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시리즈(6)- 성도의 거룩한 영적생활(벧전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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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337회 작성일 19-11-09 21:06본문
거룩시리즈(6)- 성도의 거룩한 영적생활(벧전 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구약의 성막은 하늘의 성소에 대한 모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교회를 영적인 집으로 비유했고 성도를 영적인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비유했습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구약의 성막에는 제사장의 직무가 있었듯이, 우리는 주님의 몸인 교회에서 영적인 제사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의 성막을 통하여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며 영적인 습관을 형성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원리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성막의 문은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방민족과 구별된 거룩한 나라였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로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성막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세마포 울타리를 쳤습니다. 성막은 놋기둥과 하얀 세마포 천으로 둘러싸여 있었기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오직 문이었습니다(출 38:18).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는 문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성막은 문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주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임을 선포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한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잠언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걸어가지만 자신이 걸어가는 길이 결국은 사망의 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찾기보다는 행복을 찾기에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2. 놋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성막의 문으로 들어가면 처음으로 만나는 곳이 번제단입니다. 번제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려서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단이었습니다. 아론이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놋제단에 제물을 올려놓고 드렸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불을 내려 놋제단의 번제물과 기름을 태우게 됩니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레 9:24). 번제단의 제물을 하나님이 불로 태우셔서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입니다. 번제단의 희생 제물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하는 제단이었듯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셨습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셔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속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위하여 희생 제물로 자신을 드리시고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위한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죄로 사망에 이르러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으로 대속물이 되셔서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건짐을 받는 것과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구원의 상징은 침례입니다. 침례가 물에 잠긴 후에 물에서 나옵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죄의 옛사람이 장사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영생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하나님이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으로 거듭난 거룩한 자입니다. 거룩한 자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서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우리는 주님과 같이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구원받은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셨기에 우리의 몸이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자신의 몸이 하나님께 속했기에 자신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 헌신하는 삶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3. 물두멍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막의 뜰에는 번제단과 놋으로 만든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번제단은 피를 흘려 죽어가는 희생 제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를 상징한다면, 놋으로 만든 물두멍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출 38:8).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섬기면서 손과 발을 씻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이 성막에 들어갈 때에 손과 발을 씻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성소에 들어갈 때에 씻지 않고 들어가는 것은 죽음의 위험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할찌니라.”(출 30:20).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에 들어갈 때나 번제단에서 제물을 드릴 때에도 항상 손과 발을 물두멍의 물로 씻어야 했습니다.
물두멍의 물은 성도를 깨끗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번제단에서 죄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성도는 이 세상에서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죄로부터 더러워지기도 하고 유혹에 넘어져 사탄의 올무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정결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행실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물두멍이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날마다 자신의 숨겨진 마음과 생각을 보게 하는 거울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 대하여 언급하며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자 우리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나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6-27).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입니다. 교회가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고 거룩하게 될 때에 비로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말씀을 거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울을 깨뜨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흠과 티가 있는 것을 고쳐서 바른 모습으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합니다. 아마도 집 밖에 나오는 모든 사람은 항상 거울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확인할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마음을 말씀으로 비추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고 깨달음으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회개함으로 깨끗함을 얻어야 합니다. 요한일서는 우리가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자백하면 예수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도록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성소의 진설병은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소에 들어가면 열두 덩이의 진설병을 놓는 상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새로운 열두 덩이의 떡을 가져오고 상에 있던 떡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있던 열두 덩이의 떡은 거룩하였고, 오직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상 위에 있는 열두 덩이의 떡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성소의 진설병은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주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요 6:51)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생명의 떡으로서 모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성도는 이 시대에 영적인 제사장들입니다. 이 시대에는 성전이 없기에 제사장 직분이 없지만, 구약의 관점에서 보면 거룩한 제사장으로 구별된 것입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거룩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떡을 먹는 것은 교회에서 성도들이 말씀으로 교제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열두 덩이의 떡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면,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성도들의 교제 가운데 역사되어지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말씀으로 교제하며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주의 만찬은 생명되신 주님을 떡을 먹으며 기념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떡은 생명되신 주님을 상징합니다. 열두 덩이의 떡을 제사장들이 함께 먹었듯이,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주의 만찬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생명되신 주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며 풍성한 은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말씀 안에서 서로 교제함으로 풍성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5. 금촛대는 세상의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소에는 금으로 만든 등잔이 있었습니다. 금촛대는 어두운 성소를 밝혀 제사장들이 성소의 직무를 감당하게 했습니다. 금촛대의 불은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으로 밝혔습니다.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출 27:20). 금촛대의 역할은 어두운 성소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금촛대는 세상의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주님은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자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아 영적인 눈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그분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귀는 자는 하나님의 빛 가운데 행하게 되고 주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자가 됩니다.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두움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세상의 빛이 되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통하여 세상의 빛이 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메시야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메시야의 사역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능력이 나타나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붇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성소의 금초대가 감람유의기름으로 빛을 비추셨듯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성령의 사역은 주님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복음의 능력이 선포되어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어두운 세상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비추는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가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해야 함을 권면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는 주님의 아름다운 빛을 비추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6. 분향단은 중보기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소에는 분향단이 있어서 아침과 저녁에 향을 피웠습니다.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찌며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찌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찌며.”(출 30:7-8). 분향단은 성소의 중아에 위치했습니다.
성막은 하늘의 성소의 모형이며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는 향단에서 분향하는 제사장의 사역은 하늘에서 기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두시고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주님은 제자들의 거룩과 하나됨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 사역을 보여줍니다. “...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성전에 향이 가득한 금대접이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했습니다(계5:8).
영적 생활의 중심에는 기도하는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의 영적인 제사장으로서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의 지체들과 교제를 나누어야 하며, 복음을 전하며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중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기도하는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이 되어야 합니다.
7. 지성소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상징합니다.
지성소는 가장 거룩한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었습니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1-22).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의 속죄소 위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성소에는 언약궤와 속죄소가 있었습니다. 언약궤에는 십계명이 적힌 돌판과 만나가 든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언약궤에 든 세 가지는 모두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증거였습니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기록한 돌판을 주셨고 광야에서 만나를 주셔서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반역할 때에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권위가 모세와 아론과 함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덮는 속죄소는 은혜의 자리로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신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속죄소 위에 구름으로 임하셔서 충만히 거하셨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곳입니다. 지성소의 언약궤와 속죄소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합니다. 구약에서는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일년에 한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자신을 죄를 송아지의 피로 속죄한 후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하나님의 보좌는 은혜를 보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은혜를 입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와 기도, 그리고 찬양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로 들어가 그 분의 영광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의 영광이 우리의 마음에 충만한 삶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2) 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사모하였듯이, 우리도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며 그 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영적인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구약의 제사장들이 성소에서의 직무는 거룩한 예배였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주님 안에서 섬기는 것은 거룩한 예배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 받고 난후에 말씀으로 새롭게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말씀의 교제와 전도, 그리고 기도의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더욱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아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자신을 드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구약의 성막은 하늘의 성소에 대한 모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교회를 영적인 집으로 비유했고 성도를 영적인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비유했습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구약의 성막에는 제사장의 직무가 있었듯이, 우리는 주님의 몸인 교회에서 영적인 제사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의 성막을 통하여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며 영적인 습관을 형성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원리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성막의 문은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방민족과 구별된 거룩한 나라였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로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성막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세마포 울타리를 쳤습니다. 성막은 놋기둥과 하얀 세마포 천으로 둘러싸여 있었기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오직 문이었습니다(출 38:18).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는 문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성막은 문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주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임을 선포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한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잠언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걸어가지만 자신이 걸어가는 길이 결국은 사망의 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찾기보다는 행복을 찾기에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2. 놋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성막의 문으로 들어가면 처음으로 만나는 곳이 번제단입니다. 번제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려서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단이었습니다. 아론이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놋제단에 제물을 올려놓고 드렸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불을 내려 놋제단의 번제물과 기름을 태우게 됩니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레 9:24). 번제단의 제물을 하나님이 불로 태우셔서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입니다. 번제단의 희생 제물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하는 제단이었듯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셨습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셔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속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위하여 희생 제물로 자신을 드리시고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위한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죄로 사망에 이르러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으로 대속물이 되셔서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건짐을 받는 것과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구원의 상징은 침례입니다. 침례가 물에 잠긴 후에 물에서 나옵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죄의 옛사람이 장사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영생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하나님이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으로 거듭난 거룩한 자입니다. 거룩한 자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서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우리는 주님과 같이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구원받은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셨기에 우리의 몸이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자신의 몸이 하나님께 속했기에 자신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 헌신하는 삶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3. 물두멍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막의 뜰에는 번제단과 놋으로 만든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번제단은 피를 흘려 죽어가는 희생 제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를 상징한다면, 놋으로 만든 물두멍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출 38:8).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섬기면서 손과 발을 씻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이 성막에 들어갈 때에 손과 발을 씻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성소에 들어갈 때에 씻지 않고 들어가는 것은 죽음의 위험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할찌니라.”(출 30:20).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에 들어갈 때나 번제단에서 제물을 드릴 때에도 항상 손과 발을 물두멍의 물로 씻어야 했습니다.
물두멍의 물은 성도를 깨끗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번제단에서 죄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성도는 이 세상에서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죄로부터 더러워지기도 하고 유혹에 넘어져 사탄의 올무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정결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행실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물두멍이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날마다 자신의 숨겨진 마음과 생각을 보게 하는 거울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 대하여 언급하며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자 우리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나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6-27).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입니다. 교회가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고 거룩하게 될 때에 비로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말씀을 거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울을 깨뜨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흠과 티가 있는 것을 고쳐서 바른 모습으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합니다. 아마도 집 밖에 나오는 모든 사람은 항상 거울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확인할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마음을 말씀으로 비추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고 깨달음으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회개함으로 깨끗함을 얻어야 합니다. 요한일서는 우리가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자백하면 예수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도록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성소의 진설병은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소에 들어가면 열두 덩이의 진설병을 놓는 상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새로운 열두 덩이의 떡을 가져오고 상에 있던 떡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있던 열두 덩이의 떡은 거룩하였고, 오직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상 위에 있는 열두 덩이의 떡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성소의 진설병은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주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요 6:51)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생명의 떡으로서 모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성도는 이 시대에 영적인 제사장들입니다. 이 시대에는 성전이 없기에 제사장 직분이 없지만, 구약의 관점에서 보면 거룩한 제사장으로 구별된 것입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거룩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떡을 먹는 것은 교회에서 성도들이 말씀으로 교제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열두 덩이의 떡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면,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성도들의 교제 가운데 역사되어지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말씀으로 교제하며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주의 만찬은 생명되신 주님을 떡을 먹으며 기념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떡은 생명되신 주님을 상징합니다. 열두 덩이의 떡을 제사장들이 함께 먹었듯이,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주의 만찬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생명되신 주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며 풍성한 은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말씀 안에서 서로 교제함으로 풍성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5. 금촛대는 세상의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소에는 금으로 만든 등잔이 있었습니다. 금촛대는 어두운 성소를 밝혀 제사장들이 성소의 직무를 감당하게 했습니다. 금촛대의 불은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으로 밝혔습니다.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출 27:20). 금촛대의 역할은 어두운 성소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금촛대는 세상의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주님은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자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아 영적인 눈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그분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귀는 자는 하나님의 빛 가운데 행하게 되고 주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자가 됩니다.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두움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세상의 빛이 되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통하여 세상의 빛이 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메시야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메시야의 사역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능력이 나타나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붇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성소의 금초대가 감람유의기름으로 빛을 비추셨듯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성령의 사역은 주님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복음의 능력이 선포되어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어두운 세상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비추는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가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해야 함을 권면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는 주님의 아름다운 빛을 비추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6. 분향단은 중보기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소에는 분향단이 있어서 아침과 저녁에 향을 피웠습니다.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찌며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찌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찌며.”(출 30:7-8). 분향단은 성소의 중아에 위치했습니다.
성막은 하늘의 성소의 모형이며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는 향단에서 분향하는 제사장의 사역은 하늘에서 기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두시고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주님은 제자들의 거룩과 하나됨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 사역을 보여줍니다. “...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성전에 향이 가득한 금대접이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했습니다(계5:8).
영적 생활의 중심에는 기도하는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의 영적인 제사장으로서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의 지체들과 교제를 나누어야 하며, 복음을 전하며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중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기도하는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이 되어야 합니다.
7. 지성소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상징합니다.
지성소는 가장 거룩한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었습니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1-22).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의 속죄소 위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성소에는 언약궤와 속죄소가 있었습니다. 언약궤에는 십계명이 적힌 돌판과 만나가 든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언약궤에 든 세 가지는 모두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증거였습니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기록한 돌판을 주셨고 광야에서 만나를 주셔서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반역할 때에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권위가 모세와 아론과 함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덮는 속죄소는 은혜의 자리로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신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속죄소 위에 구름으로 임하셔서 충만히 거하셨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곳입니다. 지성소의 언약궤와 속죄소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합니다. 구약에서는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일년에 한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자신을 죄를 송아지의 피로 속죄한 후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하나님의 보좌는 은혜를 보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은혜를 입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와 기도, 그리고 찬양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로 들어가 그 분의 영광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의 영광이 우리의 마음에 충만한 삶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2) 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사모하였듯이, 우리도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며 그 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영적인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구약의 제사장들이 성소에서의 직무는 거룩한 예배였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주님 안에서 섬기는 것은 거룩한 예배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 받고 난후에 말씀으로 새롭게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말씀의 교제와 전도, 그리고 기도의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더욱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아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자신을 드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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