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소망으로 고난을 이깁시다. > 주일설교

본문 바로가기
HOME > 말 씀 > 주일설교
주일설교

산 소망으로 고난을 이깁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269회 작성일 20-08-22 18:24

본문

산 소망으로 고난을 이깁시다.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베드로전서는 네로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이 시작될 즈음에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핍박과 고난을 인내하며 승리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전서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기에 ‘소망의 서신, 격려의 서신’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특권이며 연단의 과정임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서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전통적인 종교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은 가족이나 친척들로부터 버림받고 사회에서 소외되어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네로 황제로부터 극심한 핍박의 대상이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는 당시에 황제 숭배를 만들어 로마 황제를 향하여 분향하며 주라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주는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선포하며 믿음으로 황제 숭배를 거부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들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극심한 핍박의 대상이 되는데, 그리스도인들을 본격적으로 핍박하기 시작한 황제가 네로 황제였습니다. 네로 황제는 A.D. 64년에 로마에 큰 화재가 나자 그 책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고 이 때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이러한 핍박을 감당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베드로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 고난에서 산 소망을 가지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르게 대처해야 할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1장에서는 핍박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승리하기 위하여 붙잡아야 할 소망의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산 소망을 간직합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산 소망이란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고난을 통과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붙잡아야 하는 것은 참된 소망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생명을 주셨기에 우리는 영원한 소망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소망은 우리가 붙잡아야 할 소중한 보배입니다.

I. 우리가 산 소망의 이유를 품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우리의 소망은 영원하며 진실된 소망인가요?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늘나라를 향한 소망을 품고 그 소망을 기다리며 살아가는지요? 우리가 품은 소망은 하늘나라를 향한 참된 소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의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1.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거듭나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거듭나다’의 의미는 ‘다시 태어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사람의 지혜와 계획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인 것입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벧전 1:2).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랐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계획을 섭리하셨고 우리의 구원을 미리 아셨고 정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의 시작은 거듭남의 경험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이 땅에서만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 대한 산소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거듭남의 역사는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음을 믿어야 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값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8-19).  우리의 구원은 망령된 행실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따라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망령된 행실은 조상으로부터 유전된 행실인데, 이는 어리석거나 가치없는 행실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받기 이전에 살았던 우상 숭배의 삶과 같이 허무하고 어리석은 삶으로 어두움의 삶에 굴복된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러한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구속된 것’은 전쟁 포로나 잡혀 간 노예에 대한 몸값으로 지불된 돈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죄의 노예로 살아가던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자신의 피를 흘리셔서 그 대가를 치루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속은 당시의 사람들이 지불했던 돈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보배로운 피로 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구속하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으니 우리에게는 영원한 소망이 있는 특별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영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임을 베드로서는 증거합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9).  이러한 구원은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성령의 감동속에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시기를 깊이 상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구원의 메시지가 전해졌던 것입니다.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할만큼 구원은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았기에 성도들은 고난에서도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산 소망으로서 영원한 소망을 주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며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며 복음의 살아있는 말씀이 영원한 천국에서 그 소망의 열매를 맺게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벧전 1: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기에 우리의 구원과 소망도 영원히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우리에게 영원한 기업이 준비되기 때문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4).

  기업은 구약에서는 재산이나 소유물로 인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심으로 그들은 그 땅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업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신 것은,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천국에서의 영원한 상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업은 하나님께서 양자삼으신 우리에게 주시는 상속이며 영원한 상급인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기업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기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기업을 하늘에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영원한 처소이며 면류관이며, 상급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준비된 상급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함을 받고 있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쇠퇴하고 썩어지지만, 하늘에 준비된 상급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기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천국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 6:19-20).  주님께서는 하늘에 우리가 쌓아두는 보물이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전적인 선물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상급과 보물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며 심은 것에 대한 천국에서의 보상인 것입니다. 우리의 상급과 면류관이 하나도 땅에서 썩어지지 않고 천국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그 상급이 나타나 우리에게 큰 은혜와 기쁨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우리에게 가져올 은혜를 소망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벧전 1:13).  우리에게 나타날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주시는 영원한 상급이 하늘에 간직되어 있기에,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산 소망으로 고난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이 땅의 고난만을 바라본다면 낙심과 좌절로 인하여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지만,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의 눈은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며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소망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어떠한 고난과 시련을 만난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가져다 주시는 영원한 기업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3. 고난의 연단으로 정금같은 믿음을 얻기 때문입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7).

  사도 베드로는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만 결국은 크게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시험이 찾아오게 됩니다.  인생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시험이 찾아올 때에 우리는 잠간 근심하게 되지만, 그 안에서 고난의 목적과 섭리를 깨닫게 되면서 오히려 크게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에서도,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2)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이 찾아올 때에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믿음의 시련이 우리를 정금보다 더 귀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시련에서 시련의 뜻은 ‘증명, 시험(test), 시련(trial)’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금, 은과 같은 광석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 불로 제련하는 과정을 지칭하는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는 시련이 지속적인 연단 과정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 여부를 시험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의 연단을 통하여 순종하는 자녀로서 정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믿음의 시련이 연단의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연단을 통과하고 난 후에는 순결한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고, 그 결과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즉, 우리의 삶이 주님께 큰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그 분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고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심으로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기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욥은 고난속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 23:10).  욥은 고난에서 그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정금과 같이 빚어지는 모습을 고대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지식과 명성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가시며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훈련하시는 곳은 고난의 현장에서 용광로와 같은 불같은 시험을 통과하게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고난의 현장에서도 기쁨으로 감당하며 주님의 오실 날에 칭찬과 존귀를 얻는 모습에서 소망을 발견해야 합니다. 

II. 산 소망을 가진 성도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요?

  천국에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성도의 행실은 어떠해야 하는가요?  고난의 현장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요?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나그네와 행인같은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벧전 2:11).  나그네와 행인 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베드로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우리는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5).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은 두 가지의 삶을 경험했습니다.  구원받기 전의 삶과 구원받고 난 후의 삶인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의 삶은 육신적인 삶이며 세상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4-15).  이제는 우리가 거듭나 하나님의 순종하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입었기에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거듭남은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전의 사욕을 본 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전의 사욕은 육체의 욕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살아갈 때에 살았던 정욕적인 삶이며 세상적이고 죄악된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이렇게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 13:13-14).  이전의 사욕은 방탕이며 술 취하는 것이며 음란과 간음과 같이 호색하며 다투며 시기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권세잡은 자를 따르는 육신의 삶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에서는,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벧전 4:3-5)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에 행하던 음란과 정욕과 방탕과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랐던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한 삶을 살 때 세상은 우리를 비방하지만 결국은 심판자이신 그리스도 앞에 서서 자신의 행실에 대하여 심판받을 때가 찾아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양자삼은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영생의 삶을 살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를 향하여 주님께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우리의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따라서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판단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행실을 주목하여 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의 나그네의 길이 거룩하여 세상과 구별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 세상의 망령된 행실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2. 우리는 형제를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벧전 1:22).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를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의 증거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고, 새 계명을 주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일서는 형제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영혼이 깨끗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깨끗하게 될 때에 순수한 마음과 믿음으로 형제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깨끗하게 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진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순종하는 것은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면서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살아갈 때에 영혼이 깨끗해지면서 형제를 더욱 뜨겁게 사랑하는 열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고난의 현장에서 교회의 공동체는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가 교회의 공동체에서 사랑과 안식을 누리는 것은 큰 힘을 주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나그네와 같은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과 분리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의 진실된 사랑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원천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에서 소망이 없어서 삶의 소망까지 끊어지는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순간에 크게 기뻐할 수 있는지요?  자신이 원했던 이 세상의 모든 소망이 끊어진다 할지라도 주님이 가져다주시는 은혜를 기대하면서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인내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업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가 되고 있기에 우리는 산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산 소망을 잃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맘아 영혼의 구원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타협하지 않고 믿음으로 거룩하며 형제를 사랑하는 믿음으로 굳건히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