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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 시리즈(1) - 예배의 특권을 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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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652회 작성일 19-01-0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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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 시리즈(1) - 예배의 특권을 누려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 4:23-24).

2019년 신년을 맞이하며 첫 예배를 드립니다.  첫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의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인 특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란 생각을 했습니다.  새해 첫 예배의 시간에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알기를 원하고, 우리의 예배가 우리의 영적 생활의 중심에서 얼마나 소중한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예배의 특권을 누려라’ 입니다.

수가성의 여인이 주님께 묻습니다.  우리는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남 유다는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이 산도 아니라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예배할 때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 4:24) 라고 하셨습니다.  예배라고 하는 worship 은 경의의 표시로 손에 키스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페르시아와 같은 동방에서는 경의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닿는 행위를 의미했습니다.  신약에서는 경의와 순종의 표시로 무릎을 꿇거나 엎드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창조자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의 표현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의 사건을 기억함으로 유월절의 예배를 드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의 경외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1. 예배는 감사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창 8:20).

구약에서 성막이나 성전이 세워지기 전의 예배는 단을 쌓아 하나님께 헌신과 감사의 표현을 했습니다.  노아가 홍수로 인하여 인류가 심판을 받은 후에 아라랏 산에서 땅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는 처음으로 하나님께 단을 쌓아 정결한 짐승과 새를 취하여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와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보여 주시며 다시는 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아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에 오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세겜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이 약속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창 12:7).  아브라함은 땅의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에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벧엘에 이르렀을 때도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 12:8).  룻이 소돔으로 옮기나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머물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자손과 땅의 축복의 약속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이 땅을 줄 것이고,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헤브론에 거하며 그곳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창 13:18). 아브라함은 롯을 위하여 전쟁에서 이기고 난 후에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 14:18-19).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드립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리며 감사를 드리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후에 아브라함이 삼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에 이르러 그 곳에서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순종함으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예배를 통해서 예배는 순종과 헌신의 표현임을 알게 됩니다.  아들 이삭까지 드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것입니다.  이삭도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같이 이삭과 함께 함으로 복을 주어 자손을 번성케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이삭이 단을 쌓아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창 26:25).  이삭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단을 쌓아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야곱은 세겜과 벧엘에 이르렀을 때에 단을 쌓아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야곱은 세겜에서 모든 이방 신상을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에 묻고, 벧엘에 이르러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창 35:3-4).  야곱은 하나님이 단을 쌓으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함으로 벧엘에 단을 쌓았습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을 기억하며 경외심을 가지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죄로 인하여 타락한 우리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나타나사 복을 주신 하나님을 기념함으로 단을 쌓아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야곱은 험난한 세월을 보내고 가나안에 돌아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2. 예배는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 4:24).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성취하심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애굽으로부터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인도하사 가나안에 이르게 하신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출 19:5-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며 제사장의 나라로 삼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세상의 나라와 구별하여 거룩한 나라와 제사장의 나라로 삼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사장의 나라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예배는 진리 안에서 드려져야 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에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짓된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제사를 지낸 것입니다.  우리는 금송아지에게 제사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 제사하는 혼합주의의 위험성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상을 숭배하거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거짓된 신에게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숭배하던 바알을 숭배하면서 매춘 의식을 하거나 자녀를 불에 태우는 의식까지도 따르게 됩니다.  심지어 에스겔에서는 성전 안에서 여인들이 바벨론의 신인 탐무즈를 예배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탐무즈는 바벨론의 농사의 신으로서 여인들이 눈물과 음란 행위로 신을 자극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전 바깥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태양을 숭배하는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과 겸하여 섬기는 혼합주의였던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백성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어느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열상 18:21).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바알을 숭배했던 것입니다.  바알과 같은 우상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들어와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 결과로 이스라엘은 제사장의 나라의 정체성을 상실하면서 나라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진리 안에서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받으시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 길은 바로 성막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과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길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성막은 뜰과 성소와 지성소의 3 단계의 장소가 있었습니다.  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번제단에서는 제물을 하나님께 불에 태워 드리는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헌신의 의미로 소나 양의 전부를 불에 태워드렸습니다.  그리고, 죄를 범하면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양이나 송아지를 가져와 피를 성소의 향단에 뿌리고 번제단 밑에 피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동물의 기름등은 번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동물의 나머지 부분은 진 바깥에 태워 버렸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피흘려 죽으심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자신의 죄를 그리스도의 피로 씻임을 받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백성들을 대신하여 성소에서 섬기기 위하여 물두멍에서 자신의 몸을 정결하기 위하여 씻어야 했습니다.  이는 성령이 우리를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심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소에서 세 가지를 보게 됩니다.  오른쪽에는 진설병을 넣는 떡상과 좌편에는 금촛대, 그리고 중앙에는 분향단입니다.  성소는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곳입니다.  우리는 떡을 올려놓는 상에서 생명의 양식이 되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빛을 비추는 금촛대에서 세상의 빛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분향단에서 피어오르는 향에서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가며, 기도를 통하여 능력되신 하나님을 만나며, 세상의 빛되신 그리스도를 따라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장 거룩한 지성소에서 언약궤를 만나게 됩니다.  언약궤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가 든 항아리, 그리고 돌에 씌여진 십계명입니다.  언약궤의 덮개는 자비석이라고 합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속죄(atonement)라는 의미입니다.  일년에 한번씩 대제사장이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들어와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이 대제사장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지성소에서 향을 피워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워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는 너무나 거룩한 곳이어서 대제사장이라도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을수도 있었습니다.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할찌니 그리하면 그가 죽임을 면할 것이며.“ (레 16:11-13).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막에서 만나 주셨고 그 분의 영광을 보이셨습니다.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찌라.” (출 29:42-43).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했던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찢겨집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마 27:50-5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인류를 위한 속죄의 희생의 제물로 자신을 드리셔서 죽으셨습니다. 이때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던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던 천으로서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단번에 지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양이나 염소의 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성전은 더 이상 필요 없어졌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죄를 용서 받기 위하여 드리던 양이나 염소의 피가 필요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 9: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영원히 씻음을 받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그리스도안에서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참된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3. 예배는 성령의 임재 안에서 드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 4:24).

신약 시대의 예배는 성전이나 희생 제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예루살렘의 성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에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구원받고 거듭난 자안에 거하셔서 우리를 성전 삼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우리와 같이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고 성전 삼으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성전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 4:23-24).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으로 예배해야 하며 진리의 말씀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어디에서 시작하는가요?  우리의 영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영은 우리의 마음과 같습니다.  영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영은 느끼기는 어렵지만 마음은 느낄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건물에서 우상의 형태로 거하셔서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영으로 존재하시며 우리의 마음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으로 예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해져야 하며, 기도로 성령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우리가 정결한 마음과 순결한 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예배를 받으시기에,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경외심이 어떠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우리가 모일 때에 임재하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어떠한 기쁨과 경외심으로 예배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 가운데 거하십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것이라.” (시 69:30-31). 

다윗은 감사함으로 찬송하는 것을 황소를 드림보다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찬송을 기뻐하여 시편을 기록하여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대가 찬양하게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를 사랑했습니다.  다윗은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 84:4)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에 너무나 기뻐서 베옷을 입고 춤을 추었습니다.  미갈이 다윗을 업신여겼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임재의 기쁨으로 춤을 추며 하나님을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둔 장막에 아삽을 임명하여 찬양대를 세워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습니다.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그 두목은 아삽이요 ... 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 (역상 16:4-6).  다윗은 아삽을 리더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을 타고 나팔을 불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한 것입니다.  역대상에서 다윗은 레위 자손 중에서 성전에서 찬송을 맡은 사람들을 구별하여 세우게 됩니다.  “다윗이 군대 장관들로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그 직무대로 일하는 자의 수효가 이러하니라.” (역상 25:1). 그들은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찬양은 감사의 고백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피 흘리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입술로 높이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시 22:3)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 중에 거하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찬양은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임하십니다.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느 8:5).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 기간에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회당을 지어 그곳에서 말씀을 강론하였기 때문입니다.  학사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후에 백성들을 모아놓고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부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느 8:8-9).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회개와 회복의 역사로 말미암아 감격하며 울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금식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21).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 분의 뜻을 보여주셨고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 분의 섭리와 뜻을 알게 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에 진리의 말씀을 분별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의 기초가 됩니다.  초대 교회는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2) 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성전에 모이고 가정에 모일 때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은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에 그 말씀이 우리속에서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가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정으로 호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호 6:3).  하나님을 힘써 알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자신을 계시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서 말씀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마음으로 받아 아멘으로 화답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찾으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분께 감사의 기쁨으로 나아가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고자 할 때에 우리 안에서 영광 받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교회로서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찬송드렸듯이,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감사와 감격으로 예배를 드렸듯이, 이시간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쁨과 감격의 찬양으로 예배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