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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시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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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329회 작성일 20-06-2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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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시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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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2).

 저의 아버님께서는 40년 이상 목회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목회자로서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고 삶에서는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기도하시며 하나님과 동행하셨습니다. 네 명의 자녀를 목회자로 키우시며 믿음으로 미국의 신학교에 보내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게 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50대 초반에 기도와 믿음으로 말기암을 치유받으신 기적을 경험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은퇴하신 후에 찾아온 두 번의 암은 하나님이 부르시기 위해 주신 암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임종을 앞두시고 하신 유언이 있습니다. 그 유언은 아버님의 묘비에 기록하여 자녀들이 항상 그 유언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그 유언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위대하다.”입니다. 아버님께서 평생 사역을 하시고 난 후에 마음으로 깨달으신 가장 소중한 가치는 하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동등되게 위대함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사람의 생각이나 말로도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 위대함이 하나님과 동등한 것입니다. 믿음의 근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척도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얼마나 믿음으로 순종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영적 생활의 뿌리인 말씀의 위대하심과 능력에 대한 이해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말씀 안에서 살아감으로 형통케 하는 복을 누리게 합니다.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여 그 행사가 다 형통한 삶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형통한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은혜가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 26:3,12).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에녹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그들의 삶에 복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하심을 알고, 위대한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원리를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1,3).

  하나님은 천지와 온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말씀과 성령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2). 하나님의 신은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수면 위에 운행하시며 창조의 역사에 함께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창조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누게 하리라 하시고.”(창 1:6).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    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까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    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창 1:9-11).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심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온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뜻을 말씀하실 때에 창조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보다 구별된 창조주이십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이름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는 ‘모든 존재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다른 피조물에 근거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존재 이유이십니다. 우리는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에 모든 피조물의 으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지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고, 그 중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셨습니다.

 시편 8편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시 8:4-6).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고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떠나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섬기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온 만물의 주가 되시며,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돌아오는 자를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온 만물의 창조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사 44:24).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온 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써 구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문설주와 인방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발라 증거를 삼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도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니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2:23).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을 거듭나게 하여 새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니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2:23). 사람이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닙니다. 썩어질 씨는 썩어 없어지는 세상의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세상의 철학이나 종교, 그리고 자기 의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것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을 구원하거나 거듭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 스스로 의롭다 여길 만큼 무척이나 경건하고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종교적인 사람이라도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지만,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말씀과 성령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육체로 태어나는 것과 다릅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으로 영적인 출생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물과 성령은 말씀과 성령을 의미합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7)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는 씨는 바로 복음의 말씀인 것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니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3-25).

  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인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했습니다. 세사의 모든 영화는 떨어지지만,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믿는 자들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우리의 선행이나 노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은 복음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은 새로운 창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말씀의 능력은 살아있고 영원하여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구원받는 은혜를 얻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나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초대 교회의 제자들은 핍박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가르치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기에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창조를 말씀으로 하셨듯이, 영혼의 구원을 말씀으로 행하셨습니다.

  디모데 전서는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능력을 새롭게 깨달아 현재 우리의 삶에서 보배로운 말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형통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2-3).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음같이 그 행사가 다 형통할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시편 기자는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망한다고 했습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4-6). 말씀을 버리고 살아가는 악인은 망하지만,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의인의 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셔서 형통케 하십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7:5). 노아의 순종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입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창 12:4). 말씀을 따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주시는 약속인 땅과 후손과 온 세상의 축복의 근원이 되는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며 모세를 통하여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 명령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 10:13).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복이 되었듯이, 우리에게도 행복을 주는 능력입니다.

  시편 19편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와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편 19편 1편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온 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피조물인 우리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받은 우리의 삶에 절대적인 생명의 양식입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설명하면서 말씀의 능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말씀은 영혼을 소성케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시 19:7).

  하나님의 말씀은 흠이 없는 완전합니다. 구약에서 거룩이 완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의 영혼을 소성케 합니다. 소성케 하는 것은 영혼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육체가 지치듯이 영혼도 힘들고 어려울 때를 만납니다. 우리가 낙심하거나 죄에 유혹에 빠졌거나 상처를 받으면 영혼이 지칩니다.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를 마시면 마음이 시원해지듯이, 지치고 힘든 영혼이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면 영혼이 회복하게 됩니다. 영어로는 restore 또는 refresh 입니다. 우리가 힘들면 휴가를 가서 refresh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영혼이 지치면 말씀을 통하여 영혼을 refresh 하여 회복하는 은혜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2) 말씀은 지혜롭게 합니다.

  “...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시 19:7).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둔한 자는 단순하여 모든 것을 믿습니다. 성경에서 어리석은 자는 유혹에 넘어져 파멸의 인생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여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혜이지만 사탄이 주는 거짓을 믿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세상이나 사람이 주는 거짓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거짓을 분별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거짓을 분별하지 못함으로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집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외침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며 죄악을 밥먹듯 하는 백성을 향한 회개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도 돌아오는 것이 지혜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을 버리고 이방인의 풍속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의지하는 삶은 지혜롭게 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다윗은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시 119:97-98)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원수나 스승보다 지혜롭게 합니다.

 3) 말씀은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시 19:8).

  말씀은 정직하고 순결합니다. 세상은 거짓과 부패가 가득하지만 말씀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말씀은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며 믿음을 가르치며, 소망을 줍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여주심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원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임재하셔서 말씀이 살아있게 하셔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얻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심으로 주의 음성을 듣는 기쁨을 누리며,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평안을 얻게 합니다.

  말씀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합니다. 눈은 영적인 안목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여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합니다. 이 세상에서 영적인 눈이 밝아지는 기쁨은 우리의 삶을 더욱 형통케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비결은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이 뜻을 분별하며 순종하는 삶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많은 정금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10). 하나님의 말씀은 정금보다 더 귀하여 꿀보다 더 달아 우리의 삶에 큰 은혜를 끼치게 합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금보다 더욱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안에 거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평안의 주십니다.

 우리는 말씀의 보배가 항상 곁에 있음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승리하는 모든 원리를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연단하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를 책망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자대학과 성경으로의 여행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깨달아 영적인 깊이를 더함으로 마음의 기쁨과 영적인 안목이 더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