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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15) - 예배의 영광은 오직 그리스도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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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13회 작성일 25-12-2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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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15) - 예배의 영광은 오직 그리스도께로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 11:3).

고린도전서 11-14장은 예배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예배의 질서를 가르치고, 예배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며 예배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성막을 완성했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했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의 집인 것입니다.

영광은 히브리어로 카보드로서 ‘무겁다, 중요하다, 존귀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존재는 우리 안에서 가벼운 분이 아니라 무겁고 중요하며 존귀한 분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의미는, 하나님을 최고로 존귀하게 여기며 그 분을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를 위한 영적인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예배’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같이 자신을 본받는 자 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자신과 같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변화되는 삶을 영적 삶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사도 바울의 영적인 목표였던 것입니다.

‘본받는다’는 영어로 말하면 mimic 으로서 모방하다. 본을 따르다 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순종의 태도와 겸손, 자신을 비우시는 인격을 배우며 따라가려고 힘썼던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자신과 같이 그리스도를 지속적으로 본받아 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받는 자 라는 의미는 ‘계속해서 되어 가라’는 형성 과정을 의미합니다. “너희는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느냐?” 라고 질문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그리스도가 예배를 드리듯이, 우리의 찬양의 자세, 말씀을 듣는 자세, 그리고 예배의 질서를 존중하는 태도 등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는 영적인 시간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사도 바울의 교훈인 유전을 잘 지키고 있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고전 11:2).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바울이 가르쳐준 예배에 대한 교훈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칭찬하면서, 그들이 놓치고 있는 예배의 질서와 방향에 대하여 다시 바로 잡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배가 누구를 위해서 드리는 가를 질서를 통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 11:3). 사도 바울은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머리의 의미는 억압이나 통제가 아니라, 질서와 권위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머리는 영광이 흘러가는 방향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궁극적인 목적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머리가 하나님이신 것은, 그리스도의 열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순종하시고 그 분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습은 그리스도가 겸손하셔서 종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대속의 죽음을 담당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우리를 향하여 종이 되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배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본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를 단지 의식에 참여하는 이벤트로 간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앞에서 그 분의 말씀을 배우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같이 우리도 낮아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비우셨듯이, 우리도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되심과 같이 우리도 종의 마음을 가진 겸손한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를 배워가는 것이 예배의 참된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힘쓰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요? 그리고 그 분께 영광이 되고자 힘써 찬양하고, 그 분의 말씀에 아멘하고 있는지요?

2.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는 ‘공동체를 세우는 질서의 예배’입니다.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고전 11:4).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를 위해서는 덕이 되어야 하고, 질서가 지켜져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함부러 떠들거나 잡담하는 행위는 예배의 거룩과 영광을 헤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평가하려는 자세를 갖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누워서 잠을 자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꺼내어 읽는 다고 한다면,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4-10절에서 반복해서 쓰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욕되게’입니다. 4정은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고전 11:4)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배 중에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을 문제 삼습니다. 예언을 하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거나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신데, 머리에 무엇을 쓰는 것은 권위의 상징인 그리스도를 가리우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당시의 할레 로마 문화에서는 제사장이나 황제 숭배자들이 제사 때 머리르 가리고 의식을 진행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남자들도 기도할 때에 머리를 가리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는 고린도 교회가 이방 종교와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가 혼합된 모습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배할 때에 남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은 나는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있고 자신의 영광이 주님이심을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 시에 모자를 쓰고 안쓰고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선시하는가 아니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자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고전 11:5). 당시의 고린도 사회에서 머리를 가린 여성은 정숙하고 질서 안에 있는 여성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머리를 가리지 않은 여성을 부정하거나 성적으로 문란함을 상징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방 신전의 여사제가 그러한 경우였습니다. 그러므로 머리를 벗는 여성이 주는 메시지는 부도덕함을 증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사회적으로 이러한 시각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그리스도안에서의 자유를 주장하며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배에서 이러한 모습은 영적 질서를 무너트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배에서 남자는 머리를 쓰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하고, 여자는 머리에 씀으로 하나님의 질서를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6절에서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으려거든 차라리 깍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부끄럽거든 머리에 쓰고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의 시대적인 문화를 존중함으로 그리스도인의 예배가 질서를 무너트리는 일이 없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으로서 머리에 마땅히 ㅆ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질서를 통하여 남자로부터 여자가 나왔음을 강조하며,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하와가 돋는 베필로 지어진 질서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거나 높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여자가 남자들보다 열등하거나 종속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실 때에 다른 역할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질서가 있고, 그 질서를 존중하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찌니라.”(고전 11:10)라고 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 여자가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두는 것은, 우리의 예배에는 천사들이 함께 하는 영적인 예배를 드림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우리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천사들도 동참하여 함께 하는 예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권세 아래 있음을 머리에 쓰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적용이 권세 아래 있는 표로 머리에 두건을 쓰는 것은 우리의 문화에는 맞지 않습니다. 아마도 조선 시대에는 여자들이 외출할 때에 머리에 쓰고 얼굴을 가리고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자들이 권세 아래 있는 표는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질서 아래서 주님을 섬기고, 주님께서 세우신 영적인 권위 아래서 순종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나 여자 모두는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있어서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의 권위에 순종하고, 교회에서는 영적인 권위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배에서 섬기는 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 아래 있는 자로서 그리스도가 세우신 질서 안에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교회가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세상에 복음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웃음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품위와 질서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예배의 시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3.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는 서로를 존중하는 한 몸됨을 우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고전 11:11).

사도 바울은 교회 에서의 질서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협력과 화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영적인 리더와 따르는 자의 관계는 경쟁이나 지배가 아니라, 서로 의지하며 협력하는 관계인 것입니다.

예배는 혼자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배는 특정한 세대나 남자나 여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한 몸이 되어 드리는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고전 11:11)라고 했습니다. 예배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남녀 노소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으로 찬양하며 말씀 가운데 아멘 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전 11:12).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셔서 살을 입히셔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모든 남자는 어머니로부터 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모두가 한 몸으로 하나가 되어 드리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억압당하거나 무시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됨을 이룬 영적인 가족이며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이와같이 차별이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연합의 원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바울이 강압적으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스스로 분별할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가 머리에 쓴 것 없이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가? 라고 묻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 당시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 옳은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의 긴 머리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고전 11:14). 로마와 헬라 문화권에 있던 고린도에서 남자의 긴 머리는 방탕하고 우상 제사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즉 누군가가 긴 머리를 가지고 교회에서 예배하면 그는 방탕하고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상징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긴 머리가 있는 여자는 그 머리가 영광이 되고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고전 11:15).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영광으로 덮으셨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들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여자는 하나님이 입히신 영광이 그 머리를 통해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이 그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찌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고전 11;16)라고 했습니다. 이는 교회에서 논쟁하려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논쟁하고 다툼으로 분열하려는 자들을 향하여 교회에는 이러한 문제들로 논쟁하는 곳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한 몸이 되어 예배를 드리는 것이 논쟁함으로 분열하는 것보다 더욱 소중한 가치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머리에 무엇을 써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의 말씀은 예배를 통하여 누구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를 묻습니다. 우리의 예배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하여 주님의 희생과 겸손, 그리고 자기를 비우시는 모습을 배우며 그 분의 형상을 닮아가는 과정에 있다면 그것이 주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며 한 몸으로 드려지는 예배인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는 교회가 영적인 질서안에서 권위를 존중하며 순종하는 모습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 가운데 주님께서 임재하시며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