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 - 이스라엘의 실패가 거울이 되게 하라 (고전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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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97회 작성일 25-12-06 21:08본문
고린도전서 (13) - 이스라엘의 실패를 거울로 삼는 지혜 (고전 10장)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1-12).
거울 치료라는 심리학적인 용어가 있습니다. 거울 치료는 거울을 통해 자기 모습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감정과 행동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즉, 나와 똑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을 보면서, 저게 바로 내 모습이구나 하고 깨닫고 반성하는 과정을 거울 치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내가 나의 모습을 볼 수 없기에,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얼굴의 화장을 고치거나 흐트러진 의복을 단정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나와 같은 성향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교정해 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저도 한때는 형제들의 연약한 모습을 보면서 저의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형제는 성향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부모님이나 자녀의 연약한 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성향을 가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연약함을 고쳐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두 번이나 거울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 10:6).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악한 일로 멸망을 받은 것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저희가 행한 악을 되풀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1). 저희가 행한 일로 인하여 멸망을 받았는데, 이런 일이 거울이 되어 우리가 경계하도록 기록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실패를 통해서 우리가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거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행한 악은 우상 숭배와 음행,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한 네 가지의 죄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이 자신에게 있는지 거울을 보듯이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모습을 보고 거울 앞에 선 오늘의 나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주는 유혹을 이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스라엘의 실패를 거울로 삼기 위하여 그들이 행한 악이 무엇인지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시는지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는 이스라엘의 악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 10:6).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택하신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셔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누렸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우상과 음행, 시험과 원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민족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자손의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그들이 했던 악한 일을 따라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이스라엘 자손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고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1-4).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를 향하여 믿음의 조상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누렸던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구름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갔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심으로 애굽의 군대로부터 보호하신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모세의 인도 아래 한 공동체가 되어 구름 아래서 홍해를 건넌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로 그리스도께 속했듯이, 그들은 모세의 인도 아래서 홍해를 건너며 하나님께 속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공급을 받았습니다.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3-4). 신령한 식물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이고, 신령한 음료는 르비딤의 반석에서 나온 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먹이시고 입히시게 하신 분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큰 은혜를 입은 이스라엘 자손이었지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그들을 기뻐하지 않으셔서 광야에서 멸망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 10:5). 이스라엘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광야에서 대부분이 시체가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은 자라고 할지라도, 앞으로의 삶이 자동으로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 거울 또는 본보기가 되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 10:6). 거울이 된다는 의미는 우리가 이스라엘의 실패를 보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도 이스라엘 자손처럼 잘못된 길로 가면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사도 바울은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라고 하며 악한 길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거울로 삼아야 할 이스라엘의 실패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첫 번째 악은 우상 숭배입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10:7).
이 사건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한 것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 십계명과 율법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산 위에 오래 있다 보니 백성들이 불안해 하다가 우상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을 만들라.”
아론이 금귀고리를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출 32:4).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를 금송아지 우상에게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우상을 돌일시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출 32:6)고 했습니다. 제물을 드리고 먹고 마시는 것은 제사 후에 잔치하는 것으로 종교적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뛰노는 것은 방탕하게 즐기는 것으로 술과 성적 문란이 섞인 종교적 파티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뛰노는 것은 그냥 즐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우상에게 제사한 후에 먹고 마시며 뛰어노는 종교적인 행사였습니다. 즉 그들이 먹고 마시고 뛰어 노는 중심에는 우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라고 경고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도시는 많은 신전이 있었고 그 신전에서 사람들이 우상에게 제사하며 먹고 마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상의 식탁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우상 숭배의 한 모습으로 사도 바울은 간주했습니다. 비록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았더라도, 우상이 있는 신전에서 먹고 마시는 것도 우상 숭배로 간주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우상의 유혹은 무엇인가요? 우리도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만 자칫하면 돈을 숭배하거나 성공을 숭배하고 때로는 쾌락이나 자신을 숭배하는 죄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자칫하면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유흥 문화에 참여하거나 음란한 콘텐츠에 빠져 살아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의 축제에 참여해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는 행위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자리는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쾌락이 되기에 자칫하면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축제에 가서 같이 춤을 추고 마시고 노는 것은 쾌락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의 모습입니다.
두 번째 악은 음행입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고전 10:8).
이 사건은 민수기 25장에서 바알 브올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을 숭배하고 모압 여자들과 음행한 죄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40년 간의 광야 생활을 마무리할 때에 요단강 근처인 모압 평지에 머물게 됩니다. 이때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압 여자들의 유혹에 빠져 바알을 숭배하고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민 25: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을 숭배하고 모압 여인과 음행한 죄에 대하여 진노하셨습니다.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명이나 되었습니다. 민수기는 이만 사천명으로 기록했고, 사도 바울은 그 날에 이만 삼천 명이라고 했습니다. 그 차이는 사도 바울은 그 날에 죽은 자를 기록했고, 민수기는 그 염병으로 죽은 자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죄는 바알 숭배와 연결된 음행의 문제에서 무너진 것입니다. 단순히 육체적인 음행을 넘어서 영적인 음행까지 결부된 음행이었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크셨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여전히 성적으로 타락한 문화에 관대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전 창기와의 성적인 관계를 문화라는 이름으로 허용하고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도 바알 숭배와 연관된 음행으로 이만 삼천명이 죽임을 당했거든, 너희들도 하나님의 경고를 기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이 거울이 되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행의 죄에서 완전히 떠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희와 같이 음행하지 말자.” 세상은 오늘날 음행에 대하여 관대하지만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과 같이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음행은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서 교회 전체에 영향을 주는 심각한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자신의 영과 몸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외로움이나 쾌락의 욕구를 음행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대신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우상 숭배의 형태입니다. 우상 숭배와 음행은 함께 가는 어두움의 유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을 멀리할 뿐 아니라, 음행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자손처럼 음행으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러한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할 수 없기에,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지키며 음행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을 깨끗하게 지켜가야 합니다.
세 번째 악은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고전 10:9).
이 말씀은 민수기 21장 불뱀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에돔 땅을 돌아가자 백성이 지치고 마음이 상하게 되었습니다. “...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민 21:4).
그들은 하나님을 이렇게 원망합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민 21:5).
이스라엘 자손은 왜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셔서 자신들의 삶을 어렵게 하느냐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보내어 주신 물과 만나에 대하여 가볍게 여기고 도리어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민 21:6).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불뱀에 물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그들이 보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 21:8). 하나님의 말씀대로 뱀에게 물려 죽어 가던 자들이 놋뱀을 쳐다본즉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을 언급하며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고전 10:9)라고 했습니다. 시험하다는 것은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의심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테스트하려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므리바에서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하여 하나님을 시험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선하시고 능력이 있으신지, 더 나아가 나를 사랑하시는지 의심하고 하나님을 도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살아 계시거나 나를 사랑하신다면, 저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합니다. 그 기도가 응답이 안되면 하나님께 불순종하거나 반항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광야의 고된 길로 입술로 불평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큰 죄로 여기시고 죽음으로 심판하셨습니다. 뱀을 보내셔서 그들의 불평에 대한 죄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세상의 삶이 힘들고, 세상의 문화 즉 우상이나 음행의 죄를 끊기가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손해를 보면서 믿음의 길을 가야 하나 라고 의심하는 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손해만 보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이런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시험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광야의 길로 걸어가는 이스라엘 자손과 같이 힘든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원망합니다. “왜 내 인생은 이렇게 힘들기만 하지?” “왜 하나님은 지금의 상황을 바꿔주시지 않을까?”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의 상황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길입니다. 지금 우리의 길이 마음에 안 들어도, 삶의 환경이 이해가 안 되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악은 원망입니다.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 10).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에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배고프면 원망하고 갈증나도 원망했습니다. 원망이라는 말은 입으로 투덜 거리거나 불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에서 원망을 계속해서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한 원망은 민수기 14장과 16장이 배경이 되는 사건입니다. 민수기 14장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을 정탐한 후에 보고를 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빼고는 모두 부정적으로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은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 14:2-3).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그들의 원망대로 인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 하나님께서는 들으신 대로 그대로 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16장은 고라의 반역과 회중의 원망이 나오는 사건입니다. 고라와 그와 함께 하는 자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다가 땅이 갈라져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땅이 그 입을 여러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 여호아께로서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 오십인을 소멸하였더라.”(민 16:32, 35).
이 사건이 일어난 후에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하고.”(민 16:41).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염병을 보내셔서 심판하셨습니다. 성경은 “고라의 자손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일만 사천 칠백명이었더라.”(민 16:49)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10)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원망은 광야에서 죽음을 겪게 되는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들이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성도를 향하여도 “너희는 저희와 같이 멸망하지 말라.” 고 가르쳤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원망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사도권에 대하여 불평하기도 했고, 시기와 질투로 분쟁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원망하지 말고 감사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망을 우상 숭배와 음행,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같은 같은 죄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원망은 가벼운 죄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죄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원망은 환경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찾아올 때에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네 가지 죄 가운데 여러분의 마음에 가장 강하게 밀려오는 유혹은 무엇인가요?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늘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 앞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2. 이스라엘의 영적인 실패가 거울이 되게 해야 합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11).
사도 바울은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1-12)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행한 악한 일과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에게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계가 되어 이러한 일을 거울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를 깨우시고 경고하시는 교훈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오래 믿었고 신앙의 연륜도 있어서 세상의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영적인 자만에 빠진 것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자손을 40년간 이끈 지도자였지만 분을 내어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육신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항상 우상 숭배와 음행, 시험과 원망이라는 네 가지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자만이 무너지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유혹으로부터 지키시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시험과 유혹을 당하곤 합니다. 우리는 공통적으로 같은 시험과 유혹,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겪는 시험을 아시고 통제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시험이 찾아오면 피할 길을 예비하셔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우상 숭배의 유혹이 찾아올 때, 말씀과 기도로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피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음행의 유혹이 찾아올 때에, 유혹을 주는 환경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열린 믿음의 식구들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제목을 찾아 입으로 고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험을 만날 때에 말씀으로 인도하시거나 믿음의 사람으로 권면하십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환경을 바꿔 주시거나 생각을 바꾸셔서 능히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능히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의 실패는 단지 성경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거울입니다. 이 거울 앞에서 우리의 우상, 음행, 시험, 원망의 모습이 있는지 자신을 돌아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시험 중에도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이 시대에 넘어지는 자가 아니라 시험을 이기는 자로 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1-12).
거울 치료라는 심리학적인 용어가 있습니다. 거울 치료는 거울을 통해 자기 모습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감정과 행동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즉, 나와 똑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을 보면서, 저게 바로 내 모습이구나 하고 깨닫고 반성하는 과정을 거울 치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내가 나의 모습을 볼 수 없기에,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얼굴의 화장을 고치거나 흐트러진 의복을 단정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나와 같은 성향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교정해 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저도 한때는 형제들의 연약한 모습을 보면서 저의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형제는 성향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부모님이나 자녀의 연약한 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성향을 가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연약함을 고쳐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두 번이나 거울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 10:6).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악한 일로 멸망을 받은 것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저희가 행한 악을 되풀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1). 저희가 행한 일로 인하여 멸망을 받았는데, 이런 일이 거울이 되어 우리가 경계하도록 기록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실패를 통해서 우리가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거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행한 악은 우상 숭배와 음행,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한 네 가지의 죄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이 자신에게 있는지 거울을 보듯이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모습을 보고 거울 앞에 선 오늘의 나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주는 유혹을 이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스라엘의 실패를 거울로 삼기 위하여 그들이 행한 악이 무엇인지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시는지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는 이스라엘의 악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 10:6).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택하신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셔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누렸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우상과 음행, 시험과 원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민족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자손의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그들이 했던 악한 일을 따라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이스라엘 자손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고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1-4).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를 향하여 믿음의 조상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누렸던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구름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갔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심으로 애굽의 군대로부터 보호하신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모세의 인도 아래 한 공동체가 되어 구름 아래서 홍해를 건넌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로 그리스도께 속했듯이, 그들은 모세의 인도 아래서 홍해를 건너며 하나님께 속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공급을 받았습니다.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3-4). 신령한 식물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이고, 신령한 음료는 르비딤의 반석에서 나온 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먹이시고 입히시게 하신 분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큰 은혜를 입은 이스라엘 자손이었지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그들을 기뻐하지 않으셔서 광야에서 멸망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 10:5). 이스라엘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광야에서 대부분이 시체가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은 자라고 할지라도, 앞으로의 삶이 자동으로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 거울 또는 본보기가 되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 10:6). 거울이 된다는 의미는 우리가 이스라엘의 실패를 보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도 이스라엘 자손처럼 잘못된 길로 가면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사도 바울은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라고 하며 악한 길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거울로 삼아야 할 이스라엘의 실패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첫 번째 악은 우상 숭배입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10:7).
이 사건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한 것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 십계명과 율법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산 위에 오래 있다 보니 백성들이 불안해 하다가 우상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을 만들라.”
아론이 금귀고리를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출 32:4).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를 금송아지 우상에게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우상을 돌일시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출 32:6)고 했습니다. 제물을 드리고 먹고 마시는 것은 제사 후에 잔치하는 것으로 종교적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뛰노는 것은 방탕하게 즐기는 것으로 술과 성적 문란이 섞인 종교적 파티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뛰노는 것은 그냥 즐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우상에게 제사한 후에 먹고 마시며 뛰어노는 종교적인 행사였습니다. 즉 그들이 먹고 마시고 뛰어 노는 중심에는 우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라고 경고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도시는 많은 신전이 있었고 그 신전에서 사람들이 우상에게 제사하며 먹고 마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상의 식탁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우상 숭배의 한 모습으로 사도 바울은 간주했습니다. 비록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았더라도, 우상이 있는 신전에서 먹고 마시는 것도 우상 숭배로 간주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우상의 유혹은 무엇인가요? 우리도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만 자칫하면 돈을 숭배하거나 성공을 숭배하고 때로는 쾌락이나 자신을 숭배하는 죄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자칫하면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유흥 문화에 참여하거나 음란한 콘텐츠에 빠져 살아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의 축제에 참여해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는 행위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자리는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쾌락이 되기에 자칫하면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축제에 가서 같이 춤을 추고 마시고 노는 것은 쾌락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의 모습입니다.
두 번째 악은 음행입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고전 10:8).
이 사건은 민수기 25장에서 바알 브올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을 숭배하고 모압 여자들과 음행한 죄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40년 간의 광야 생활을 마무리할 때에 요단강 근처인 모압 평지에 머물게 됩니다. 이때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압 여자들의 유혹에 빠져 바알을 숭배하고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민 25: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을 숭배하고 모압 여인과 음행한 죄에 대하여 진노하셨습니다.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명이나 되었습니다. 민수기는 이만 사천명으로 기록했고, 사도 바울은 그 날에 이만 삼천 명이라고 했습니다. 그 차이는 사도 바울은 그 날에 죽은 자를 기록했고, 민수기는 그 염병으로 죽은 자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죄는 바알 숭배와 연결된 음행의 문제에서 무너진 것입니다. 단순히 육체적인 음행을 넘어서 영적인 음행까지 결부된 음행이었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크셨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여전히 성적으로 타락한 문화에 관대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전 창기와의 성적인 관계를 문화라는 이름으로 허용하고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도 바알 숭배와 연관된 음행으로 이만 삼천명이 죽임을 당했거든, 너희들도 하나님의 경고를 기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이 거울이 되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행의 죄에서 완전히 떠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희와 같이 음행하지 말자.” 세상은 오늘날 음행에 대하여 관대하지만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과 같이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음행은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서 교회 전체에 영향을 주는 심각한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자신의 영과 몸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외로움이나 쾌락의 욕구를 음행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대신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우상 숭배의 형태입니다. 우상 숭배와 음행은 함께 가는 어두움의 유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을 멀리할 뿐 아니라, 음행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자손처럼 음행으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러한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할 수 없기에,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지키며 음행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을 깨끗하게 지켜가야 합니다.
세 번째 악은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고전 10:9).
이 말씀은 민수기 21장 불뱀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에돔 땅을 돌아가자 백성이 지치고 마음이 상하게 되었습니다. “...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민 21:4).
그들은 하나님을 이렇게 원망합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민 21:5).
이스라엘 자손은 왜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셔서 자신들의 삶을 어렵게 하느냐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보내어 주신 물과 만나에 대하여 가볍게 여기고 도리어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민 21:6).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불뱀에 물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그들이 보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 21:8). 하나님의 말씀대로 뱀에게 물려 죽어 가던 자들이 놋뱀을 쳐다본즉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을 언급하며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고전 10:9)라고 했습니다. 시험하다는 것은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의심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테스트하려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므리바에서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하여 하나님을 시험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선하시고 능력이 있으신지, 더 나아가 나를 사랑하시는지 의심하고 하나님을 도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살아 계시거나 나를 사랑하신다면, 저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합니다. 그 기도가 응답이 안되면 하나님께 불순종하거나 반항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광야의 고된 길로 입술로 불평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큰 죄로 여기시고 죽음으로 심판하셨습니다. 뱀을 보내셔서 그들의 불평에 대한 죄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세상의 삶이 힘들고, 세상의 문화 즉 우상이나 음행의 죄를 끊기가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손해를 보면서 믿음의 길을 가야 하나 라고 의심하는 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손해만 보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이런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시험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광야의 길로 걸어가는 이스라엘 자손과 같이 힘든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원망합니다. “왜 내 인생은 이렇게 힘들기만 하지?” “왜 하나님은 지금의 상황을 바꿔주시지 않을까?”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의 상황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길입니다. 지금 우리의 길이 마음에 안 들어도, 삶의 환경이 이해가 안 되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악은 원망입니다.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 10).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에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배고프면 원망하고 갈증나도 원망했습니다. 원망이라는 말은 입으로 투덜 거리거나 불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에서 원망을 계속해서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한 원망은 민수기 14장과 16장이 배경이 되는 사건입니다. 민수기 14장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을 정탐한 후에 보고를 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빼고는 모두 부정적으로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은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 14:2-3).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그들의 원망대로 인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 하나님께서는 들으신 대로 그대로 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16장은 고라의 반역과 회중의 원망이 나오는 사건입니다. 고라와 그와 함께 하는 자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다가 땅이 갈라져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땅이 그 입을 여러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 여호아께로서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 오십인을 소멸하였더라.”(민 16:32, 35).
이 사건이 일어난 후에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하고.”(민 16:41).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염병을 보내셔서 심판하셨습니다. 성경은 “고라의 자손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일만 사천 칠백명이었더라.”(민 16:49)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10)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원망은 광야에서 죽음을 겪게 되는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들이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성도를 향하여도 “너희는 저희와 같이 멸망하지 말라.” 고 가르쳤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원망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사도권에 대하여 불평하기도 했고, 시기와 질투로 분쟁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원망하지 말고 감사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망을 우상 숭배와 음행,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같은 같은 죄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원망은 가벼운 죄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죄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원망은 환경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찾아올 때에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네 가지 죄 가운데 여러분의 마음에 가장 강하게 밀려오는 유혹은 무엇인가요?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늘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 앞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2. 이스라엘의 영적인 실패가 거울이 되게 해야 합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11).
사도 바울은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1-12)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행한 악한 일과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에게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계가 되어 이러한 일을 거울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를 깨우시고 경고하시는 교훈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오래 믿었고 신앙의 연륜도 있어서 세상의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영적인 자만에 빠진 것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자손을 40년간 이끈 지도자였지만 분을 내어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육신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항상 우상 숭배와 음행, 시험과 원망이라는 네 가지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자만이 무너지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유혹으로부터 지키시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시험과 유혹을 당하곤 합니다. 우리는 공통적으로 같은 시험과 유혹,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겪는 시험을 아시고 통제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시험이 찾아오면 피할 길을 예비하셔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우상 숭배의 유혹이 찾아올 때, 말씀과 기도로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피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음행의 유혹이 찾아올 때에, 유혹을 주는 환경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열린 믿음의 식구들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제목을 찾아 입으로 고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험을 만날 때에 말씀으로 인도하시거나 믿음의 사람으로 권면하십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환경을 바꿔 주시거나 생각을 바꾸셔서 능히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능히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의 실패는 단지 성경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거울입니다. 이 거울 앞에서 우리의 우상, 음행, 시험, 원망의 모습이 있는지 자신을 돌아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시험 중에도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이 시대에 넘어지는 자가 아니라 시험을 이기는 자로 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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