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같은 제사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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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341회 작성일 22-02-19 18:43본문
나는 왕같은 제사장인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제사장은 하나님이 구별하여 세운 직분입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은 아론의 후손이 그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구별되기 위하여 피와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구별되었습니다. 그들은 성소의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을 섬겼고, 백성들이 가져온 제사를 번제단에 드리는 역활을 했습니다. 구약에서 대표적인 대제사장은 아론과 엘리에셀, 그리고 비느하스입니다. 물론 의롭지 못한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엘리 대제사장도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더 이상 제사장의 직분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더 이상 제물을 드리는 제사나 성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제사를 통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의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 더 이상 제사장의 직분이 사라졌지만, 신약에서는 제사장의 영적인 의미를 담아 우리를 향하여 ‘왕같은 제사장, 또는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비유하기도 합니다. 왕같은 제사장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왕의 지위를 천년왕국에서 누릴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계시록은 “ ...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계 20:6)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특권을 누릴 뿐만 아니라 자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책임과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의 제사장들이 영적인 특권을 누리면서 동시에 영적인 책임을 감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께 영적인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은 자로서 감당해야 할 영적인 책임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찌니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있는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출 28:2-3).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하기 위해서는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의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속옷, 그리고 관과 띠였습니다. 제사장이 성전에서 섬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거룩한 옷을 입고 섬겨야 했습니다. 특히 대제사장이 쓰는 관에는 ‘여호와께 거룩’이라는 글자가 씌여져 있었습니다.
옷은 제사장들을 다른 이스라엘 사람과 구별하는 옷이었습니다. 오늘날도 특정 종교인들은 다른 옷을 입고 생활하기에 그들이 누구인가를 금방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입는 옷은 우리를 세상과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골로새서는 우리가 새 사람이 된 이후에 벗어야 할 옷과 입어야 할 옷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야 합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골 3:9). 옛 사람의 옷은 믿지 않을 때 행하던 우리의 행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입니다. 그리고 분과 악의와 훼방과 입의 부끄러운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골 3:5-8). 우리가 누군가가 음란을 행하고 부정한 일을 하며 악한 정욕과 탐심이 가득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는 구원받지 않은 자라는 사실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분노하고 악의가 가득하고 훼방과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들은 그가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셨기에, 세상의 더러운 행실과 더러운 말들을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새 옷에 대하여 골로새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10). 우리가 입어야 할 새로운 옷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가 입어야 할 새로운 옷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며 삶에서 나타내어야 할 새로운 옷은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2-14).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는 증거는 바로 우리의 변화된 삶입니다. 우리는 변화된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고 사랑과 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우리가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로서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이 삶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특히 누구에게 혐의가 있다면 피차 용납하고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는 은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레 10:10).
영적인 분별력을 갖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특히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거룩하고 속된 것, 부정하고 정한 것을 구별하여 백성들을 가르칠 책임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가져올 때에 흠없는 양이나 염소, 또는 황소를 가져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부정한 동물인 돼지나 낙타, 또는 흠있는 양을 가져온다면 제사장은 그것을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말라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당시의 제사장과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시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말 1:8).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단에 흠이 있는 것으로 드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습니다. 레위기 10장에서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는 거룩한 성막에서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하나님이 보내신 불로 죽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거룩과 속된 것을 분별하지 않고, 속된 것으로 하나님께 분향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영적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엘리 제사장은 자녀들이 불량자로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을 제사 드리기 전에 자신들이 성물을 가져가곤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성물 중에 제사장은 가슴 부위와 우편 뒷다리는 하나님께 드려진 이후에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가마에 삶고 있는 고기를 걸리는 데로 가져다가 취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수종되는 여인들과 간통하는 죄까지 범하면서 하나님의 큰 진노를 가져왔습니다. 이때 엘리 제사장은 자녀들의 죄에 대하여 심하게 책망하지 않고 제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 엘리의 집을 심판하심으로 아들들이 전쟁에서 죽고 그 자신도 넘어져서 죽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비극의 이유는 제사장으로서 거룩과 속된 것, 정결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 집에 대하여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떠한 제물이나 예물로도 속죄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영적인 혼탁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너무나 혼돈해서 무엇이 진리인지를 분별하기가 어려운 시대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시대의 철학은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주장하고 가르치면 편협한 자라고 낙인이 찍히거나 서구 사회에서는 범죄자가 되는 시대를 새로운 시대를 만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수많은 영적 싸움이 우리 주위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핵심은 영적인 혼돈이 있습니다.
신천지가 코로나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는데, 이제는 정치에서도 큰 이슈가 되는 듯 합니다. 그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신천지에 가입하고 있어서 정치에도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천지에 들어간 사람들 다수가 전에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이었던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다른 복음을 받아들여 신천지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천지 뿐 아니라 수많은 이단들이 한국에서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치적인 상황에서 무속인에 대한 이슈가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에 무속인이 이백만 명이 된다는 것도 놀랄 일입니다. 그 후에 한 기독 신문에서 리서치 한 보도에 따르면 기독교인 4명 중에 1명이 지난 5년간 무속인에 가서 점을 봤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라면 사탄의 하수가 되어 활동하는 그들에게 점을 보러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교회는 다니지만 마음에 구원의 역사가 없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많은 신 들의 한 명으로 생각하며 다니는 것입니다. 이들은 거룩과 속된 것, 정결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왕이 엔돌의 무당을 찾아가 전쟁의 결과를 묻자,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의 집안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당이나 점을 보는 것이나, 사주하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활동은 모두가 마귀의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 정체성에 대한 이슈를 만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남자와 여자의 한 몸이 되는 것이 결혼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 정체성을 남자와 여자 뿐 아니라,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등 다양하게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해야 할 선택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자신을 여자로 인식한다면 부모나 국가가 그의 성전환 수술을 도와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나 가정에서 성경적인 가르침으로 너는 남자야, 너는 여자라 라고 가르치며 성전환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가르치면 법에 저촉되어 감옥에 가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을 최근에 캐나다나 뉴질랜드, 그리고 호주와 유럽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핀란드의 한 여성 정치인이 성에 대한 성경적인 신념을 담아 결혼과 성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에 대한 책을 제작한 혐으로 기소가 되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만일 유죄가 되면 2년을 감옥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목은 혐오금지법에 저촉되었다는 것입니다. 뉴질랜드에서는 동성애자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전환하려고 하는 자를 5년 징역형에 처하는 법안을 통과했습니다. 이는 교회나 부모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내에서도 성차별 금지법을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은 동성애를 찬성하고 성전환 수술도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100년 전에 미국과 유럽에서 진화론을 믿는 자유주의자들과 성경을 믿는 근본주의자들과의 싸움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유럽의 교회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성경의 권위가 무너졌고, 그 결과로 기독교도 같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성경의 진리를 지키려는 근본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교회가 오히려 부흥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한국도 아직 다수의 교회들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다행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대는 성 정체성에 대하여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면 처벌받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핍박의 시대에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더욱 깨어나야 하고, 자녀들에게 올바른 성경적인 가르침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분별력을 갖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잘 분변하게 되면 거룩과 속된 것,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하는 영적인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빈다. 그리고 우리는 목자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양은 분별력이 약하여 길을 잃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목자를 따르면 양은 안전한 것입니다. 양이 목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의 길을 스스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려운 환경에서 길을 잃고 늑대의 공격으로 희생당할 수 있기에 자신을 잘 지켜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목자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의 인도함을 받는 비결은 말씀의 가르침을 받으며 영적으로 견고히 서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영적인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출 30:30).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을 거룩한 제사장으로 삼으신 이유는 그들이 제사장 직분을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직분은 존귀한 직분으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모두 소중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전의 뜰에서 백성들이 가져온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물두멍에서 자신의 손과 발을 씻어 정결하게 한 이후에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제사장은 분향단에서 기도를 상징하는 향을 피웠고, 매 안식일마다 진설병의 떡을 새로운 떡으로 교체했습니다. 이는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습니다. 그리고 금촛대의 불을 피워 어두운 성소를 밝혔습니다. 이는 세상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습니다. 이와같이 제사장들은 매일 분주하게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며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영적 목표는 하나님을 섬기는 왕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인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모해야 할 가장 우선 순위는 예배입니다. 제사장들은 매일 오전과 오후, 그리고 매 안식일, 매월 첫날 그리고 절기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러 오면 그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열납하도록 중보의 사역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신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우리는 온 세상의 주이시며 구속자이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임재의 현장입니다. 우리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평안과 은혜를 주시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기도와 말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소의 분향단에는 항상 향이 피워져 있어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는 성도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국가와 민족, 교회와 지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잘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을 풍성하기 위하여 말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영적인 방향을 제시할 뿐 아니라 우리를 더욱 거룩하게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실 때에 진리로 거룩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듣고 배우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와 기도, 말씀의 사역에 집중해야 하며 더 나아가 전도하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직무를 이방인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의 직무라고 했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 15:16).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이방인을 전도하여 구원하는 것이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죄로 인하여 심판의 대상이었던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이 받으시는 자녀가 된 것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의 본질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자로서 영적인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열정을 받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것은 특권을 누리는 자이면서 책임을 맡은 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임을 기억하면서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섬기는 자의 삶을 함께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제사장은 하나님이 구별하여 세운 직분입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은 아론의 후손이 그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구별되기 위하여 피와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구별되었습니다. 그들은 성소의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을 섬겼고, 백성들이 가져온 제사를 번제단에 드리는 역활을 했습니다. 구약에서 대표적인 대제사장은 아론과 엘리에셀, 그리고 비느하스입니다. 물론 의롭지 못한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엘리 대제사장도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더 이상 제사장의 직분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더 이상 제물을 드리는 제사나 성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제사를 통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의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 더 이상 제사장의 직분이 사라졌지만, 신약에서는 제사장의 영적인 의미를 담아 우리를 향하여 ‘왕같은 제사장, 또는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비유하기도 합니다. 왕같은 제사장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왕의 지위를 천년왕국에서 누릴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계시록은 “ ...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계 20:6)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특권을 누릴 뿐만 아니라 자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책임과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의 제사장들이 영적인 특권을 누리면서 동시에 영적인 책임을 감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께 영적인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은 자로서 감당해야 할 영적인 책임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찌니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있는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출 28:2-3).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하기 위해서는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의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속옷, 그리고 관과 띠였습니다. 제사장이 성전에서 섬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거룩한 옷을 입고 섬겨야 했습니다. 특히 대제사장이 쓰는 관에는 ‘여호와께 거룩’이라는 글자가 씌여져 있었습니다.
옷은 제사장들을 다른 이스라엘 사람과 구별하는 옷이었습니다. 오늘날도 특정 종교인들은 다른 옷을 입고 생활하기에 그들이 누구인가를 금방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입는 옷은 우리를 세상과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골로새서는 우리가 새 사람이 된 이후에 벗어야 할 옷과 입어야 할 옷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야 합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골 3:9). 옛 사람의 옷은 믿지 않을 때 행하던 우리의 행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입니다. 그리고 분과 악의와 훼방과 입의 부끄러운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골 3:5-8). 우리가 누군가가 음란을 행하고 부정한 일을 하며 악한 정욕과 탐심이 가득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는 구원받지 않은 자라는 사실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분노하고 악의가 가득하고 훼방과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들은 그가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셨기에, 세상의 더러운 행실과 더러운 말들을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새 옷에 대하여 골로새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10). 우리가 입어야 할 새로운 옷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가 입어야 할 새로운 옷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며 삶에서 나타내어야 할 새로운 옷은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2-14).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는 증거는 바로 우리의 변화된 삶입니다. 우리는 변화된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고 사랑과 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우리가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로서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이 삶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특히 누구에게 혐의가 있다면 피차 용납하고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는 은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레 10:10).
영적인 분별력을 갖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특히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거룩하고 속된 것, 부정하고 정한 것을 구별하여 백성들을 가르칠 책임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가져올 때에 흠없는 양이나 염소, 또는 황소를 가져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부정한 동물인 돼지나 낙타, 또는 흠있는 양을 가져온다면 제사장은 그것을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말라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당시의 제사장과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시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말 1:8).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단에 흠이 있는 것으로 드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습니다. 레위기 10장에서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는 거룩한 성막에서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하나님이 보내신 불로 죽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거룩과 속된 것을 분별하지 않고, 속된 것으로 하나님께 분향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영적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엘리 제사장은 자녀들이 불량자로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을 제사 드리기 전에 자신들이 성물을 가져가곤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성물 중에 제사장은 가슴 부위와 우편 뒷다리는 하나님께 드려진 이후에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가마에 삶고 있는 고기를 걸리는 데로 가져다가 취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수종되는 여인들과 간통하는 죄까지 범하면서 하나님의 큰 진노를 가져왔습니다. 이때 엘리 제사장은 자녀들의 죄에 대하여 심하게 책망하지 않고 제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 엘리의 집을 심판하심으로 아들들이 전쟁에서 죽고 그 자신도 넘어져서 죽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비극의 이유는 제사장으로서 거룩과 속된 것, 정결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 집에 대하여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떠한 제물이나 예물로도 속죄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영적인 혼탁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너무나 혼돈해서 무엇이 진리인지를 분별하기가 어려운 시대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시대의 철학은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주장하고 가르치면 편협한 자라고 낙인이 찍히거나 서구 사회에서는 범죄자가 되는 시대를 새로운 시대를 만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수많은 영적 싸움이 우리 주위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핵심은 영적인 혼돈이 있습니다.
신천지가 코로나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는데, 이제는 정치에서도 큰 이슈가 되는 듯 합니다. 그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신천지에 가입하고 있어서 정치에도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천지에 들어간 사람들 다수가 전에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이었던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다른 복음을 받아들여 신천지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천지 뿐 아니라 수많은 이단들이 한국에서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치적인 상황에서 무속인에 대한 이슈가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에 무속인이 이백만 명이 된다는 것도 놀랄 일입니다. 그 후에 한 기독 신문에서 리서치 한 보도에 따르면 기독교인 4명 중에 1명이 지난 5년간 무속인에 가서 점을 봤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라면 사탄의 하수가 되어 활동하는 그들에게 점을 보러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교회는 다니지만 마음에 구원의 역사가 없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많은 신 들의 한 명으로 생각하며 다니는 것입니다. 이들은 거룩과 속된 것, 정결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왕이 엔돌의 무당을 찾아가 전쟁의 결과를 묻자,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의 집안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당이나 점을 보는 것이나, 사주하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활동은 모두가 마귀의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 정체성에 대한 이슈를 만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남자와 여자의 한 몸이 되는 것이 결혼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 정체성을 남자와 여자 뿐 아니라,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등 다양하게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해야 할 선택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자신을 여자로 인식한다면 부모나 국가가 그의 성전환 수술을 도와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나 가정에서 성경적인 가르침으로 너는 남자야, 너는 여자라 라고 가르치며 성전환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가르치면 법에 저촉되어 감옥에 가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을 최근에 캐나다나 뉴질랜드, 그리고 호주와 유럽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핀란드의 한 여성 정치인이 성에 대한 성경적인 신념을 담아 결혼과 성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에 대한 책을 제작한 혐으로 기소가 되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만일 유죄가 되면 2년을 감옥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목은 혐오금지법에 저촉되었다는 것입니다. 뉴질랜드에서는 동성애자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전환하려고 하는 자를 5년 징역형에 처하는 법안을 통과했습니다. 이는 교회나 부모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내에서도 성차별 금지법을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은 동성애를 찬성하고 성전환 수술도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100년 전에 미국과 유럽에서 진화론을 믿는 자유주의자들과 성경을 믿는 근본주의자들과의 싸움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유럽의 교회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성경의 권위가 무너졌고, 그 결과로 기독교도 같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성경의 진리를 지키려는 근본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교회가 오히려 부흥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한국도 아직 다수의 교회들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다행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대는 성 정체성에 대하여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면 처벌받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핍박의 시대에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더욱 깨어나야 하고, 자녀들에게 올바른 성경적인 가르침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분별력을 갖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잘 분변하게 되면 거룩과 속된 것,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하는 영적인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빈다. 그리고 우리는 목자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양은 분별력이 약하여 길을 잃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목자를 따르면 양은 안전한 것입니다. 양이 목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의 길을 스스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려운 환경에서 길을 잃고 늑대의 공격으로 희생당할 수 있기에 자신을 잘 지켜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목자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의 인도함을 받는 비결은 말씀의 가르침을 받으며 영적으로 견고히 서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영적인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출 30:30).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을 거룩한 제사장으로 삼으신 이유는 그들이 제사장 직분을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직분은 존귀한 직분으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모두 소중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전의 뜰에서 백성들이 가져온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물두멍에서 자신의 손과 발을 씻어 정결하게 한 이후에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제사장은 분향단에서 기도를 상징하는 향을 피웠고, 매 안식일마다 진설병의 떡을 새로운 떡으로 교체했습니다. 이는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습니다. 그리고 금촛대의 불을 피워 어두운 성소를 밝혔습니다. 이는 세상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습니다. 이와같이 제사장들은 매일 분주하게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며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영적 목표는 하나님을 섬기는 왕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인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모해야 할 가장 우선 순위는 예배입니다. 제사장들은 매일 오전과 오후, 그리고 매 안식일, 매월 첫날 그리고 절기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러 오면 그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열납하도록 중보의 사역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신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우리는 온 세상의 주이시며 구속자이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임재의 현장입니다. 우리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평안과 은혜를 주시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기도와 말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소의 분향단에는 항상 향이 피워져 있어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는 성도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국가와 민족, 교회와 지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잘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을 풍성하기 위하여 말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영적인 방향을 제시할 뿐 아니라 우리를 더욱 거룩하게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실 때에 진리로 거룩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듣고 배우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와 기도, 말씀의 사역에 집중해야 하며 더 나아가 전도하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직무를 이방인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의 직무라고 했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 15:16).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이방인을 전도하여 구원하는 것이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죄로 인하여 심판의 대상이었던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이 받으시는 자녀가 된 것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의 본질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자로서 영적인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열정을 받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것은 특권을 누리는 자이면서 책임을 맡은 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임을 기억하면서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섬기는 자의 삶을 함께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