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생각을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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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886회 작성일 22-08-06 18:17본문
믿음의 생각을 키워라.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 (잠 23:7).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위대한 선물 중의 하나는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의 생각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생각이 없다면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건물도 누군가가 생각하여 설계도를 만들어야 건축을 통하여 건물이라는 실체가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기업이나 회사, 예술의 분야는 실체가 있기 전에 먼저 마음의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베토벤이 작사하기 위하여 악보를 기록하기 시작할 때에, 그 악보는 이미 마음과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마음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생각은 도구입니다. 이것은 선을 위하여 사용되어질 수도 있고 악을 위해서 사용되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은 남용될 수도 있고 왜곡되어 죄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생각들을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세 가지의 생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과,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은 것들입니다. 이것은 악한 생각이나 헛된 생각 또는 공허한 생각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염려되는 것들을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두려움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생각을 염려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잘못 사용하는 것 중의 또 다른 것은 정욕적인 생각을 품는 것입니다. 정욕은 육체의 욕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정욕적인 것을 반복하여 생각하는 것은 생각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수도 생각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상처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을 반복하여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 줄 것을 생각하는 것은 생각을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홍수를 내리신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5).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의 선물을 잘못 사용한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을 악한 계획을 위하여 사용한 것입니다. 그들의 잘못된 생각은 행동으로 나타나 죄를 심각하게 범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생각을 어두운 일을 위하여 잘못 사용하곤 합니다. 우리는 생각에 악한 생각이나 어두움 것들을 채우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즉,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생각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너무 크고 위대하셔서 우리는 그 분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모두 알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주를 보게 되면 너무나 커서 생각속에 모두 담을수가 없듯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크심을 모두 알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주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주는 일부분에 불과한 것입니다. 창조자는 피조물보다 더 크신 것입니다. 우주가 너무나 커서 모두 알수 없듯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도 우리가 모두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십니다. 그러나,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모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어려운 순간에도 그 분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날 어떻게 변할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일 3:2). 우리는 장래에 어떻게 될 것에 대하여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하시게 되면 우리는 주님과 같이 변화될 것입니다.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 주님과 같이 새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새롭게 될지를 알수가 없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 보여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 들이 있습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면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여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 4:8).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고 사랑할만하며 칭찬할만하며 덕이 있는 것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깊이 생각하며 묵상해야 하는 것들은 바로 경건과 정결과 사랑, 그리고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생각과 믿음에 대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족과 삶,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넓히신다면,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1.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갑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 (잠 23:7).
우리가 생각하는 그 생각은 우리의 삶을 형성해가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은 우리가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동에 변화를 주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생각의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For as a man thinks in his heart, so he is...” (잠 23:7).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일하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그 모습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나는 할수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할수 있어.” 라고 하는 사람의 말은 모두 맞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나는 할수 없어.” 라고 생각했다면, “여러분은 할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할수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할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스스로 인생의 도전에서 할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스스로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예언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삶에서 어떠한 일들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그렇게 삶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잠언 4장에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마음의 생각을 통해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삶이 형성되는 것은 바로 마음의 생각인 것입니다. 윌리엄 아더 워드는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생각할 수 있다면, 당신은 성취할 수 있으며, 당신이 꿈을 꿀 수 있다면, 당신은 그 꿈을 이룰수 있다.” 이 명언은 생각과 꿈이 미래의 삶을 형성해 간다는 것입니다. 철학자인 파스칼은 “생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것을 결정하게 하는 요인은 바로 생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각의 힘을 아시기에, 그 생각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대한 바벨탑을 지어서 우상 숭배를 하려고 했던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창 11:6).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한 백성이며 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으로 그들이 연합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고 하셨습니다. 경영하는 것을 영어 흠정역에서는 "they have imagined to do." 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행동하기로 생각한 것, 또는 그들이 행하기로 상상한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들이 생각한 것들을 이루어갈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영화의 상상이 수년 후에 실제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이언 맨과 같이 하늘을 나는 슈트가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고, 투명 인간의 망토가 현실화 되고 있으며, AI 와 같은 인공 지능 로봇이 현실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차가 스스로 가는 자율 주행이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사람의 뇌에 칩을 이식해서 생각으로 컴퓨터를 조종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들을 이룰수 있음을 아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는 많은 도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고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기도 합니다. 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염려 하기도 하며 기도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계획하는 계획들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이 우리의 삶과 미래를 형성해 가고 있음을 믿고 믿음의 바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우리의 생각이 믿음을 결정하게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생각은 믿음으로 사는 삶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볼수 없기에 믿음의 눈인 마음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마음과 생각을 통하여 삶으로 연결되어 집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에 대한 장입니다. 믿음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역사적인 믿음의 거장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요셉과 같은 믿음의 거장들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에 대하여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인 것입니다. 믿음은 미래에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현재의 확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들을 믿음으로 바라볼 때에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을 갖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 가지 방식으로 보게 하셨습니다. 첫째 우리는 육체의 눈으로 볼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마음에 있는 생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꿈을 꾸게 됩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보는 눈인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눈으로 볼수 없는 것을, 우리는 마음의 생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소망한다면, 우리는 마음의 생각에서 바라 볼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이미지를 사용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주의 만찬과 침례는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침례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됨, 그리고 부활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우리가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보게 되면,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우리의 새생명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에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흘리심으로 구원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속에 그림을 그리게 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생명되시고, 우리는 주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새생명의 연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각하는 능력을 주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이해하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열국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면서, 그의 후손들이 이렇게 많아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별을 보여주시면서 생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육체의 눈으로 보여지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눈으로 보기를 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은,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18) 라고 했습니다. 이는 보이는 것은 잠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의자나 건물 등은 일시적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소멸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영혼, 그리고 천국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은 믿음에 중요한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마음의 생각으로만이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위대한 삶은 위대한 꿈을 통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엡 1:18)
위대한 삶은 위대한 꿈을 통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목적과 꿈을 향하여 전진함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보다 큰 꿈을 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 더욱 의미있는 삶으로 변화시켜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엡 1:18) 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의 눈을 밝히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는 육체의 시력이 좋아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생각들을 밝아지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신 소망을 통하여 인생의 꿈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부르신 그 부르심을 분명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놓치고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꿈보다는 자신의 꿈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더 나은 의미있고 위대한 삶을 따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따르게 되면 우리의 심장이 뛰며 열정과 비전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자신의 직장과 세상이 주는 안락함에 만족한다면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잠언서는 꿈이 없는 백성은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 (잠 29:18). 꿈이 없는 백성은 스스로 방자히 행하여 멸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은 우리의 꿈보다 크고 위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더 크고 위대하며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엡 3:20).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너 넘치도록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꿈은 우리의 능력이나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맞추어 꿈을 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4. 의심은 믿음의 방해 요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 1: 6-7).
의심은 생각의 적입니다. 의심과 두려움은 하나님이 삶에서 성취하시고자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생각 속에 의심이나 두려움이 찾아오지 않도록 믿음으로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위하여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용기가 필요한 이유는 마음에 자주 두려움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용기란 우리의 가는 길이 힘들고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복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믿음과 용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용기가 필요없는 도전은 참된 도전이 아닙니다. 용기가 필요없는 삶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키우시기 위하여 어렵고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십니다. 또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큰 사역을 맡기시곤 합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집중하며 믿음의 용기를 내어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의심과 믿음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 1: 6-7).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얻는 비결은 의심을 버리고 믿음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는 정함이 없어서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심을 의심하고 믿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의심하는 것을 믿고, 믿어야 할 것을 의심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두려움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거나 믿음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두려움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는다면, 우리의 삶은 항상 스트레스가 가득하고 염려와 두려움이 가득한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두려움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는다면, 우리의 삶은 비참한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이나 염려가 아니라, 믿음이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비결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의 아비가 주님께 나아옵니다. “...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그러자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그러자, 그의 아비가 ‘...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라고 했습니다. 그 아비의 응답은 내가 믿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의심도 함께 있으니 믿음 없는 것을 도와서 의심을 버리고 온전히 믿게 하옵소서 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온전한 제자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의심을 버려야 합니다. 이성이 주는 의심과 세상이 주는 의심을 버리고 온전히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난 후에 믿으려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때로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비행기의 엔진이나 기체에 대한 모든 것을 모릅니다. 그가 아는 것은 비행기를 조종하는 매뉴얼을 배워서 적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대한 모든 해답을 모르지만 한 가지 아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두려움과 염려가 가득하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인생의 비전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며 목표를 세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꿈이 사라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의심과 염려가 비전을 성취하지 못하도록 마음에서 그 꿈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타이어에서 바람이 세고 있다면, 그 찢어진 곳을 메우고 바람을 주입해야 합니다. 자동차의 기름이 바닥났다면, 우리는 기름을 다시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자동차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도 환경이나 어려움으로 인하여 고갈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새롭게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충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5. 성령과 말씀이 생각을 재충전하게 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잇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이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 16-17).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과 말씀은 우리의 생각을 충전하게 합니다. 우리의 능력의 원천은 성령님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이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 16-17).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가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능력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보혜사로서 우리에게 보내셔서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시 119:18)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님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깨닫게 하는 시간은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비전이 살아있게 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건의 시간을 잊어버린다면, 마음에서 품고 있던 열정과 꿈이 식어지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지켜가야 합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기도와 말씀의 시간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중심이 되는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꿈은 우리의 적은 꿈을 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큰 꿈을 꾸게 하시며 자신의 삶을 더욱 크게 하는 열쇠가 디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지음 받았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하여 믿음의 마음과 생각을 품고 지속적으로 전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 (잠 23:7).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위대한 선물 중의 하나는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의 생각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생각이 없다면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건물도 누군가가 생각하여 설계도를 만들어야 건축을 통하여 건물이라는 실체가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기업이나 회사, 예술의 분야는 실체가 있기 전에 먼저 마음의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베토벤이 작사하기 위하여 악보를 기록하기 시작할 때에, 그 악보는 이미 마음과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마음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생각은 도구입니다. 이것은 선을 위하여 사용되어질 수도 있고 악을 위해서 사용되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은 남용될 수도 있고 왜곡되어 죄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생각들을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세 가지의 생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과,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은 것들입니다. 이것은 악한 생각이나 헛된 생각 또는 공허한 생각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염려되는 것들을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두려움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생각을 염려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잘못 사용하는 것 중의 또 다른 것은 정욕적인 생각을 품는 것입니다. 정욕은 육체의 욕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정욕적인 것을 반복하여 생각하는 것은 생각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수도 생각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상처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을 반복하여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 줄 것을 생각하는 것은 생각을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홍수를 내리신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5).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의 선물을 잘못 사용한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을 악한 계획을 위하여 사용한 것입니다. 그들의 잘못된 생각은 행동으로 나타나 죄를 심각하게 범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생각을 어두운 일을 위하여 잘못 사용하곤 합니다. 우리는 생각에 악한 생각이나 어두움 것들을 채우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즉,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생각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너무 크고 위대하셔서 우리는 그 분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모두 알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주를 보게 되면 너무나 커서 생각속에 모두 담을수가 없듯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크심을 모두 알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주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주는 일부분에 불과한 것입니다. 창조자는 피조물보다 더 크신 것입니다. 우주가 너무나 커서 모두 알수 없듯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도 우리가 모두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십니다. 그러나,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모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어려운 순간에도 그 분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날 어떻게 변할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일 3:2). 우리는 장래에 어떻게 될 것에 대하여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하시게 되면 우리는 주님과 같이 변화될 것입니다.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 주님과 같이 새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새롭게 될지를 알수가 없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 보여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 들이 있습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면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여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 4:8).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고 사랑할만하며 칭찬할만하며 덕이 있는 것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깊이 생각하며 묵상해야 하는 것들은 바로 경건과 정결과 사랑, 그리고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생각과 믿음에 대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족과 삶,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넓히신다면,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1.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갑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 (잠 23:7).
우리가 생각하는 그 생각은 우리의 삶을 형성해가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은 우리가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동에 변화를 주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생각의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For as a man thinks in his heart, so he is...” (잠 23:7).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일하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그 모습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나는 할수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할수 있어.” 라고 하는 사람의 말은 모두 맞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나는 할수 없어.” 라고 생각했다면, “여러분은 할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할수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할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스스로 인생의 도전에서 할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스스로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예언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삶에서 어떠한 일들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그렇게 삶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잠언 4장에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마음의 생각을 통해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삶이 형성되는 것은 바로 마음의 생각인 것입니다. 윌리엄 아더 워드는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생각할 수 있다면, 당신은 성취할 수 있으며, 당신이 꿈을 꿀 수 있다면, 당신은 그 꿈을 이룰수 있다.” 이 명언은 생각과 꿈이 미래의 삶을 형성해 간다는 것입니다. 철학자인 파스칼은 “생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것을 결정하게 하는 요인은 바로 생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각의 힘을 아시기에, 그 생각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대한 바벨탑을 지어서 우상 숭배를 하려고 했던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창 11:6).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한 백성이며 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으로 그들이 연합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고 하셨습니다. 경영하는 것을 영어 흠정역에서는 "they have imagined to do." 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행동하기로 생각한 것, 또는 그들이 행하기로 상상한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들이 생각한 것들을 이루어갈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영화의 상상이 수년 후에 실제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이언 맨과 같이 하늘을 나는 슈트가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고, 투명 인간의 망토가 현실화 되고 있으며, AI 와 같은 인공 지능 로봇이 현실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차가 스스로 가는 자율 주행이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사람의 뇌에 칩을 이식해서 생각으로 컴퓨터를 조종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들을 이룰수 있음을 아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는 많은 도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고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기도 합니다. 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염려 하기도 하며 기도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계획하는 계획들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이 우리의 삶과 미래를 형성해 가고 있음을 믿고 믿음의 바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우리의 생각이 믿음을 결정하게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생각은 믿음으로 사는 삶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볼수 없기에 믿음의 눈인 마음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마음과 생각을 통하여 삶으로 연결되어 집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에 대한 장입니다. 믿음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역사적인 믿음의 거장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요셉과 같은 믿음의 거장들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에 대하여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인 것입니다. 믿음은 미래에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현재의 확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들을 믿음으로 바라볼 때에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을 갖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 가지 방식으로 보게 하셨습니다. 첫째 우리는 육체의 눈으로 볼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마음에 있는 생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꿈을 꾸게 됩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보는 눈인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눈으로 볼수 없는 것을, 우리는 마음의 생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소망한다면, 우리는 마음의 생각에서 바라 볼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이미지를 사용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주의 만찬과 침례는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침례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됨, 그리고 부활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우리가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보게 되면,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우리의 새생명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에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흘리심으로 구원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속에 그림을 그리게 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생명되시고, 우리는 주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새생명의 연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각하는 능력을 주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이해하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열국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면서, 그의 후손들이 이렇게 많아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별을 보여주시면서 생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육체의 눈으로 보여지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눈으로 보기를 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은,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18) 라고 했습니다. 이는 보이는 것은 잠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의자나 건물 등은 일시적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소멸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영혼, 그리고 천국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은 믿음에 중요한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마음의 생각으로만이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위대한 삶은 위대한 꿈을 통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엡 1:18)
위대한 삶은 위대한 꿈을 통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목적과 꿈을 향하여 전진함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보다 큰 꿈을 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 더욱 의미있는 삶으로 변화시켜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엡 1:18) 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의 눈을 밝히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는 육체의 시력이 좋아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생각들을 밝아지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신 소망을 통하여 인생의 꿈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부르신 그 부르심을 분명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놓치고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꿈보다는 자신의 꿈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더 나은 의미있고 위대한 삶을 따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따르게 되면 우리의 심장이 뛰며 열정과 비전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자신의 직장과 세상이 주는 안락함에 만족한다면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잠언서는 꿈이 없는 백성은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 (잠 29:18). 꿈이 없는 백성은 스스로 방자히 행하여 멸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은 우리의 꿈보다 크고 위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더 크고 위대하며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엡 3:20).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너 넘치도록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꿈은 우리의 능력이나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맞추어 꿈을 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4. 의심은 믿음의 방해 요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 1: 6-7).
의심은 생각의 적입니다. 의심과 두려움은 하나님이 삶에서 성취하시고자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생각 속에 의심이나 두려움이 찾아오지 않도록 믿음으로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위하여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용기가 필요한 이유는 마음에 자주 두려움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용기란 우리의 가는 길이 힘들고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복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믿음과 용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용기가 필요없는 도전은 참된 도전이 아닙니다. 용기가 필요없는 삶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키우시기 위하여 어렵고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십니다. 또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큰 사역을 맡기시곤 합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집중하며 믿음의 용기를 내어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의심과 믿음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 1: 6-7).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얻는 비결은 의심을 버리고 믿음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는 정함이 없어서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심을 의심하고 믿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의심하는 것을 믿고, 믿어야 할 것을 의심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두려움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거나 믿음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두려움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는다면, 우리의 삶은 항상 스트레스가 가득하고 염려와 두려움이 가득한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두려움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는다면, 우리의 삶은 비참한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이나 염려가 아니라, 믿음이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비결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의 아비가 주님께 나아옵니다. “...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그러자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그러자, 그의 아비가 ‘...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라고 했습니다. 그 아비의 응답은 내가 믿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의심도 함께 있으니 믿음 없는 것을 도와서 의심을 버리고 온전히 믿게 하옵소서 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온전한 제자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의심을 버려야 합니다. 이성이 주는 의심과 세상이 주는 의심을 버리고 온전히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난 후에 믿으려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때로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비행기의 엔진이나 기체에 대한 모든 것을 모릅니다. 그가 아는 것은 비행기를 조종하는 매뉴얼을 배워서 적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대한 모든 해답을 모르지만 한 가지 아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두려움과 염려가 가득하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인생의 비전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며 목표를 세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꿈이 사라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의심과 염려가 비전을 성취하지 못하도록 마음에서 그 꿈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타이어에서 바람이 세고 있다면, 그 찢어진 곳을 메우고 바람을 주입해야 합니다. 자동차의 기름이 바닥났다면, 우리는 기름을 다시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자동차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도 환경이나 어려움으로 인하여 고갈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새롭게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충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5. 성령과 말씀이 생각을 재충전하게 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잇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이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 16-17).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과 말씀은 우리의 생각을 충전하게 합니다. 우리의 능력의 원천은 성령님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이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 16-17).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가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능력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보혜사로서 우리에게 보내셔서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시 119:18)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님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깨닫게 하는 시간은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비전이 살아있게 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건의 시간을 잊어버린다면, 마음에서 품고 있던 열정과 꿈이 식어지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지켜가야 합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기도와 말씀의 시간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중심이 되는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꿈은 우리의 적은 꿈을 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큰 꿈을 꾸게 하시며 자신의 삶을 더욱 크게 하는 열쇠가 디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지음 받았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하여 믿음의 마음과 생각을 품고 지속적으로 전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