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세상을 극복하는 원리 (욥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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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168회 작성일 20-03-07 17:04본문
힘든 세상을 극복하는 원리 (욥 7:1-5)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그 날이 품군의 날과 같이 아니하냐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군은 그 삯을 바라나니 ...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조각이 의복처럼 입혔고 내 가죽은 합창되었다가 터지는구나.” (욥 7:1-5)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질병을 당하고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은 사망에 이르는 재앙을 만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무너지고 있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축복이어야 하지만 서로 부담이 되어 만남을 회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의료인들은 현장에서 피땀을 흘리며 희생하고 심지어는 과로사로 가족과 주변에 큰 아픔이 되는 시국입니다. 언제 이러한 어려움이 끝날지 모르기에 더욱 힘들어만 가는 절망의 시대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세계로 퍼져가면서 한국인 입국금지 나라가 100 여국이나 되면서 무역이나 관광, 유학생 들의 어려움이 나날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왜 인생은 이렇게 어려운가?” “왜 이 세상은 이렇게 살기가 어려운가요?” 모든 것들이 전쟁처럼 느껴집니다. 코로나가 없어도 힘들고 어려워 지쳐가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삶을 재난 영화의 한 장면 처럼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왜 이세상은 살기가 어렵고, 이 세상에는 이와같은 고통이 존재하는가요?
오늘 본문은 욥이 고백한 내용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욥 7:1).” 전쟁은 노고와 수고를 의미합니다. 인생은 ‘타락으로 인하여 약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간은 누구나 정해진 기간 동안 세상에 살면서 온갖 질병과 난관에 부딪히며 그 것을 물리치고자 힘든 노고와 수고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욥은 “왜 인생을 살기가 어려운가?”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인생이 품군의 날과 같다고 합니다. “... 그 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군은 그 삯을 바라나니.”(욥 7:1-2). 이는 품군은 낮에는 일을 해야 하기에 고역이고 괴로움의 시간을 감당해야 함을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품군은 수고로부터 자유하는 저녁 시간을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비로서 저녁에 쉬고 삯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욥 7:3). 그리고, 새벽까지 뒤척이는 모습에서 욥의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꼬, 언제나 밤이 갈꼬 하면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는구나.”(7:4). 그리고, 그는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조각이 의복처럼 입혔고 내 가죽은 합창되었다가 터지는구나.” (욥 7:5). 이는 상처 속에 기생하는 벌레로 인하여 자신의 피부가 고름과 딱정으로 굳어져 터지는 자신의 육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을 당하는 욥이 물었던 질문이 “왜 인생이 이렇게 어려운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이러한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이 인생에서 묻게 되는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수많은 사람들이 물었던 질문이었습니다. “왜 인생은 이렇게 어려운가요?” 욥의 고통은 우리 인생이 고통하는 모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인생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이유를 발견하고, 그 결과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인생의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인가요?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성경은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이 모든 것을 깨트렸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반역이 세상의 모든 것을 깨트린 것입니다. 인간의 반역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는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그곳은 낙원이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문제가 없었고, 슬픔이나 고통이나 질병이 없었습니다. 시험이나 유혹이나 패배나 낙심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낙원에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만 한 가지만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금하셨습니다. 그것은 최소한의 유혹을 받을 수 있는 한도였습니다.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한 가지만 제외하고 다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그 한 가지를 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택을 하도록 하셨을까요? 왜냐하면 선택이 없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강요당하며 다른 선택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할 것이며, 자신들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하기로 선택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은,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죄가 오기 전에는 세상에는 사망이 없었습니다. 죄가 오기 전에는 슬픔이나 고통이나 죽음이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완벽한 환경에서 영원히 살수 있었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 모든 것이 깨어져 버린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을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도 이와같은 불순종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도 아담과 같이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은, “우리가 다 양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길로 행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길로 행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길로 걸어갔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세 가지의 반역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 가지의 반역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 가지의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중심이 되고자 하는 죄(sin)입니다. 죄는 우리가 잘 아는 말입니다. 죄는 영어로 sin입니다. 죄의 본질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고, 인생의 중심에 자기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죄는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사고입니다. 죄의 실제적인 의미는 “이르지 못하다, 과녁에 빗나가다. miss the mark"입니다. 이것은 활의 용어인데, 활과 화살을 쏘는 것에서 유래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과녁을 세워두고, 활과 화살로 과녁을 향하여 화살을 당기게 됩니다. 만일 화살이 멀리 가지 못하고, 과녁의 앞에서 떨어지면, 이것을 죄(sin)라고 불렀습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완벽한 의에 이르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완벽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우리는 인생에서 완전한 존재가 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의도적인 불순종의 범죄(transgression)입니다. 범죄는 영어로 transgression입니다. 우리가 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는 의도적인 불순종인 것입니다. 죄는 “나는 완벽하지 않아, 나는 부족해” 라고 할 수 있지만, 범죄는 “나는 고의로 법을 지키지 않았어.” 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경계를 넘어 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고의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불법(iniquity)입니다. 불법(iniquity)라고 하는 것은 “고의적으로 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고의적으로 해치거나 손해를 보게 하거나,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말로나 공격하게 되면, 여러분은 복수로서 상처를 주고자 합니다. 이것은 죄나 범죄가 아니라, 이것은 불법(iniquity)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해하려고 하는 의도적인 욕구입니다.
우리가 축구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선수가 공을 찼는데, 이 공이 골문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즉, 골대를 빗나간 것입니다. 이것은 죄(sin)입니다. 선수가 반칙을 법합니다. 선수가 상대의 골문에서 offside 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범죄(transgression)입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경계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선수가 상대의 허벅지를 걷어찹니다. 한 선수가 감정을 가지고 공격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불법(iniquity)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법을 깨트렸습니다. 우리는 죄와 범죄, 불법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깨트렸고, 죄는 세상이 깨어지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완벽하지 못한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결혼생활, 건강, 재정, 인간관계와 같은 모든 것들이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모든 것을 깨트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세상에 살기가 왜 어려운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며, 이러한 이해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어려움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돕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요? 왜 우리는 고통을 당하며, 모든 것에 전쟁을 치루고 있나요? 그 대답은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 모든 것을 깨트린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문제에 대한 이유인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는 무엇인가요? 어떠한 피해가 우리의 삶에 찾아오게 되었나요?
2. 죄가 세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나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였기에, 세상의 모든 것은 깨어졌고 어느 것도 정상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죄는 모든 것에 피해를 주었습니다. 죄는 모든 것을 파괴했고, 부패시켰으며 망가지게 했습니다. 죄는 모든 것, 즉 모든 관계나 생각, 몸의 육체 등을 손상시켰습니다. 모든 것들이 죄로 인하여 손상을 입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구체적으로 죄로 인하여 인생에 영향을 끼친 네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삶을 완전하리라 생각한다면, 우리는 심각하게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전도서는 우리의 인생에서 죄로 인하여 깨어진 네가지의 영역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죄는 이 땅에 자연적인 재난을 가져옵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 8:22).
세상은 자연적인 재난으로 인하여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세상에 있음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환경은 인간의 죄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파괴되었고, 우리는 깨어진 지구의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완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에덴동산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깨어진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태풍과 허리케인이 있고, 지진과 홍수와 기근을 만나게 됩니다. 지난 주에 미국의 테네시 주에서 토네이도가 일어나 이십명 이상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재앙들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 8장에서,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도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 8:21-22) 라고 했습니다. 피조물이 죄로 인하여 썩어짐의 종노릇하고 있지만, 그 바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인한 회복인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모든 것이 깨어졌기에, 피조물도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롬 8:19). 죄로 인하여 창조의 세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지성과 육체와 영혼이 결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원인은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기로 결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피조물이 탄식하며 고통한다고 했습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영광의 날을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완벽한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시게 될 때에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로 오셔서 만왕의 왕으로 천년간 다스릴 때에 피조물의 회복이 있습니다. 그 때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라고 예언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환경과 자연 재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주님을 더욱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죄는 육체적인 연약함과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생기를 주장하여 생기로 머무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자도 없고...” (전 8:8).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 세상에는 죽음이 없었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는 육체적인 쇠약이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 육체적인 쇠약과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생기를 주장하여 생기로 머무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자도 없고...”(전 8:8). 이 말씀은 우리가 자신의 영혼이 떠나지 않도록 붙잡을 수 없고, 자신의 죽음을 막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쇠퇴하게 됩니다. 고린도 후서 4장 16절은, “.... 겉사람은 후패하나...”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육체가 나이가 들면서 쇠퇴해가는 것은 너무나 잘 아고 있습니다. 우리의 다리에 힘이 빠지고, 이빨이 약해지며, 얼굴에 주름이 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도 몸이 약해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같이 죄로 인하여 깨어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육신에 질병이 찾아오고 쇠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육체의 죽음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육체의 죽음에 대한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저주인 사망아래 갇힌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고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서 몸은 흙으로 돌아가나 주님이 주신 영생은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3. 죄는 관계의 손상을 가져왔습니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 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 (전 4:1).
우리는 사람들과 충동합니다. 죄가 없는 상황에서는 우리는 어떠한 관계에서의 충돌이나 갈등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로 인해서 불완전한 존재가 되었고, 그 결과로 사람들과 큰 갈등과 관계의 깨어짐과 아픔들을 경험합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고의적이든, 고의가 아니든 서로에게 상처를 줍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죄로 인하여 모든 것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기에, 죄는 관계에 큰 손상을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관계는 힘들기만 합니다. 관계가 깨어지게 될 때에, 우리는 고통을 당합니다.
전도서 4장 1절은,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 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 (전 4:1) 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람들간의 관계에서 고통을 주고 받는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반역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고, 서로의 관계도 끊어지게 됩니다. 아담은 자신의 불순종에 대하여 하와를 원망하면서 서로의 하나됨이 깨어지게 됩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훔치고 도적질하고 전쟁까지 하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랑으로 서로를 배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희생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관계의 깨어짐에 대한 해답이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마음에 품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8-10).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사랑으로 다가갑니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다가가는 것입니다.
4. 죄는 영적인 어두움을 가져왔습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엡 4:18).
우리가 죄에 거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느껴집니다. 이사야 59 장은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분리시켰다고 했습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2).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음을 느낀다면, 하나님이 멀리 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하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고 난 후에, 마음으로 왜 하나님이 멀리 있지 라고 의아해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잘못된 곳에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들로 대체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행복이라고 하며, 평화라고도 하며, 안정이라고도 합니다. 그들은 성취라고도 하며, 의미와 목적이라고도 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찾는 것은 하나님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찾는 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욥은 6장에서 말합니다. “떼를 지은 객들이 시냇가로 다니다가 돌이켜 광야로 가서 죽고.” (욥 6:18). 이는 사막을 여행하는 대상들이 시냇가를 찾았으나, 물을 찾지 못해 사막에서 죽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른 사막의 한 가운데서 목마름을 해소할 것을 찾고 있습니다. 잘못된 곳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더 큰 흑암으로 인도하며, 불만족과 낙심으로 인도합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죄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죄를 심각하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나 드라마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고, 세상은 오히려 죄에 대하여 무감각합니다. 세상은 부도덕과 타락을 보여주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길로 가도록 인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죄로 인하여 세상은 영적인 어두움에서 방황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우리는 절망과 고통, 관계의 어려움과 영적인 어두움을 경험하고 십니다. 죄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큰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은 죄가 얼마나 심각한 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빛 되신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빛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예수님은 우리의 빛이 되십니다. 우리는 빛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빛이 되셔서 인생의 어두움을 밝혀주심으로, 우리가 어떠한 길로 행해야 할지를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어려운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와같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비결은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고 주님과 동행하며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그 날이 품군의 날과 같이 아니하냐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군은 그 삯을 바라나니 ...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조각이 의복처럼 입혔고 내 가죽은 합창되었다가 터지는구나.” (욥 7:1-5)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질병을 당하고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은 사망에 이르는 재앙을 만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무너지고 있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축복이어야 하지만 서로 부담이 되어 만남을 회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의료인들은 현장에서 피땀을 흘리며 희생하고 심지어는 과로사로 가족과 주변에 큰 아픔이 되는 시국입니다. 언제 이러한 어려움이 끝날지 모르기에 더욱 힘들어만 가는 절망의 시대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세계로 퍼져가면서 한국인 입국금지 나라가 100 여국이나 되면서 무역이나 관광, 유학생 들의 어려움이 나날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왜 인생은 이렇게 어려운가?” “왜 이 세상은 이렇게 살기가 어려운가요?” 모든 것들이 전쟁처럼 느껴집니다. 코로나가 없어도 힘들고 어려워 지쳐가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삶을 재난 영화의 한 장면 처럼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왜 이세상은 살기가 어렵고, 이 세상에는 이와같은 고통이 존재하는가요?
오늘 본문은 욥이 고백한 내용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욥 7:1).” 전쟁은 노고와 수고를 의미합니다. 인생은 ‘타락으로 인하여 약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간은 누구나 정해진 기간 동안 세상에 살면서 온갖 질병과 난관에 부딪히며 그 것을 물리치고자 힘든 노고와 수고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욥은 “왜 인생을 살기가 어려운가?”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인생이 품군의 날과 같다고 합니다. “... 그 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군은 그 삯을 바라나니.”(욥 7:1-2). 이는 품군은 낮에는 일을 해야 하기에 고역이고 괴로움의 시간을 감당해야 함을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품군은 수고로부터 자유하는 저녁 시간을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비로서 저녁에 쉬고 삯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욥 7:3). 그리고, 새벽까지 뒤척이는 모습에서 욥의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꼬, 언제나 밤이 갈꼬 하면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는구나.”(7:4). 그리고, 그는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조각이 의복처럼 입혔고 내 가죽은 합창되었다가 터지는구나.” (욥 7:5). 이는 상처 속에 기생하는 벌레로 인하여 자신의 피부가 고름과 딱정으로 굳어져 터지는 자신의 육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을 당하는 욥이 물었던 질문이 “왜 인생이 이렇게 어려운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이러한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이 인생에서 묻게 되는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수많은 사람들이 물었던 질문이었습니다. “왜 인생은 이렇게 어려운가요?” 욥의 고통은 우리 인생이 고통하는 모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인생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이유를 발견하고, 그 결과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인생의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인가요?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성경은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이 모든 것을 깨트렸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반역이 세상의 모든 것을 깨트린 것입니다. 인간의 반역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는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그곳은 낙원이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문제가 없었고, 슬픔이나 고통이나 질병이 없었습니다. 시험이나 유혹이나 패배나 낙심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낙원에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만 한 가지만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금하셨습니다. 그것은 최소한의 유혹을 받을 수 있는 한도였습니다.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한 가지만 제외하고 다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그 한 가지를 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택을 하도록 하셨을까요? 왜냐하면 선택이 없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강요당하며 다른 선택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할 것이며, 자신들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하기로 선택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은,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죄가 오기 전에는 세상에는 사망이 없었습니다. 죄가 오기 전에는 슬픔이나 고통이나 죽음이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완벽한 환경에서 영원히 살수 있었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 모든 것이 깨어져 버린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을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도 이와같은 불순종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도 아담과 같이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은, “우리가 다 양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길로 행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길로 행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길로 걸어갔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세 가지의 반역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 가지의 반역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 가지의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중심이 되고자 하는 죄(sin)입니다. 죄는 우리가 잘 아는 말입니다. 죄는 영어로 sin입니다. 죄의 본질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고, 인생의 중심에 자기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죄는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사고입니다. 죄의 실제적인 의미는 “이르지 못하다, 과녁에 빗나가다. miss the mark"입니다. 이것은 활의 용어인데, 활과 화살을 쏘는 것에서 유래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과녁을 세워두고, 활과 화살로 과녁을 향하여 화살을 당기게 됩니다. 만일 화살이 멀리 가지 못하고, 과녁의 앞에서 떨어지면, 이것을 죄(sin)라고 불렀습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완벽한 의에 이르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완벽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우리는 인생에서 완전한 존재가 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의도적인 불순종의 범죄(transgression)입니다. 범죄는 영어로 transgression입니다. 우리가 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는 의도적인 불순종인 것입니다. 죄는 “나는 완벽하지 않아, 나는 부족해” 라고 할 수 있지만, 범죄는 “나는 고의로 법을 지키지 않았어.” 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경계를 넘어 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고의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불법(iniquity)입니다. 불법(iniquity)라고 하는 것은 “고의적으로 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고의적으로 해치거나 손해를 보게 하거나,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말로나 공격하게 되면, 여러분은 복수로서 상처를 주고자 합니다. 이것은 죄나 범죄가 아니라, 이것은 불법(iniquity)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해하려고 하는 의도적인 욕구입니다.
우리가 축구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선수가 공을 찼는데, 이 공이 골문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즉, 골대를 빗나간 것입니다. 이것은 죄(sin)입니다. 선수가 반칙을 법합니다. 선수가 상대의 골문에서 offside 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범죄(transgression)입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경계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선수가 상대의 허벅지를 걷어찹니다. 한 선수가 감정을 가지고 공격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불법(iniquity)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법을 깨트렸습니다. 우리는 죄와 범죄, 불법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깨트렸고, 죄는 세상이 깨어지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완벽하지 못한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결혼생활, 건강, 재정, 인간관계와 같은 모든 것들이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모든 것을 깨트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세상에 살기가 왜 어려운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며, 이러한 이해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어려움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돕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요? 왜 우리는 고통을 당하며, 모든 것에 전쟁을 치루고 있나요? 그 대답은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 모든 것을 깨트린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문제에 대한 이유인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는 무엇인가요? 어떠한 피해가 우리의 삶에 찾아오게 되었나요?
2. 죄가 세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나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였기에, 세상의 모든 것은 깨어졌고 어느 것도 정상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죄는 모든 것에 피해를 주었습니다. 죄는 모든 것을 파괴했고, 부패시켰으며 망가지게 했습니다. 죄는 모든 것, 즉 모든 관계나 생각, 몸의 육체 등을 손상시켰습니다. 모든 것들이 죄로 인하여 손상을 입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구체적으로 죄로 인하여 인생에 영향을 끼친 네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삶을 완전하리라 생각한다면, 우리는 심각하게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전도서는 우리의 인생에서 죄로 인하여 깨어진 네가지의 영역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죄는 이 땅에 자연적인 재난을 가져옵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 8:22).
세상은 자연적인 재난으로 인하여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세상에 있음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환경은 인간의 죄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파괴되었고, 우리는 깨어진 지구의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완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에덴동산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깨어진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태풍과 허리케인이 있고, 지진과 홍수와 기근을 만나게 됩니다. 지난 주에 미국의 테네시 주에서 토네이도가 일어나 이십명 이상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재앙들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 8장에서,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도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 8:21-22) 라고 했습니다. 피조물이 죄로 인하여 썩어짐의 종노릇하고 있지만, 그 바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인한 회복인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모든 것이 깨어졌기에, 피조물도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롬 8:19). 죄로 인하여 창조의 세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지성과 육체와 영혼이 결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원인은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기로 결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피조물이 탄식하며 고통한다고 했습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영광의 날을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완벽한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시게 될 때에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로 오셔서 만왕의 왕으로 천년간 다스릴 때에 피조물의 회복이 있습니다. 그 때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라고 예언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환경과 자연 재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주님을 더욱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죄는 육체적인 연약함과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생기를 주장하여 생기로 머무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자도 없고...” (전 8:8).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 세상에는 죽음이 없었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는 육체적인 쇠약이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 육체적인 쇠약과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생기를 주장하여 생기로 머무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자도 없고...”(전 8:8). 이 말씀은 우리가 자신의 영혼이 떠나지 않도록 붙잡을 수 없고, 자신의 죽음을 막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쇠퇴하게 됩니다. 고린도 후서 4장 16절은, “.... 겉사람은 후패하나...”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육체가 나이가 들면서 쇠퇴해가는 것은 너무나 잘 아고 있습니다. 우리의 다리에 힘이 빠지고, 이빨이 약해지며, 얼굴에 주름이 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도 몸이 약해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같이 죄로 인하여 깨어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육신에 질병이 찾아오고 쇠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육체의 죽음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육체의 죽음에 대한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저주인 사망아래 갇힌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고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서 몸은 흙으로 돌아가나 주님이 주신 영생은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3. 죄는 관계의 손상을 가져왔습니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 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 (전 4:1).
우리는 사람들과 충동합니다. 죄가 없는 상황에서는 우리는 어떠한 관계에서의 충돌이나 갈등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로 인해서 불완전한 존재가 되었고, 그 결과로 사람들과 큰 갈등과 관계의 깨어짐과 아픔들을 경험합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고의적이든, 고의가 아니든 서로에게 상처를 줍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죄로 인하여 모든 것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기에, 죄는 관계에 큰 손상을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관계는 힘들기만 합니다. 관계가 깨어지게 될 때에, 우리는 고통을 당합니다.
전도서 4장 1절은,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 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 (전 4:1) 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람들간의 관계에서 고통을 주고 받는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반역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고, 서로의 관계도 끊어지게 됩니다. 아담은 자신의 불순종에 대하여 하와를 원망하면서 서로의 하나됨이 깨어지게 됩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훔치고 도적질하고 전쟁까지 하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랑으로 서로를 배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희생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관계의 깨어짐에 대한 해답이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마음에 품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8-10).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사랑으로 다가갑니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다가가는 것입니다.
4. 죄는 영적인 어두움을 가져왔습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엡 4:18).
우리가 죄에 거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느껴집니다. 이사야 59 장은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분리시켰다고 했습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2).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음을 느낀다면, 하나님이 멀리 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하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고 난 후에, 마음으로 왜 하나님이 멀리 있지 라고 의아해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잘못된 곳에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들로 대체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행복이라고 하며, 평화라고도 하며, 안정이라고도 합니다. 그들은 성취라고도 하며, 의미와 목적이라고도 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찾는 것은 하나님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찾는 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욥은 6장에서 말합니다. “떼를 지은 객들이 시냇가로 다니다가 돌이켜 광야로 가서 죽고.” (욥 6:18). 이는 사막을 여행하는 대상들이 시냇가를 찾았으나, 물을 찾지 못해 사막에서 죽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른 사막의 한 가운데서 목마름을 해소할 것을 찾고 있습니다. 잘못된 곳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더 큰 흑암으로 인도하며, 불만족과 낙심으로 인도합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죄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죄를 심각하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나 드라마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고, 세상은 오히려 죄에 대하여 무감각합니다. 세상은 부도덕과 타락을 보여주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길로 가도록 인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죄로 인하여 세상은 영적인 어두움에서 방황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우리는 절망과 고통, 관계의 어려움과 영적인 어두움을 경험하고 십니다. 죄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큰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은 죄가 얼마나 심각한 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빛 되신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빛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예수님은 우리의 빛이 되십니다. 우리는 빛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빛이 되셔서 인생의 어두움을 밝혀주심으로, 우리가 어떠한 길로 행해야 할지를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어려운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와같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비결은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고 주님과 동행하며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