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혈통을 세워가라 (창 4: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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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580회 작성일 19-02-02 19:35본문
믿음의 혈통을 세워가라 (창 4:16-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4:26).
우리는 명절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만나 서로를 향한 격려와 감사, 그리고 가족으로서의 우애를 다지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만나 세배를 하며 덕담을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온 가족을 향한 영적인 통찰력을 갖고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가족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가정인가? 우리의 자녀들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지요? 아니면 세상의 풍조에 밀려 하나님을 떠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저는 오늘 제목을 ‘믿음의 혈통을 세워가라’ 입니다. 왜 우리는 믿음을 자녀들에게 전수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성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세상의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자녀들을 분리시킵니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땅에 거하였더니.” (창 4:16).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그 피조물을 기뻐하셨습니다. 그 중에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고 생기를 주셔서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가장 큰 축복은 창조주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생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그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후에 죄는 세상에 들어왔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죄는 서로를 향한 평안과 믿음을 빼앗아 갔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사람을 분리시켜서 죄인된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게 되었고, 죄는 사람의 관계에서 서로를 시기하며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고 인간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죽옷으로 아담과 하와를 입히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21).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 나무의 잎으로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감추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짐승을 잡으셔서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입히시며서 수치를 감추어 주셨습니다. 아담의 수치를 감추기 위해서 짐승이 희생된 것은 앞으로 우리의 죄를 가리우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짐승의 번제를 드리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짐승의 피가 곧 우리의 죄를 씻게 되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릴 때에 가인은 곡물로 제사를 드렸지만, 아벨은 양을 잡아서 제물을 드렸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벨은 짐승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때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다시 와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기로 아벨을 죽입니다. 아담의 죄가 자녀들간의 불화가 되고 결국 살인까지 이어지는 잔혹성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가인은 그 후에 하나님의 앞을 떠나게 됩니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땅에 거하였더니.” (창 4:16). 성경은 가인이 하나님의 앞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지으신 아담의 아들입니다. 그는 아담과 하와로부터 하나님의 창조하신 만물과 아담이 어떻게 이 땅에 존재하는지를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에덴 동산의 축복을 잃어버리고 죄의 저주로 사망에 이르고 땀을 흘려 일해야 하는 고통의 원인이 아담의 불순종임을 배웠습니다. 그러한 아담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동생을 시기로 죽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떠나 살았습니다. 죄가 가인의 생각을 마비시키고 마음을 부패하게 하며, 행실에서 어둠의 권세자인 마귀를 따르는 실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하여 유다서는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유 19) 라고 기록합니다. 육에 속한 자로서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떠난 후에 자녀를 낳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주인이 되려고 했습니다. 가인은 성을 쌓았습니다. 즉, 성을 쌓아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순종하는 길을 버리고, 자신들의 문명을 만들며 하나님 없는 성공을 꿈꾸는 것이었습니다. 라멕의 자녀들에는 야발은 육축을 치기 시작하였고, 유발은 수금과 퉁소와 같은 음악을 만들었으며, 두발가인은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어 사람을 죽이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라멕은 한 소년이 자신이 창상을 인하여 사람을 죽이고, 어린 소년이라도 자신을 상하게 해서 그 소년을 죽였다고 했습니다. 죄가 순식간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악을 행하는 모습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믿음이 전수되는 자녀가 있지만, 믿음을 떠나는 자녀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부모들이 믿음을 갖고 있으면 부모를 따라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자녀도 있지만, 믿음에서 떠나 영적으로 방황하는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노아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의인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함이 있어서 그의 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있었지만, 이스마엘과 같이 육적인 자녀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삭에게는 영적인 권세와 축복이 전수되었지만, 이스마엘은 그러한 영적인 은혜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으로 살아갔습니다. 이삭에게는 야곱과 같이 영적인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녀가 있었지만, 에서와 같이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어 장자의 명분을 팔고 이방 여인과 결혼하며 사냥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자녀가 있었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에돔이라는 지역에서 거주하며 하나님을 떠난 이방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이스라엘 민족보다 강하고 부유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순종하는 이스라엘의 축복을 따라가지 못하고 멸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교과서로 삼지 않고, 이방신을 숭배하며 음란과 악행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아담에게서 가인과 아벨이 나뉘이고, 노아에게서 셈과 야벳, 그리고 함이 나뉘이며 아브라함에게서 이삭과 이스마엘이 나뉘이며, 이삭에게서 에서와 야곱이 나뉘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안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과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세상에 속한 자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믿음안에서 살아가는 자녀들로 인하여 크게 기뻐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요삼 3-4). 우리는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함으로 즐거움을 누리는 믿음의 가정을 세워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2. 믿음의 혈통은 예배에서 시작합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4:26).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그의 의로움으로 인하여 죄가 가득한 가인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아벨의 순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지만, 세상의 상징인 가인으로부터는 미움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도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 15:18-19).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에 가인이 아벨을 미워한 것 처럼 우리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께 속했음의 증거는 어디에서 시작하는가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예배인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와 여호와께서 우리의 하나님 되심을 높이 찬양하는 것입니다. 아벨이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그는 어린 양의 피를 흘리는 제사를 통하여 다시 오실 메시야를 향한 믿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셋을 낳고 셋이 에노스를 낳은 후에 비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4:26). 가인과 그의 후손들이 성을 쌓고 살인 기계를 만들며 음악을 위한 악기를 만들며 자신들이 중심이 되는 삶을 선택할 때에, 셋과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즉, 셋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삼백년을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데려가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구원을 얻었고, 홍수 이후에 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창 8:20). 노아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은 그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는 정결한 짐승과 새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자신의 소중한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드린 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소중한 것을 드림으로 자신의 소유보다 하나님이 더욱 소중하신 분임을 보여주는 마음의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을 드려 하나님께 드림으로 예배하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물질보다 하나님이 더욱 소중하신 분임을 보여주는 마음의 표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순종하여 나아갔으며, 그 믿음을 따라서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창 12:7).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가나안의 세겜에 이르러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것은 그의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셋의 혈통은 믿음의 혈통입니다. 그 혈통에서 노아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거장들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시내산에 강림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그들의 예배를 위하여 성막을 짓고 제사를 드리며, 거룩한 제사장의 중보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원리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 25:2) 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성소에서 이스라엘을 만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이스라엘은 피의 제사를 통하여 거룩함을 입고 나아와야 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거룩함을 입고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구별된 이스라엘은 예배하는 민족으로 부르셨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해야 하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 4:23-24).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시며 흠향하십니다.
천국에서는 쉬지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십 사 장로들과 네 생물이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했습니다.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4:10-11).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천국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의 모형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모든 믿는 자의 특권이며 책임입니다. 우리는 온 가족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분께 예배하는 믿음의 가족이 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이삭이 아브라함과 함께 모리아 산에서 자신을 번제로 드렸듯이,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가정으로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3. 믿음의 혈통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 5:24).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이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세상에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영을 주심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에녹은 믿음의 혈통을 따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삶은 삼백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들림을 받았습니다. 이는 우리 믿는 자가 주님이 오실 때에 죽음을 통하지 않고 휴거될 것에 대한 예언적인 메시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17).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안에 거하는 믿음의 자녀들은 에녹과 같이 천국의 소망을 얻는 은혜를 얻게 합니다. 에녹은 셋의 혈통으로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며 죄가 관영한 삶을 선택할 때에, 에녹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동행하는 믿음의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에녹은 죄가 세상에 관영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녹은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습니다. 므두셀라는 969 년을 살았고 세상에서 가장 장수한 사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거의 천년을 살았던 장수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왜 무드셀라는 이와같이 장수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그의 이름에서 하나님의 예언적인 메시지를 보게 됩니다. 므두셀라의 뜻은 ‘창을 든 자’ 라는 뜻입니다. 또한 무트는 심판, 죽음을 의미하며, 살라트는 보낸다라는 뜻입니다. 므두셀라 라는 이름의 뜻은 므두셀라를 보내면 이 세상에 심판이 있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창을 든 자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창을 든 자는 부족을 이끌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서 창을 든 자가 죽으면 그 부족은 멸망하는 것입니다. 즉, 무드셀라가 죽으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에녹은 무드셀라를 보면서, 무드셀라가 죽는 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죄에 동화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노아에게 은혜를 주셔서 방주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대한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의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고 하나님께 은혜를 입게 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 6:8). 노아가 믿음의 거장으로 방주를 예비하게 됨으로 그의 자녀들과 며느리들까지 모두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무드셀라가 969 년을 향수하고 죽게 되자, 하나님은 이 땅에 홍수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었지만, 믿음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홍수로부터 구원받는 은혜를 얻게 하셨습니다.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창 7:23). 하나님께서는 방주를 예비하게 하심으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를 예비함으로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순종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비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와같이 믿음의 혈통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자녀들에게 전달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가정에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그 분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전달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구원의 복과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누리는 은혜들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순종을 배움으로 믿음 안에 자라갔습니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을 배움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자녀들에게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녀일지라도 말씀에서 떠나면 저주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자녀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시 128:1, 3-4)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함으로 온 가족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4:26).
우리는 명절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만나 서로를 향한 격려와 감사, 그리고 가족으로서의 우애를 다지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만나 세배를 하며 덕담을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온 가족을 향한 영적인 통찰력을 갖고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가족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가정인가? 우리의 자녀들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지요? 아니면 세상의 풍조에 밀려 하나님을 떠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저는 오늘 제목을 ‘믿음의 혈통을 세워가라’ 입니다. 왜 우리는 믿음을 자녀들에게 전수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성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세상의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자녀들을 분리시킵니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땅에 거하였더니.” (창 4:16).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그 피조물을 기뻐하셨습니다. 그 중에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고 생기를 주셔서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가장 큰 축복은 창조주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생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그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후에 죄는 세상에 들어왔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죄는 서로를 향한 평안과 믿음을 빼앗아 갔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사람을 분리시켜서 죄인된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게 되었고, 죄는 사람의 관계에서 서로를 시기하며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고 인간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죽옷으로 아담과 하와를 입히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21).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 나무의 잎으로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감추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짐승을 잡으셔서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입히시며서 수치를 감추어 주셨습니다. 아담의 수치를 감추기 위해서 짐승이 희생된 것은 앞으로 우리의 죄를 가리우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짐승의 번제를 드리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짐승의 피가 곧 우리의 죄를 씻게 되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릴 때에 가인은 곡물로 제사를 드렸지만, 아벨은 양을 잡아서 제물을 드렸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벨은 짐승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때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다시 와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기로 아벨을 죽입니다. 아담의 죄가 자녀들간의 불화가 되고 결국 살인까지 이어지는 잔혹성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가인은 그 후에 하나님의 앞을 떠나게 됩니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땅에 거하였더니.” (창 4:16). 성경은 가인이 하나님의 앞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지으신 아담의 아들입니다. 그는 아담과 하와로부터 하나님의 창조하신 만물과 아담이 어떻게 이 땅에 존재하는지를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에덴 동산의 축복을 잃어버리고 죄의 저주로 사망에 이르고 땀을 흘려 일해야 하는 고통의 원인이 아담의 불순종임을 배웠습니다. 그러한 아담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동생을 시기로 죽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떠나 살았습니다. 죄가 가인의 생각을 마비시키고 마음을 부패하게 하며, 행실에서 어둠의 권세자인 마귀를 따르는 실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하여 유다서는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유 19) 라고 기록합니다. 육에 속한 자로서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떠난 후에 자녀를 낳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주인이 되려고 했습니다. 가인은 성을 쌓았습니다. 즉, 성을 쌓아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순종하는 길을 버리고, 자신들의 문명을 만들며 하나님 없는 성공을 꿈꾸는 것이었습니다. 라멕의 자녀들에는 야발은 육축을 치기 시작하였고, 유발은 수금과 퉁소와 같은 음악을 만들었으며, 두발가인은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어 사람을 죽이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라멕은 한 소년이 자신이 창상을 인하여 사람을 죽이고, 어린 소년이라도 자신을 상하게 해서 그 소년을 죽였다고 했습니다. 죄가 순식간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악을 행하는 모습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믿음이 전수되는 자녀가 있지만, 믿음을 떠나는 자녀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부모들이 믿음을 갖고 있으면 부모를 따라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자녀도 있지만, 믿음에서 떠나 영적으로 방황하는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노아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의인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함이 있어서 그의 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있었지만, 이스마엘과 같이 육적인 자녀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삭에게는 영적인 권세와 축복이 전수되었지만, 이스마엘은 그러한 영적인 은혜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으로 살아갔습니다. 이삭에게는 야곱과 같이 영적인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녀가 있었지만, 에서와 같이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어 장자의 명분을 팔고 이방 여인과 결혼하며 사냥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자녀가 있었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에돔이라는 지역에서 거주하며 하나님을 떠난 이방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이스라엘 민족보다 강하고 부유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순종하는 이스라엘의 축복을 따라가지 못하고 멸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교과서로 삼지 않고, 이방신을 숭배하며 음란과 악행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아담에게서 가인과 아벨이 나뉘이고, 노아에게서 셈과 야벳, 그리고 함이 나뉘이며 아브라함에게서 이삭과 이스마엘이 나뉘이며, 이삭에게서 에서와 야곱이 나뉘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안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과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세상에 속한 자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믿음안에서 살아가는 자녀들로 인하여 크게 기뻐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요삼 3-4). 우리는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함으로 즐거움을 누리는 믿음의 가정을 세워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2. 믿음의 혈통은 예배에서 시작합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4:26).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그의 의로움으로 인하여 죄가 가득한 가인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아벨의 순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지만, 세상의 상징인 가인으로부터는 미움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도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 15:18-19).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에 가인이 아벨을 미워한 것 처럼 우리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께 속했음의 증거는 어디에서 시작하는가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예배인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와 여호와께서 우리의 하나님 되심을 높이 찬양하는 것입니다. 아벨이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그는 어린 양의 피를 흘리는 제사를 통하여 다시 오실 메시야를 향한 믿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셋을 낳고 셋이 에노스를 낳은 후에 비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4:26). 가인과 그의 후손들이 성을 쌓고 살인 기계를 만들며 음악을 위한 악기를 만들며 자신들이 중심이 되는 삶을 선택할 때에, 셋과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즉, 셋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삼백년을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데려가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구원을 얻었고, 홍수 이후에 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창 8:20). 노아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은 그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는 정결한 짐승과 새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자신의 소중한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드린 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소중한 것을 드림으로 자신의 소유보다 하나님이 더욱 소중하신 분임을 보여주는 마음의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을 드려 하나님께 드림으로 예배하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물질보다 하나님이 더욱 소중하신 분임을 보여주는 마음의 표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순종하여 나아갔으며, 그 믿음을 따라서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창 12:7).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가나안의 세겜에 이르러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것은 그의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셋의 혈통은 믿음의 혈통입니다. 그 혈통에서 노아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거장들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시내산에 강림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그들의 예배를 위하여 성막을 짓고 제사를 드리며, 거룩한 제사장의 중보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원리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 25:2) 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성소에서 이스라엘을 만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이스라엘은 피의 제사를 통하여 거룩함을 입고 나아와야 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거룩함을 입고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구별된 이스라엘은 예배하는 민족으로 부르셨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해야 하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 4:23-24).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시며 흠향하십니다.
천국에서는 쉬지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십 사 장로들과 네 생물이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했습니다.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4:10-11).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천국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의 모형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모든 믿는 자의 특권이며 책임입니다. 우리는 온 가족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분께 예배하는 믿음의 가족이 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이삭이 아브라함과 함께 모리아 산에서 자신을 번제로 드렸듯이,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가정으로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3. 믿음의 혈통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 5:24).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이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세상에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영을 주심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에녹은 믿음의 혈통을 따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삶은 삼백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들림을 받았습니다. 이는 우리 믿는 자가 주님이 오실 때에 죽음을 통하지 않고 휴거될 것에 대한 예언적인 메시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17).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안에 거하는 믿음의 자녀들은 에녹과 같이 천국의 소망을 얻는 은혜를 얻게 합니다. 에녹은 셋의 혈통으로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며 죄가 관영한 삶을 선택할 때에, 에녹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동행하는 믿음의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에녹은 죄가 세상에 관영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녹은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습니다. 므두셀라는 969 년을 살았고 세상에서 가장 장수한 사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거의 천년을 살았던 장수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왜 무드셀라는 이와같이 장수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그의 이름에서 하나님의 예언적인 메시지를 보게 됩니다. 므두셀라의 뜻은 ‘창을 든 자’ 라는 뜻입니다. 또한 무트는 심판, 죽음을 의미하며, 살라트는 보낸다라는 뜻입니다. 므두셀라 라는 이름의 뜻은 므두셀라를 보내면 이 세상에 심판이 있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창을 든 자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창을 든 자는 부족을 이끌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서 창을 든 자가 죽으면 그 부족은 멸망하는 것입니다. 즉, 무드셀라가 죽으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에녹은 무드셀라를 보면서, 무드셀라가 죽는 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죄에 동화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노아에게 은혜를 주셔서 방주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대한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의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고 하나님께 은혜를 입게 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 6:8). 노아가 믿음의 거장으로 방주를 예비하게 됨으로 그의 자녀들과 며느리들까지 모두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무드셀라가 969 년을 향수하고 죽게 되자, 하나님은 이 땅에 홍수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었지만, 믿음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홍수로부터 구원받는 은혜를 얻게 하셨습니다.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창 7:23). 하나님께서는 방주를 예비하게 하심으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를 예비함으로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순종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비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와같이 믿음의 혈통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자녀들에게 전달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가정에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그 분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전달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구원의 복과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누리는 은혜들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순종을 배움으로 믿음 안에 자라갔습니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을 배움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자녀들에게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녀일지라도 말씀에서 떠나면 저주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자녀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시 128:1, 3-4)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함으로 온 가족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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