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교훈 (고전 151:8).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823회 작성일 20-04-25 17:24본문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교훈 (고전 151:8).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역사적으로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교회마다 십자가를 설치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십자가에 예수님이 피흘려 죽으시는 모습이 있는 반면에 기독교는 십자가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만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전 15:1-2).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헛되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진실로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는 복음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새 생명을 주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내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 복음입니다.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우리의 선한 행위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죄를 위하여 희생하신 죽음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 생명 얻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구원이 되는 진리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증거합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주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고전 15:5-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죽임을 당하고 삼일에 살아날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간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마 16:21). 예수님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에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막상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당하자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든 제자들이 주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 다른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처음 나타나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하여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며 경배했습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부활하셔서 영광에 들어갈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눈이 밝아져 그가 예수신 줄 알았습니다. 그때 글로바와 다른 제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 24:31-32).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40일간 이 땅에서 계시며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시며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도마의 고백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가 되시며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증거였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와 열두 제자와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여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제자들은 절망했던 믿음을 완전히 새롭게 했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을 발아래 밟으시며 승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제자들은 이제 패배자의 부끄러운 제자가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하신 메시야의 제자로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제자들의 메시지는 자신들이 보고 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시편 16편의 예언을 성취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 16:10). 사도 베드로는 사람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고 자신들이 이 일에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일에 증인이로다.”(행 2:33).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도 주님이 대제사장에 잡히시던 밤에는 주님을 알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제자들의 믿음을 회복하였고 그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게 하는 증인이 되게 했습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4).
고린도 교회 중의 누군가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두 개인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증거가 있는데,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 책망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며 교회는 이 세상에 어떠한 소망을 주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천지 교리가 가짜인 것은 이만희가 영생 불사한다는 거짓 교리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이만희 씨는 때가 되면 죽음에 이릅니다. 그러면 신천지 사람들은 엄청난 패닉에 이를 것입니다. 사탄의 왕국은 항상 거짓 위에 세워지고 무너지듯이, 이만희 씨가 죽음에 이르는 날에는 신천지는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들의 교리는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자신이 전파하는 복음도 헛것이며 믿음도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 15:7-8).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의 근본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이 없다면 우리는 아직도 죄 가운데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고,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람세이(A.M.Ramsay) 교수는 말하기를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 복음은 결론이 없는 복음일 뿐아니라 전혀 복음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때 영국의 무신론자였던 리틀스톤과 다른 교수는 자기들이 무신론을 주장하는데 두 가지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하나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의 변화였습니다. 그들은 이 두 가지 사실을 부인하기 위하여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동안 연구한 뒤에 두 사람이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도 더 이상 이에 대한 반증을 할 수가 없네. 우리는 이 연구를 통해서 오히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우리들이 죄인임을 잊고 살았음을 깨닫게 되었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할 수 밖에 없네"라고 고백하였다는 것입니다. 부활사실을 부인하기 위하여 연구하던 무신론자들이 오히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처럼 부활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 것입니다.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 그리고 부활을 상징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교회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어찌하여 날마다 위험을 무릅쓰는 영적 싸움이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죽기까지 먹고 마시는 쾌락의 살을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사셔서 자신에게 나타나심을 목격한 자였습니다. 아무리 사도 바울이 부인하려고 해도 다시 사신 예수님이 자신에게 보이시자 더 이상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셔서 누구든지 그 분을 영접하는 자에게 내주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십니다. 우리 안에는 부활의 생명이 있는데, 그 생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역사적으로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들은 삶이 변화되었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부활의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자의 부활을 확신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예수님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첫 열매는 이스라엘 백성의 절기에 포함됩니다. 유월절 절기는 어린양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기념하는 이스라엘의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이 지나고 사흘 후인 안식일이 지난 첫 날에 초실절로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에 대하여 레위기는 첫 이삭을 드리는 초실절을 설명했습니다. “...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레 23:10-11). 보리농사를 하고 첫 이삭을 드리는 날은 유월절 절기 기간의 안식일 다음 날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주님 안에 있는 성도는 주님과 같이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 15:22-23). 부활은 첫 열매인 그리스도가 먼저이며,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 자는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두 가지의 부활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사망에 이르고, 모든 사람은 부활을 합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의인의 삶을 살았든, 복음을 거절하여 죄인으로 살았던 모두가 부활하여 또 다른 내세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다 12:2). 선지자 다니엘은 두 가지의 부활을 예언했습니다. 그는 자는 자 중에서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는 자 중에 깨어 수치를 받아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는 자도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무덤 속에 있는 자가 음성을 듣고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예수님은 주님이 오실 때에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썩어 없어지지만, 그 영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영혼은 새 몸을 입는 부활을 통하여 생명이나 심판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부활이 두 가지라고 했는데 성경은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활은 주님이 말씀하신 믿는 자의 부활로서 생명의 부활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예수님이 공중 재림하실 때에 성도의 부활이 있을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예수님이 공중으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첫째 부활입니다. 첫째 부활은 그리스도가 공중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 있던 성도들의 부활이 있고, 그 후에 지상 재림하실 때에 대환난 중에 순교당한 자들의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첫째 부활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의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계 20:5).
첫째 부활은 그리스도가 공중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가 무덤에서 일어나 공중으로 들림 받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지상 재림하실 때에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순교한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첫째 부활인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계 20:6).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가 복이 있는 것은 둘째 사망인 백보좌 심판의 형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는 첫째 부활을 통하여 영생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요한 1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된 몸을 입을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는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과 같은 새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새로운 몸은 영원한 천국에서 살 수 있게 하는 새 몸인 것입니다.
둘째 부활은 죄 가운데 죽은 자들이 심판의 부활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최후의 심판은 백보좌 심판입니다. 죽은 자들이 다시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는데 이때 죽은 자들이 주님 앞에 서서 자신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들의 새로운 몸은 지옥에서 타지 않지만 고통을 당하는 몸일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4-15). 영원한 지옥불을 위하여 부활하는 몸이 심판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부활을 위하여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받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부활은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게 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2).
우리는 첫 열매인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자의 부활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시는 이유는 영원한 천국에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보좌 심판 때에 우리가 살고 있는 땅과 하늘이 사라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라지게 하시는 것에 대하여 베드로 후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로보도다.”(벧후 3:10-13).
하나님의 날이 임할 때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져 사라지게 됩니다. 즉 이 땅의 모든 것이 불에 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2)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망하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새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를 마치실 때에 하늘과 땅이 사라지게 하실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자는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신 자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하신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셔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생명은 우리의 육신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육신은 이 세상을 위한 몸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썩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주님이 오실 때에 부활한 새로운 몸으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영원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게 하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소망하는 자는 이 땅에 큰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위하여 살아간다면 그것은 육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때를 소망하는 자는 항상 하나님의 때를 소망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천국의 소망으로 살아가며 천국에 상급과 보화를 예비하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역사적으로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교회마다 십자가를 설치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십자가에 예수님이 피흘려 죽으시는 모습이 있는 반면에 기독교는 십자가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만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전 15:1-2).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헛되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진실로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는 복음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새 생명을 주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내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 복음입니다.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우리의 선한 행위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죄를 위하여 희생하신 죽음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 생명 얻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구원이 되는 진리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증거합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주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고전 15:5-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죽임을 당하고 삼일에 살아날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간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마 16:21). 예수님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에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막상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당하자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든 제자들이 주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 다른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처음 나타나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하여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며 경배했습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부활하셔서 영광에 들어갈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눈이 밝아져 그가 예수신 줄 알았습니다. 그때 글로바와 다른 제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 24:31-32).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40일간 이 땅에서 계시며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시며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도마의 고백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가 되시며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증거였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와 열두 제자와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여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제자들은 절망했던 믿음을 완전히 새롭게 했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을 발아래 밟으시며 승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제자들은 이제 패배자의 부끄러운 제자가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하신 메시야의 제자로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제자들의 메시지는 자신들이 보고 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시편 16편의 예언을 성취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 16:10). 사도 베드로는 사람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고 자신들이 이 일에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일에 증인이로다.”(행 2:33).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도 주님이 대제사장에 잡히시던 밤에는 주님을 알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제자들의 믿음을 회복하였고 그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게 하는 증인이 되게 했습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4).
고린도 교회 중의 누군가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두 개인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증거가 있는데,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 책망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며 교회는 이 세상에 어떠한 소망을 주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천지 교리가 가짜인 것은 이만희가 영생 불사한다는 거짓 교리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이만희 씨는 때가 되면 죽음에 이릅니다. 그러면 신천지 사람들은 엄청난 패닉에 이를 것입니다. 사탄의 왕국은 항상 거짓 위에 세워지고 무너지듯이, 이만희 씨가 죽음에 이르는 날에는 신천지는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들의 교리는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자신이 전파하는 복음도 헛것이며 믿음도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 15:7-8).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의 근본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이 없다면 우리는 아직도 죄 가운데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고,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람세이(A.M.Ramsay) 교수는 말하기를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 복음은 결론이 없는 복음일 뿐아니라 전혀 복음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때 영국의 무신론자였던 리틀스톤과 다른 교수는 자기들이 무신론을 주장하는데 두 가지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하나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의 변화였습니다. 그들은 이 두 가지 사실을 부인하기 위하여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동안 연구한 뒤에 두 사람이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도 더 이상 이에 대한 반증을 할 수가 없네. 우리는 이 연구를 통해서 오히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우리들이 죄인임을 잊고 살았음을 깨닫게 되었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할 수 밖에 없네"라고 고백하였다는 것입니다. 부활사실을 부인하기 위하여 연구하던 무신론자들이 오히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처럼 부활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 것입니다.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 그리고 부활을 상징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교회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어찌하여 날마다 위험을 무릅쓰는 영적 싸움이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죽기까지 먹고 마시는 쾌락의 살을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사셔서 자신에게 나타나심을 목격한 자였습니다. 아무리 사도 바울이 부인하려고 해도 다시 사신 예수님이 자신에게 보이시자 더 이상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셔서 누구든지 그 분을 영접하는 자에게 내주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십니다. 우리 안에는 부활의 생명이 있는데, 그 생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역사적으로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들은 삶이 변화되었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부활의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자의 부활을 확신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예수님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첫 열매는 이스라엘 백성의 절기에 포함됩니다. 유월절 절기는 어린양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기념하는 이스라엘의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이 지나고 사흘 후인 안식일이 지난 첫 날에 초실절로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에 대하여 레위기는 첫 이삭을 드리는 초실절을 설명했습니다. “...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레 23:10-11). 보리농사를 하고 첫 이삭을 드리는 날은 유월절 절기 기간의 안식일 다음 날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주님 안에 있는 성도는 주님과 같이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 15:22-23). 부활은 첫 열매인 그리스도가 먼저이며,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 자는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두 가지의 부활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사망에 이르고, 모든 사람은 부활을 합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의인의 삶을 살았든, 복음을 거절하여 죄인으로 살았던 모두가 부활하여 또 다른 내세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다 12:2). 선지자 다니엘은 두 가지의 부활을 예언했습니다. 그는 자는 자 중에서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는 자 중에 깨어 수치를 받아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는 자도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무덤 속에 있는 자가 음성을 듣고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예수님은 주님이 오실 때에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썩어 없어지지만, 그 영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영혼은 새 몸을 입는 부활을 통하여 생명이나 심판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부활이 두 가지라고 했는데 성경은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활은 주님이 말씀하신 믿는 자의 부활로서 생명의 부활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예수님이 공중 재림하실 때에 성도의 부활이 있을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예수님이 공중으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첫째 부활입니다. 첫째 부활은 그리스도가 공중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 있던 성도들의 부활이 있고, 그 후에 지상 재림하실 때에 대환난 중에 순교당한 자들의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첫째 부활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의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계 20:5).
첫째 부활은 그리스도가 공중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가 무덤에서 일어나 공중으로 들림 받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지상 재림하실 때에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순교한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첫째 부활인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계 20:6).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가 복이 있는 것은 둘째 사망인 백보좌 심판의 형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는 첫째 부활을 통하여 영생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요한 1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된 몸을 입을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는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과 같은 새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새로운 몸은 영원한 천국에서 살 수 있게 하는 새 몸인 것입니다.
둘째 부활은 죄 가운데 죽은 자들이 심판의 부활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최후의 심판은 백보좌 심판입니다. 죽은 자들이 다시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는데 이때 죽은 자들이 주님 앞에 서서 자신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들의 새로운 몸은 지옥에서 타지 않지만 고통을 당하는 몸일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4-15). 영원한 지옥불을 위하여 부활하는 몸이 심판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부활을 위하여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받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부활은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게 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2).
우리는 첫 열매인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자의 부활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시는 이유는 영원한 천국에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보좌 심판 때에 우리가 살고 있는 땅과 하늘이 사라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라지게 하시는 것에 대하여 베드로 후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로보도다.”(벧후 3:10-13).
하나님의 날이 임할 때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져 사라지게 됩니다. 즉 이 땅의 모든 것이 불에 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2)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망하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새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를 마치실 때에 하늘과 땅이 사라지게 하실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자는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신 자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하신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셔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생명은 우리의 육신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육신은 이 세상을 위한 몸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썩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주님이 오실 때에 부활한 새로운 몸으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영원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게 하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소망하는 자는 이 땅에 큰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위하여 살아간다면 그것은 육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때를 소망하는 자는 항상 하나님의 때를 소망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천국의 소망으로 살아가며 천국에 상급과 보화를 예비하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