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증거를 얻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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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776회 작성일 23-01-07 20:10본문
믿음의 증거를 얻는 삶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믿음이란 무엇인가요?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신뢰함으로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보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말씀에 근거하여 구원받았음을 확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믿는 즉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이며 증거이기에, 우리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 위에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음으로 믿음의 증거를 얻었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이 주신 증거가 있었습니다. 그 증거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 그 자체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온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음을 상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이 세상은 보이는 물질로 인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셨고, 공중의 새와 짐승과 바다의 생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온 땅에 존재하는 나무와 같은 식물들을 만드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말씀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 만큼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능력이며 생명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그 믿음에 대하여 하나님이 증거하시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과 믿음의 증거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가 복음에 순종할 때에 의롭다 하는 증거를 얻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 11:4).
아담과 하와는 죄를 범한 후에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가인은 형으로서 농사를 하였고, 아벨은 가인의 동생으로서 양을 쳤습니다. 이때 두 사람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지만, 아벨은 양의 첫새끼와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을 열납하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드린 땅의 소산물을 거절하시고 아벨이 드린 어린양의 제물을 열납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아벨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 양을 제물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에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이때 아담과 하와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 15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탄생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은 장차 이 땅에 오셔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사람들을 사망에서 건져내셔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은 짐승을 잡아서 만든 옷이었습니다. 가죽옷이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리워준 것은, 장차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가리우시고 구원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아가야 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어린양의 피로 나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아벨은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갔기에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열납하시고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아벨이 하나님께 어린양의 예물을 드림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아벨이 드린 제사는 장차 이스라엘 자손이 번제와 속죄제의 제사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것의 모형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벨이 어린양의 피로 의롭게 된 것처럼, 우리의 구원도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우리의 구원은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에 대하여 증거를 주십니다.
우리의 구원의 증거는 바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구언에 대한 내적 확신을 주십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4:13). 우리가 진리의 말씀인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으면 성령이 우리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영적인 삶으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며 찬양과 기도와 말씀에 감동이 있는 것은 성령이 주시는 내적인 증거입니다. 우리가 기도 가운데 회개하는 것은 성령의 내적 증거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며 전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내적인 증거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는 것도 성령이 주시는 증거인 것입니다.
2.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동행한다는 것은 같은 뜻을 품고 함께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과 뜻을 같이 하며 연합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올라간 믿음의 거장이었습니다. 창세기 5장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4)고 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에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과 구별된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그 심판에 대한 예표로 므두셀라를 낳게 하셨습니다. 므두셀라의 뜻은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입니다. 고대에서 전쟁을 할 때에 ‘창을 던지는 사람’이 앞장서서 적의 공격을 방어했습니다. 만일 창을 던지는 사람이 죽으면 그 성은 멸망하였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의 생각이 악하고 행실이 죄가 가득했기에 하나님은 그들의 죄로 인하여 온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워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창 5:21-23).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을 때에,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악한 길로 행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지만, 세상의 어두운 길을 선택했던 사람들은 므두셀라가 죽은 후에 하나님이 보내신 홍수로 멸망하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앞둔 상황에서 세상과 구별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삼백 년간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라고 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자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로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주셨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에녹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동행함으로 얻은 증거는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의 영예를 얻은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자녀가 부모님을 공경하며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자녀가 바르게 살아가면 부모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녀는 복을 받은 자녀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호를 얻었다면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 11:6)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8).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뒤로 넘어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 즉 멸망에 빠질 자가 아닌 것입니다. 침륜이라는 말은 회생 불능 상태로 파괴되거나 멸망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에서 넘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믿음의 역할이 기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어떠한 삶인가요? 에녹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힘쓰는 자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음으로 예배하기에 힘쓰는 자이며, 하나님과 기도와 말씀으로 교제하는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신 이유는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으로 관계를 굳건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우리의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도 하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기도 합니다. 우리의 교제는 낙심된 마음에 하나님의 격려를 만나게 하며,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평안을 누리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동행하는 삶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사명에 순종하는 삶은 믿음을 따르는 반열에 서게 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단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 후에 그 말씀을 삶에서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말씀은 다양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지켜야 할 십계명과 같은 하나님의 도덕법이 있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우리가 의의 길로 가게 하는 길이 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법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사회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말씀은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명은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희생과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경고를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 노아는 대홍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은 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20년간 방주를 지을 때에 그가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이나 감정을 더하지 않고 오직 말씀에 순종하여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노아는 아직 홍수를 본적도 없었습니다. 그는 홍수가 나서 온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 이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아의 순종으로 인하여 그와 그의 가족들이 모두가 홍수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세상에는 하나님의 경고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노아에게 질문합니다. 왜 당신은 방주를 짓고 있습니까? 그때 노아는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죄로 인하여 대홍수를 내리셔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함께 방주를 짓자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노아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죄 가운데 행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하고 있었지만, 노아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함으로 믿음을 따르는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의의 후사란 의로운 자의 혈통을 의미합니다. 즉 의의 후사란 믿음의 족보라는 반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의의 혈통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의 혈통입니다. 아담 이후로 아벨, 그리고 셋, 그리고 에녹과 노아가 믿음의 족보에 들어간 자들입니다. 그 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요셉,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믿음의 혈통은 지속적으로 믿음을 지키며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살아가는 의의 상속자입니다. 즉 믿음의 혈통에 속한 자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노아와 같이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며 평생동안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지체로서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포기하지 말고 잘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의의 선포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세상에 경고를 하는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의의 일군으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세우신 사명자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특권을 얻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고 작은 사명을 귀하게 여기며 그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희생과 헌신을 격려하시며 축복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격려하며 믿음의 상을 주실 것입니다 특히 사명을 감당하는 자는 사도 바울이 가르치는 사명자의 자세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사명자는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씨름하는 자가 적과 싸울 때에 자세를 견고히 하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경기에 임하듯이, 우리도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은 주님의 뜻을 행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곤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여 섬긴다면 주님께서 때가 이르면 열매를 얻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하며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믿음의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믿음이란 무엇인가요?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신뢰함으로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보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말씀에 근거하여 구원받았음을 확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믿는 즉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이며 증거이기에, 우리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 위에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음으로 믿음의 증거를 얻었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이 주신 증거가 있었습니다. 그 증거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 그 자체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온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음을 상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이 세상은 보이는 물질로 인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셨고, 공중의 새와 짐승과 바다의 생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온 땅에 존재하는 나무와 같은 식물들을 만드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말씀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 만큼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능력이며 생명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그 믿음에 대하여 하나님이 증거하시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과 믿음의 증거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가 복음에 순종할 때에 의롭다 하는 증거를 얻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 11:4).
아담과 하와는 죄를 범한 후에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가인은 형으로서 농사를 하였고, 아벨은 가인의 동생으로서 양을 쳤습니다. 이때 두 사람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지만, 아벨은 양의 첫새끼와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을 열납하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드린 땅의 소산물을 거절하시고 아벨이 드린 어린양의 제물을 열납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아벨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 양을 제물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에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이때 아담과 하와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 15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탄생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은 장차 이 땅에 오셔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사람들을 사망에서 건져내셔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은 짐승을 잡아서 만든 옷이었습니다. 가죽옷이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리워준 것은, 장차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가리우시고 구원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아가야 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어린양의 피로 나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아벨은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갔기에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열납하시고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아벨이 하나님께 어린양의 예물을 드림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아벨이 드린 제사는 장차 이스라엘 자손이 번제와 속죄제의 제사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것의 모형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벨이 어린양의 피로 의롭게 된 것처럼, 우리의 구원도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우리의 구원은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에 대하여 증거를 주십니다.
우리의 구원의 증거는 바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구언에 대한 내적 확신을 주십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4:13). 우리가 진리의 말씀인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으면 성령이 우리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영적인 삶으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며 찬양과 기도와 말씀에 감동이 있는 것은 성령이 주시는 내적인 증거입니다. 우리가 기도 가운데 회개하는 것은 성령의 내적 증거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며 전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내적인 증거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는 것도 성령이 주시는 증거인 것입니다.
2.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동행한다는 것은 같은 뜻을 품고 함께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과 뜻을 같이 하며 연합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올라간 믿음의 거장이었습니다. 창세기 5장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4)고 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에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과 구별된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그 심판에 대한 예표로 므두셀라를 낳게 하셨습니다. 므두셀라의 뜻은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입니다. 고대에서 전쟁을 할 때에 ‘창을 던지는 사람’이 앞장서서 적의 공격을 방어했습니다. 만일 창을 던지는 사람이 죽으면 그 성은 멸망하였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의 생각이 악하고 행실이 죄가 가득했기에 하나님은 그들의 죄로 인하여 온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워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창 5:21-23).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을 때에,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악한 길로 행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지만, 세상의 어두운 길을 선택했던 사람들은 므두셀라가 죽은 후에 하나님이 보내신 홍수로 멸망하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앞둔 상황에서 세상과 구별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삼백 년간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라고 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자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로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주셨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에녹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동행함으로 얻은 증거는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의 영예를 얻은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자녀가 부모님을 공경하며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자녀가 바르게 살아가면 부모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녀는 복을 받은 자녀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호를 얻었다면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 11:6)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8).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뒤로 넘어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 즉 멸망에 빠질 자가 아닌 것입니다. 침륜이라는 말은 회생 불능 상태로 파괴되거나 멸망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에서 넘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믿음의 역할이 기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어떠한 삶인가요? 에녹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힘쓰는 자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음으로 예배하기에 힘쓰는 자이며, 하나님과 기도와 말씀으로 교제하는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신 이유는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으로 관계를 굳건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우리의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도 하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기도 합니다. 우리의 교제는 낙심된 마음에 하나님의 격려를 만나게 하며,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평안을 누리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동행하는 삶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사명에 순종하는 삶은 믿음을 따르는 반열에 서게 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단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 후에 그 말씀을 삶에서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말씀은 다양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지켜야 할 십계명과 같은 하나님의 도덕법이 있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우리가 의의 길로 가게 하는 길이 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법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사회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말씀은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명은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희생과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경고를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 노아는 대홍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은 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20년간 방주를 지을 때에 그가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이나 감정을 더하지 않고 오직 말씀에 순종하여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노아는 아직 홍수를 본적도 없었습니다. 그는 홍수가 나서 온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 이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아의 순종으로 인하여 그와 그의 가족들이 모두가 홍수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세상에는 하나님의 경고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노아에게 질문합니다. 왜 당신은 방주를 짓고 있습니까? 그때 노아는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죄로 인하여 대홍수를 내리셔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함께 방주를 짓자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노아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죄 가운데 행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하고 있었지만, 노아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함으로 믿음을 따르는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의의 후사란 의로운 자의 혈통을 의미합니다. 즉 의의 후사란 믿음의 족보라는 반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의의 혈통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의 혈통입니다. 아담 이후로 아벨, 그리고 셋, 그리고 에녹과 노아가 믿음의 족보에 들어간 자들입니다. 그 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요셉,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믿음의 혈통은 지속적으로 믿음을 지키며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살아가는 의의 상속자입니다. 즉 믿음의 혈통에 속한 자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노아와 같이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며 평생동안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지체로서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포기하지 말고 잘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의의 선포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세상에 경고를 하는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의의 일군으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세우신 사명자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특권을 얻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고 작은 사명을 귀하게 여기며 그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희생과 헌신을 격려하시며 축복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격려하며 믿음의 상을 주실 것입니다 특히 사명을 감당하는 자는 사도 바울이 가르치는 사명자의 자세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사명자는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씨름하는 자가 적과 싸울 때에 자세를 견고히 하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경기에 임하듯이, 우리도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은 주님의 뜻을 행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곤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여 섬긴다면 주님께서 때가 이르면 열매를 얻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하며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믿음의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