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66) -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라(마 22: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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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451회 작성일 20-12-05 21:44본문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글이 뉘 것이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마 22:21).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셔서 세 가지의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 포도원 농부의 비유, 그리고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의 비유로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 그리고 사두개인들의 영적 교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들은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을 향한 주님의 따가운 책망을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잡고자 하였으나 예수님을 선지자로 믿고 따르는 무리들을 인하여 주저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곤란한 질문을 하심으로 예수님이 곤경에 빠트리려고 계략을 꾸몄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에 사역을 시작하시며 광야에서 마귀의 공격을 이기셨던 것처럼, 성전에서 종교 지도자들의 궤계를 이기셔야 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로부터 세 번의 질문을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은 바리새인들의 첫 번째 질문인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은것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신 주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영적인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주는 도전을 만납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마 22:15).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들은 후에 대책 모음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마 22:15)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하기 위하여 말의 올무를 놓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려 한 이유는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며,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위선을 책망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를 저주하심으로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저주하신 것처럼, 비유를 통하여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메시야를 영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주님 앞에 회개하기는 커녕 도리어 예수님을 음모에 빠트려는 계략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을 숨겨진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께 보내었습니다.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경건주의를 추종하는 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속적인 것에서 분리하고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려는 부류들이었습니다. 반면에 헤롯당은 헤롯의 왕가를 추종하는 세력들이었습니다. 헤롯 대왕이 사망한 이후에 로마는 이스라엘을 아켈라우스, 헤롯 안디바, 헤롯 빌립의 분봉왕을 세워 통치했습니다. 헤롯 아켈라우스는 사마리아와 유다를 통치했는데 그의 실정으로 인하여 A.D. 6년에 폐위가 되자 로마는 총독을 세워 그 지역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헤롯당원들은 다시 로마의 힘을 빌려 헤롯가가 다시 왕권을 잡기를 열망했던 헤롯의 추종자들이었습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정복한 이후로 그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성인에게 일 년에 한 데나리온을 세금으로 내는 인두세를 내게 했습니다. 바리새파와 헤롯당은 공통된 점은 아무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추구하는 것은 서로 반대였지만, 공통된 점은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그룹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미워하였고, 헤롯당은 군중들의 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예수님을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의 옷을 입은 이리를 조심하라고 하셨듯이,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자신들의 의도를 숨긴 채 예수님께 호의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마 22:16). 그들이 예수님이 성전에 가르치기 시작하실 때에는 모질게 대우했습니다. “...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마 21:23). 이제 그들은 주님께 ‘선생님이여’라고 호칭했습니다.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호칭한 것은 예수님을 권위있는 랍비로 높여 부른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에수님은 참되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참되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되게 가르치시는 분으로 경외심을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여론의 눈치를 살피시지 않으시고 오직 진리만을 전하는 분이라고 칭송한 것입니다. 그들의 칭송은 예수님에게는 긴장을 풀어 자기들의 의도대로 끌려가도록 덫을 놓기 위함이고, 예수님의 참되심을 칭찬한 것은 백성들의 호의를 얻기 위한 언어의 제스쳐였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예수님께 외식적으로 존중과 예의를 보인 것은, 예수님을 자신들이 파놓은 덫으로 유인하려는 술수였습니다. 그들의 겸손한 태도에 적어도 예수님이 자신들이 던진 질문에 답변을 거절하지 않으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로마의 황제인 가이사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신다면, 헤롯당원이 즉시 로마 총독에게 고소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다면 주님을 따르는 군중들이 주님을 배척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려던 사탄은 우리를 향하여도 함정에 빠트리려는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을 때에, 세상은 우리를 위협하기도 하고 시련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많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법적으로 교회가 예배를 온전하게 드릴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곤 합니다. 미국에서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자 주차장에서 예배를 드리는 상황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벌금을 내고라도 예배를 강행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순교를 각오하고 감옥을 갈 각오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영적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2.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시험을 영적인 지혜로 이겨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마 22:17).
바리새인들이 헤롯당원과 가져온 질문은 세금에 대한 이슈였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마 22:17). 로마는 이스라엘을 통치하면서 세금을 징수하였습니다. 그들은 상업이나 무역활동에 대한 수익으로 소득세를 내어야 했고, 토지를 소유한 자는 토지세를 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인두세는 로마가 남자는 14세, 여자는 12세부터 65세 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세금이었습니다. 특히 인두세를 내는 것은 로마에 정치적으로 종속된다는 상징적인 의미였기에 유대인들에게 상당히 불편하게 여긴 세금이었습니다.
세금이 유대인들에게 큰 이슈가 된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자신들이 이방인인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과연 합당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로마 황제는 티베리우스였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유다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행 5:37). 로마는 14년 마다 세금을 결정하기 위하여 인구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인구 조사를 할 때에 갈릴리 사람 유다가 자신들의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주장하며,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세금을 이슈로 로마에 대한 반역을 일으키자 많은 백성이 따르다가 진압되고 유다는 처형되었습니다.
유대인 중에서 열성당원들은 아직도 인두세를 내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로마에 대한 세금을 인정한다면 바리새인들이나 열심당원, 그리고 백성들로 부터 외면을 당하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로마에 대한 세금을 거부한다면 헤롯당원이나 로마 총독으로부터 정치적으로 유다와 같이 선동하는 자로 몰려 처형을 받을 상황을 만나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속으로는 예수님이 로마에 대한 세금을 거부하리라 예상을 하고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그리하면 헤롯당원이 예수님이 세금을 가이사에게 내지 말라고 했단 말을 로마 총독에게 알려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처형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의도를 아시고 강하게 질책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마 22:18). 예수님께서는 저희들의 악함을 아셨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예수님에게 랍비로서 답변을 주시기를 요청했지만, 속으로는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려 무너트리려는 계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고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향한 직접적인 공격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요한복음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와 율법에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는지를 묻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들의 의도에 대하여 요한복음은 그들이 고소할 조건을 얻어 예수를 시험함이라고 했습니다(요 8:6).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답변하시며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더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바리새인의 아비는 마귀였기에, 그들은 마귀와 같이 거짓을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탄은 영적으로 공격하기 위하여 말씀을 사용하곤 합니다. 오늘날 이단들은 말씀을 인용하여 교주를 믿고 따르게 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왜곡되이 가르쳐 영혼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하여 거짓말로 말씀을 왜곡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거짓말로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아니할 것이고, 도리어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아담과 하와를 함정에 빠트렸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유혹은 자신이 삶의 주인이라고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이 주는 궤계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원리로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글이 뉘 것이냐.”(마 22:20).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즉각적인 답변을 하지 않으시고 세금을 내는 셋돈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글이 뉘 것이냐.”(마 22:19-20). 사람들이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자 예수님께서는 세금을 내는 동전의 형상과 이글이 뉘 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가이사의 것이니이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당시에 세금을 내는 화폐는 성인 하루의 품삯인 한 데나리온이었습니다. 로마 황제는 자신의 왕권을 세우기 위하여 화폐로 통용되는 동전에 자신의 형상을 새겼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로마 황제는 티베리우스였기에 그의 두상이 동전에 새겨졌습니다. 그는 단지 황제로서의 자신을 높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신성시하는 의미를 담아 ‘신의 아들’이라는 문구를 새겼습니다. “존엄한 신의 존엄한 아들 티베리우스 가이사”라는 글이 데나리온 은화에 새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화폐의 뒷 면에는 폰티펙스 막시무스라는 글이 새겨졌는데, 이는 “지극히 높은 대제사장” 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는 로마 황제는 하나님의 아들일 뿐 아니라 대제사장이라는 뜻을 화폐에 새겨 강조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의 바리새인들이나 열성당원들이 로마에게 세금을 내는 것을 거부한 이유였습니다. 로마가 자신을 하나님으로 높여 숭배를 받으려 하자, 열심을 품은 유대인들은 로마에 세금을 내는 일이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신격화하는 것은 메소포타미아의 통치자들이 자신을 신이라 지칭하였고, 애굽의 바로는 스스로를 신격화하였고 신이 낳은 아들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으로서 신들에게 나아가는 중보자로고 여기며 백성들의 숭배를 받았습니다. 로마 시대는 황제들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후에 자신들을 신격화하며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숭배하지 않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앞으로 적그리스도가 출현하면 자신을 신격화하고 자신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무참하게 죽일 것임을 요한계시록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 동전인 데나리온을 보이시며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라고 하셧습니다. 데니리온의 형상은 로마 황제인 티베리우스였고, 글은 자신을 신격화환 문구였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가이사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데나리온을 통하여 지적하셨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의 얼굴을 새긴 동전을 우상시하고 배척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문구는 신성 모독으로 여길 죄였던 것입니다. 이에 로마 황제는 유대 사람들을 배려하여 일상적인 상업 활동에는 로마의 데나리온 화폐가 아니라 유대 세겔이나 렙돈 동전을 사용하도록 배려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에서 바리새인들은 로마 은화를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로마 은화가 우상숭배의 도구로 여겨 거부하면서도, 그들은 로마 황제의 얼굴을 새긴 데나리온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세금을 내는 것을 반대하면서 그 세금 내는 로마 은화를 가지고 다니는 위선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롬 22:21)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 황제의 것은 그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가이사는 단지 은화를 소유한 로마 황제에 지나지 않지만, 하나님은 가이사를 로마 황제로 세우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가이사와 하나님을 분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분하심으로 당시의 고정 관념을 깨트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민족입니다. 그러나 로마 황제가 그들의 왕이 되어 다스리려고 할 때에 그들은 큰 반감이 생긴 것입니다. 이에 로마 정부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을 향한 충성은 함께 할 수 없다고 간주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라고 간주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러한 생각을 거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함께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나라의 신실한 국민으로 살아감과 동시에 하나님의 충성된 종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는 것은, 국가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그 나라가 폭정을 일삼는 로마의 정부라 할지라도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예수님께서는 그 나라의 권위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국가에 내는 세금을 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 속한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등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로마 황제는 자신을 신으로 간주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부인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로마 황제 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로마 황제는 하나님이 세우신 로마의 지도자의 위치에 두신 것입니다. 로마 황제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성경적인 국가관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3). 하나님은 모든 권세를 세우셨고 하나님의 사자로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로서 권세는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기도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라고 했습니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 13:7).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는 것은 진노를 받기 때문이 아니라, 양심을 위하여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핍박이 진행하고 있을 때에 서신서를 기록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고 했습니다.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벧전 2:11-17). 그리스도인은 왕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왕은 하나님의 사신이 되어 이 땅에 공의로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해야 하며, 왕이나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기 위하여 보낸 방백에게도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왕을 공경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왕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강요한다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인간이 세운 제도에는 불편함이나 불의가 있어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부분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로마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핍박당한 이유는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마 황제는 자신은 신이라 칭했지만,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는 단지 인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황제 숭배를 거절하고 순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과 순교를 당하는 이유는 국가 정책에 반대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나 강요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뜻에 우선순위에 두는 믿음으로 거절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함으로 사자굴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이 그를 지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기며 떠나갔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왕과 하나님은 다른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왕은 이 세상의 나라이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나라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동시에 국가의 국민으로서 세금이나 여러 분야에서 의무를 다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셔서 세 가지의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 포도원 농부의 비유, 그리고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의 비유로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 그리고 사두개인들의 영적 교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들은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을 향한 주님의 따가운 책망을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잡고자 하였으나 예수님을 선지자로 믿고 따르는 무리들을 인하여 주저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곤란한 질문을 하심으로 예수님이 곤경에 빠트리려고 계략을 꾸몄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에 사역을 시작하시며 광야에서 마귀의 공격을 이기셨던 것처럼, 성전에서 종교 지도자들의 궤계를 이기셔야 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로부터 세 번의 질문을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은 바리새인들의 첫 번째 질문인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은것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신 주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영적인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주는 도전을 만납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마 22:15).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들은 후에 대책 모음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마 22:15)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하기 위하여 말의 올무를 놓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려 한 이유는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며,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위선을 책망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를 저주하심으로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저주하신 것처럼, 비유를 통하여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메시야를 영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주님 앞에 회개하기는 커녕 도리어 예수님을 음모에 빠트려는 계략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을 숨겨진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께 보내었습니다.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경건주의를 추종하는 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속적인 것에서 분리하고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려는 부류들이었습니다. 반면에 헤롯당은 헤롯의 왕가를 추종하는 세력들이었습니다. 헤롯 대왕이 사망한 이후에 로마는 이스라엘을 아켈라우스, 헤롯 안디바, 헤롯 빌립의 분봉왕을 세워 통치했습니다. 헤롯 아켈라우스는 사마리아와 유다를 통치했는데 그의 실정으로 인하여 A.D. 6년에 폐위가 되자 로마는 총독을 세워 그 지역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헤롯당원들은 다시 로마의 힘을 빌려 헤롯가가 다시 왕권을 잡기를 열망했던 헤롯의 추종자들이었습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정복한 이후로 그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성인에게 일 년에 한 데나리온을 세금으로 내는 인두세를 내게 했습니다. 바리새파와 헤롯당은 공통된 점은 아무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추구하는 것은 서로 반대였지만, 공통된 점은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그룹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미워하였고, 헤롯당은 군중들의 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예수님을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의 옷을 입은 이리를 조심하라고 하셨듯이,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자신들의 의도를 숨긴 채 예수님께 호의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마 22:16). 그들이 예수님이 성전에 가르치기 시작하실 때에는 모질게 대우했습니다. “...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마 21:23). 이제 그들은 주님께 ‘선생님이여’라고 호칭했습니다.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호칭한 것은 예수님을 권위있는 랍비로 높여 부른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에수님은 참되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참되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되게 가르치시는 분으로 경외심을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여론의 눈치를 살피시지 않으시고 오직 진리만을 전하는 분이라고 칭송한 것입니다. 그들의 칭송은 예수님에게는 긴장을 풀어 자기들의 의도대로 끌려가도록 덫을 놓기 위함이고, 예수님의 참되심을 칭찬한 것은 백성들의 호의를 얻기 위한 언어의 제스쳐였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예수님께 외식적으로 존중과 예의를 보인 것은, 예수님을 자신들이 파놓은 덫으로 유인하려는 술수였습니다. 그들의 겸손한 태도에 적어도 예수님이 자신들이 던진 질문에 답변을 거절하지 않으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로마의 황제인 가이사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신다면, 헤롯당원이 즉시 로마 총독에게 고소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다면 주님을 따르는 군중들이 주님을 배척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려던 사탄은 우리를 향하여도 함정에 빠트리려는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을 때에, 세상은 우리를 위협하기도 하고 시련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많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법적으로 교회가 예배를 온전하게 드릴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곤 합니다. 미국에서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자 주차장에서 예배를 드리는 상황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벌금을 내고라도 예배를 강행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순교를 각오하고 감옥을 갈 각오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영적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2.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시험을 영적인 지혜로 이겨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마 22:17).
바리새인들이 헤롯당원과 가져온 질문은 세금에 대한 이슈였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마 22:17). 로마는 이스라엘을 통치하면서 세금을 징수하였습니다. 그들은 상업이나 무역활동에 대한 수익으로 소득세를 내어야 했고, 토지를 소유한 자는 토지세를 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인두세는 로마가 남자는 14세, 여자는 12세부터 65세 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세금이었습니다. 특히 인두세를 내는 것은 로마에 정치적으로 종속된다는 상징적인 의미였기에 유대인들에게 상당히 불편하게 여긴 세금이었습니다.
세금이 유대인들에게 큰 이슈가 된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자신들이 이방인인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과연 합당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로마 황제는 티베리우스였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유다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행 5:37). 로마는 14년 마다 세금을 결정하기 위하여 인구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인구 조사를 할 때에 갈릴리 사람 유다가 자신들의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주장하며,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세금을 이슈로 로마에 대한 반역을 일으키자 많은 백성이 따르다가 진압되고 유다는 처형되었습니다.
유대인 중에서 열성당원들은 아직도 인두세를 내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로마에 대한 세금을 인정한다면 바리새인들이나 열심당원, 그리고 백성들로 부터 외면을 당하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로마에 대한 세금을 거부한다면 헤롯당원이나 로마 총독으로부터 정치적으로 유다와 같이 선동하는 자로 몰려 처형을 받을 상황을 만나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속으로는 예수님이 로마에 대한 세금을 거부하리라 예상을 하고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그리하면 헤롯당원이 예수님이 세금을 가이사에게 내지 말라고 했단 말을 로마 총독에게 알려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처형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의도를 아시고 강하게 질책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마 22:18). 예수님께서는 저희들의 악함을 아셨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예수님에게 랍비로서 답변을 주시기를 요청했지만, 속으로는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려 무너트리려는 계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고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향한 직접적인 공격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요한복음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와 율법에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는지를 묻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들의 의도에 대하여 요한복음은 그들이 고소할 조건을 얻어 예수를 시험함이라고 했습니다(요 8:6).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답변하시며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더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바리새인의 아비는 마귀였기에, 그들은 마귀와 같이 거짓을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탄은 영적으로 공격하기 위하여 말씀을 사용하곤 합니다. 오늘날 이단들은 말씀을 인용하여 교주를 믿고 따르게 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왜곡되이 가르쳐 영혼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하여 거짓말로 말씀을 왜곡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거짓말로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아니할 것이고, 도리어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아담과 하와를 함정에 빠트렸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유혹은 자신이 삶의 주인이라고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이 주는 궤계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원리로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글이 뉘 것이냐.”(마 22:20).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즉각적인 답변을 하지 않으시고 세금을 내는 셋돈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글이 뉘 것이냐.”(마 22:19-20). 사람들이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자 예수님께서는 세금을 내는 동전의 형상과 이글이 뉘 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가이사의 것이니이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당시에 세금을 내는 화폐는 성인 하루의 품삯인 한 데나리온이었습니다. 로마 황제는 자신의 왕권을 세우기 위하여 화폐로 통용되는 동전에 자신의 형상을 새겼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로마 황제는 티베리우스였기에 그의 두상이 동전에 새겨졌습니다. 그는 단지 황제로서의 자신을 높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신성시하는 의미를 담아 ‘신의 아들’이라는 문구를 새겼습니다. “존엄한 신의 존엄한 아들 티베리우스 가이사”라는 글이 데나리온 은화에 새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화폐의 뒷 면에는 폰티펙스 막시무스라는 글이 새겨졌는데, 이는 “지극히 높은 대제사장” 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는 로마 황제는 하나님의 아들일 뿐 아니라 대제사장이라는 뜻을 화폐에 새겨 강조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의 바리새인들이나 열성당원들이 로마에게 세금을 내는 것을 거부한 이유였습니다. 로마가 자신을 하나님으로 높여 숭배를 받으려 하자, 열심을 품은 유대인들은 로마에 세금을 내는 일이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신격화하는 것은 메소포타미아의 통치자들이 자신을 신이라 지칭하였고, 애굽의 바로는 스스로를 신격화하였고 신이 낳은 아들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으로서 신들에게 나아가는 중보자로고 여기며 백성들의 숭배를 받았습니다. 로마 시대는 황제들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후에 자신들을 신격화하며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숭배하지 않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앞으로 적그리스도가 출현하면 자신을 신격화하고 자신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무참하게 죽일 것임을 요한계시록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 동전인 데나리온을 보이시며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라고 하셧습니다. 데니리온의 형상은 로마 황제인 티베리우스였고, 글은 자신을 신격화환 문구였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가이사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데나리온을 통하여 지적하셨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의 얼굴을 새긴 동전을 우상시하고 배척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문구는 신성 모독으로 여길 죄였던 것입니다. 이에 로마 황제는 유대 사람들을 배려하여 일상적인 상업 활동에는 로마의 데나리온 화폐가 아니라 유대 세겔이나 렙돈 동전을 사용하도록 배려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에서 바리새인들은 로마 은화를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로마 은화가 우상숭배의 도구로 여겨 거부하면서도, 그들은 로마 황제의 얼굴을 새긴 데나리온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세금을 내는 것을 반대하면서 그 세금 내는 로마 은화를 가지고 다니는 위선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롬 22:21)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 황제의 것은 그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가이사는 단지 은화를 소유한 로마 황제에 지나지 않지만, 하나님은 가이사를 로마 황제로 세우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가이사와 하나님을 분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분하심으로 당시의 고정 관념을 깨트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민족입니다. 그러나 로마 황제가 그들의 왕이 되어 다스리려고 할 때에 그들은 큰 반감이 생긴 것입니다. 이에 로마 정부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을 향한 충성은 함께 할 수 없다고 간주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라고 간주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러한 생각을 거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함께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나라의 신실한 국민으로 살아감과 동시에 하나님의 충성된 종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는 것은, 국가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그 나라가 폭정을 일삼는 로마의 정부라 할지라도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예수님께서는 그 나라의 권위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국가에 내는 세금을 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 속한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등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로마 황제는 자신을 신으로 간주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부인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로마 황제 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로마 황제는 하나님이 세우신 로마의 지도자의 위치에 두신 것입니다. 로마 황제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성경적인 국가관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3). 하나님은 모든 권세를 세우셨고 하나님의 사자로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로서 권세는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기도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라고 했습니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 13:7).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는 것은 진노를 받기 때문이 아니라, 양심을 위하여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핍박이 진행하고 있을 때에 서신서를 기록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고 했습니다.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벧전 2:11-17). 그리스도인은 왕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왕은 하나님의 사신이 되어 이 땅에 공의로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해야 하며, 왕이나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기 위하여 보낸 방백에게도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왕을 공경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왕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강요한다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인간이 세운 제도에는 불편함이나 불의가 있어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부분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로마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핍박당한 이유는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마 황제는 자신은 신이라 칭했지만,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는 단지 인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황제 숭배를 거절하고 순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과 순교를 당하는 이유는 국가 정책에 반대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나 강요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뜻에 우선순위에 두는 믿음으로 거절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함으로 사자굴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이 그를 지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기며 떠나갔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왕과 하나님은 다른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왕은 이 세상의 나라이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나라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동시에 국가의 국민으로서 세금이나 여러 분야에서 의무를 다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