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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복을 나누는 자가 됩시다(창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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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022회 작성일 21-09-18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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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복을 나누는 자가 됩시다(창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2-3).

우리에게 복이란 행복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복을 누린다는 의미는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관계에서 조화(harmony)를 이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생태계라는 환경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조화는 연합과 균현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는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땅과 바다의 식물과 동물 등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사람은 자연의 환경에서 땅과 하늘과 식물과 동물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갑니다. 사람은 봄에 씨앗을 뿌려서 가을에 추수하여 열매를 거두어 살아가고 있으며, 두 사람이 만나 씨를 뿌리면 다음 세대가 태어나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태계의 중심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찌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시 148:13). 하나님은 온 세상의 중심이 되셔서 그 분 안에서 만물이 운행되며 세워집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아름답게 지으셨지만 죄로 인하여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에게는 죄로 인하여 사망의 저주가 찾아왔고 피조물들도 신음하며 고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자연은 생태계가 조화를 이루어 균형을 이루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탐욕과 착취로 인하여 자연의 생태계가 깨어지면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죄로 인하여 깨어진 이후로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기 보다는 불행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빈도가 더욱 컸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면서 어떻게 관계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지에 대한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 11:6).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모든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태계에서 우리는 양식을 얻고 있으며, 좋은 공기를 마시고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에서 힐링하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양 좋은 선물을 위로부터 주셔서 우리가 누리며 복을 얻게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의로운 자 뿐 아니라 불의한 자에게도 내리셔서 풍성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 ...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6:45) 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비취시는 태양과 필요할 때에 내리시는 비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은 우리가 폭푸우가 지나가는 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게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 11:6)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창 1:27-28).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사탄을 믿음으로 인하여 죄를 범하여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다시 복을 회복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1-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조건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 이르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 3:14)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영적인 복이 우리에게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구원받았듯이, 우리도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았기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희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받아 복을 누리는 행복자임을 감사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의 중심에 계셔서 다스리스듯이, 이제 우리 안에 거하시며 다스리시도록 그 분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고 그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먼저 복을 주셨고, 그 다음에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복이 전달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이삭을 낳았고,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 이라는 큰 민족이 세워졌습니다. 아브라함이 통로가 된 가장 큰 복은 메시야가 나시는 것이었습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씨로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하여 먼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우리는 이제 그 복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의 복을 주셨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세상에 복을 끼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사명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세상이 화목하게 하도록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받은 복을 세상과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기에 우리는 이제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셨기에, 우리는 이제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며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고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과 섬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대로 갚아주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마음이 상하면 화를 내고 분노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상처를 받으면 용서하지 않고 미움을 마음에 보물처럼 간직하려고 합니다. 잠언 기자는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찌니라.”(잠 24:29)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 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기준은 우리에게 행하신 주님의 은혜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복을 나누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베들레헴의 유력한 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복으로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에게 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룻에게 자신의 밭에서 이삭을 주워 양식을 얻도록 배려했습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그녀가 평안하게 이삭을 줍게 하였고, 마실 물도 주게 했습니다. 그러자 룻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룻 2:10). 보아스는 모압 여인인 룻에게 선을 베풀었고 그 후에 기업무를 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룻을 아내로 취하여 그 기업을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의 이름으로 잇게 하였습니다. 보아스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룻에게 베품으로 인하여 룻과 결혼하였고 후에 다윗의 증조부가 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룻은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와서 시어머니를 극진으로 섬겼고, 그 결과로 보아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룻에게 베푼 사랑으로 인하여 도리어 자신이 복을 받아 룻을 아내로 얻었고 그 후에 다윗이 그의 혈통에서 나는 영광을 누렸던 것입니다.

보아스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레위기 19장에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실천하는 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9-10).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축복의 땅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으면, 그 추수의 때에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이삭과 포도원의 열매를 남겨 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복을 기억하고 그 복을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시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기에,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번까지 해야 합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마 18:22)라고 하셨습니다. 즉 주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용서는 다른 허물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하나님이 허물을 용서하시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가 자유를 얻어 기뻐하다가, 자신에게 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감옥에 넣은 예화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저를 붙잡아 화를 내고 그를 다시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용서는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려는 것은 그 빚을 끝까지 받아내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서 상처 준 사람을 풀어주지 않고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가두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감옥이 생긴다면 실제로 자신이 그 감옥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자아를 감옥에서 나오게 하여 자유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악으로 악을 갚고자 하는 것은 분노로 표현되지만, 선으로 악을 갚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받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혐의가 있는 자를 용서함으로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나눔으로 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우리는 관계가 항상 축복이 되도록 영향력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3).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그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주시고 그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세상에 복을 끼치는 사람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복의 근원으로서 세상에 복을 끼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즉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직장이나 교회와 같이 공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곤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직분자이기에 최선을 다하기도 하고,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맺어진 관계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합니다.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지도 않고 미움이나 분노를 나타내지도 않습니다. 그곳에는 상하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고, 그렇게 친밀한 관계를 맺지도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사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사적인 영역에서는 공적인 영역보다는 편하고 자유롭습니다. 사적인 영역은 가족이나 친족과의 관계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는 안전 지대가 없어서 마음에 있는 생각이 말로 쉽게 나오곤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가면없이 보여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적인 영역에서는 가면이 없이 자신을 보일 수 있지만, 서로의 허물로 인하여 쉽게 상처를 받기도 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이 성숙한 모습으로 서로 화목을 이루기도 하지만, 때로는 허물로 인하여 상처를 받고 마음의 문이 닫히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사랑을 실천하지만, 그 사랑이 상처로 돌아와 더 큰 아픔을 줄 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성숙함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사적인 영역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의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인하여 복을 누리도록 복을 끼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위하여 우리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로 인하여 우리의 인격과 영성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복을 끼침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다윗에게 악한 사울이 무릎을 꿇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헤치려는 사울왕을 향하여 창을 던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에게 사랑과 존경을 표함으로 감동을 주었습니다. 죄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에 예수님은 도리어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겸손하신 모습을 보고 백부장은 그 분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아비멜렉이 이삭을 보고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이삭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들의 악을 선으로 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모든 사람을 향하여 선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적인 영역에서는 교회의 지체들이 알지 못하는 삶의 영역입니다. 우리에게 공적인 영역보다 더욱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사적인 영역에서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어렵게 하는 가족이 있을 수 있고,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형제의 비수와 같은 언행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고통하며 분노할 수 있지만, 대신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은혜를 베풀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입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