간이 지은 날 부터 하나님 안에서 복을 누렸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7-28).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가지고 사람들은 땅에 충만하며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움직이는 생물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가장 큰 축복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영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 나무를 먹으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복을 얻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에덴 동산에서 즐거워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영적으로 방황하게 되고, 에덴 동산을 잃어버렸으며, 축복의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고, 양식을 얻기 위하여 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아담의 자손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였고 거룩보다는 죄를 사랑하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복이 떠나면서 결국 노아의 시대에는 홍수로 세상이 멸망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5-6). 하나님은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고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노아와 세 아들을 통하여 영광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아 도전하였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은 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의 복을 빼앗아 가시고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잃어버렸기에,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에게 복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메시야를 통하여 복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갈 3:14)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단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이 이방인에게도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누리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어떻게 누릴 수가 있을까요?
1.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영적인 복을 누릴수 있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 (창 12:4).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축복을 주십니다. 영적인 축복을 함축하자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순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갔고, 더 나아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훈련을 받으면서 믿음의 아버지로 성장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누린 복은 무엇인가요?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향하여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 12:3)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아브라함은 가장 큰 복을 차지한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누리는 것은 그에게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알았습니다.
애굽에서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를 취하려고 하자, 하나님이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또한 그랄의 아비멜렉 또한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를 취하려고 하자 하나님이 사라를 돌려 보내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으로서 아브라함의 순수성을 지켜주셨습니다. 라반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야곱으로 인하여 복을 누렸고, 보디발이 노예였던 요셉으로 인하여 복을 누렸습니다. 또한 바로와 애굽이 요셉으로 인하여 기근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400 년 후에 바로와 애굽이 이스라엘 민족을 착취하자 그 대가를 열 가지 재앙과 장자들이 죽는 재앙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누리고, 아브라함을 함부로 대하는 자는 심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삭의 쌍둥이로 태어난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야곱이 하나님의 복을 얻은 자로서 열두 아들을 낳아 열두 지파를 세우게 된 영적인 거장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의 이름을 따라서 이스라엘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하나님의 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진정한 복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소홀히 여겨 팔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넘겨 줍니다. 그리고,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얻었기에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얻게 됩니다. 야곱은 그 결과로 미움을 받아 밧단아람으로 떠나게 되고 20년간 큰 고난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 과정에서 야곱은 열두 아들을 얻어 많은 재산을 가지고 돌아오게 됩니다. 야곱은 떠나는 과정에서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6).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셨고 그의 험난한 길에서도 항상 동행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복이 야곱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다시 돌아올 때에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여 복을 얻었고, 벧엘에서 단을 쌓아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야곱의 길에는 항상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있었습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장자권은 아브라함의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복보다는, 세상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겨 장자권을 동생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을 떠나서 세일산 인 즉, 에돔 땅에 거하게 됩니다. 그곳은 약속의 땅이 아닙니다. 외형적으로 에서는 성공한 것 처럼 보였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만나러 올 때에 사백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오면서 자신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그는 거부가 되어 에돔의 산악 지역에 거하면서 살았지만 그의 인생에는 하나님 보다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에서 떠나게 됩니다. 오바댜 선지자는 에돔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그의 교만이 그들을 속였다고 했습니다.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오 1:3). 에돔은 자신의 지형을 의지하였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그들의 교만은 자신들을 스스로 속였습니다. 결국 에서의 후손인 에돔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에돔이 이스마엘의 후손인 나바티안에게 멸망하고 네게브 사막의 이두메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실 때에 에돔 사람인 헤롯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다스리게 됩니다. 세상적으로 헤롯은 에서의 후손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헤롯 대왕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하자 베들레헴의 두 살난 아기들을 모두 죽게 할 만큼 잔인한 군주였습니다. 그는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의 아들 중에서 헤롯 안디바는 침례요한의 목을 베는 불순종의 죄를 짓게 되고, 헤롯 아그립바는 사도 야고보를 처형하게 됩니다. 그들은 세상의 권력을 얻은 자였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서 멸망의 길을 걸었던 자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에서의 후손들의 비참한 최후를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행 12:23).
그러나, 하나님을 찾았던 야곱은 부족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그 복을 자손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제사장의 나라를 세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사백명을 거느린 에서가 성공한 사람이고, 열두 명의 자녀와 짐승을 거느리고 20년 만에 고향에 찾아온 야곱을 실패한 인생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한 야곱의 믿음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야곱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의 복은 자손과 후손들을 향한 아브라함의 복이었습니다. 요셉의 복은 자손들에게 임하여 그의 아들인 요셉이 애굽 나라의 총리가 되게 하였습니다. 요셉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복을 누림으로 노예의 삶이나 감옥의 삶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하나님의 큰 뜻을 성취하는 영적인 거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가 만연한 때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히스기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인생을 복되게 살아가는 비결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상과의 연합을 깨트리고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열하 18: 5-7). 히스기야 왕은 이스라엘의 우상을 깨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하나님과 연합하여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함께 하심으로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자 눈물의 기도를 보시고 살려 주셨고, 산헤드립의 185,000 명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지 하루 저녁에 모두 시체가 되게 하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다른 왕들은 바벨론 왕을 의지하고 애굽 왕을 의지하였고 우상을 의지하였지만,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형통케 하는 은혜를 누린 왕이었습니다. 당시에 호세야 선지자는 북왕국인 이스라엘을 향하여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호 4:17) 라고 했습니다. 우상과 연합한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얻어 멸망하게 되지만, 하나님과 연합한 자는 히스기야처럼 위기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연합하다는 의미는 남자와 아내가 연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처럼 온전히 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룻이 나오미를 따라서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올 때에 온전히 나오미에게 연합하게 됩니다. 살이 뼈와 연합하듯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연합하여 붙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포도나무와 가지가 연합하여 붙어 있듯이,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하여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연합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려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영적인 교제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예배 안에 임재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삶을 통하여 더욱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에서와 같이 세상적인 것을 추구한다면 결국 에돔 족속과 같이 하나님을 떠나는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연합하게 되면 결국 가인이나 에서와 같이 심판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 40년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돌보아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중심에 거하실 때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번영의 길을 갔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과 연합했을 때는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적인 삶을 더욱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는 순종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창 12:4).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창 1:27-28).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복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거하게 하신 에덴동산에 거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하나님이 주신 영생을 잃어버리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죄가 씨가 되어 가인과 아벨을 죽이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순종으로 찾아온 사망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세상은 죄가 관영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순종하는 의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로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 6:9). 노아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방주를 지어 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복을 주십니다. 아담에게 주셨던 복을 다시 노아에게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 9:1). 하나님의 복을 받았지만 그의 후손들은 시날에서 바벨탑을 쌓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하나됨의 축복을 잃어버리고 서로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흩어지게 됩니다. 순종은 축복을 가져오지만 불순종은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불순종의 죄가 들어오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하나씩 잃어버리게 합니다. 삶의 평안이 사라지고 고통이 찾아오게 됩니다. 우리의 가정에 죄가 들어오게 되면 하나됨의 은혜가 깨어지면서 분열과 다툼이 다스리게 되면서 하나됨의 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교회 안에 죄가 들어오면 하나님의 복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미움과 다툼이 다스리게 되고 분열의 아픔을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마음에 있는 불순종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순종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6-8).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순종의 조건으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기로 결단합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로 결단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 ...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 22:16-18).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였기에,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얻어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입니다. 이는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습니다.
이삭의 시대에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삭이 양식을 얻으러 애굽으로 가고자 하는 유혹을 받지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삭이 순종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의 순종을 보시고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 26:12). 이삭은 순종하기를 배웠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에 이끌려 번제로 드릴 때에 이삭은 이미 청년의 나이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목숨을 얻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물리치고 도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흉년이 들어 애굽을 가고자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거하라는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원리입니다.
순종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통로인줄 알지만, 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불순종의 길을 선택하는가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네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사람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돌아가려다가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는가요? 그들이 선택한 것은 불순종이었습니다. 왜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하여 왕의 자리를 빼앗겨야 했는가요? 그 이유는 마음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세상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영적인 교만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를 통하여 우리의 순종이 복의 통로임을 가르치십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신 30:15-16). 하나님은 우리 앞에 생명과 복과 사망과 사망과 화를 앞에 두셨습니다. 우리가 생명과 복의 길을 가는 비결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자로
살아가고 있는가요? 우리는 신명기의 말씀과 같이 구원을 받은 행복한 자의 삶을 살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 33:29).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이 우리를 돋는 방패가 되시며 대적을 물리치는 영광의 칼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잃어버리게 하며 행복과 영광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적인 축복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의 삶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