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가치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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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203회 작성일 20-06-13 20:37본문
가장 소중한 가치는 사랑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 30-31).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최고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말씀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음을 깨닫고, 사랑하는 삶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끊임없이 배워야만 하는 소중한 가치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언어를 새롭게 생각하며 우리의 삶이 사랑으로 충만하여 사랑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하는 행하는 성경적인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 19)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본질이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하여 가정과 공동체, 직장에서 흘러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 7-8).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난 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 난 자의 의미는 하나님을 통하여 새롭게 거듭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영생인데, 이 영생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하나님의 사랑’ 의 씨앗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동물들은 본능은 가지고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에만 있는 고유한 특징인 것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더욱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우리 안에 느껴질 때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도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풍성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사랑의 빛을 비추십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깊이 받아서 우리 안에서 흘러넘치는 풍성한 사랑을 나누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는 사랑하는 삶이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소중한 원리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것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사랑이 소중한 삶의 가치가 될까요?
1) 사랑은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 8).
사랑하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하는 표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삶은 우리의 믿음의 신실성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주님은 제자됨의 증거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 13: 34-35). 사랑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2) 사랑은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 3: 14).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위에서 세워갑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들의 삶의 가치를 물질에 두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에 두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의 중심을 취미 생활이나 스포츠에 두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통하여 자신의 삶의 만족이나 기쁨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삶의 포커스를 사랑하는 삶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더욱 가치있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소중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그 분의 영원한 사랑에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주셨고, 우리의 마음에 사랑의 소중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서 표현되어지는 사랑의 언어나 몸짓, 그리고 희생적인 삶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더욱 가치있게 할 것입니다.
3) 사랑은 서로의 허물을 가리우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8).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심으로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씻음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허물이 있는 자를 사랑하기로 선택한다면, 허물 있는 자로도 사랑으로 변화됩니다. 세상은 조금의 허물만 보여도 그 허물을 가지고 삶을 무너트리려고 합니다. 잘못된 마음으로 공격하기 시작할 때는 사자가 짐승을 잡아먹듯이, 상처받은 자에 대한 자비가 없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남편이 다섯번째인 수가성의 여인에게 다가가셔서 그녀를 받으시고 말씀을 전하심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회피했지만 주님은 찾아가셔서 허물보다는 그녀의 필요를 보시고 사랑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자비와 인자를 보여 주심으로, 그 여인에게 살아갈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베푸는 사랑은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사랑의 미소와 몸짓은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최고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삶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 34).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이 이해하기 까지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충분하게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실을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배워야 할 모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모습을 이해한 후에,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원리들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우리는 예수님처럼 서로를 받아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 37).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람들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되어지고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우리를 용납하고 받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완벽한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세상의 누군가는 우리에게 돌을 던지며 거절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영접하십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를 반대하고 거절한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받아주십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데려와서 사람들은 그녀에게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그때 주님은 그녀를 향하여 돌은 던지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군중들을 향하여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합니다. 그러자, 어느 누구도 나서서 돌을 던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한 가지 말씀을 하십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예수님은 그녀의 인격을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를 받으셨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변화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죄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과 비교했을 때에 더욱 의롭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주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했다고 하셨으며,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살인자이며 간음하는 자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를 받음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롬 15: 7). 예수님께서 우리를 받으신 것처럼, 너희도 서로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받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두려움도 있고 의심도 있습니다. 믿음의 연약함도 있습니다. 인격의 장애도 있기도 합니다. 행동과 말의 미성숙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연약함을 보고 돌을 던지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약함을 보면서 그를 받아들이고 연약함에 대해서는 기도해주는 성숙된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2) 우리는 예수님처럼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눅 12: 6-7).
우리는 예수님이 나의 가치를 존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의 가치를 존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입니까? 여러분은 스스로 얼마나 가치가 있다고 느끼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무한한 가치를 지닌 피조물입니다. 무한하다는 의미는 이 세상의 어떠한 것으로도 여러분을 대신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의 가치를 존중하시면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실 만큼 우리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소중한 존재로 보시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향하여 소중한 존재로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떠한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행하는 모습이나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소중한 가치의 존재로 보시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향하여 소중한 가치있는 존재로 보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3) 우리는 예수님처럼 서로를 용서해야 합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 43: 25).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예배를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고,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지옥의 권세에 매인 죄의 사슬을 끊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자유와 승리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코리텐 붐 여사는 네덜란드 사람이었습니다. 2차 대전중 쫓기는 유대인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나치 수용소에 갇혔고, 혹독한 고문끝에 온 가족이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직 그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전쟁이 끝난후 그녀는 전도자가 되어 온 세계에 다니며 용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녀가 용서의 메세지를 전하는 곳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독일에서 그를 청하여 특별 집회를 가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어느 날 저녁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을 때 자기 손을 잡은 노신사를 바라보는 순간 그녀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자기 가족을 고문하여 죽게하고, 자신의 꽃다운 처녀시절 옷을 벗기고 때리고 고문하고 온갖 고통과 수모를 주던 바로 그 전범이 아직 살아서 자신과 악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그녀는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을 다 용서해도 이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나는 그 사람까지도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졌노라]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의 은총을 힘입고 그 원수까지도 용서하였으며 그를 마음으로 용서하는 순간 그 순간에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즐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용서는 하나님 때문에 해야하고 용서 받아야 할 사람을 위해서 하지만, 용서를 통하여 가장 큰 유익을 얻는 사람은 자신입니다. 왜냐하면 용서를 통하여 미움과 분노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하여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용서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향한 용서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용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를 통하여 나타났듯이, 우리의 사랑도 용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 30-31).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최고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말씀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음을 깨닫고, 사랑하는 삶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끊임없이 배워야만 하는 소중한 가치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언어를 새롭게 생각하며 우리의 삶이 사랑으로 충만하여 사랑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하는 행하는 성경적인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 19)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본질이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하여 가정과 공동체, 직장에서 흘러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 7-8).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난 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 난 자의 의미는 하나님을 통하여 새롭게 거듭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영생인데, 이 영생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하나님의 사랑’ 의 씨앗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동물들은 본능은 가지고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에만 있는 고유한 특징인 것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더욱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우리 안에 느껴질 때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도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풍성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사랑의 빛을 비추십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깊이 받아서 우리 안에서 흘러넘치는 풍성한 사랑을 나누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는 사랑하는 삶이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소중한 원리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것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사랑이 소중한 삶의 가치가 될까요?
1) 사랑은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 8).
사랑하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하는 표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삶은 우리의 믿음의 신실성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주님은 제자됨의 증거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 13: 34-35). 사랑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2) 사랑은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 3: 14).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위에서 세워갑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들의 삶의 가치를 물질에 두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에 두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의 중심을 취미 생활이나 스포츠에 두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통하여 자신의 삶의 만족이나 기쁨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삶의 포커스를 사랑하는 삶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더욱 가치있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소중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그 분의 영원한 사랑에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주셨고, 우리의 마음에 사랑의 소중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서 표현되어지는 사랑의 언어나 몸짓, 그리고 희생적인 삶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더욱 가치있게 할 것입니다.
3) 사랑은 서로의 허물을 가리우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8).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심으로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씻음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허물이 있는 자를 사랑하기로 선택한다면, 허물 있는 자로도 사랑으로 변화됩니다. 세상은 조금의 허물만 보여도 그 허물을 가지고 삶을 무너트리려고 합니다. 잘못된 마음으로 공격하기 시작할 때는 사자가 짐승을 잡아먹듯이, 상처받은 자에 대한 자비가 없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남편이 다섯번째인 수가성의 여인에게 다가가셔서 그녀를 받으시고 말씀을 전하심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회피했지만 주님은 찾아가셔서 허물보다는 그녀의 필요를 보시고 사랑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자비와 인자를 보여 주심으로, 그 여인에게 살아갈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베푸는 사랑은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사랑의 미소와 몸짓은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최고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삶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 34).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이 이해하기 까지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충분하게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실을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배워야 할 모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모습을 이해한 후에,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원리들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우리는 예수님처럼 서로를 받아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 37).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람들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되어지고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우리를 용납하고 받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완벽한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세상의 누군가는 우리에게 돌을 던지며 거절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영접하십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를 반대하고 거절한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받아주십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데려와서 사람들은 그녀에게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그때 주님은 그녀를 향하여 돌은 던지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군중들을 향하여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합니다. 그러자, 어느 누구도 나서서 돌을 던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한 가지 말씀을 하십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예수님은 그녀의 인격을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를 받으셨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변화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죄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과 비교했을 때에 더욱 의롭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주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했다고 하셨으며,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살인자이며 간음하는 자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를 받음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롬 15: 7). 예수님께서 우리를 받으신 것처럼, 너희도 서로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받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두려움도 있고 의심도 있습니다. 믿음의 연약함도 있습니다. 인격의 장애도 있기도 합니다. 행동과 말의 미성숙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연약함을 보고 돌을 던지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약함을 보면서 그를 받아들이고 연약함에 대해서는 기도해주는 성숙된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2) 우리는 예수님처럼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눅 12: 6-7).
우리는 예수님이 나의 가치를 존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의 가치를 존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입니까? 여러분은 스스로 얼마나 가치가 있다고 느끼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무한한 가치를 지닌 피조물입니다. 무한하다는 의미는 이 세상의 어떠한 것으로도 여러분을 대신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의 가치를 존중하시면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실 만큼 우리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소중한 존재로 보시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향하여 소중한 존재로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떠한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행하는 모습이나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소중한 가치의 존재로 보시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향하여 소중한 가치있는 존재로 보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3) 우리는 예수님처럼 서로를 용서해야 합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 43: 25).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예배를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고,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지옥의 권세에 매인 죄의 사슬을 끊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자유와 승리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코리텐 붐 여사는 네덜란드 사람이었습니다. 2차 대전중 쫓기는 유대인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나치 수용소에 갇혔고, 혹독한 고문끝에 온 가족이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직 그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전쟁이 끝난후 그녀는 전도자가 되어 온 세계에 다니며 용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녀가 용서의 메세지를 전하는 곳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독일에서 그를 청하여 특별 집회를 가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어느 날 저녁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을 때 자기 손을 잡은 노신사를 바라보는 순간 그녀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자기 가족을 고문하여 죽게하고, 자신의 꽃다운 처녀시절 옷을 벗기고 때리고 고문하고 온갖 고통과 수모를 주던 바로 그 전범이 아직 살아서 자신과 악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그녀는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을 다 용서해도 이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나는 그 사람까지도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졌노라]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의 은총을 힘입고 그 원수까지도 용서하였으며 그를 마음으로 용서하는 순간 그 순간에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즐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용서는 하나님 때문에 해야하고 용서 받아야 할 사람을 위해서 하지만, 용서를 통하여 가장 큰 유익을 얻는 사람은 자신입니다. 왜냐하면 용서를 통하여 미움과 분노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하여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용서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향한 용서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용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를 통하여 나타났듯이, 우리의 사랑도 용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