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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시리즈(5) - 관계가 거룩해야 한다 (레 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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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712회 작성일 19-11-0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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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시리즈(5) - 관계가 거룩해야 한다 (레 19장)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느 여호와니라.”(레 19:18).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거룩한 관계’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거룩에서 도덕성과 윤리를 분리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관계란 하나님의 의에 기초한 관계입니다. 거룩한 관계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실천되어지는 세상과 구별되어지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에게 거룩의 의미는 삶의 전 영역이 하나님의 말씀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거룩이란 에센파처럼 사회와 결별하여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부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윤리적인 가치는 십계명입니다. 주님은 십계명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요약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사랑에 대한 계명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간음하거나 살인하거나 도적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롬 13:9)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율법의 수많은 규율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 안에서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구별된 거룩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거룩한 사랑은 아가페와 같이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는 레위기 19장을 통하여 거룩한 관계의 실천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1. 부모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레위기 19장은 거룩의 첫 번째 원리로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레 19:3)라는 말씀을 제시합니다. 이는 거룩은 가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경외하라’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헌신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부모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를 순종하며 공경하기를 배운 자녀들이, 성장한 후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됩니다. 십계명의 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며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켜야 할 거룩한 행실입니다.

  아무리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자부하여도, 육신의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지 않는 것은 거룩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레위기 19장 3절의 말씀으로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다음과 같이 책망하셨습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막 7:11-12).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려진 ‘성물’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말씀의 배경에는 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할 유대인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빙자하여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완악함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부모님을 공경해야 할 재물을 하나님께 드려진 ‘고르반’이라고 하고는 그 재물로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재물이 있는 사람들이 부패한 제사장에게서 하나님께 드렸다는 거짓 문서를 발급받아 부모에게는 자신이 하나님께 드렸기에 부모님을 섬길 필요가 없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도 드리지 않으면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도 회피하려고 ‘성물’의 참된 의미를 악용했습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듯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님을 사랑한다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경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에서 흘러나오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십계명은 1계명에서 4계명까지 하나님과의 관계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외에 우상을 두거나 만들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아야 하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출 20:1-11).

  레위기 19장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를 위하여 지켜야 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3).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거룩을 향한 첫번째 의무라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영적인 우선 순위가 되어야 했습니다. “...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3). 안식일은 모세 언약의 증거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하게 지켜야 할 날이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육일간 세상을 창조하시고 칠일째에 쉼을 가지신 것에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일곱번 날을 구별하여 거룩한 날로 정했기에, 이스라엘의 거룩한 백성들은 안식일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육체적인 쉼을 가져야 했습니다.

        신약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새언약의 시대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의 첫날을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주일은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받도록 자신을 드리는 날로 정해야 합니다.

        칙필 에이라는 회사는 창업주인 트루엣 캐티 회장과 댄 캐티 현 사장 등이 모두 침례교 소속의 크리스천이며 전 매장은 일요일에 문을 닫고 직원들은 교회에 출석한다고 합니다.  또한 반동성혼 입장을 고수해오면서 전미 동성애 협회의 격렬한 시위가 매장 앞에서 벌어지는 소동도 있었지만, 현재 총1800개 체인을 갖고 연간 평균 50여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칙필에이 창업주는 성경적인 가치를 사업에 적용하여 햄버거 매장임에도 주일에는 문을 닫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업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둘째, 올바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3-4). 

      십계명의 1계명과 2계명은 우상을 두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우상을 만들지 말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를 거부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거룩한 성전에만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은 동물과 같은 피조물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영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화목제 희생을 열납되도록 드려야 합니다. “너희는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열납되도록 드리고.”(레 19:5).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들 중에서 화목제를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와 서원과 같은 자발적인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자발적인 제사를 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드려져야 합니다. 희생 제물이 흠이 없어야 하며, 제물은 드리는 날이나 이튿날까지 먹어야 했습니다. 삼일 째는 가증한 것이 되어 그것을 먹는 자는 가증한 자가 되어 죄가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와야 하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순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의 시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32).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삶은 지혜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조차도 거룩해서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자는 죽음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하게 자신을 구별하여 그 분을 예배하며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8). 거룩은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에 대하여 레위기는 다음의 사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가난한 자와 의지할 곳 없는 타국인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구제를 큰 가치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힘없는 자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살아갈 힘이 없는 자들은 고대 시대에는 과부와 고아, 그리고 타국인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할 때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며 감사해야 했고, 두 번째는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밭 모퉁이의 곡물을 남겨두거나 포도열의 열매를 다 따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남겨두어야 했습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9-10).

    가난한 사람이나 타국인은 추수할 땅이 없기에 다른 사람을 의존해야 했습니다. 룻기는 보아스가 레위기 19장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은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추수 때에 밭에 떨어진 이삭을 주우러 오자 종들에게 이삭을 다 거두지 말고 룻을 위하여 남겨 드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신의 밭에서 곡식을 줍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둘째, 사회적인 약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거룩은 장애인들과 같은 사회적인 약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4).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사랑은 거룩의 본질입니다. 귀먹은 자를 저주하는 것은 귀먹은 자를 함부로 또는 가볍게 대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존경의 반대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셨는데, 아브라함에게 함부로 하는 자를 하나님이 저주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와같이 귀먹은 자라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아 넘어지게 하는 것도 사랑으로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귀먹은 자를 향하여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소경의 길에 장애물을 놓아 넘어지지 않게 할 것입니다.

  셋째, 사람들을 진실하게 대해야 합니다.

    거룩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구별된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행실이란 다른 사람을 향하여 진실과 정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6계명에서 10계명에서 언급되었듯이 다른 사람을 향하여 지켜야 할 선을 다음과 같이 넘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 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1-12).

    성도의 거룩한 삶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직과 진실에서 나타내어야 합니다. 도적질은 거짓된 행동이며, 속이며 거짓말 하는 것, 거짓 맹세하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압살롬은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하며 속여서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습니다. 압살롬의 거짓된 입술과 행동은 하나님의 거룩을 떠나 사탄의 죄로 자신을 무장한 것입니다. 게하시의 거짓된 입술은 탐심에 눈이 어두워 나아만 장군을 속여 보석과 의복을 일시적으로 취했지만, 결국 문둥병이 되어 평생을 지내야 했습니다. 성도가 거룩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함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넷째, 이익을 위하여 불의를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고통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인도하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그들은 애굽의 불의한 압제를 당했기에,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힘을 얻으면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불의를 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모든 사람을 향하여 불의를 행하지 말아야 하며 공평하게 이익을 얻어야 했습니다.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35-36).

  거룩은 불의한 방법으로 이익을 얻지 않는 것입니다. 거룩은 품군의 삯을 아침까지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거룩은 공평한 저울을 사용하여 장사할 때에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얻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나 부자나 차별하지 않으시고 공의로 재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가난한 자의 편을 들거나 세력 있는 자라도 비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해야 했습니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않으며,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책망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거룩한 삶은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여 비방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7-18). 거룩한 삶은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미움이 찾아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미움을 버려야 합니다. 거룩한 삶은 마음의 상처나 관계에서 찾아오는 분노의 감정을 절제하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4. 자신의 거룩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첫째, 세상과 구별된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레위기는 가축이나 종자를 섞어 교합하거나 뿌리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두 재료로 직조한 옷도 입지 못하게 했습니다. “너희는 네 규례를 지킬찌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부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찌며.”(레 19:19). 이는 하나님이 낮과 밤을 구별하시고 피조물을 종류별로 구별하신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방인들과 구별된 백성임을 보여주시도록 삶의 전 영역에서 구별됨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음식의 정결법이 폐지되었듯이 육축이나 두 종자를 섞어 뿌리는 것은 단지 상징적인 의미로 남게 되었습니다. 두 종자나 씨앗을 섞지 않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세워져야 하며 세상의 철학이나 풍속과 구별되어야 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었기에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은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이방인의 풍속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사울과 같이 무당을 찾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기에 금해야 합니다.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채 먹지 말며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며.”(레 19:26). 이방인들은 죽을 자를 애도할 때에 살을 칼로 베는 의식이 있었기에 그러한 일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29). 몸에 문신을 하는 행위도 하나님이 금하셨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행하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몸을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거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거룩은 노인을 공경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32). 센 머리는 노인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노인 앞에서 일어나 존중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는 것은 마음으로 존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거룩한 행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성의 거룩함을 지켜야 합니다.

  거룩은 성적인 순결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방 나라들은 성적으로 방종하거나 무분별한 삶을 허용했습니다. 가나안은 소돔이 있던 땅으로서 아브라함의 때에 성적인 타락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바알이나 아세라 우상을 숭배할 때는 풍요를 위해서 딸들이 신전의 기생으로 일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네 딸을 더럽혀 기생이 되게 말라 음풍이 전국에 퍼져 죄악이 가득할까 하노라.”(레 19:29)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노예라도 정혼한 여인과 행음하면 두 사람이 형벌을 받았습니다(레 19:20). 성적인 죄에 대하여 레위기 18장 전체를 성적인 관계에서 거룩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적인 죄는 땅이 더러워져 땅이 더러워진 사람을 토한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 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레 18:24-25). 고린도전서는 죄는 몸 밖에서 있지만 음행은 자기 몸에게 범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기에 거룩해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기에 음란을 피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기에 음란은 거룩을 훼손하는 큰 죄입니다.

  거룩은 세상과 구별된 삶입니다. 우리의 구별된 것은 세상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은 세상에서 떨어져 고립된 삶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거룩이란 삶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공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거룩이란 하나님의 의로움을 모든 삶의 영역에서 표현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차별화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이 우리에게 있기에 그 분의 거룩함이 우리를 통하여 표현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별된 삶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