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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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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877회 작성일 21-11-1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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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생명입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저는 과거 10년 동안 성서침례교회 목회자 친교회에서 중점적으로 사역한 백만명 구령 운동 사역을 이끄는 본부장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지난 친교회로 구령 사역을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제가 친교회 목사님들께 보여드린 동영상과 사역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새로운 친교회를 결성하면서 2007년 행당동 성서침례교회에서 백만명 구령 본부가 발족되었습니다. 처음에 회장님이 구령본부 본부장으로 사역하셨고, 김현기 목사님께서 구령 본부 총무를 위원 목사님들과 함께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2012년에 구령 본부장으로 세움을 받은 후에 약 10년간 구령본부장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심으로 2번의 구령 컨퍼런스로 큰 감격의 시간을 만날 수 있었고, 4번의 목회자 구령세미나를 통해서 구령에 대한 열정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개 교회에 전도지를 보내드렸고, 물티슈와 전도 책자, 그리고 구령 신문 등으로 섬겨드릴 수 있었습니다. 지난 10년 간의 구령 본부 사역으로 수많은 교회들에게 전도지와 전도물품 등을 무료로 보급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구령 사역을 위하여 차숙연 자매님의 디자인의 헌신과 주성복 형제의 많은 헌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령 컨퍼런스에 함께 참석하셨고 천인 집사님의 간증도 있었고, 김모 집사님의 구령 선언식에 대표로 선언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구령 컨퍼런스를 진행할 때에 주강사이신 스티브 채플 목사님과 존 페이슬리 목사님이 오셔서 저희 교회에서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지난 2년간 우리는 코로나 19로 인하여 어려운 시기를 통과했습니다. 지금도 그 시기의 연장선에서 미래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코로나 기간에 한국에서 약 일 만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만큼 어려운 시기를 모두가 겪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도 저희 교회는 코로나의 위기를 교회가 함께 마음을 합하여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의 시기에 세상은 급변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친교회 때에 코로나 기간의 사역에서 비대면, 그리고 언택트 등 낯선 단어들을 듣게 되었고 앞으로 나아갈 사역의 방향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기는 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면서 코로나의 기간에 세상은 더욱 빨리 변화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세상은 가상의 세계인 메타버스 시대를 접하기 시작함으로, 앞으로 가상의 세계에서 삶을 일부 살아가는 세상을 향해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상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상 화폐라는 새로운 개념의 통화 제도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공 지능의 도래와 더불어 전기차와 자율 주행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몇년 후면 휴모노이드가 나와서 인간 로봇이 사람들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과학 기술의 진보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세상에서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교회가 설 자리가 점점 줄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다음 세대는 하나님을 추구하기 보다는 세상을 추구하며 그 안에서 만족을 찾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아이들이나 학생들, 청년들의 비율이 줄어가는 사실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합니다. 인구가 감소하는 농어촌을 중심으로 다음 세대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고, 도시라도 한 세대의 사역을 감당한 교회들은 점점 쇠퇴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려운 세대에서 어떻게 하면 교회를 생명력있는 교회로 회복하여 영혼을 구원하고 삶이 변화되는 주님의 교회로 세워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위드 코로나 또는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침체되거나 정체된 교회를 어떻게 다시 회복시킬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침체된 교회를 다시 살리는 해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있음을 믿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세워지시기에, 교회의 생명력은 오직 복음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교회가 생명력을 회복하여 복음 사역을 감당하는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교회의 거룩이 교회에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거룩해야 합니다. 구약의 성전이 거룩하게 구별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게 임재하셨습니다.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출 40:34-35).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처소가 거룩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했습니다.

성막의 구별은 피와 기름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후에 하나님이 거룩한 지성소에 임재하셨습니다. 거룩한 지성소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의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의 시대에 하나님의 성전이 죄와 우상 숭배로 더럽혀지자 그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성전이 아니라 우상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곳을 떠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시자 그 후에 예루살렘은 멸망하고 성전은 황폐화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과 교회가 필요합니다. 이 시대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인본주의로나 자유주의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뉴스 엔조이 자칭 기독교 신문사는 동성애를 옹호하고 이슬람권을 포용하는 취지의 기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의 기사에서 최근에 ‘한국예수교회연대’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성소수자들과 함께 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등 복음이 아닌 사회적인 이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다루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본주의 아젠다를 교회로 가지고 와서 교회의 거룩함을 더럽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달 전에는 서울의 경동 교회에서 WCC 소속의 목사들과 신부들이 모여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모든 생명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다. 차별·혐오·분리는 반그리스도교적 행위"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그들은 자유주의자들로서 복음이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는 진리를 외면하고, 죄를 의롭다고 하는 가증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본주의와 자유주의가 교회에 침투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년전에 미국과 유럽이 자유주의와 인본주의가 교회와 신학교에 침투하는 모습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의 교회가 거룩하게 구별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을 잃어버리고, 교회가 거룩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의 존귀한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거룩을 지켜가야 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거룩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도쉬’입니다. 거룩이라는 뜻은 ‘구별되다,’‘신성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구약에서의 거룩의 개념은 하나님께 드려진 재물을 의미했고, 하나님께 구별된 처소인 성막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인 제사장들이 거룩했습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고 그 분의 본성 자체는 거룩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진 구별된 사람이나 물건이나 장소가 거룩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로 더러워진 곳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찾아오시자 그 땅이 거룩해졌습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 신발을 벗으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은 거룩한 곳이 되었습니다.

구약에서 사람이나 물건이나 장소가 거룩하게 구별되기 위하여 필요한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양과 염소와 같은 짐승의 피를 뿌려야 했고, 거룩한 기름을 발라 구별해야 했습니다.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1-22). 구약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이나 성막은 피로써 속죄받은 후에 기름을 발라 구별했습니다. 하나님께 구별된 제사장과 성막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별된 것에 인간적인 생각이나 의지가 반영되면 가증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구별된 성막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식양대로 만들어야 했지만, 르호보암 시대에 단과 벧엘에 인간적인 의지를 담아 만든 금송아지와 제사장들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했기에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은 하나님의 거룩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거룩은 우리의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됨, 그리고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중생의 역사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우리가 복음의 말씀을 믿을 때에 죄사함을 얻으며 성령의 역사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피조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의 생명을 회복하는 가장 강력한 길은 순수한 복음을 지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지키는 삶과 사역은 교회를 거룩하게 지키는 길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세속적인 철학이나 인본주의적인 사고가 성도들의 마음을 빼앗아 갈 것입니다. 우리가 에큐메니칼 운동이나 교회 연합을 반대하는 이유는 복음의 순수성에서 떠난 교단 주의를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타협하여 연합하게 되면 교회의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교회의 거룩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순수한 복음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강단에서의 메시지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철학이나 윤리나 가치가 아니라, 생명의 말씀을 진리대로 선포할 때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교회와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은 주의 말씀으로 우리가 거룩해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더욱 말씀에 사로잡힐 때에 생각과 마음이 깨끗해지고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거룩해질 때에 교회가 더욱 거룩해지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강하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2. 복음의 열정이 교회에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에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4, 7).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그 자체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 1:16).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에 우리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디에서든지 전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침례를 주게 함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7).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듯이, 우리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지난 2년 간의 팬데믹 기간에도 우리는 기회를 얻어 복음 전하는 사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올해의 표어를 복음 전하는 해로 삼았고, 전반기에 약 3달간 전도 캠페인 기간을 정하여 꾸준하게 전도하고 심방하는 사역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로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고 일부는 교회에 정착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후반부에도 저희들은 전도 캠페인을 하면서 복음 사역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 오후에는 근처 공원에 가서 전도지를 나누는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사역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은 생명을 낳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복음을 전함으로 영혼들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여 영혼들이 태어나면 기쁨이 넘치고 교회가 부흥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일군이 되어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함으로 이방인을 제물로 드린다고 했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 15:16). 구약의 제사장이 중보자로서 제물을 제단에 올려 하나님께 드렸듯이,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이방인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하는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19). 우리는 입을 열어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일꾼으로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교회가 복음의 열정이 식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충만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성전에 구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의 교회는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과 기도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위해서는 교회가 거룩해야 합니다. 교회의 거룩은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대로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며 성장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3. 비전이 교회에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우리는 항상 비전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품어야 할 비전은 지상사명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명령이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전 세계에 흩어져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령하고, 그들을 제자삼아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세워갔습니다.

교회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 분의 몸을 우리를 통해서 세워가심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반석이 되시고, 그 분이 머리가 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생명을 얻은 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몸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 철저하게 복음의 진리에서 세워져가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진리의 말씀을 지켜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교회는 주님이 주신 사명이 비전이 되어 열정으로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비전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을 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비전은 그를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그의 후손을 통하여 온 민족이 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한 유일한 것은 이삭을 낳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삭이 태어나게 하시고, 그를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메시야가 나게 하셨습니다. 모세의 비전은 압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비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에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비전은 솔로몬을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느헤미야의 비전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었고, 스룹바벨의 비전은 황폐화된 성전을 다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전은 그 분의 십자가에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실 때에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 비전은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비추는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생명이시며, 구원이시며, 온 세상의 주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그 분의 양떼를 맡기실 때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생명의 교회를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양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수많은 교회들이 길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목적이 정치적인 아젠다를 가지고 정치가 강단을 채우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는 방향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윤리나 철학이 아젠다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순수한 비전을 품고 교회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품어야 할 순수한 비전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오직 복음으로 세워지는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의 진보를 위하여 끊임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비전은 순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서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29:18)라고 했습니다. 즉 비전이 없는 백성은 방자히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상실하면 길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항해해야 하는 목표는 바로 영혼을 구원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제자라는 것은 주님을 닮아가는 성숙한 성도로 세워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비전이 순수하면 그 비전은 뜨겁게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시는 고난을 견디면서 죽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신을 구원을 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사역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십자가의 고난을 견디며 내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은 코로나의 시련으로 우리에게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외칩니다. 세상은 우리를 향하여 조롱과 멸시를 가져다 주고 있지만,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선포하며 영혼을 구령하는 사역에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구령 사역은 우리의 정체성에 핵심입니다. 우리 사역의 중심은 바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성서침례교회는 70년 전에 복음의 씨앗으로 뿌려져 세워졌고, 복음을 통하여 교회가 세워지며 일군을 배출했습니다. 지금은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를 만나서 물질은 풍요하지만 영적의 빈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양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의 꼴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복음의 진리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 사역 이후로 구령 사역과 제자 사역의 중심에서 흔들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전도지를 나누고 이웃들에게 전도 용품과 차와 부침개를 나누며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애를 쓰셨습니다. 그 결과로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맡기신 사역은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은 주님의 명령이며, 또한 우리의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달려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복을 주셔서 풍성하게 하시는 은혜가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