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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78) -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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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362회 작성일 21-07-1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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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78) -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마 25:14-30).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마 25:14).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대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는 주님이 돌아오시기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열 처녀 중에 슬기있는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여 등불을 밝힘으로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슬기있는 다섯 처녀가 준비한 기름은 성령입니다. 성령은 믿는 자를 거듭나게 하시고 그 사람에게 내주하십니다. 즉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령이 내주하시는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존재 자체가 변화되어 새 삶을 살아갑니다. 열 처녀의 비유를 하신 주님께서는 이제 달란트의 비유를 가르치셨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기느 삶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달란트의 비유가 주는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성도에게 은사와 기회를 주셨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마 25:14-15).

예수 그리스도는 종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맡긴 종으로 자신을 비유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40일간 이 땅에서 사역을 하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그 분의 제자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기셨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금 달란트라고 하셨습니다.

주인이 자신의 소유를 맡긴 사람은 종인데, 헬라어 원어로는 둘로스 라는 당시의 노예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종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자유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에 그 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는 죄의 종으로 살아갔지만 이제는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섬기는 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자는 순종하는 자로서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인이 그 종들을 불러 자신의 소유를 맡겼습니다.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종은 세 명의 종들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를 맡긴 것입니다. 한 달란트는 노동자가 20년 동안 일한 대가의 가치라고 합니다. 그러니 한 달란트는 현재 기준으로 하면 연봉 오천만원이라고 하면 대략 10억의 가치입니다. 금 달란트 자체의 가치는 우리가 부여하는 가치이상의 큰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달란트를 맡긴 것은 그 달란트를 사용해서 더 큰 이익을 남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주인은 각 사람의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재능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두나미스 로서 ‘power, capicity'로서 능력 또는 수용능력을 뜻합니다. 즉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운용할 수 있는 한계능력(capacity)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인이 보기에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인이 자신을 신뢰하기에 그 신뢰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라고 했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하나님은 각자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서 각양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맡은 자는 청지기로서 서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말해야 하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인 것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달란트를 준 것이 아니라, 맡겼다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청지기는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자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겼듯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양 은혜를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어떠한 달란트를 맡기셨는지 알아야 하고, 그 달란트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이후에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어떻게 섬겨야 할지를 결단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목회의 부르심을 받았기에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며, 목양으로 성도님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느낍니다. 저는 유학을 하였기에 다른 분들보다는 성경과 신학에 대한 더 큰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미국의 목사님들이나 신학자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신학과 성경에 대한 다양한 책들을 접할 수 있는 달란트가 있습니다. 그 결과로 성서침례교회의 신앙과 뿌리 라는 책을 집필하였고, 마태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 그리고 창세기 책을 저술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저희 교회에서 가르치는 성경으로의 여행을 전국 친교회 목사님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묵히는 것이 아니라, 그 달란트를 활용하여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를 남기는 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달란트를 맡기고 떠나셨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말씀을 가르치는 달란트, 어떤 분에게는 물질의 달란트, 어떤 분에게는 섬김과 조력의 달란트, 또 어떤 분에게는 찬양이나 음악에 대한 달란트를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귀하게 쓰임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인지요? 그리고 여러분은 청지기로서 받은 달란트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2. 달란트를 받은 청지기는 그 달란트에 대한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마 25:16-17).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가서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남긴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최선을 다하여 자신이 받은 달란트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고 사명을 감당하여 두 배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이들은 주인의 뜻에 따라 ‘즉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는 왜 주인이 자신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겼는지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주인은 다섯 달란트를 맡겨서 이익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즉시 가서 그 달란트로 장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는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즉시 가서 장사하지 않고 그것을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마 25:18).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땅의 파서 그 소중한 것을 감춘 것은 주인의 뜻에 불순종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맡은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장사를 해서 주인을 위해 이익을 남겨야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맡은 자는 그 달란트로 밭을 사서 열심히 일을 해서 주인을 위해 풍성한 열매를 맺었을 것입니다. 낮에는 땀을 흘리며 일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것입니다. 혹은 그는 장사를 하기 위하여 시장에서 열심히 자신의 상품을 팔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을 땅에 감추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종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에, 빈둥빈둥 놀기만 했던 것입니다. 그는 주인이 오기까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기에 아무런 결과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달란트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면서 동시에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재능, 그리고 물질이 있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기회를 낭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실한 청지기는 자신이 맡은 것으로 최선을 다하여 그 결과를 나타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달란트를 받았느냐가 이슈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헌신하여 열매를 맺어야 하는 책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믿음의 달란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절대로 땅에 묻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기초는 믿음에서 나오는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그는 믿음을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남으로 하나님이 주신 복의 통로가 됨으로, 그 믿음으로 후손들과 나라의 땅을 얻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하여 이삭을 드림으로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히 10:35)라고 했습니다. 이는 믿음의 담대함으로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큰 상을 얻게 하는 통로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씨앗을 귀하게 여겨 믿음의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는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의 씨앗이며, 어두움을 밝히는 세상의 빛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지상사명을 받은 제자들은 다섯 달란트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19). 주님의 명령은 그들에게 주신 달란트였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 명령에 순종하여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고, 침례를 주고, 말씀을 가르쳐 재생산하는 열매를 맺어왔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종으로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도전도 복음으로 열매를 맺어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 충성된 종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종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드리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 12:6-8).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결국 하나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선한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땅에 묻어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아니함으로 책망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말씀을 전하는 자가 있고, 섬기는 자가 있으며, 가르치는 자와 위로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구제하는 일에 힘쓰는 자가 있고, 다스리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은혜에 대한 책임을 우리가 하나님을 섬김으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달란트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달란트의 가치를 인식해야 합니다. 달란트는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가치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믿음과 복음, 그리고 사명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영적인 보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가치를 아는 영적인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믿음과 사명을 조롱하거나 무너뜨리려고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길 수 있는 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명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복음 전도의 달란트를 자신의 생명 보다도 귀한 것으로 알고 그 사명에 순종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렌즈가 아니, 하나님의 관점으로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주님은 다시 오셔서 종들의 사역에 대하여 회계하실 것입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쌔.”(마 25:19).

주인이 오랜 후에 자신의 종들에게 돌아와서 달란트에 대하여 회계를 했습니다. ‘오랜 후에’라는 의미는 예수님의 재림이 즉각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승천 하신 후에 지난 이천년 동안 재림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우리에게는 지체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 분의 때에 아들을 보내셔서 마지막 시대에 대한 예언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다시 온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주인은 종들과 달란트에 대하여 회계를 합니다. 이때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왔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마 25:20).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은 주인의 뜻에 순종하여 최선을 다하고 이익을 남긴 것입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를 향하여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그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찌어다 하고.”(마 25:21). 주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수고하며 주님의 사역에 헌신하였는지를 아십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며 눈물로 기도하고 땀을 흘리며 수고한 모든 헌신을 주님은 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것과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하여 애쓴 모든 헌신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수고를 아시고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기에 주님께서는 많은 것으로 맡겨 주셔서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시는 것입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동일하게 주님께서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이는 주님이 재림하셔서 충성된 종에게는 많은 것을 다스리는 특권을 주심으로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하게 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많은 것을 맡기는 것은 곧 많은 것을 다스리게 하시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천년 왕국 기간에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한다고 했습니다(계 20:6). 왕노릇 한다는 의미는 일천년동안 다스린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충성스럽게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열매를 맺는 자는 천년왕국 기간에 많은 것을 다스리는 지위를 주셔서 주님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서는 열 므나의 비유를 통하여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에게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눅 19:17). 주님께서는 우리가 충성스러운 종이 되어 달란트를 남기게 될 때에 여러 마을에 대한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는 지위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왕노릇하는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주인에게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마 25:24-25).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오랫동안 땅에 감추어 두었다가, 주인이 돌아오자 그것을 찾아 주인에게 가져온 것입니다. 그는 한 달란트를 가지고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하여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의 변명은 자신의 게으름이나 믿음 없는 불순종으로 자신을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인에게 책임을 돌리려 했습니다. 종은 도리어 주인에게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굳은 사람이란 강팎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심지도 않은데서 거두려고 하고, 헤치지 않는데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씨앗을 뿌리지도 않고 열매를 얻으려고 하고, 알곡을 바람에 흩날리지 않고 모으는 자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밀알을 모으기 위해서는 밀과 쭉정이를 분리하기 위하여 바람에 흩으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으른 종은 주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종은 주인은 강팎하고 완악한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는 자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종은 주인이 강팍한 자이고, 다른 사람이 수고한 것을 그냥 얻으려고 하는 무정한 사람으로 인식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은 주인이 노력하지 않고 이익만을 바라는 자로 인식했기에, 장사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인을 위하여 이익을 남기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종은 주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거나 자신이 아무일도 하지 않는 변명으로 주인을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주님의 일에 게을리하는 이유에 대하여 주님이나 교회를 원망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가 있습니다. 그는 결론적으로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가지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믿음은 그냥 종교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알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우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종은 자신이 위험을 감수하고 이익을 남겨도 자신에게로 돌아가지 않고 주인에게로 가는 것으로 여겼고, 혹시 한 달란트를 가지고 이익이 아닌 손해를 보면 책망을 받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마 25:25). 우리는 때로 우리가 영적인 사역에 동참하는 것에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는 일을 하면 물질적인 보상이 주어지지만, 주님의 사역에서는 아무런 보상이 없고 때로는 상처를 입기도 하고 때로는 지치고 피곤한 상태에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때에 우리는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역을 포기하고 그냥 예배드리기에만 만족하는 우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우리를 향한 기대를 알아야 합니다. 한 달란트 맡은 자가 아무런 수고를 하지 않자 주인이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는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마 25:26-28). 주님은 우리가 달란트를 가지고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을 때에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책망하십니다. 주님은 그를 향하여 “나는 심지 않는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고 하셨습니다. 주인은 그의 오해를 책망하시며, 차라리 달란트를 이자를 주는 자들에게 맡겼다가 본전과 이자를 받게 할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9)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충성스럽게 수고하는 종에게 더 큰 은혜를 주셔서 주님의 영광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이유는 그가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세상을 향한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은 우리를 통해서 흘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통로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주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이며, 착하고 충성스럽다고 인정받게 하는 통로입니다. 주님은 게으른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 25:30). 그는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게으른 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의 비유로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의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5-6). 주님은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밖에 버리워 말라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주님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에 달란트를 그냥 땅에 묻어 두고 주님의 사역에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주의 사역에 충성된 일군으로 섬기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충성된 일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