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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6) -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는 길 (고전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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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420회 작성일 25-07-2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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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6) -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는 길 (고전 3장)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0).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들으면 그 날의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러나 책망을 들으면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마음이 상하면 그 다음의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누군가가 책망을 한다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고, 그 다음은 더 발전하기를 원하는 진심어린 사랑이 담긴 조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복음으로 세운 교회였습니다. 바울의 땀과 희생, 헌신이 담긴 사역의 열매이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사역을 마무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이후에, 다시 3차 선교 여행을 시작하며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고린도 교회에서 온 글로에의 사람으로부터 교회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가 처한 영적인 모습을 진단한 후에 그들이 나갈 방향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메시지는 단호했습니다. “너희들은 영적이지 않고 육신적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세상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려 하느냐?” 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어린 아이들을 대하듯이 대한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전 3:1).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아첨의 말로 비위를 맞추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담아 그들 가운데 존재하는 악성 종양을 제거하도록 정곡을 찔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는 칭찬과 격려의 말로 다가갔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살전 1:7). 사도 바울의 사역에서 칭찬을 받는 교회들도 있었지만, 고린도 교회는 심각한 문제들로 인하여 칭찬이 아닌 책망을 받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린도전서 3장의 말씀을 통하여 사도 바울과 같이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 자신의 인생과 교회를 잘 세워가는 자가 되는 지혜를 얻기 원합니다.

1. 지혜로운 건축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세웁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건물이 견고하게 세워지고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기초가 부실하면 그 건물은 비바람에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2014년에 충남 둔포의 한 오피스텔이 기울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막 준공을 앞둔 오피스텔 건물이 기울어진 이유는 기초를 튼튼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기초가 부실했기에, 그 건물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같이 기초가 부실하면 삶이 기울어지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삶이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인생의 기초를 든든하게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층의 빌딩은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는 828 m의 163층 높이입니다. 이 거대한 건물이 견고하게 설수 있게 하는 것은 견고한 기초입니다. 지하 50 m 암반까지 콘크리트 말뚝을 박았고, 1,100톤 무게의 철근콘크리트를 부어 기초를 세웠습니다. 기초 공사만 1년 이상 걸릴 정도로 견고하게 기초를 놓았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삶의 기초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지탱하는 힘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보좌에도 기초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의와 공의라는 반석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시 89:14). 하나님의 왐좌는 의로움과 정의 라는 도덕적 기초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신다는 의미는 의로움과 정의입니다. 의로움이란 거룩하고 흠이 없으신 성품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공의는 공정하게 판단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와 정의를 통해서 일하시며, 더 나아가 인자함과 진실함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삶도 견고하게 세워지는 비결은 하나님과 같이 의와 공의를 기초석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자, 즉 사랑과 진실함이 항상 입술과 삶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반석 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면 어떠한 인생의 풍파가 찾아와도 이기는 힘을 얻게 됩니다.

골로새서는 우리에게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릴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7).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예수님 안에 거하며 그 분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굳게 서는 비결은 항상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뿌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심으로 우리는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목포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목포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미국에 뿌리를 내리면 미국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음식이나 말투, 친구 관계 등에서부터 모든 삶에서 뿌리를 내린 곳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에게 뿌리를 내리면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과 같이 생각하며 그 분을 닮아가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우리의 삶을 견고하게 하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인생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막의 기초는 모래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기초를 위하여 은으로 만든 받침대를 100개나 사용하여 그 위에 성막을 세웠습니다(출 26:19-25). 은은 죄를 속하는 속전으로서 그리스도의 속죄를 상징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위에 성전이 세워졌듯이, 우리의 삶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 위에 세워지는 것이며, 교회도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터 위에 삶을 세우는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관계의 핵심은 신뢰 가운데 서로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날마다 알아가며,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 교제하며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어떠한 시련과 유혹이 찾아와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합니다. 예수님은 지식이 아니라 인격이십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의 깊은 만남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세워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2. 지혜로운 건축자는 불의 시험을 통과하는 재료로 건물을 세웁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 3:12-13).

건축자는 건물을 지을 때에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 가를 결정합니다. 과거에 우리가 살던 집은 시골의 초가집이었습니다. 초가집은 흙벽돌로 집을 지은 후에 지붕은 짚을 엮어 올렸습니다. 그래서 짚은 시간이 지나면 썩기 때문에 자주 지붕에 새 짚을 엮어 올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 후에 경제가 발전하면서 벽돌로 집을 짓고 지붕은 쓰레트로 올렸습니다. 이제 집들은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단열제를 사용하여 보온의 효과를 높입니다. 그리고 외장은 멋진 대리석과 같은 재료로 외벽을 장식합니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건물을 건축하는 재료들은 점점 고급스러워지고 있습니다.

1세기의 이스라엘의 가옥은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가장 널리 사용된 재료는 석회암으로 건물을 지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돌을 구하기 어려웠기에, 진흙과 지푸라기를 섞어 만든 흙벽돌을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흙벽돌집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무너질 수 있어 정기적인 수리가 필요했습니다. 나무는 주로 들보나 기둥에 사용되었고, 풍부하지 않았기에 고급 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레바논 백향목은 부유한 자들이나 사용할 수 있는 재료였습니다. 지붕은 나무 들보 위에 가지나 갈대, 풀등을 얹고, 그 위에 진흙과 짚을 섞은 것으로 덮었습니다. 여름에 사람들은 지붕 위에 올라가 쉬기도 했고, 마가복음 2장에서는 사람들이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내려 놓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의 가옥 구조를 통하여 지혜로운 건축자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무나 풀, 집은 일반인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싼 건축 재료 였습니다. 이러한 재료는 불에 타면 없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쉽게 썩는 재료였습니다. 그러나 금이나 은, 보석, 대리섞과 같은 질이 좋은 재료는 튼튼하고 반영구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불에도 타지 않고 남은 재료였습니다. 일반 서민들은 가족과 가축이 함께 생활하기도 했고, 밤에는 동물이 집 안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부유한 집은 2층 구조이거나 손님을 위한 객실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인생을 집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워가야 합니다. 이때 우리가 사용하는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주님 앞에서 부끄러운 구원이 될 수도 있고 영광스러운 상급으로 남을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한 재료는 금과 은, 보석이나 나무나 풀과 짚이었습니다. 이러한 집으로 집을 지으면 주님의 날에 공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 3:13). 공력은 이 땅에서의 우리가 주님을 섬긴 사역을 의미합니다. 공력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믿어 구원을 받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섬긴 사역을 밝히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날은 주님의 날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석 위에 서서 심판받는 날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은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라고 했습니다.

2023년 하와이 마우리섬 라하이나 지역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이 화재는 하와이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되었으며, 수천 채의 집의 불에 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불탄 폐허 속에 한 채의 집만 기적적으로 남았습니다. 유명한 관광지인 프론트 스트리트 근처 바닷가에 붉은 지붕과 흰 외벽이 선명하게 보전되었던 것입니다.

이 집이 화재 가운데 살아남은 이유는, 집주인이 불이 나기 몇 달 전, 오래된 지붕을 불에 타지 않는 금속으로 바뀌고, 주위 마당에 있는 잡초와 마른 식물들을 제거하고 바위와 자갈로 교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불이 동네를 휩쓸고 지나갈 때도, 그 집만이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사역을 심판하실 때에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가를 시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도구입니다. 이는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불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불이 지나간 자리에 나무나 풀과 짚은 사라지고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 3:14-15)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성막에 사용된 재료도 금과 은, 동으로서 무척 값비싼 보석을 사용했습니다. 그 외에도 휘장을 위한 실과 염소털, 해달 가죽 등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값비싼 재료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믿음의 삶을 세워가는 것이 소중합니다. 이는 우리가 사역과 헌신으로 주님을 섬긴 것입니다. 이때 불이 지나간 자리에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는 불의 시험에도 타지 않고 남는 것으로 보석과 같은 믿음의 삶을 살아간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이 지나간 자리에 모든 것이 불에 타고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는 마치 나무나 풀과 짚과 같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실 상급이 없는 것입니다. 해를 받는 것은 상급을 잃어버리고 부끄럽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구원을 받지만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은 받지만, 그 삶의 내용이 불타 없어지기 때문에 상급은 없고, 겨우 구원만 받아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은 천국에는 들어가지만 부끄러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 불에도 타지 않고 영원히 남은 금이나 은, 보석으로 집을 지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 안에서 두 가지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적인 심리학이나 철학, 윤리가 중심이 되고 있는가? 심지어 정치적인 이념으로 교회를 이끌고 있는가? 만일 우리의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중심에서 떠난다면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믿음의 동기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의 동기가 자신의 자아를 위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였지만, 사도 바울이 떠난 후에 성도들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과 거룩함에서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 주일 교회를 다녔지만, 교회에서 사람들로부터 높임을 받으려 했고 자신이 따르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당을 만들어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성도를 섬기며 교회를 세워야 하는데,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자신들의 육신을 자랑하는 도구가 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지금은 진실한 믿음으로 섬기든,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든 결국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금과 은과 보석은 순수한 동기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역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날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며 그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믿음의 사람은 교회에서 믿음이 깊어질수록 더욱 겸손하며 자신을 낮추어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과 교회의 하나되도록 힘쓰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집을 지은 사람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열심 으로 섬기다 보니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감정이 좋으면 열심히 하다가 감정이 상하면 교회를 떠나거나 사역에 무관심한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자신이 사역을 하는 동기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것일 뿐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 열심은 아무리 희생하고 헌신한다 할지라도 주님의 눈에는 나무나 풀, 짚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들의 지식과 헌신에 대하여 감동하며 그들을 높이고 따르지만, 결국 자신을 위한 헌신이었기에 심판의 날에 모든 공력이 불타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인생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심판대에 서게 되는 날, 나의 공력은 불타서 사라지는 것으로 믿음의 집을 세우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 앞에서 불에도 견디는 금과 은, 보석으로 믿음의 집을 세우고 있는가? 우리는 주님의 교회에서 섬기는 모든 사역이 나중에 공력으로 심판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긴다 했지만 자신의 자아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모두가 불타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을 위한 헌신이었다면 주님이 그 동기를 보시고 불에도 타지 않는 보석으로 남게 하실 것입니다.

3. 지혜로운 건축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교회를 세워갑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사도 바울은 이제 우리의 성전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이 너희는 복수형으로 개인 한 사람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 공동체 전체를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은 개인으로서의 성전을 의미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의 몸이 성전이 되었듯이, 우리 믿음의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가며 동시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 것입니다.

구약의 성막은 거룩한 하나님의 집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라도 성막으로 들어갈 때에는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은 후에 정결함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자신의 죄를 속죄받은 후에나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정체성을 언급하면서, 교회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의미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우리가 말하는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믿는 자의 모임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이 가르치고 한 것은 17절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7).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입니다. 하나님이 사시는 집으로서의 성전에서 모든 사람들은 거룩해야 하고 주의 깊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 성전은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더럽히다’라는 말은 망치거나 파괴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분열시키거나 부패시키고 해치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경고하면서 처음으로 언급한 것이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고전 3:3-4).

사도 바울은 교회가 아볼로나 바울파로 나뉘이는 것에 대하여 육신적이라고 했습니다. 아볼로나 자신은 심고 물을 주었을 뿐, 교회를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뿐임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람을 따라 나뉘이는 것은 육신적임을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하나되어 거룩함을 지켜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교회를 더럽히는 것은 교회가 세상의 지혜와 세속적인 기준으로 서로 판단함으로 사람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하여 경계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성적인 죄도 교회를 더럽히는 것이었으며, 성도 간에 일어나는 소송도 교회를 더럽히는 것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성전을 더럽히는 자에 대하여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멸하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기에,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도 그렇게 거룩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성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인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의 길을 갈 때에 고라 자손이 일어나 분쟁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자손에 분열을 가져왔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고라 자손을 심판하셨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서로 비난하는 행동은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며, 그 결과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비난이나 험담, 그리고 분열적 언행으로 교회를 더럽히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교회에서 사랑과 화평을 이루고 있는가? 나는 자신이 거룩한 성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의 지체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그 영광의 수혜자로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의 의무를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자신을 지혜롭다 여기지 않습니다. 세상 지혜에 대하여는 미련하다고 여기며,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보물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건축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혜로운 건축자로서 섬김의 동기가 자신의 유익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 위에, 불에도 남을 금, 은, 보석으로 사역하며, 거룩한 성전을 함께 세워가는 공동체’의 비전으로 달려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