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좌절감으로 인생이 무너질 때 (애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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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3,362회 작성일 19-08-03 15:02본문
큰 좌절감으로 인생이 무너질 때 (애 3장)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 당한 자는 내로다 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 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 자주 나를 치시도다.” (애 3:1-2).
여러분의 세상이 무너질때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여러분이 오늘날 병원에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직장에서 어느 날 사무실로 오라고 하더니, 해고라는 말을 듣습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여러분이 무엇을 하시나요? 어느날 사고를 당하여 그동안 준비했던 미래의 계획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될 때에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천 오백년 전에 했던 질문들인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인생에서 이스라엘의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나라는 경제적인 위기를 겪게 되었고, 그의 땅은 외국군에 의하여 황폐화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땅에 와서 백성들을 잡아 다른 나라의 노예로 삼기 위해서 끌고 갔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종류의 고통을 목격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고, 사람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 예레미야는 두 개의 책을 기록합니다. 하나는 예레미야이고, 다른 하나는 예레미야 애가서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서는 영어로는 lamentation입니다. 이 단어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데, 고대영어로는 “불평하다.” 의 뜻입니다. 애가의 뜻은 불평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내려놓게 되는 것을 회개하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불평을 내려놓는 것은 lamenting 즉, 애가가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서는 문자 그래로 예레미야가 하나님을 향한 불평의 책인 것입니다. 이 책은 3장에서 우리의 세상이 무너질때에 어떻게 인생을 다시 세우며, 계획이 무너질 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가 배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여섯 가지의 단계를 가지고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아직 튼튼한 삶을 살아가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날 이러한 메시지가 필요할 것입니다. 인생은 항상 여러분에게 편안하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인생이 깨어짐으로 인하여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만나기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계획이 무너지게 될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고 나누고자 하는 첫 번째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의 좌절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애 3:1-10).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 당한 자는 내로다 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 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 자주 나를 치시도다.” (애 3:1-2).
우리의 좌절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은 것이 첫 번째 시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토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며, 자신의 슬픔과 분노와 두려움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향하여 담대하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저는 저의 인생에 일어나는 일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에 너무나 지쳤습니다. 당신은 저를 너무 어렵게 하시네요.”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당한 자는 내로다 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 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 자주 나를 치시도다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를 껶으셨고 담즙(bitterness)과 수고(hardship)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나로 흑암에 거하게 하시기를 죽은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나를 둘러 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을 막으사 내 첩경을 굽게 하셨도다.” (애 3:1-9).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고통이 모두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왔다고 불평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자신과 민족이 고통을 당했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애가서의 말씀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불평과 같은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러한 말씀을 성경에 포함시키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분노와 좌절과 슬픔을 다스릴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서는 예레미아의 고통을 토로하는 책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정을 토로하지 않으면, 우리는 고통의 감정을 자신의 몸에 발산하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의 분노를 삼키게 되면, 우리의 위는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감정과 좌절을 삼키게 되면, 우리는 이것을 자신의 몸으로 받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의 몸에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고통이 위로 가거나, 허리로 가게 되고, 어떤 사람은 뇌로 가기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고통이 가슴으로 가게 되면서, 그곳에 통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시며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평을 토로하며 자신의 아픔을 가지고 나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17-18절은, “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고통으로 인하여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끊어졌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이 무너질 때에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십니다. 이러한 회복의 시작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좌절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많은 것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서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삶에 찾아오는 문제들에 대하여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찾아오는 감정적인 좌절감을 이해하시고 사랑으로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2.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애 3:22-24).
우리는 자신의 고통이나 문제, 그리고 어려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의 눈에 하나님이 원망스럽게 느껴지더라도,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고통에 시선을 집중하는 한, 우리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19-26절에서,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과 재난은 쑥과 담즙과 같이 몹시도 쓴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내 마음이 그것을 계속 기억하니 낙심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그에게 고통의 기억은 쓴 독과 같았습니다. 쓴 것은 자신을 해치는 독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쓴 마음을 가지고 있거나, 미워하거나, 분노하게 되면, 그 독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해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해치는 상처이며 독이 되는 것입니다. 그 독은 자신을 삼키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고통과 재난을 기억하면서, 오히려 크게 낙심이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쓴 뿌리가 있는 한 낙심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하며 마음에서 보내게 될 때만이, 우리는 낙심을 극복하며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쓴 마음은 자신을 상처 안에 가두는 것이며, 결국은 좌절과 낙심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것이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고통을 더욱 생각할수록, 그는 더욱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됩니다.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1). 그는 자신에게 소망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그의 인생은 무너졌는데, 어떻게 희망을 회복하나요? 그는 한 가지를 기억하자, 자신에게 희망이 찾아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애 3:22-24). 그는 먼저 하나님의 영원하신 자비와 긍휼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삶이 어떠한 고통을 통과할지라도, 우리의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기에, 우리를 신실하게 도우시며 늘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게 됩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소유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 되시기에 낙심하지 않고 새로운 소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돌보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고통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31-33). 하나님은 우리가 근심을 당하게 하시나, 그 분의 풍성한 자비와 긍휼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가 늘 고난받기를 좋아하는 분이라고 잘못 인식합니다. 마치 어떤 종교에서는 자신들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고행하며 자신의 육체를 학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늘 고통해야 하며 금식해야 하고, 자신의 삶을 늘 비참하게 하는 것이 영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대신 져주시며, 우리가 행복하고 기뻐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통과할 때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나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슬퍼하며 신음하십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잃어 슬퍼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슬퍼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고통당하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무너져 내릴 때에, 우리는 자신의 좌절을 하나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잠잠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입을 티끌에 댈찌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찌로다.” (애 3:28-29).
우리가 인생에서 위기를 겪은 후에 새롭게 하는 세 번째 단계는 하나님께 나아가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잠잠하며 기다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다림의 시간은 영적인 훈련이며 습관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위기에서 하나님 앞에 잠잠히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로 더 큰 위기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흥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 안에 있는 분노의 감정을 보내는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인생의 스트레스가 많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는 것은 어떠한 뜻인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앉아 잠잠히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매일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을 Q.T. 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마음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3장 28-29절은,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입을 티끌에 댈찌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찌로다.”고 했습니다. 즉, 우리의 인생이 무겁고 견디기 어려울 때면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즉, 입을 열지 말고 기도하면 주께서 소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우리의 소망이 나타나도록 기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잠잠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기다리면,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마음에 느껴지며 그 분이 하시고자 하시는 뜻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소망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홀로 대면하는 시간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인생에서 그 시간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방해를 제거하고, 하나님 앞에서 침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경건의 시간을 갖기를 도전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10분이나 20분을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는 시간을 얻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25절에서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며 구할 때, 하나님께서 선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이 나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인생을 스스로 세우려고 하기보다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릴 때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적군과 싸울 때에 병사들은 기다립니다. 적군이 전진해 올 때에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리며 총을 겨눕니다. 명령이 떨어지면 총을 쏘기 시작합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기다리면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명령이 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기다림이 승리의 비결이며, 소망의 원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모든 선한 일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4. 우리가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애 4:40).
우리는 인생에서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부모님을 바꿀 수도 없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에서 바꿀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장애가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면, 그것 또한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순복의 원리입니다.
마음의 평안은 우리가 인생에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때에 비로서 찾아옵니다. 만일 우리가 남은 여생을 이러한 것과 싸운다면,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이란 이러한 환경에 의하여 낙심하지 않고 사실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그러한 것들로 낙심하지 않을거야.” 우리가 변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변할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무엇이 변할 수 있는가요? 우리의 인생이 무너졌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누군가와 헤어졌고, 누군가가 죽고, 직장을 잃는 아픔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변할 수 있나요?
우리가 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를 변화시킬 수 없고, 직장의 상사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변화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인생이 무너지고 있지만, 내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우리는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 자신에 대한 정직한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정직한 평가를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대인관계에서의 평가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자녀들과의 관계도 얼마나 성경적이며 원만한지를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도덕적인 평가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손상시키는 습관이나 상처 등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무너지게 하는 죄가 없는 지도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점검하여, 자신의 인생에서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애가서 3장 40절은,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조사하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생활, 자신의 도덕생활, 내면세계와 자신의 습관 등 많은 것들을 점검하면서 자신을 변화키실 수가 있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이 무너지고, 계획한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때에, 우리는 슬픔과 분노, 좌절 감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감정들을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위험한 감정은 바로 두려움의 감정입니다.
두려움은 자신을 불구로 만들어 버립니다. 슬픔은 우리를 불구로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마음은 우리의 삶을 불구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앉고 살아갑니다.
예레미야는 삶에서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볼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적대감 속에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는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은 그의 메시지가 싫어서,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왜냐하면, 관원들이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구덩이에 물과 진흙이 있었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고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구덩이의 바닥에서 넘쳐나는 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사람들이 돌을 던졌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53-57절에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희가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짐이여 물이 내 머리에 넘치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 (애 4:53-57).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두려워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두려움의 감정이 있다면, 모두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에, 우리는 두려움의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감정이 상하거나, 화를 내거나, 의심하거나,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에서 365 번이나, “두려워 말라.” 고 하십니다.
5. 우리는 하나님께 두려움이 사라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 (애 3: 56-57).
예레미야는 이렇게 했습니다.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 (애 3: 56-57).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이 사라지도록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시 34:4).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을 이기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을 때에 떠나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두려워해야 할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두려워할 수 있는 많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수술대에 누워 있다면, 두려움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업이 큰 위기를 만나게 되면, 우리는 두려움이 감정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 안에 감추어진 두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떠한 두려움을 주어 우리로 하여금 소망이 없게 하고, 좌절감을 갖게 할지라도,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며 새롭게 할 수 있는 인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스스로 회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최고의 날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다면, 여러분은 잘못된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회복의 사역을 하시며,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하시며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주님과 함께 새롭게 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6. 우리는 주님이 인생을 회복시키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애 5:21).
우리는 예레미야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애 5:2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도록 기대할 때에, 주님은 우리의 날을 새롭게 하시고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하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무너지고 큰 마음의 고통이 찾아온 다 할지라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도우시며 인도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새롭게 나아가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 당한 자는 내로다 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 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 자주 나를 치시도다.” (애 3:1-2).
여러분의 세상이 무너질때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여러분이 오늘날 병원에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직장에서 어느 날 사무실로 오라고 하더니, 해고라는 말을 듣습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여러분이 무엇을 하시나요? 어느날 사고를 당하여 그동안 준비했던 미래의 계획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될 때에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천 오백년 전에 했던 질문들인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인생에서 이스라엘의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나라는 경제적인 위기를 겪게 되었고, 그의 땅은 외국군에 의하여 황폐화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땅에 와서 백성들을 잡아 다른 나라의 노예로 삼기 위해서 끌고 갔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종류의 고통을 목격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고, 사람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 예레미야는 두 개의 책을 기록합니다. 하나는 예레미야이고, 다른 하나는 예레미야 애가서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서는 영어로는 lamentation입니다. 이 단어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데, 고대영어로는 “불평하다.” 의 뜻입니다. 애가의 뜻은 불평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내려놓게 되는 것을 회개하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불평을 내려놓는 것은 lamenting 즉, 애가가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서는 문자 그래로 예레미야가 하나님을 향한 불평의 책인 것입니다. 이 책은 3장에서 우리의 세상이 무너질때에 어떻게 인생을 다시 세우며, 계획이 무너질 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가 배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여섯 가지의 단계를 가지고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아직 튼튼한 삶을 살아가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날 이러한 메시지가 필요할 것입니다. 인생은 항상 여러분에게 편안하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인생이 깨어짐으로 인하여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만나기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계획이 무너지게 될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고 나누고자 하는 첫 번째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의 좌절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애 3:1-10).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 당한 자는 내로다 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 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 자주 나를 치시도다.” (애 3:1-2).
우리의 좌절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은 것이 첫 번째 시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토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며, 자신의 슬픔과 분노와 두려움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향하여 담대하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저는 저의 인생에 일어나는 일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에 너무나 지쳤습니다. 당신은 저를 너무 어렵게 하시네요.”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당한 자는 내로다 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 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 자주 나를 치시도다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를 껶으셨고 담즙(bitterness)과 수고(hardship)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나로 흑암에 거하게 하시기를 죽은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나를 둘러 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을 막으사 내 첩경을 굽게 하셨도다.” (애 3:1-9).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고통이 모두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왔다고 불평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자신과 민족이 고통을 당했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애가서의 말씀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불평과 같은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러한 말씀을 성경에 포함시키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분노와 좌절과 슬픔을 다스릴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서는 예레미아의 고통을 토로하는 책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정을 토로하지 않으면, 우리는 고통의 감정을 자신의 몸에 발산하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의 분노를 삼키게 되면, 우리의 위는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감정과 좌절을 삼키게 되면, 우리는 이것을 자신의 몸으로 받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의 몸에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고통이 위로 가거나, 허리로 가게 되고, 어떤 사람은 뇌로 가기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고통이 가슴으로 가게 되면서, 그곳에 통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시며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평을 토로하며 자신의 아픔을 가지고 나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17-18절은, “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고통으로 인하여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끊어졌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이 무너질 때에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십니다. 이러한 회복의 시작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좌절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많은 것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서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삶에 찾아오는 문제들에 대하여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찾아오는 감정적인 좌절감을 이해하시고 사랑으로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2.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애 3:22-24).
우리는 자신의 고통이나 문제, 그리고 어려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의 눈에 하나님이 원망스럽게 느껴지더라도,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고통에 시선을 집중하는 한, 우리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19-26절에서,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과 재난은 쑥과 담즙과 같이 몹시도 쓴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내 마음이 그것을 계속 기억하니 낙심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그에게 고통의 기억은 쓴 독과 같았습니다. 쓴 것은 자신을 해치는 독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쓴 마음을 가지고 있거나, 미워하거나, 분노하게 되면, 그 독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해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해치는 상처이며 독이 되는 것입니다. 그 독은 자신을 삼키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고통과 재난을 기억하면서, 오히려 크게 낙심이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쓴 뿌리가 있는 한 낙심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하며 마음에서 보내게 될 때만이, 우리는 낙심을 극복하며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쓴 마음은 자신을 상처 안에 가두는 것이며, 결국은 좌절과 낙심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것이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고통을 더욱 생각할수록, 그는 더욱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됩니다.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1). 그는 자신에게 소망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그의 인생은 무너졌는데, 어떻게 희망을 회복하나요? 그는 한 가지를 기억하자, 자신에게 희망이 찾아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애 3:22-24). 그는 먼저 하나님의 영원하신 자비와 긍휼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삶이 어떠한 고통을 통과할지라도, 우리의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기에, 우리를 신실하게 도우시며 늘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게 됩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소유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 되시기에 낙심하지 않고 새로운 소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돌보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고통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31-33). 하나님은 우리가 근심을 당하게 하시나, 그 분의 풍성한 자비와 긍휼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가 늘 고난받기를 좋아하는 분이라고 잘못 인식합니다. 마치 어떤 종교에서는 자신들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고행하며 자신의 육체를 학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늘 고통해야 하며 금식해야 하고, 자신의 삶을 늘 비참하게 하는 것이 영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대신 져주시며, 우리가 행복하고 기뻐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통과할 때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나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슬퍼하며 신음하십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잃어 슬퍼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슬퍼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고통당하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무너져 내릴 때에, 우리는 자신의 좌절을 하나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잠잠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입을 티끌에 댈찌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찌로다.” (애 3:28-29).
우리가 인생에서 위기를 겪은 후에 새롭게 하는 세 번째 단계는 하나님께 나아가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잠잠하며 기다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다림의 시간은 영적인 훈련이며 습관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위기에서 하나님 앞에 잠잠히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로 더 큰 위기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흥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 안에 있는 분노의 감정을 보내는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인생의 스트레스가 많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는 것은 어떠한 뜻인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앉아 잠잠히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매일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을 Q.T. 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마음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3장 28-29절은,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입을 티끌에 댈찌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찌로다.”고 했습니다. 즉, 우리의 인생이 무겁고 견디기 어려울 때면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즉, 입을 열지 말고 기도하면 주께서 소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우리의 소망이 나타나도록 기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잠잠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기다리면,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마음에 느껴지며 그 분이 하시고자 하시는 뜻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소망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홀로 대면하는 시간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인생에서 그 시간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방해를 제거하고, 하나님 앞에서 침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경건의 시간을 갖기를 도전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10분이나 20분을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는 시간을 얻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25절에서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며 구할 때, 하나님께서 선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이 나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인생을 스스로 세우려고 하기보다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릴 때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적군과 싸울 때에 병사들은 기다립니다. 적군이 전진해 올 때에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리며 총을 겨눕니다. 명령이 떨어지면 총을 쏘기 시작합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기다리면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명령이 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기다림이 승리의 비결이며, 소망의 원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모든 선한 일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4. 우리가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애 4:40).
우리는 인생에서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부모님을 바꿀 수도 없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에서 바꿀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장애가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면, 그것 또한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순복의 원리입니다.
마음의 평안은 우리가 인생에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때에 비로서 찾아옵니다. 만일 우리가 남은 여생을 이러한 것과 싸운다면,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이란 이러한 환경에 의하여 낙심하지 않고 사실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그러한 것들로 낙심하지 않을거야.” 우리가 변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변할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무엇이 변할 수 있는가요? 우리의 인생이 무너졌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누군가와 헤어졌고, 누군가가 죽고, 직장을 잃는 아픔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변할 수 있나요?
우리가 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를 변화시킬 수 없고, 직장의 상사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변화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인생이 무너지고 있지만, 내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우리는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 자신에 대한 정직한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정직한 평가를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대인관계에서의 평가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자녀들과의 관계도 얼마나 성경적이며 원만한지를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도덕적인 평가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손상시키는 습관이나 상처 등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무너지게 하는 죄가 없는 지도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점검하여, 자신의 인생에서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애가서 3장 40절은,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조사하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생활, 자신의 도덕생활, 내면세계와 자신의 습관 등 많은 것들을 점검하면서 자신을 변화키실 수가 있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이 무너지고, 계획한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때에, 우리는 슬픔과 분노, 좌절 감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감정들을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위험한 감정은 바로 두려움의 감정입니다.
두려움은 자신을 불구로 만들어 버립니다. 슬픔은 우리를 불구로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마음은 우리의 삶을 불구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앉고 살아갑니다.
예레미야는 삶에서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볼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적대감 속에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는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은 그의 메시지가 싫어서,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왜냐하면, 관원들이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구덩이에 물과 진흙이 있었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고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구덩이의 바닥에서 넘쳐나는 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사람들이 돌을 던졌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53-57절에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희가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짐이여 물이 내 머리에 넘치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 (애 4:53-57).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두려워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두려움의 감정이 있다면, 모두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에, 우리는 두려움의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감정이 상하거나, 화를 내거나, 의심하거나,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에서 365 번이나, “두려워 말라.” 고 하십니다.
5. 우리는 하나님께 두려움이 사라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 (애 3: 56-57).
예레미야는 이렇게 했습니다.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 (애 3: 56-57).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이 사라지도록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시 34:4).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을 이기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을 때에 떠나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두려워해야 할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두려워할 수 있는 많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수술대에 누워 있다면, 두려움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업이 큰 위기를 만나게 되면, 우리는 두려움이 감정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 안에 감추어진 두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떠한 두려움을 주어 우리로 하여금 소망이 없게 하고, 좌절감을 갖게 할지라도,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며 새롭게 할 수 있는 인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스스로 회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최고의 날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다면, 여러분은 잘못된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회복의 사역을 하시며,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하시며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주님과 함께 새롭게 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6. 우리는 주님이 인생을 회복시키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애 5:21).
우리는 예레미야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애 5:2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도록 기대할 때에, 주님은 우리의 날을 새롭게 하시고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하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무너지고 큰 마음의 고통이 찾아온 다 할지라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도우시며 인도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새롭게 나아가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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