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히 1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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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289회 작성일 23-01-14 18:20본문
아브라함의 믿음(히 11:8-19)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례 기업으로 받을 당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
히브리서 11장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믿음의 사람과 그들의 믿음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추상적인 개념이기에 참된 믿음이란 행함으로 나타내어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안전한가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해마다 소방서는 교회의 소방시설을 점검합니다. 지금은 대행업체를 통해서 교회의 소방 일체를 점검하고 이상이 없는지를 체크합니다. 그리고 이상이 있으면 장비를 수리하거나 교체하여 정상이 되게 합니다. 우리의 몸도 해마다 건강 검진을 통하여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합니다. 우리가 점검하지 않고 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때로는 건강을 회복하기가 어렵게 되기도 합니다. 최근에 한 선교사님께서 한국에 오셨다가 건강 검진을 받으셨다가 갑상선 암이 발견되어 치료를 받으신다고 합니다. 다해이 일찍 조기 발견되었기에 치료하기가 수월하신 듯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쉬운 암이라도 늦게 발견되어 이전되면 생명의 위험에 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며 흠이 없는지 돌아보기 위하여 우리는 믿음의 본이 되는 아브라함의 여정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배우며 우리 자신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순종의 복에 대하여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 12:2-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거주하다 마침내 가나안으로 이주했습니다.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창 12:5).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위대한 역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세우시고 가나안 땅을 그의 기업으로 주실 것을 계획하셨고 약속하셨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하여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셔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까지는 하나님의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비 친척을 떠나라고 했지만, 아버지 데라와 조카 롯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인 가나안으로 이주해야 했지만,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데라가 죽은 후에야 가나안으로 이주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더디 순종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서 나오는 믿음의 싹을 인정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하는 통로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노아의 순종으로 방주가 만들어지고 인류의 역사가 새롭게 되었듯이,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세워가시는 거룩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되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애굽에서 430년간 거주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함으로 하나님의 원대한 꿈이 이루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이 이스라엘 민족이 탄생되고 약속의 땅을 얻는 통로가 되었듯이, 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온 세상을 구원하는 통로가 된 것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순종을 배우셨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8-9). 예수님도 아들이시지만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셔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 분은 온 몸에 상처를 받으시며 고난을 당하셨고, 마침내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딤후 1:9).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우리를 축복하셔서 존귀한 그릇으로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세상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존귀한 그릇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루디아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 자가 되었고, 뵈뵈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고린도 교회에서 일군으로 섬기며 사도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안락함에서 일어나 주님이 부르심 부름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예배의 자리에 순종함으로 나아가 감사와 사랑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역의 자리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열정으로 교회에서 열정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는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며 세상의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분의 임재 가운데로 부르십니다. 그 분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믿음의 터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9-10)
아브라함의 믿음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이주한 순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그가 우상의 나라를 떠나는 것이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약속의 땅에 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가 지켜야 할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도착한 후에 단을 쌓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에 기근이 찾아오자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 12:10). 어찌보면 기근은 하나님이 보내신 시험일 수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이 찾아오자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함으로 인내하기보다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는 약속의 땅을 떠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세상인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죄를 범했습니다.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 속여 애굽왕인 바로의 후처가 되게 했습니다. 마침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애굽에 재앙을 내리셔서 다시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돌아오게 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하갈을 데리고 왔고 후에 아브라함의 첩이 되어 이스마엘을 낳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었지만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오늘날 이스마엘은 이슬람을 믿는 사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아 약속의 땅을 떠난 것은 큰 실수였고 실패였습니다. 그의 잘못된 행동은 잘못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 엘리멜렉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도 가나안에 흉년이 찾아오자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반대로 그는 모압에서 죽고 그의 두 아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나오미는 모압에서 다시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이후에야 하나님의 축복이 찾아왔습니다. 기근이 찾아올 때에 우리는 믿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위에 굳게 서서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도 시험이 찾아오면 믿음의 뿌리를 옮기고자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의 문제가 환경이나 주위 사람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이십니다. 다윗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하나님께서 눈동자같이 지키시며 보호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조금만 어려움이 찾아오거나 불편한 일이 있으면 원망하며 세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여러분은 기근이 찾아오면 어떻게 반응하고 계시는지요? 기근은 우리에게 찾아오는 시험입니다. 욥은 기근이 찾아왔을 때에 자신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며 인내하여 승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이 아직 부족함을 깨닫고 정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다윗은 기근이 찾아올 때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두려움과 염려가 가득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선포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1-2). 다윗은 그의 인생에 찾아온 거센 폭풍우에 밀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약속의 말씀에 거하기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누구를 찾아야 하는가요?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근심이 찾아오면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 15: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세상이 주는 유혹이나 시험이나 환난을 이기는 비결인 것입니다. 주님의 품 안에 거하는 자가 가장 안전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게 될 것을 선포했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시 91:1-2).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며 요새시며 의뢰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를 사냥군의 올무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분 안에 뿌리를 내리라고 교훈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우리가 주님 안에 뿌리를 내려야 믿음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는 것은 그 분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며, 주님의 몸된 교회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분의 몸으로서 성령 안에서 세워지는 거룩한 처소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지체로 함께 동행하며 주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 되는 것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어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비결은 그가 애굽에 내려갔지만 회개하고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는 가나안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며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 어느날 그는 새로운 비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진정한 가나안은 하늘에 있는 천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그곳을 소망하며 이 땅의 장막에 거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10)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천국을 소망하며 약속의 땅에 그의 자손들과 함께 장막에 거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천국을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교회에 뿌리를 내리며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이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히 11:17).
믿음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온전한 믿음은 이삭을 드리는 아브라함의 헌신에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2). 하나님과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에게 이삭은 아브라함의 약속의 증거였고, 아브라함에게는 소중한 독자이면서 하나님의 약속으로 얻은 후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를 견고하게 하는 약속의 후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을 재물로 드리기 위하여 삼일길을 걸어가 모리아 산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잡아 재물로 드리려고 할 때에 하나님은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 독자 이삭을 드리는 하나님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순종의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향하여 그의 자녀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데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이 이삭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도 다시 살리실 분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던 아브라함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그의 순종을 통해서 성취되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100세가 되었을 때에 아들 이삭을 얻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기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위해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할 때에 그가 구원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임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는 백부장의 믿음에 대하여 주님이 칭찬하십니다. 백부장이 주님께 나아와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괴로워하기에 고쳐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직접 가셔서 고쳐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때 백부장은 주님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이렇게 부탁합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마 8:8). 백부장은 자신의 권위로 하위의 군사에게 명령하면 순종하듯이, 주께서 말씀하시면 하인의 병이 나을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를 향하여,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 8:10)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그 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을 발견한다면, 그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있다면 우리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에 기적을 가져오는 능력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믿음이 하나님께 전달되는 것은 기도이며,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믿음으로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의 능력을 가르치십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 21:22). 우리의 믿음은 의심하는 믿음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그 분의 전능하심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과 시련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도전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전진하면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대하여,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 성취되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그 분의 능력과 약속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는 삶은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약속하시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십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에게 배우는 믿음의 본질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점점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하며 순종하는 믿음이 자라갔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본이 되는 뿌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신뢰하는 믿음의 삶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례 기업으로 받을 당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
히브리서 11장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믿음의 사람과 그들의 믿음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추상적인 개념이기에 참된 믿음이란 행함으로 나타내어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안전한가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해마다 소방서는 교회의 소방시설을 점검합니다. 지금은 대행업체를 통해서 교회의 소방 일체를 점검하고 이상이 없는지를 체크합니다. 그리고 이상이 있으면 장비를 수리하거나 교체하여 정상이 되게 합니다. 우리의 몸도 해마다 건강 검진을 통하여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합니다. 우리가 점검하지 않고 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때로는 건강을 회복하기가 어렵게 되기도 합니다. 최근에 한 선교사님께서 한국에 오셨다가 건강 검진을 받으셨다가 갑상선 암이 발견되어 치료를 받으신다고 합니다. 다해이 일찍 조기 발견되었기에 치료하기가 수월하신 듯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쉬운 암이라도 늦게 발견되어 이전되면 생명의 위험에 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며 흠이 없는지 돌아보기 위하여 우리는 믿음의 본이 되는 아브라함의 여정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배우며 우리 자신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순종의 복에 대하여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 12:2-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거주하다 마침내 가나안으로 이주했습니다.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창 12:5).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위대한 역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세우시고 가나안 땅을 그의 기업으로 주실 것을 계획하셨고 약속하셨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하여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셔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까지는 하나님의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비 친척을 떠나라고 했지만, 아버지 데라와 조카 롯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인 가나안으로 이주해야 했지만,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데라가 죽은 후에야 가나안으로 이주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더디 순종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서 나오는 믿음의 싹을 인정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하는 통로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노아의 순종으로 방주가 만들어지고 인류의 역사가 새롭게 되었듯이,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세워가시는 거룩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되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애굽에서 430년간 거주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함으로 하나님의 원대한 꿈이 이루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이 이스라엘 민족이 탄생되고 약속의 땅을 얻는 통로가 되었듯이, 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온 세상을 구원하는 통로가 된 것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순종을 배우셨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8-9). 예수님도 아들이시지만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셔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 분은 온 몸에 상처를 받으시며 고난을 당하셨고, 마침내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딤후 1:9).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우리를 축복하셔서 존귀한 그릇으로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세상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존귀한 그릇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루디아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 자가 되었고, 뵈뵈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고린도 교회에서 일군으로 섬기며 사도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안락함에서 일어나 주님이 부르심 부름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예배의 자리에 순종함으로 나아가 감사와 사랑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역의 자리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열정으로 교회에서 열정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는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며 세상의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분의 임재 가운데로 부르십니다. 그 분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믿음의 터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9-10)
아브라함의 믿음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이주한 순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그가 우상의 나라를 떠나는 것이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약속의 땅에 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가 지켜야 할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도착한 후에 단을 쌓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에 기근이 찾아오자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 12:10). 어찌보면 기근은 하나님이 보내신 시험일 수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이 찾아오자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함으로 인내하기보다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는 약속의 땅을 떠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세상인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죄를 범했습니다.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 속여 애굽왕인 바로의 후처가 되게 했습니다. 마침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애굽에 재앙을 내리셔서 다시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돌아오게 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하갈을 데리고 왔고 후에 아브라함의 첩이 되어 이스마엘을 낳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었지만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오늘날 이스마엘은 이슬람을 믿는 사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아 약속의 땅을 떠난 것은 큰 실수였고 실패였습니다. 그의 잘못된 행동은 잘못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 엘리멜렉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도 가나안에 흉년이 찾아오자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반대로 그는 모압에서 죽고 그의 두 아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나오미는 모압에서 다시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이후에야 하나님의 축복이 찾아왔습니다. 기근이 찾아올 때에 우리는 믿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위에 굳게 서서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도 시험이 찾아오면 믿음의 뿌리를 옮기고자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의 문제가 환경이나 주위 사람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이십니다. 다윗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하나님께서 눈동자같이 지키시며 보호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조금만 어려움이 찾아오거나 불편한 일이 있으면 원망하며 세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여러분은 기근이 찾아오면 어떻게 반응하고 계시는지요? 기근은 우리에게 찾아오는 시험입니다. 욥은 기근이 찾아왔을 때에 자신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며 인내하여 승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이 아직 부족함을 깨닫고 정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다윗은 기근이 찾아올 때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두려움과 염려가 가득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선포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1-2). 다윗은 그의 인생에 찾아온 거센 폭풍우에 밀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약속의 말씀에 거하기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누구를 찾아야 하는가요?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근심이 찾아오면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 15: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세상이 주는 유혹이나 시험이나 환난을 이기는 비결인 것입니다. 주님의 품 안에 거하는 자가 가장 안전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게 될 것을 선포했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시 91:1-2).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며 요새시며 의뢰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를 사냥군의 올무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분 안에 뿌리를 내리라고 교훈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우리가 주님 안에 뿌리를 내려야 믿음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는 것은 그 분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며, 주님의 몸된 교회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분의 몸으로서 성령 안에서 세워지는 거룩한 처소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지체로 함께 동행하며 주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 되는 것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어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비결은 그가 애굽에 내려갔지만 회개하고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는 가나안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며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 어느날 그는 새로운 비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진정한 가나안은 하늘에 있는 천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그곳을 소망하며 이 땅의 장막에 거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10)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천국을 소망하며 약속의 땅에 그의 자손들과 함께 장막에 거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천국을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교회에 뿌리를 내리며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이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히 11:17).
믿음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온전한 믿음은 이삭을 드리는 아브라함의 헌신에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2). 하나님과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에게 이삭은 아브라함의 약속의 증거였고, 아브라함에게는 소중한 독자이면서 하나님의 약속으로 얻은 후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를 견고하게 하는 약속의 후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을 재물로 드리기 위하여 삼일길을 걸어가 모리아 산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잡아 재물로 드리려고 할 때에 하나님은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 독자 이삭을 드리는 하나님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순종의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향하여 그의 자녀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데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이 이삭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도 다시 살리실 분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던 아브라함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그의 순종을 통해서 성취되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100세가 되었을 때에 아들 이삭을 얻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기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위해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할 때에 그가 구원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임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는 백부장의 믿음에 대하여 주님이 칭찬하십니다. 백부장이 주님께 나아와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괴로워하기에 고쳐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직접 가셔서 고쳐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때 백부장은 주님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이렇게 부탁합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마 8:8). 백부장은 자신의 권위로 하위의 군사에게 명령하면 순종하듯이, 주께서 말씀하시면 하인의 병이 나을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를 향하여,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 8:10)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그 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을 발견한다면, 그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있다면 우리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에 기적을 가져오는 능력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믿음이 하나님께 전달되는 것은 기도이며,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믿음으로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의 능력을 가르치십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 21:22). 우리의 믿음은 의심하는 믿음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그 분의 전능하심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과 시련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도전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전진하면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대하여,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 성취되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그 분의 능력과 약속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는 삶은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약속하시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십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에게 배우는 믿음의 본질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점점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하며 순종하는 믿음이 자라갔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본이 되는 뿌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신뢰하는 믿음의 삶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