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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16) - 서로 사랑이 주는 의미(요일 4: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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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014회 작성일 22-07-23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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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16) - 서로 사랑이 주는 의미(요일 4:12-21).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요한일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가 구원을 얻는 진리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는 빛 되신 하나님과 같이 빛 가운데 거하며 의를 행합니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1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요일 4:7).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보내신 희생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통하여 우리를 살리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삶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의 사랑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게 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 4:12).

요한1서 4장 12절은 우리의 사랑에 대하여 두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 4:12).

첫째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줄 알 수 있나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에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하는 모습을 통하여 보여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의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자가 없기에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조건없이 사랑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렸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자신을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수술해준 무명의 의사의 사랑에 감동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의 사랑을 통해서 입니다. 

두번 째, 사랑하는 삶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하게 이루어 진다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룬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랑의 목적이 우리 안에서 성취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을 닮아가기를 갈망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성숙의 증거는 사랑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증거는 사랑입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성숙은 여러분의 나이로 측정되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연륜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얼마동안 교회의 회원으로 섬겼느냐로 측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이 성경을 알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교회에서 섬기는 헌신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인 성숙은 우리의 사랑으로 측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5)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실천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이 성취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이 온전히 이루었다 라는 말을 네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온전한 것은 성숙함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후에, 그 분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하게 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을 보여주셨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이제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2.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합니다. 13-15.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사도 요한은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요한1서 4장 13절은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4:13). 우리의 삶에서 성령님의 임재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합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언제 믿는 자의 삶에서 찾아오시는가요?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을 때에 성령이 내주하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은 후에 시간이 지나서 다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구원받아 거듭날 때에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띠에 그리스도의 몸에 성령으로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고전 12:13). 우리는 성령으로 침례를 받는 것은 구원받을 때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받는 것은 삶에서 자주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침례와 성령 충만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릅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성령은 우리 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보여주십니다. 이는 영적으로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며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을 알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온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습니다. 사도 요한은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요일 4:14)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분리하여 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죄와 사망의 권세 가운데 살아가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이 세상에 구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 4:15).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 분의 구주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거짓 교사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구주이심을 믿는 것이 구원에 절대적인 요소입니다.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참된 구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자 만이 하나님 안에 거하고, 구원받은 자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알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 분의 대속의 죽음은 우리를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셨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인 천국으로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알고 믿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은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희생을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처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한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3. 우리의 사랑은 심판의 날에 담대함을 갖게 합니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 즉 구원의 증거입니다(16절). 그리하여 우리는 심판의 날에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갖습니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 미래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는 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에 일어나게 됩니다.

구원받지 않은 자는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지 않은 자는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한번 죽고 난 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0장 28절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라고 했습니다.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에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계 20:11-15). 이때 구원받지 않은 자는 자신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불타는 지옥불에 떨어져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는 것입니다. 이 심판은 교회가 휴거된 후에 공중에서 있을 심판입니다.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오직 믿는 자 만이 참여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는 영원한 운명에 관한 심판이 아닙니다. 이때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0-12절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서 각자가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5장 10절은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는 선을 행하는 자는 상을 받지만, 악을 행한 자는 그 보응을 받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5절은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 3:15). 구원을 받은 자는 불에 타서 공력을 시험할 때에 주를 위한 헌신이 없기에 아무런 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 가운데서만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섬긴 자에게는 하나님의 큰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우리가 믿음의 상을 받기도 하지만, 불의의 보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골 3:24-25).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은 이미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심판은 십자가에서 이미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벧전 2:24).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을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보는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를 보시고 우리의 죄를 씻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갖는 것은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심판의 날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두려움을 쫓아 냅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모든 두려움에서 자유하게 합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며 하나님이 그 분의 진노를 예수님에게 쏟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4. 우리의 사랑은 믿음의 진실성을 증거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사랑의 확신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하게 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절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요일 3:1)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진실성을 입증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거짓말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진실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쉬운가요? 아니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쉬운가요? 우리는 아마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쉽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며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불완전합니다. 그리고 항상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성품에 결함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에게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보이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만일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4장 21절은 형제를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마무리합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요일 4:21).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만큼, 우리는 형제를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진실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미워하는 것입니다. 미움은 사탄에게 속한 것이기에 우리가 미워하는 것은 사탄의 권세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더욱 사랑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