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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시리즈(8)- 복음 전파는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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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94회 작성일 26-02-2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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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시리즈(8)- 복음 전파는 사명입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복음 전파는 교회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사역 중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맡기신 가장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참여, 교제, 나눔, 그리고 동역입니다.
그중에서도 동역은 주님의 몸 된 교회가 같은 목적을 품고 함께 사역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가장 중심적인 동역은 바로 복음 전파의 동역입니다.

지난 주일 오후 전도 세미나에 약 40명의 학생, 청년, 장년 주부 성도님들이 함께 참여하여 복음 전도의 의미와 구령 상담법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프로그램 하나를 마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다시 한번 영혼 구원의 사명으로 부르고 계신다는 신호입니다.

봄의 기운이 피어나는 이때, 우리도 함께 생명을 나누는 복음 사역에 참여하고 동역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복음 전파는 몇몇 사역자들의 몫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맡겨진 부르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엄히 명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딤후 4:1-2)

바울은 왜 이렇게 무겁고 엄숙한 어조로 복음 전파를 말합니까?
복음 전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순종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왜 복음 전파가 우리의 본질적인 사명인지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1.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기 백성을 통해 열방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복음 전파는 신약에 와서 갑자기 생겨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기 백성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열방에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의 은혜를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1)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은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깨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즉시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 3:15)

이 약속은 장차 오실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무너진 세상을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2)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통해 구속의 역사를 구체화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땅과 후손과 복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약속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세상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세상 가운데 구별하여 세우셨습니다. 단지 자기 민족만을 위한 특권 공동체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백성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 19:5-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사 42:6)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킴으로 세상 나라들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와 거룩함을 보여 주어야 했습니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신 4:6)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사명은 오늘날 교회처럼 직접 땅 끝까지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삶의 순종을 통해 열방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제사장 나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의 거룩함과 지혜와 구별됨이 세상에 대한 증언이 되어야 했습니다.

3)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은 열방을 향한 통로였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서는 자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자입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였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특권만이 아니라, 열방이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돕는 선교적 사명을 뜻했습니다.

라합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의 행하심을 듣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스바 여왕이 와서 하나님의 지혜를 보았고, 다니엘 시대에는 느부갓네살과 다리오 왕이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통해 열방 가운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큰 흐름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열방 구원을 계획하셨고, 자기 백성을 그 통로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거룩한 삶, 우리의 순종, 우리의 말과 태도는 단지 “좋은 신앙생활”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화는 개인 경건의 완성이 아니라, 복음 증거의 신뢰를 세우는 삶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입술만 듣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보다 더 소중한 분이심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사명은 완성되었고, 이제 교회에게 복음 전파의 지상사명으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자 이 세상에 약속하신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갈 4:4)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한 민족의 구원자가 아니라, 열방의 빛으로 오신 분입니다.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사 49:6)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요 8:12)

1) 예수님은 복음의 중심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동안 종종 기적을 행하신 후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입니까?

기적 자체가 복음의 중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기적과 능력에는 열광할 수 있지만, 복음은 단지 놀라운 사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의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의 핵심이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3-4)

복음은 단순한 종교적 권면이 아닙니다.
복음은 “착하게 살라”는 윤리도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복음을 믿는 자가 구원을 얻습니다.

2) 그러므로 부활 이후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로 파송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이루신 후에야 제자들에게 지상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마 28:19-20)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8)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21)

그리고 승천하시기 직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

이제 구약의 사명이 신약의 교회 안에서 더 분명해졌습니다.

구약에서는 열방이 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하는 방식이었다면, 신약에서는 교회가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교회는 존재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교회는 보내심 받은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모이는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흩어지는 공동체입니다.

3) 교회의 중심 사역은 결국 복음 전파입니다

교회에는 많은 중요한 사역이 있습니다. 예배, 양육, 제자훈련, 봉사, 교제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역은 결국 복음 전파를 돕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강해설교를 하고, 제자훈련을 하고,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복음을 더 선명히 알고, 더 분명히 전하며, 더 충성되게 살아내기 위한 수단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

하나님은 복음 전파를 통해 영혼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는 사역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교회의 최우선적 사명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전도는 은사가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
“나는 말주변이 없어서 못한다.”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두렵다.”
“나중에 좀 더 신앙이 좋아지면 하겠다.”

그러나 복음 전파는 준비가 완벽한 사람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복음을 아는 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내가 구세주인 척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구세주를 소개하는 일입니다.

우리를 막는 것은 대개 세 가지입니다.

두려움: 거절당할까 봐
무기력: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서
분주함: 영혼보다 내 일이 더 급해서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결과를 책임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순종은 우리가 드리는 일입니다.

3.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지금 복음 전파의 사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를 자기 인생의 중심 사명으로 받았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고전 1:23)

바울은 단지 교리를 가르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들고 도시마다 다니며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사신으로 살았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 5:20)

1) 복음 전파는 몇 사람의 특별 사역이 아니라 모든 성도의 순종입니다

바울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사명이 아닙니다.
목회자에게만 맡겨진 책임도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열심 있는 몇몇 사람들의 전유물도 아닙니다.
복음 전파는 구속의 역사를 이해하는 모든 성도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인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면, 그 이후 가장 중요한 순종은 그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복음 전도에 무관심한 것은 단지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일에 무관심한 것입니다.

2) 복음 전파는 코이노니아의 가장 실제적인 모습입니다

코이노니아는 함께 모여 교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한 영혼을 품고, 함께 복음 사역에 참여할 때 코이노니아는 가장 아름답게 드러납니다.

교회는 복음 전파를 위해 함께 동역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기도함으로 동역합니다.
어떤 이는 관계를 맺음으로 동역합니다.
어떤 이는 복음을 직접 설명함으로 동역합니다.
어떤 이는 초청하고 섬김으로 동역합니다.

한 사람의 열심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 전체가 같은 방향을 품는 것입니다.
교회가 함께 한 영혼을 품고 움직일 때, 복음의 통로가 열리게 됩니다.

3) 이제 우리는 ‘한 영혼’을 품고 실제로 움직여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가 복음을 들고 움직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믿는 자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해졌고, 하나님은 그 말씀을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행 13:47)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행 13:48)

오늘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일하십니다.

복음은 여전히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문제는 복음의 능력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복음을 말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봄, 우리는 막연한 감동으로 끝나지 말고 구체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번 주부터 이렇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한 사람을 정하십시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이웃 가운데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한 사람의 이름을 적으십시오.

둘째,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매일 짧게라도 “주님, 이 영혼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제가 복음의 통로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셋째, 관계를 여십시오.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식사하고, 삶을 들어 주십시오. 전도는 관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넷째, 복음을 말하십시오.

내가 받은 은혜를 나누고,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왜 부활하셨는지를 간단히 전하십시오. 완벽한 설명보다 진실한 증언이 중요합니다.

다섯째, 교회 공동체와 함께 동역하십시오.
혼자 하려 하지 말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초청하고 함께 섬기십시오. 코이노니아는 복음의 사명 안에서 빛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 전파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사명 중 하나가 아닙니다.
복음 전파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맡기신 가장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열방의 빛으로 부르셨습니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빛으로 오셨고,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교회를 세상으로 보내셔서 그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묻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를 해야 할까요?”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주님, 누구에게 가면 되겠습니까?”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기 원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소중함을 안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 복음을 전하는 일을 내 삶의 사명으로 받아들였습니까?
영혼 구원을 위해 울고 기도하고 움직이는 삶을 살아왔습니까?
아니면 전도는 늘 다른 누군가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뒤로 물러나 있지는 않았습니까?

오늘 주님은 우리를 정죄하시기 위해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명의 자리로 회복시키기 위해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다면,
그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감사의 순종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 때문에 침묵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시간, 마음으로 이렇게 결단하기 원합니다.

“주님, 복음 전파를 나의 사명으로 받겠습니다.”
“주님, 이번 봄에 한 영혼을 품고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기회가 올 때 침묵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주님, 혼자가 아니라 교회와 함께 복음의 동역자가 되겠습니다.”
혹시 마음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 이름을 지금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올려 드리십시오.
“주님, 이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저를 복음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제 삶이, 제 입술이, 제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옵소서.”